구지라 도이치의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음.. 이 책,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제목부터가 '너무' 재미있을 것 같잖아? 아니, 그러니깐, 제목'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뭐든 간에 '너무'는 좋지 않다.  

책소개를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동화와 미스터리의 결합. 뭐 이런 이야기인가 본데, 이렇게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을 것 같은 건 역시 좋지 않다.  

등등 '속고만' 산 인생은 아니지만, 이건 뭔가 대단히 '속을 것' 같은 제목과 책소개의 책을 샀다.  

읽었다.  

 

제목과 책소개에 혹해서 산 사람이라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제목과 책소개만큼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헤헤, 나는 속으로 '심봤다'를 외치며, 즐겁게 주말독서를 하고 있다.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의 배경은 '바' 다.시부야에 있는 니혼슈(일본주)만 파는 바  
저자는 미식가에 애주가다. 그것도 상당한  

각 단편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옛날 티비, 가수,영화, 놀이 등의 이야기는 그게 '일본꺼'라서 알아 먹는 얘기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재미있는 걸!  

일본주에 대한 박식함과 미식가에 걸맞는 안주들은 이게 '미스터리'를 위한 곁다리일지라도 훌륭하다. 
 
등장인물은 마흔둘의 세 남자, 미식가이자 미주가인 바텐더, 범죄심리학자, 그리고 화자인 형사
금요일밤마다 바를 찾는 메르헨 전공의 미녀 여대생  

이렇다.  

이야기는 술과 음식과 세 명의 옛날 이야기 만담으로 시작한다.
어떤 소재에 관해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쓸 때 그게 조사해서 쓴건지, 이 사람이 원래 아는 거에서 추려서 쓰는 건지가 대강 보인다고 한다면, 이 건 후자다. 그래서 더 맘에 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식과 술에 대한 만담식 수다, 아, 셋 중에는 금주중인 사람도 있어서, 매번 특이한 물을 주문한다. '롯코에서 난 맛있는 물', '복숭아 맛 천연수', '알프스 남부 천연수', '후지산 기슭에서 난 천연수'  

사실, 이 물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 중간에 에비앙도 한 번 나오긴 하는데,  

"여기, 자오우 산기슭 직송 화이트 치즈. 풍부한 밀크향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 와사비 간장에 찍어드십쇼."
"치즈에 와사비 간장?" 나는 야마우치의 치즈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의외로 맛있었다.
"그럼 난 호로새 훈제구이." 나도 야마우치의 작전에 지원 사격을 할 작정으로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메뉴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가리켰다.
"알았어."
마스터는 몸이 안 좋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지, 진지한 눈빛으로 접시에 음식을 담는 데 정성을 쏟고 있었다.
"여기요."
간단한 샐러드를 곁들인 훈제된 호로새가 한 입 크기로 썰려서 나왔다.
"호로새는 아프리카 서부에 사는 샌데, 유럽에서는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나는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전혀 새로운 맛으로 아주 맛있었다.
마스터가 내 글라스에 <시라유키>를 따랐다. 작전 성공.
"<시라유키>는 오래된 양조장에서 만드는데, 그 양조장은 텐분 19년 (1550년)에 창업된거야."  

그렇게 술, 음식 얘기 하다가, 옛날 얘기 하고, 그러다 사건 이야기 하고, 그 중간에 미녀 여대생 등장하여
알리바이 파훼, 사건 해결  

이런 패턴  

단편의 마지막은 항상 이런 식이다.

"사건은 이제 해결이네."
마스터의 말에 야마우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벽에서 쥐가 우는 소리라도 들리는 것 같은데. 오늘은 그만 문을 닫아야겠어."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후에는 빈 <센주시라뵤시> 병만이 쓸쓸히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번 마지막 문단 나올때마다, 나는 약간 모자란 애처럼 꺄르르르 ~ 하며 즐거워한다. '패턴'의 힘!  

동화와 연결시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 (사실은 이게 주인데 말이다 ^^;)  
이게 재미 없으면 아무리 재미난 잡소리를 곁들여도 책은 꽝인데, 여튼, 메인인 미스터리가 재미있었어.  

내가 이 단편집을 애정하는 이유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것들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 쓸데없는 만담, 농담, 반어, 대놓고 무시하기(설명하기 복잡하지만, 이런게 있다.), 숙명,
그리고 약간의 미스터리, 금요일 밤,  

그러니깐, 사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무척 만족스럽고, 여유롭고, 즐겁다. 알맹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스터리는 환영. 빈껍데기같은 삶 자체가 알맹이가 될수도, 그 껍데기 안에는 보이지 않는 영롱한 꿈같은 비누거품들이 잔뜩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쉽게 사라지지만, 예쁘고, 고귀하다. 하나가 터지면, 또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보글보글 영롱한 비누방울  같은 삶이 꽉 차 있는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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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0-08-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활이 요즘 약간 버라이어티 해졌어요. 어떻게 되어 가는지 제가 저를 두고 보는 중 ^^
 
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 같은 선상의 <영원한 전쟁>이나 <스타쉽 트루퍼스>에 비해 진지함이 떨어지거나, 오리지널리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 작품 중에 가장 유머러스하긴 하다.)  후속작인 <유령여단>을 읽고 나니, 전편과, 속편까지 합해서 다른 작품들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3부작이고, 3부가 근간으로 나와 있으나, 역시 2부가 정점일 것 같다는 그다지 근거는 없는 예상 (역자도 2부를 최고로 꼽긴 했더라)  

속편이긴 한데, 1부의 주인공이었던 노인군단(?)의 존 페리는 나오지 않는다. 말미에 한 두 번 세이건과 엮여 이름만 등장하는 정도. 그러나 전편에 나왔던 인물들 중 겹치는 인물들이 있고, 특히 유령 여단의 세이건 중위는 거의 주인공격.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말하면, 우주 개척 시대, 유전자 조작으로 노인들에게 젊고 강한 육체를 주며 용병을 모집한다. 본인의 유전자를 사용해 젊은 시절의 모습, 그러나 훨씬 강화된 모습이고, 녹색이라는 차이점.  젊은 육체에 들어간 노회한 영혼, 강화된 몸이지만 넷 중 하나는 죽는 위험한 전쟁에서 존 페리가 살아 남게 되는건, 그의 직관과 유머감각 덕분.  

사실, 전편까지만 해도 그냥 좀 재미있고, 하인라인과 홀드먼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였는데, 2편은 분량도 내용도 많아졌다.
그리고 더 심각심각해졌다고 하나 여전히 군데군데 빵 터지게 웃기는 라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편에 나왔던 '유령 여단', 노인군단이 가늠할 수 없는 많은 나이에 젊은 육체를 가진 이들이라면, '유령 여단'은 존재는 하나 말해지지 않는 군단으로 더 심각한 유전자 변형과 조작으로 훨씬 강화된 육체를 태어나게 하고, 의식은 6주 이내에 자라게 만드는 즉, 태어난지 한살 정도인데 한창때 젊은이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주인공인 디렉은 조금 더 심각하다.
우주 개척의 시대에 3종족이 연합해 인간을 치려고 한다는 첩보를 한 인간들은 그 3종족의 연합에 죽은 줄 알았던 인간 한 명이 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인간의 의식을 되살려 만들어 낸 '유령 여단' 이 바로 디렉이다.  

다른 유령 여단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그에게는 유령 여단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이 공존한다.  

"피닉스라."
그는 위에서 도는 행성을 보며 말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동물이지. 흠, 딱 들어맞는구먼. 피닉스는 불길 속에서 다시 일어난다오. 우리가 재생시킬 놈이 모든 것을 파멸시키지 않길 바랍시다."
다들 머리 위 행성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 70 -  

배신자의 의식을 집어 넣어 '재생' 시키게 되는 디렉  

그는 탄생부터 딜레마에 아이러니한 존재였다.

디렉이 유령 여단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완벽한 (적어도 전투력으로는) 모습의 유령 여단은 그들이 통합하는 모습, 그들의 정신적 연약함, 아이같은 모습 등으로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이해 가고, 때로는 동정심이 생기고 뭐 그렇게 전편에 비해 확실하고, 복잡하고 캐릭터로 다가오게 된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잘 짜인 이야기이다. 해피 앤딩인지 아닌지는 독자에게 맞겨야 하겠지만, 이 정도면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 전편에 걸쳐 감도는 주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부탱과 디렉
여러 상황에서 여러가지 선택을 하며 길을 만들어 가는 인간들  

"그럼 내가 어째야 하죠?"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시오. 당신이 부탱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오. 그리고 당신에겐 언제나 선택권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오."
"기억하겠습니다."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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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0-08-1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개척시대@_@;;;
와아. 아직 저는 읽을 내공이 안 되는 책일 것 같긴 한데요. 흥미롭네요. 게다가 군데군데 빵 터지는 라인이라니, 궁금해지구요. ^^

하이드 2010-08-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공 필요 없는 재미난 SF물이에요 ^^ 노인의 전쟁부터 읽으시면 좋구요!

소영 2010-08-1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인의 전쟁에 훅 가서 바로 질렀는데..역시..장르를 뛰어넘는,,작품성이나 구성,리얼리티,,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걸작 중의 걸작이드만요..너무 잼있어서 눈물이 다 나던데..ㅎㅎ
 
참신한 문학전집 시리즈에 대한 기대

푸른숲에서 나온 '디 아더스' 시리즈.. 책을 받은지는 좀 되었는데, 두껍지도 않은 <데지레 클럽, 9월 여름>을 오래도 붙들고 있었다. 이제 세 권 나왔고, 네 권째가 예고중이지만, 이 시리즈 좀 맘에 든다.

나는 문학전집을 1권부터 주르륵 모으는 것은 좀 촌시럽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시리즈는 모아 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인터넷 이미지로도 괜찮아 보였던 표지인데, 실물을 받아보면 훨씬 멋지다.

 서점 매대에서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이 가장 눈에 띄는데,
 오묘한 보라색과 복잡한 그림덕분이다. 보라색은 워낙에는 파란색일 것이 보라색이 되었다고 하는데, 보라색이 나은듯.  

 

  

세워두면 이런 그림
표지 그림이 뒷면의 1/4 지점까지 가 있어서 책등에도 연속된 표지그림이 나온다. 맘에 든다.
네모난 글박스로 제목 통일, 맨 위의 the others는 아련아련한 필기체의 엠보로 각각 표지 그림에 맞춰 다른 색으로 마크 되어 있다.  전집이다보니 번호가 001, 002,... 이런식으로 매겨져 있고  

 

앞면엔 엠보 동그라미 안에 원제와 작가 이름이 써 있다. 은근히 멋있는 통일성이다.  

 

앞면 오른쪽 위에도 보일듯 말듯 the others 

 

책 띠에는 QR 코드가 있다.
마침 스마트폰도 샀겠다. 으쌰! 안에 들어가보니
시리즈 책들의 표지와 (이미지 선명하니 좋아보인다. 내가 찍은 표지 사진이 오늘따라 더위 먹었는지 흐릿흐릿한거 보다 보니 orz)  

작가 사진, 북트레일러 영상,
푸른숲 블로그, 트위터 등의 링크 등등의 정보가 나와 있다.

책에서 QR 코드 읽어서 들어가 본거 처음인데, 재밌군! 북트레일러(라기 보다는 시리즈 트레일러라고 하는게 맞겠지만)
는 덜 전문적으로 보인다. 요즘은 웬만한 블로거들도 이 정도는 만드니깐. 무튼, 이런식의 시도는 훌륭하다. QR코드라던가, 북트레일러라던가, 블로거, 트위터로 '맥스 마케팅'   

 

 

오묘한 그림과 컬러의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이 시리즈의 줄거리들이 다 골때린다. ( 원글에 책소개 옮겨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보시길..)

블로그에서던가, 홈페이지에서던가 바탕화면 있길래 가져왔다.  .. 정말 이상한 그림이지? 갸우뚱 -
실물의 고운 색깔을 서점에서 꼭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고와요 ~

 

 

책을 읽기 전에는 <루시아, 거짓말의 기억>이 눈에 띄었는데 (인터넷 이미지로는 루시아, 실물로는 우울한 코브마을이 눈에 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표지가 가슴에 와닿는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끈끈함이 ... 사진만으로는 잘 안 느껴지겠지? 책을 읽은 후의 끈끈함이여야 되서 말이다.  

이 표지 보고 가로라 특이하다 했는데, 이번에 사진 찍으며 겨우 깨달았다. 표지 그림이 다 가로다 'ㅅ'  가..가로 본능! 

 

가..가로!  

코브는 거꾸로 가로  


표지를 펼치면 이런식  

  

내친김에 로사 몬테로의 책을 마저 읽을까, 아니면 4차원의 캐나다 작가 크리스토퍼 무어의 책을 먼저 읽을까?
이 폭염에 책 들고 나갈 생각하니, 아주 짜릿해 미치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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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0-08-09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쁘다 진짜!!
원래 제 취향은 루시아~ 표지인데 이상하게 코브 마을이 땡기네요.
직접 보면 더 예쁠것 같아요 (그나저나 책 옆의 부채든 인형 ㄷㄷㄷ 넘 분위기있어요)

카스피 2010-08-0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책들 표지가 정말 예술인이네요.물론 그와 더불어 책값도 올라가기 하지만요 ^^;;;;;;;

moonnight 2010-08-1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쁘군요. (한숨;;;) 코브 마을 표지 마음에 들어요. >.<

BRINY 2010-08-1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예쁘네요!
 
데지레 클럽, 9월 여름 디 아더스 The Others 2
로사 몬테로 지음, 송병선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야기의 첫머리는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는 없다'

기사 발췌로 시작하는데, 기사인즉슨, (기사의 제목은 리뷰의 제목인 '어느 여성 흡연 살인자의 이상한 사건' 이다.)

수도의 '라 레이나' 라는 서민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지난 16일 금요일, 17번지 건물에서 일어난 이상하고 잔인한 사건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로 시작하여 '남자보다 키도 더 크고 몸도 훨씬 비대했던 살인자가 희생자의 몸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큰 소리로 욕을 하다가 희생자를 바닥으로 집어 던지고, 광기에 사로잡혀 집안의 모든 것을 부수기 시작했고, 화장품 서랍을 뒤져 향수인 듯한 화장품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바닥에 쏟았으며, 남자는 '그것만은 안 돼' 라고 바닥에서 절규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가 도망가려고 하자 여자는 남자를 잡아 화장품 병에 남아 있던 내용물을 남자의 머리위에 붓고, 자신의 주며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한번에 담배 세 개비에 불을 붙여 희생자의 얼굴에 연기를 뿜어대며 담배 한 갑을 모두 피워버렸다. 희생자가 다시 도망치려하자 여자는 엄청난 힘으로 그의 팔을 붙잡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를 등에 둘러메고 창문으로 갔다.  

다음 순간,  
여자는 잔혹하게도  

그 가련한 남자를 4층에서 길거리로 내던져버렸다.'  

는 기사  

독자들은 이 괴이한 사건 '어느 여성 흡연 살인자의 이상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그 남자와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장부터 읽게 된다. 믿기 힘들겠지만, 남자도, 여자도, 사건도 다 납득이 가 버린다는. 

안토니오, 안토니아, 벨라, 포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여자와 두 남자이다.
이들은 각기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데지레 클럽'이다.
볼레로르 부르는 여가수 벨라가 있는 볼레로 클럽

벨라는 포코를 사랑하고,
안토니오는 바네사에게 빠졌으며,
안토니아는 다미안을 물고 빨고 핥으며,
포코는 바네사를 애정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이들의 사랑이, 오래전에 망한듯한 클럽, 데지레 클럽에서 울려퍼지는 볼레로와 함께 늦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휘돌아친다.

조금씩 이상하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비정상이다.

그 가련한 남자가 4층에서 던져지게 된 사건의 전말을 맞추는 '퍼즐'은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맞겨야겠다.
추리소설의 그것처럼 명료하지는 않지만, 스페인, 볼레로, 늦여름의 끈끈함으로 꽉 짜여 있다.  

" 벨라……."
" 예?"
" 갑시다."
" 어디로요?"
" 쿠바로."

" 제발 좀 웃기지 마요."  

종이 야자수 말고 더 이상의 야자수는 없다. 벽에 그려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 말고는 더 이상의 까무잡잡한 여자들은 없다. 데지레의 색 바래고 칠이 벗겨진 바다 말고는 더 이상의 열대 해변은 없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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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8-0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상 리뷰를 쓰려하니, 이야기들이 흩어진다. 그걸로 좋다고 생각되어, 느낌만인 리뷰가 되어버렸지만, '여름 이야기'를 쓰기 위해, 나는 다시 책을 첫장부터 펼치는 걸

moonnight 2010-08-0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이 별 다섯개 주신 책이라니 필독서가 되겠군요. 이 시리즈 흥미롭던데요. +_+;

하이드 2010-08-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묘해요 ^^
 
내가 이렇게 리뷰를 쓴다면- 책과 리뷰어, 소셜미디어

얼마전 미치오 슈스케의 <술래의 발소리> 40자평을 올리면서 '에도가와 란포의 휴대폰 소설 버전에 정신분석학을 가미한 듯한 단편집' 이라는 평을 남긴 적 있다.  

'휴대폰 소설'이라는 것은 일본에서 유행하였고, 사실, 휴대폰 소설이라는 것을 지나가면서 봤을 지언정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만, 기본적으로 장난 같은 말로 이루어진 가벼운 글들.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사키 도시아노의 <전자책의 충격>에 '정통 문학, 라이트 노블,  휴대폰 소설' 을 분류해 놓은 것이 나와 옮겨둔다.
아하, 이런 것이었구만  

   
 

휴대폰 소설의 독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그녀들은(혹은 그들은) 평소에 책을 많이 읽을까? 사고(思考) 실험을 한 번 해보자. 편의상 소설을 정통 문학, 라이트 노블 그리고 휴대폰 소설의 세 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정통 문학에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추리물 등이 포함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며, 무라카미 하루키, 기리노 나쓰오, 에쿠니 가오리 등 다양한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분야의 작품들은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관이나 철학을 제시하며 선명한 독서 체험을 선사하는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를 만드는 분야다.

라이트 노블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나 '풀 메탈 패닉' 등이 대표작인데, 이야기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캐릭터 소설이다.

휴대폰 소설을 위의 두 가지 장르와 비교해 보면, 스토리와 캐릭터 두 측면에서 모두 빈곤하다.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통속적인 내용이고, 등장인물도 평범한 여고생뿐이다. 도대체 휴대폰 소설은 어떤 면에서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일까?

여기서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장르의 대표작을 인용해 보겠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즐거워?" 마리가 물었다. "응.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즐거워." "하늘을 날아 본 적이 있어?" 다카하시는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은 채, 잠시 시간을 끈다. "아니, 하늘을 날아 본 ㅈ거은 없어." 그가 말한다. "예를 들어 본 거야. 어디까지나."                          -<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니까 좋은 남자를 찾아서 시내를 걷는 짓은 그 녀석이랑 하라고. 데이트도 하고, 일석이조 아니야?" 그날 아사히나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너는 남자랑 있어도 불편해하지 않잖아. 너의 그 기묘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야." "흠, 남자 같은 건 없어도 그만이야. 연애감정 따위는, 말하자면 잠깐 정신이 혼미해진 거야.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다니가와 나가루 -  

"응? 좋아 좋아 ♪ 야마토는 너무 취한 거 아냐~!!" "나 안 취했는데~ 아하하~ 안 취했다구~." "오~ 같은 알바를~ 근데 너희 둘이 사귀어?" "에~ 미카랑 야마토가?? 설-마, 아냐 아냐!!" "우리는 그냥 친구라구~ 그치 미카?"   
                                                                                                                    - <연공>, 미카 -
    

(... 아,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다. 휴대폰 소설;; 압도당한다.고 할까 ㄷㄷㄷ )

이렇게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휴대폰 소설인 <연공>이 압도적으로 구어체 그대로의 리얼리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은 훌륭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즐거워"라고 말하는 남자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즈미야 하루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너는 남자랑 있어도 불편해하지 않잖아. 그 기묘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야." 같은 대화는 분명 오타쿠적인 문맥에서 파악해야 하는 표현으로, 지방에 살고 있는 추리닝 남녀들에게는 전혀 리얼리티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이 문장을 어떻게 오타쿠적으로 파악해야 하나요??)

그에 비해 <연공>의 표현은 지방의 노래방에 가면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법할 정도로 리얼하다. 휴대폰 소설의 매력은 일상의 회화나 정서 등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디테일과 리얼리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법의 i란도'의 유사 마리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한다.  

학교 뒷길에서 우연히 만날 때 하는 이야기, 교실 안에서 주고받는 이야기, 아니면 엄마가 도시락을 싸 줄때 느끼는 감정 같은  디테일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휴대폰 소설가들은 자신의 체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멋진 표현이나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순수문학 지망생들과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휴대폰 소설은 기존에 '문학'이나 '소설'이라고 분류되던 콘텐츠와는 다르게, 독자와 피자 쌍방이 어울려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즉 자신과 공유 공간을 연결하는 장치로서 일상의 리얼리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 '나도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 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휴대폰 소설은 콘텐츠가 아니라 콘텍스트(context: 맥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미치오 슈스케의 책은 정통문학이니 휴대폰 소설 버전이라는 건 거의 전혀 아니다 ^^;

뒤로 가면 휴대폰 소설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나오고, 더 뒤로 가면 다른 챕터에 휴대폰 소설에 열중하는 지방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로드사이드, 지방, 도시와 같은 문제(혹은 문화) 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여튼, 나는 라이트 노벨도 좀 궁금했고, 휴대폰 소설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아, 대충 이런 것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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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8-09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 틀렸던 것은 아닌게 휴대폰 소설 하면 보통 '강간, 리스트컷, 예기치 못한 임신 등의 극단적인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가공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고 한다. 따분한 로드사이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모티' (지방의 젊은이)들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로드사이드 문화, 지모티 (미우라 아쓰시 <하류사회> 읽어볼 것) 문화에 대해서는 더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