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만 읽어도 재미나다.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아 아까운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몇가지 골라 본다.
케롤 스클레니카 <레이먼드 카버>
900쪽을 훌쩍 넘어서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저자는 흡사 세밀화처럼 카버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다. 예민한 감성의 뚱보였던 그의 성장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한편, 유명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만남, 두 번의 경제적 파산과 중증의 알코올 중독, 존 치버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과의 우정 등 다양한 계기와 사건들을 통해 카버가 문단에 진입하고 위대한 작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저술 내내 저자가 보여주는 '균형 감각'이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저자가 "적절한 거리와 각도의 시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함으로써 "풍부한 조사, 정교한 묘사"가 뒷받침된 훌륭한 평전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작년 7월 출간 당시 카버 팬들의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럼에도 '아까운 책' 목록에 이 책을 올리게 된 연유가 참으로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듭 환호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한 책이다. / 김정현 편집장
나도 딱히 카버 팬은 아니지만, 전기덕후로서 이 전기 나왔을때 환호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을텐데 말이다. 꽤 오래 책장에 올려 놓고 살 날을 기다리고 있었더랬는데 말이다. 다시 한 번 환기.
피터 게이 <프로이트>
'아까운 책'을 꼽아 달라는 말에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있다. 교양인 출판사의 평전 시리즈인 '문제적 인간' 여덟 번째 책,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피터 게이(Peter Gay)가 쓴 <프로이트(Freud: A Life for Our Tim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역사학계의 프로이트'라 불리는 피터 게이는 10년의 연구와 2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가난한 집안 출신의 명민한 유대인 소년이 세기말 빈에서 정신분석이라는 독창적 이론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정신분석 조직의 수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촘촘히 재구성해냈다.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환자들을 분석한 것처럼 저자가 프로이트가 한 실언이나 실수, 농담, 그가 갑자기 자기 분석을 중단한 지점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적인 충동과 욕망, 갈등을 파헤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책은 프로이트의 내적 삶과 외적 삶,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의 역사까지 3박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입체적인 평전이 되었다. / 이승희 편집장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의 검은 안개>
그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했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일본 사회는 경악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논의는 진행 중이다. 이 책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미스터리인가, 시국 보고서인가. 음모론의 나열일 뿐인가, 혹은 당대의 속살을 꿰뚫은 대작가의 노작인가. 수많은 논쟁거리를 던진 채 <일본의 검은 안개>는 음모와 진실 사이에서 지금도 부유하고 있다. / 박지석 편집자
<한평생의 지식> 강신주 외
웬만한 정보는 모두 인터넷에서 쉽게 채집할 수 있는 SNS 시대에 이렇게 지식을 집약한 책이 필요할까 싶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지식의 큐레이팅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평생의 지식을 책 한 권에 담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큐레이터들의 제안이 중요해진 것이고, 이러한 차원에서 <한평생의 지식>은 바로 우리 시대 지식 생산의 미래를 보여 주는 반짝이는 결과물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필자로 참여했으면서도 처음에 이 책을 단순한 지식의 집합일 것으로 생각했다가, 책을 펼쳐 들고는 개인 블로그 서평에서 "책값보다 열 배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책"이라며 칭찬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양희정 편집부장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그닥 관심가는 주제는 아니였으나 편집자의 고뇌가 절절하여 관심을 가져보기로.
아직은 IT 제품에만 관심이 집중된 탓이었는지, 인터넷 생태계 통제의 피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책 판매는 기대를 밑돌았고, 동료들은 "누가 이 책을 죽이냐"고 물어왔다. 한손에 스마트폰, 눈앞에는 인터넷 화면을 켜놓은 우리가 이 책을 살려야 한다. 그것은 이 책 속에 새로운 사회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 있기 때문이고, 아직 담당 편집자가 자책과 고통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임경훈 편집부 과장
사토 잇사이 <언지록>
새삼 '아까운 책'으로 <언지록>을 건져 올리고 싶은 마음의 밑바닥에는, '그들만의 리그'에 다시 한 번 붙여보자는 속셈이 있겠다. '아까운 책'이 그냥 아깝기만 하면 안 된다. 최대한 호소력 있게 소개하고, 사연을 잘 꾸미고, 돋보이는 표현을 써서, 군계 중의 일학으로 만들련다. 하지만, 군학 중의 일계에 머무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언지록>이란 고전을 첫 번역, 소개하는 작업은 평범하고 정직했다.
지은이는 일본의 대유학자인 사토 잇사이로, 1133조항의 문구를 40년에 걸쳐 4부작으로 남겨놓았다. 옮긴이는 시도 쓰고 번역도 하는 노만수로, 2년에 걸쳐 번역하는 동안 집과 일 안팎에서 대소사를 겪는 등 간난신고가 끊이지 않았다. 출판사로서는 설립 초기에 기획을 시작하여 3년째에야 책을 낼 만큼, 우연찮은(?) 오랜 공을 들였다. 그리고 720쪽 양장본은 초판을 낸 지 3개월 만에 재쇄를 바라보게 되었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 나와 책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고 푹 파묻혔던 것 치고는 의외의 성과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언지록> 전체를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좋은 말과 글이라 한들, 쓸모없는 말도 쓸모 있다 할 수 있을까? 구태여 1133조 모두가 명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초판을 편집하는 동안, 내내 고민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방침을 정했다. <언지록> 초판이 모두 판매되고 나면, (물론 재쇄를 발행하겠지만) 이 책을 리포지셔닝 혹은 리포매팅한 판본을 만들어 초역 <언지록>을 '고전으로써 읽는 독자'가 아닌, <불혹의 문장들>을 '처세훈으로 읽는 새로운 독자'를 만나겠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이 다시 2013년 아까운 책이 될지라도 끊임없이 이 고전의 지평을 넓혀나가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 항상 기회다. 이 고전을 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올릴. / 조영남 대표
세간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마땅히 우선 그 결과를 고려한 후에 시작하여야 한다. 노도 없는 배에는 오르지 말고 과녁이 없는 화살을 쏘지 말라. 「언지질록」 114조
리차드 데이비슨 <너무 다른 사람들>
<너무 다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읽은 사람들만 알고 추천하는 우수 도서에 그쳤다. <당신 뇌의 정서적 생활(The emotional life of your brain)>이란 원제를 지금의 제목으로 수정했으나, 책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없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저자가 뇌를 변화시켜 정서 유형을 개선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용어와 전문적인 설명을 붙이는 바람에 대중 독자를 놓쳤다는 점도 한계였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서 유형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원인과 개선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여러모로 유익하다. 책을 끝까지 읽어나간다면, 누구라도 보다 행복한 정서적 삶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박나미 편집자
권오길 <괴짜 생물 이야기>
을유문화사에서 작년에 발간한 책 중에서 가장 아까운 책은 바로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이다. '달팽이 박사'로 잘 알려진 권오길 선생님은 오랫동안 교단에 몸담아 오면서 재미있는 과학 글쓰기에 평생을 바치신 분답게 전래동화를 읽는 듯한 구수한 입담과 재미난 생물의 이야기들을 잘 버무려서 원고를 보내주셨다.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온갖 크고 작은 생물들에 이르기까지 뭇 생명들의 재미난 이야기와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며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읽어도 배가 부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의 조명에 비해 판매는 따라 주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다.
사실 이 책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편집된 것은 아니다. 원래는 책 내용에 걸맞은 재미난 삽화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미와 스토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아동 책의 삽화 같다는 평이 많았다. 마지막까지 이 삽화를 넣을 것인지, 뺄 것인지를 놓고 여러 의견 조율을 거친 끝에 결국 빼기로 결정했다. 대신 본문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재미난 추가 이야기들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지금도 삽화가 빠진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차라리 재미난 글을 뒷받침할 만한 세밀화로 원고의 성격과 서로 상보적인 균형을 잡는 식으로 처음부터 진행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좀 더 많은 독자들로부터 선택받지 않았을까. 2판에는 이 부분을 반영해서 보완하고 싶다./ 박화영 대리
에스더 D. 로스블럼 <보스턴 결혼>
'보스턴 결혼'은 19세기에 결혼하지 않고 둘이 함께 살며 깊은 우정을 나눈 독신 여성들을 이르던 말이다. 책의 두 엮은이는 이 말을 오늘날 레즈비언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새로이 빌려와, 서로 다른 결과 색을 가진 25명의 여성들의 섹스, 정체성, 관계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집자에게 어느 책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나는 유난히 아끼고 또 소중하게 여겼다. 다사다난한 성적인 연애들을 거쳐 결국 무성애적인 관계로 정착한 레슬리의 인생사를, 다른 사람과 연애하지만 '가장 온전히 서로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나고 있는 스무 살 차이 매리앤과 엘리자베스의 견고한 유대 관계를. 사랑 또는 우정이라는 협소한 정의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이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친밀함과 관계를 발굴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최예원 편집자
돈 윈슬로 <개의 힘>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대로 꽤 남성적인 소설이다. 섹스, 살인, 첩보, 정치 등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랑과 배신'이라는 통속극의 중요 요소까지 충실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개의 힘>을 아메리카판 <여명의 눈동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독자와 미스터리 보는 취향이 비슷한 일본에서는 출간 당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같은 해에 장르 문학상 중 가장 권위가 있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해외 작품 중 1위를 차지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던 <밀레니엄>이 같은 해에 후보로 올랐는데, 3편의 <밀레니엄> 득표수를 합친 것보다 <개의 힘>이 더 높았다고 하니 일본에서 <개의 힘>이 얻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국내 출간이 결정된 후, 독자 시사를 통해 반응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워낙 이야기가 진중하면서도 강렬해서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를 읽는 독자의 구미에 딱 맞는 소설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대하 장편소설을 미스터리로 만나는 게 놀라운 경험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호응에도 불구하고 <개의 힘>은 2012년도 황금가지의 최고 소설이 되지 못했다. 그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두 편의 황금가지 출간 소설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과 <제노사이드>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독자들의 반응은 극찬 일색이었지만,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타깃이 워낙 명확하다보니 출판의 주요 독자층인 여심을 공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 <개의 힘>은 여성이라고 해서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책이 아닌, 무게감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흠뻑 빠져들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오판으로 남성 독자층 위주로 어필하는 전략을 취했고, 이는 좋은 입소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대중적 성공을 거두게는 만들지 못했다. 지금도 꾸준히 많은 이들로부터 추천되고 있는 저자 돈 윈슬로와 <개의 힘>. 다행히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판권이 판매되어 영상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된다니, 그 즈음에 다시 한 번 발돋움을 노려볼 계획이다. / 김준혁 편집장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0426135103&Section=04
카버, 프로이트, 개의 힘. 정도는 근시일내에 사보고 싶으네. ( 근시일이 얼마나 '근'일지는 알 수 없음;;)
여튼, 길고 길고 긴 기사 중에 관심 도서만 옮겨 두어도 이정도다. 헉헉; 무척 긴 책 기사다.
위에 말했듯, 기사만 읽어도 재미나니, 그 재미가 구매로도 이어지기를!
안 팔려서, 묻혀서 아까운 좋은책은 팔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