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Was Leonardo Da Vinci? (Paperback) Who Was (Book) 12
Roberta Edwards 지음, True Kelley 그림 / Grosset & Dunlap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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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워즈 시리즈를 꾸준히 읽고 있으면서 아, 내가 전기를 좋아했었지 새삼 떠올리고 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전기를 보면서 10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삽화도 많다) 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그에 대해 읽는다는 것은 그 시대와 그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들, 그 시대의 인물들, 그 시대의 발명품들 등을 함께 읽는 것이기도 해서 굉장히 흥미롭다. 독서 마중물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지만, 이 시리즈야말로 인물에 대해 더 더 알고 싶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마중물이다. 


여러 책들을 읽으며 전기들을 같이 찾아두었는데, 오늘은 드디어 도서관 서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꺼내기까지 성공했다. 너무 무거워서 그냥 사기로 하고 집으로 왔는데, 검색했더니 6만8천원이야! 월터 아이작슨 원서 찾아봤더니 34,400원이다. 마음의 평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후 워즈가 다른 책에 비해서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 이야기들이 더 더 궁금하다. 

한 명의 몸에 세 명의 천재가 들어있는 것 같은 천재였죠. 라고 어디서 읽었는지 들었는데, 이 책 읽으니 새로운 부분이 많아서 내 안에 평면적이던 다 빈치가 좀 더 입체적이 되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도 조금 더. 이렇게 옆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이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읽었어! 되게 되는데, 그게 또 재미있거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태생부터 처음 읽는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오나르도가 태어났는데, 아빠는 결혼 못한다며 엄마와 아들을 버렸고,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아이 낳는다. 엄마도 레오나르도 원하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키우게 되는데, 할아버지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가 레오나르도의 재능을 보게 되고 열두살 어린 나이에 동네 유명한 미술가, 베로치오의 작업실에 맡기고, 레오나르도는 그 곳에서 수습으로 일하게 되고,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천재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 책에서 새로 알게 된 흥미로웠던 부분이 세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레오나르도의 어린 시절이 위와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실험정신이 강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했으나 끈기 없고, 잘 질려서 끝까지 마무리를 못했고, (레오나르도 책 찾다보니 <미루기의 천재들> 이라는 책에 레오나르도와 찰스 다윈이 무려 부제에 등장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전시도 많이 갔던 것 같은데 실제 완성해서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이 열 세점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그 동안 봐 온 작은 작품들은 뭐지 싶었는데, 아이디어 노트, 레오나르도의 노트도 유명하지, 그게 13,000페이지였다고 한다! 그 중에 지금까지 남겨진 건 6천페이지 정도고 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보관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가지고 있다느 콜렉션, 물에 대한 것만 모아뒀다는 그 노트 궁금하다. 


그리고, 살라이, 살라이라는 말썽꾸러기 소년이 있었고, 레오나르도가 거뒀다. 보통 아이들의 네 배는 말썽쟁이였다고 하고, 레오나르도는 그가 무슨 사고를 치건 봐주고 아꼈다고. 후에 프랑스 갈 때도 데려가고. 뭐지, 이 살라이는? 레오나르도 책 더 찾아서 읽어봐야지 했는데 <레오나르도의 양아들 사기꾼 살라이> 라는 책도 있었다. 아.. 


레오나르도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있고,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이나 노트 이야기들, 일 이야기들 다 너무 재미있었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레오나르도 전기도 꼭 읽고 싶다. 이 이야기가 이 이야기였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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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김그루 외 지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 코난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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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개인은 좁은 생활 반경 안에서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난다. 각각의 접점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늘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활동가와 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알리는 이들이다. 덕분에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짐작할 수 있다. 

'조선소' 는 배 만드는 곳이고, 한 때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잘 나갔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며, 산재로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열악한 처우로 농성을 하며 뉴스에 날 때에만 보게 되는 장소였고, 단어였다.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의 대담한 표지와 글꼴,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고, 부제를 보고 바로 구매했다.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기록에 평소 좋아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는 박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주의 책들 읽다보니 여성 노동자들의 책을 읽게 되고, '희정', '박희정' 과 같은 전혀 몰랐던 세계에 훅 들어가게 해주는 훌륭한 저자들을 만나게 되어 읽어나가게 되었다. 앞에 말했듯 '조선소'는 여전히 생소한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읽고나서도 여전히 낯설지만, 이제 조선소와 관련된 뉴스를 읽게 되면,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해서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었는데, 이런 책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일단 재미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할 수 없었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나가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존경스럽고, 유머가 재미있다. 평소 접할 일 없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배를 만드는데 하는 일들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사실들도 엄청 흥미롭고, 조선소의 스케일이 압도적으로 크다보니 평소 많이 접했다고 생각하는 청소 노동자, 급식 노동자, 세탁 노동자의 일들의 엄청난 스케일에 놀라게 되고, 그 노동량에 대해 놀라게 된다. 


"웰리브지회는 조선소에서 급식, 세탁, 미화, 수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2만 명 넘는 노동자들이 쓴 수건, 작업복을 수거해 세탁하고 말리고 다리고 개서 반나절 만에 돌려주는 세탁 파트에서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건조기 소리, 침묵 속에서 수건과 작업복이 접히는 소리, 30-40킬로그램 세탁물을 지고 나르는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했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급식소에서는 식사 전후로 불과 칼과 물과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세탁이건 급식이건, 전쟁터 같았다." 


책은 도장 노동자 정인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배 도장은 사수들이 스프레이를 뿌리고 스프레이가 지나간 곳에 롤러대를 밀어서 색을 칠하는(터치업) 일이다. 선체 도장, 엔진룸 도장, 선행 도장, 블록 쪽 도장 등으로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뉜다. 도장일을 할 때는 도막 개념이 중요한데 도장할 때 페인트의 두께를 맞춰야 한다고 한다. 각 배에 도막 게이지라고 맞춰야 하는 페인트 두께가 있다. 이 도막이 안 맞으면 배가 부딪혔을 때 용접 부분이 갈라질 수 있다. 도장은 블록과 블록을 잘 이어주는, 딱 부착시켜주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정말 너무 흥미로웠다. 큰 배로만 알고 있던 큰 배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고, 일하는 환경은 열악하고, 건강에도 정말 안 좋지만, 정인숙은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재미있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현장에 가면 오만 소리 다 하면서 실컷 웃는다고. 외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언니들 동생들 만나며 일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집에서의 여자,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네가 만든 배가 지금 파나마운하를 지나가고있다.' 며 배 만드는 모든 공정 담당하는 감독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고생해서 만든 배가 바다를 다니면서 돈 벌고 있는 사진을 보고 감동했다고 하는 그 마음이 와닿는다. 13여년 동안 50척 넘게 LNG, LPG, 벌크선, 리그선 등등 웬만한 배는 다 만들어봤다고 한다. 다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도장하는 이들은 도장은 조선소의 꽃이라고 한다. 


남편이 죽고, 혹은 남편과 이혼하고 조선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청소 노동자인 김순태 또한 남편이 죽고 사십여섯에 처음 조선소에 들어왔다. 그가 한 일은 사상(시야기, 마무리) 였다. 철판의 거친 부위나 각진 모서리를 그라인더로 매끄럽게 갈아주는 일이라고 한다. 사상을 15년 하고 체력이 떨어진 후로는 용접과 취부(임시 용접) 하면 나오는 슬러그와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빗자루, 통, 쓰레받이가 기본 도구다. 


용접 노동자인 전은하가 말하는 사정은 조선소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조선소가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도 하청업체에서 숙련공 임금은 오르지 않고 최저임금을 겨우 넘긴다. 일로만 보더라도 생산성 자체와 드는 비용이 신입과 숙련공의 차이가 몇 배는 날텐데 사측은 숙련공을 대우해줘 일의 생산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기보다 낮은 임금이 유지되는것에만 더 힘을 쓰고 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노조를 시작하지만, 회사에서는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고, 대체 인력으로 이주노동자를 넣고 있다. "세상 만물 다 노동자들이 일궈가고 있는데" 회사 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일하는 사람을 천하게 보고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 쇠를 깎는 밀링 노동자 김지현, 비계 발판 노동자 나윤옥, 세탁 노동자 김영미, 급식 노동자 공정희, 미화 노동자 김행복, 도장 노동자 정수빈, 화기,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조선소 곳곳을 돌아보고 그 곳에서의 일과 일하는 사람들과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부당함과 그 부당함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가장 답답했던 것은 회사 이름갈이, 하청 회사들이 임금 밀리고 퇴직금 안 주고 파산 신청하고, 그러면 나라에서 세금으로 보장해주고, 새로운 이름으로 똑같이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니 진짜 나쁜놈들이다. 


미화노동자들이 일년도 아니고 11개월도 아닌 한 달짜리 계약을 매달 한다는 이야기도 어이없다. 


"배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그 나머지를 다 하잖아요. 새벽부터 와가지고 출근시켜줘, 밥 줘, 옷 빨아줘, 청소해줘. 직접 배를 안 만든다뿐이지 배를 만들 수 있게끔 우리가 다 케어해주잖아요. 근데 그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화노동자 김행복의 말을 읽으면서는 가정내 많은 여성들의 위치와 겹쳐 보이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 책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되는 것 외에 독자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힘든 일들을 해 내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듦만이 아니라 자부심과 뿌듯함, 재미와 유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듣고, 읽고, 그만큼의 세계를 확장하고, 연결점 없었던 이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호명에는 관점이 담긴다. 호명에 담긴 시선들이 교차할 때 우리의 인식은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11인의 목소리가 조선소 노동자라는 사회적 호명에 서로 다른 구조적 상황, 경험, 고통과 요구의 다양한 시선과 관점이 담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에는 도장도 직영이 있었거든요. 직영 여성들이 터치업을 하고 다녔단 말이에요. 여자들이 일하는 걸 보니 잘하니까 여성을 점점 더 뽑은거죠. 백번 양보해서 예전에는 남자들이 높은 곳 도장을 하고 무거운 걸 들었으니까 임금을 더 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높은 곳 도장할 때는 로프맨들이 다 해요. 남자들이 많이 없어서 무거운 것도 여자들이 다 들어요. 그럼 임금에 남녀차별을 두면 안 되지. 근데 이상한 일이죠. 남자가 일당 오천 원을 더 받아요. 여자가 많고 남자는 적어서 할 일은 다 하는데 왜 임금은 다르게 줘요? - P38

힘쓰고 기술이 필요한 일은 자기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선소에 들어오기 전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막상 와서 일해보니까 남자들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남자라도 저보다 용접을 못하는 사람도 있죠. 저래도 월급 받아가나 싶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도 보이고. 여자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네 싶기도 하고. 여자들이 다 할 수 있어도 남자들이 자기 직업을 뺏길까 싶어 안 시키는 일도 세상에는 많이 있겠다 싶어요.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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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고 바라옵건대 안전가옥 FIC-PICK 7
김보영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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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소재와 작가진이 엄청나게 인상적고 기대되었던 <원하고 바라옵건대> 


김보영 작가의 첫 작품 '산군의 계절' 첫 페이지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삼국사기가 인용되고 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의 후손답게 이놈들은 먹는 데 진심이다. 고봉밥으로 식사하는 와중에 반주라며 술을 마시다가 안주라며 고기를 굽고, 고기 기름기를 잡는답시고 쌈으로 싸고, 쌈에 감칠맛이 부족하다며 장에 버무린 나물을 종류별로 넣어 먹다가는 입가심을 한답시고 과일을 산더미처럼 먹다가 어이쿠, 다음 끼니때가 왔네, 하고 또 밥을 짓는다. 마늘은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 국이든 고기든 나물이든 마늘을 한 주먹씩 버무려야 시원하다는 놈들이다.


아,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몰라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먹는 얘기에 어깨가 들썩이는 시작이지 않은가. 게다가 김보영 작가. 

삼국사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아직 나라에 유교도 불교도 없고, 왕권이 공고하지 않고, 신화와 역사가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의 우왕후와 후녀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에 신수 '백호' 가 들어간다. 


삼국사기에 관심 있었던 적 없었어서 이런 이야기인가, 긴가민가 하면서 읽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다시 읽으면, 삼국사기에 관심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좀 더 이해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인 이수현 <용아화생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어서 읽고 씁쓸한 결말임에도 바로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신수는 용이 되기 직전인 이무기. 대기근을 살아나가는 마을 사람들과 산과 땅과 물이 있는 장소를 파괴해나가는 외부인들의 침입, 우직한 주인공 규. 비극이지만 이해되고, 설득되고, 응원하고, 납득되는 그런 이야기여서 좋았다. 


기대하고 읽었던 위래 <맥의 배를 가르면> 은 사실 잘 이해도 안 가고, 동물원에 들어가서 광신도 같은 인간들이 맥이라고 추정하는 아메리칸 테이퍼라는 동물을 죽인다길래 어떻게 나올지 불안해하느라 더 몰입 안되기도 했다. 신수인 맥이 소재인 이야기다운 진행이었고, 리얼2, 꿈8 정도의 느낌이라 걱정했던 잔인한 장면은 안 나왔다. 반전도 있고,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던 이야기는 작가의 말을 보면 내 방식으로나마 좀 더 이해간다. 이 책에 작가의 말 짧지만 소중. 맨 뒤에 몰려 있다. 작가의 말 중 꿈 이야기는 허무하다고 하는데, 작가가 어느날 궁전 안을 헤매대가 가장 안쪽의 방에서 십수 미터 전면창으로 도시가 내려다 보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 것은 다 어디로 갔지? 하지만 나는 허무감을 느끼진 않았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꿈의 끄트머리에서 내 마음을 향해 전능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내 궁전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깨어난 상태에서도 온 도시의 주인이었다. " 


이 이야기를 작품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이 선명하게 이해가지 않는 것은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서 그런거라 당연하다. 꿈을 꾸는 것, 자면서 꿈을 꾸는 것과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 (소망을 가지는 것)이 현실과 서로 어떻게 꼬리를 물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느낌이었다. 꿈고 현실이 만나 꿈의 끝자락이 현실에 넘어오면서 꿈에서 느끼고 생각한 마음도 같이 넘어와서 현실에 자리잡게 되는 것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인 김주영의 <죽은 자의 영토>도 재미있었다. 진묘수가 나온다! 트위터에서 보고 너무 귀여워서 나도 굿즈 사고 싶었던 진묘수. 작가 역시 "신수라고 하면 백호, 청룡, 주작, 현무처럼 모습부터 멋지고 화려한 서사를 가진 존재를 떠올리던 제게 진묘수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오동통하고 귀여워 보이는 모습이 죽은 자를 수호하는 신수하로 하기엔 너무나 소박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어서 언젠가 진묘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진묘수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현대 배경이라(위래 작가 작품은 현대+꿈속이 배경 아닌가 싶고) 앞의 작품들에 비해 술술 읽히는가 했으나,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이승과 저승과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 인상에 깊이 남았으니, 작가는 이들이 나오는 작품을 계속 써줘라. 써줘라.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만으로 단편을 남기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단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이산화의 <달팽이의 뿔> 도 어질어질한 작품이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나면, 작품 속에 나오는 택사나 봉안람처럼 주저앉아 울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단편이었다. 바다의 곤이라는 존재가 하늘로 떠 붕이 되는데, 그 때 붕재라고 할만한 재난을 인간세상에 일으키기 때문에 바다로 나가 하늘로 뜨려고 하는 곤을 가라앉히는 침어꾼들이 있다. 작가는 "어질지 않은 자연 앞에 인간의 노력이 헛되이 부서지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으므로 이 글을 썼다." 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의 원뜻을 알게 되면, 더 와닿는 말이다. 달팽이의 뿔이라는 제목도 작품을 읽고 나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팔에 소름이 돋는다. 


앤솔로지는 좋기도 하고 별로기도 하지만, 좋은 작품 하나라도 있으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근데, 다섯 작품이 다 좋아? 다 다르게 좋아? 말도 안된다. 안전가옥의 픽픽 시리즈를 읽는 것은 처음인데,(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표지가 딱히 관심 안 갔었다.) 굉장한 작품들이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단편이라서 좋은 작품들 (물론 장편으로 더 나와도 좋겠지만) 읽고 또 읽으면 더 재미있는 밀도 높은 이야기들, 많은 이야기들을 읽는 나에게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과 이야기들에 표지도 너무 아름답고,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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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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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은 과학계, 그 중에서도 동물학계에서의 암컷의 위치를 재조명하는 이야기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 고 말했다.


동물학이 생긴 이래 수동적인 암컷과 적극적인 수컷이라는 고정관념이 정착되어 왔다. 학계의 지배층은 수컷의 관점에서 동물계를 연구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질문도 답변도 남성의 관점에서 수행되고 이들은 암컷에는 관심이 없었다. 수컷을 디폴트로 조사하고, 암컷은 연구되지조차 못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여 생물계의 기준을 수컷으로 세우고, 당대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수동성, 모성애, 등의 프레임에 넣었다. 페미니즘의 물결과 여성 과학자들이 닫혀져있던 실험실의 문을 열고 수컷에 대한 것과 같은 호기심으로 암컷을 관찰했다.


"인간은 동물을 인간 행동의 예시이자 본보기로 삼아왔다. 많은 이들이 자연은 인간 사회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옳은지를 가르쳐준다고 오해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양해야겠다고 되새겨야했던 것은 동물의 의인화이다. 저자도, 저자가 반박하는 기존 수컷 중심의 생물학계도, 독자도 당장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수컷 위주로만 관찰되고 연구되어왔던 동물학의 무대위에 암컷 관점을 올려놓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언어의 사용은 저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한 이 책의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책을 읽는 내내 사용되는 언어들에 대해 민감하게 의식하게 된다.


1장에서는 암컷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더지와 하이에나의 예를 들어 풀어내고 있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성호르몬은 모두 콜레스테롤에서 만들어진다. 스테로이드는 효소의 작용으로 프로게스테론으로 변환된다. 프로게스테론은 흔히 임신과 연관되는 호르몬이며 안드로겐의 전구물질이다. 또 안드로겐은 에스트로겐의 전구물질이다. 결론적으로 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은 서로 쌍방향으로 변환될 수 있고 남성과 여성에 모두 존재한다.


듀크대학 교수인 크리스틴 드레아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성 스테로이드를 바꾸는 효소의 상대적 양과 호르몬 수용기의 분포와 민감성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호르몬을 가지고 있고, 효소의 작용에 따른 호르몬의 우세에 따라 정해질 뿐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가 알려주는 것은 성호르몬은 남자,여자에게 다 있는 것이고 어떤 성호르몬이 우세하냐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정해진다.


텍사스대학 동물학 및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크루스에 따르면 성의 양식에는 염색체, 생식샘, 호르몬, 형태, 그리고 행동의 다섯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유전자나 호르몬은 물론이고 환경이나 경험에도 영향을 받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크루스는 성의 기원에 토대를 두고 성 분화의 진화를 보는 관점을 발전시켰다. 최초의 생물은 복제를 통해 번식했고, 알을 낳을 수 있어야 했기에 암컷이라고 추정한다. 성이 도래할 때까지 수컷은 진화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6억~ 8역 년 전에 존재했던 생물은 복제한 알을 낳는 생물(암컷)로 추정되고 수컷이 등장한 것은 2억 5천만년~ 3억 5천만년 후로 보고 있다.


2장에서는 그동안 수컷은 싸워서 쟁취하고, 암컷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관점을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암컷을 관찰하여 암컷의 관점을 더하여 암컷의 선택을 이야기한다. 성선택을 하는 암컷들은 수컷의 유전자에만 집중한다. 2장의 예시로 나온 산쑥들꿩의 구애는 글로 읽어도 영상으로 봐도 대단하다.


각 장에서 예시로 들어지는 동물들의 놀라운 행태들이 많은데, 산쑥들꿩과 거미가 가장 인상깊었다. 그동안 배워왔던 수컷 관점의 동물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예이기 때문에 더 새롭고 놀랍게 받아들여졌다. 아니, 근데, 몇 페이지나 이어지는 다양한 거미 교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이 책에서 포유류 외의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 척추동물 외에 절지동물 갑각류, 다지류, 육각류, 협각류 등의 암컷과 수컷의 성행동에 대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에 대한 의견은 저자의 의견을 따라가고 있긴 하지만, 더 다양한 책을 읽어봐야겠다.


3장에서는 정절을 지키는 암컷에 대한 이야기로 조류와 랑구르 원숭이가 주인공이지만, DNA 검사 기술이 발달한 이후 도마뱀에서 뱀, 바닷가재까지 일처다부의 경향은 모둔 척추동물에서 발견되고 무척추동물에서도 예외가 아닌 표준으로 선언되었다고 한다. 성적 일부일처는 지금까지 알려진 종의 7퍼센트 미만에서 확인되었다. 초파리 실험으로 유명한 베이트먼의 원칙은 암컷은 언제나 수컷에게 주도되므로 연구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암컷이 다수의 파트너에게 섹스를 요청할 뿐 아니라 그것이 암컷 자신과 자손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했다. 여전히 베이트먼의 패러다임을 가르치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는 그를 반박하는 고와티의 연구는 '정치색이 강하다'는 이유로 추천되지 않는다. 그들은 다윈주의적 세계관의 이론적 근간이 남성중심적임을 간과하고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들으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색이 강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4장은 성적 동족 포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컷 거미를 다양한 방법으로 잡아먹는 암컷 거미과 목숨 걸고 교미하는 수컷 거미들의 이야기와 각각의 전략에 대해 나온다. 수컷 거미는 수정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제 몸을 바쳐 알에게도 암컷 거미에게도 양분을 재공하여 생존 기회를 높여준다. "수거미의 희생정신은 새끼 거미와 어미, 그리고 고인이 된 아비 모두에게 이득이 되었고 극단적인 부성애의 발로" 로 여겨진다. 라는식으로 지금까지 동물계의 암컷들은 묘사되어 왔다.

이 외에도 인간의 어머니와 동일시되어왔던 모성적 존재로서 동물의 암컷만을 조명해왔던 것, 암컷의 음핵과 오르가슴, 알파 암컷의 결투 등에 대해서 이어진다. 거미 이야기 다음으로 충격적인 것이 암컷의 피도 눈물도 없는 서열 싸움이다. 그러니깐, 이런 의식들 말이다. 이미 비판적인 주제의 저자의 어조조차 비판적으로 읽고 있지만, 계속 의식하지 않으면 수컷 관점으로 돌아가버리는 것, 알파 수컷이 그동안 무리에서 해왔던 것을 알파 암컷이 한다고 하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의식과 언어가 내 안에서 교정되어야 한다. 서열 싸움에 더해 여왕벌과 여왕개미의 무소불위의 권력 이야기가 이어진다.


8장에는 자매애의 힘이라는 부제가 달려있고, 9장 범고래 여족장과 완경, 10장은 수컷 없는 삶까지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완경 후에도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며 무리를 이끄는 범고래 여족장과 코끼리 우두머리 암컷의 이야기는 경이롭다.

생물의 시작은 여성이고, 생물의 미래 또한 여성일 것이라는 것은 이 책에 따르면 과학적 사실이다. 인류가 전쟁과 파괴를 이어나가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을 멸종시키더라도 450종이 모두 암컷인 윤형동물의 질형목 생물은 자기복제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가복제를 통해 번식하는 생물들은 포유류를 제외한 다양한 생물에서 발견되는데, 그로 인한 다양성의 부족을 극복하는 전략으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모두가 가능한 종들이 발견되어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환경에 따라 성변환하는 생물들이 나온다. 앞에서 내내 암컷들이 조명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내내 하다가 사실 성은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형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뜬금없는 결론같지만, 암컷들을 마침내 과학계의 무대에 올려 놓는 과정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컷의 관점에서 본 동물학을 이야기하는 교양 과학서로써 굉장히 흥미로운 동물들을 알게 되어서 재미있었고, 지금까지 배워온 수컷 관점 세계관의 블록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을 수 있는 경험이 되어주었으며, 이 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 연계 독서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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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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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제목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빈곤과 청소년, 10년 그 이상의 기록이다. 

청소년기인 여덟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하며 빈곤하게 살아 온 그들이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이들의 공통점은 빈곤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빈곤이 구조적 문제이고, 사회문제임을 밝히고 있고, 그에 따르는 지원과 의식 전환의 필요를 역설하면서 동시에 개인으로서 활용한 방어기제들과 필요한 내적 자원들에 대해서도 관찰하여 논의한다. 


자기계발을 이야기할 때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일침을 두는 사람들이 있고, 사회 구조의 문제여서 자기계발의 여유가 없고 불가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빈곤이 사회문제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개인의 자질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빈곤 아동 연구에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지지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길러진 회복탄력성이었다. 우리나라의 사례로 보니 더 와닿는다. 


빈곤 아동이 자라나는 토양은 빈곤 가정이다. 가정을 이루는 부모 역시 빈곤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별다른 자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빈곤의 대물림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은 시야를 좁게 만들기 쉽다. 가족 내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높은 확률로 몸이든 정신이든 아픈 가족, 혹은 가족들이 있다.) 가족 내의 안그래도 적은 자원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간다. 나머지 가족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지 또한 극도로 좁아진다. 가정 내 약자인 아동, 청소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세대를 잇는 빈곤 대물림은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청(소)년 세대를 좀먹고 우리 미래를 파탄낸다. 건강한 사회라면 '개인의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과 연결되어야 하지만 사회가 양극화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각자도생의 풍조가 생겨난다.



책에 나온 소희의 가족은 소희를 포함해 가족 구성원들이 우울증, 폭력, 알코올, 약물, 도박 중독 등의 문제행동을 보였다. 이러한 문제행동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합리적 판단과 장기적인 계획 설계, 실천 의지들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통제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는 학교 환경과 목표지향적인 학교생활 잘 적응하기 힘든 경향을 보인다. 학교의 역할이 성적을 내기 위한 교육만이 아니며, 규범과 질서에 적응하여 사회화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는데, 학교는 성적에 좌우되는 경쟁에 치우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책에서 빈곤 아동들을 위해 제안되는 다양한 방안들 중 제 일선은 학교이다. 그리고 복지센터와 지역아동센터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프라를 가장 잘 활용한 예가 책에 나오는 지현이다. 지현과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사회제도를 이용했고, 지현의 긍정적인 성격은 그녀가 공부하고, 직장을 가지고,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기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더해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어머니와 동생과 똘똘 뭉쳐 서로를 돌봐준 결속감이 있었다. 저자는 지현에게 있는 또 다른 힘을 언급한다. '성찰하는 힘'이다. 이것은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힘이다.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인 성찰하는 힘을 기르고 자신의 가치체계를 만들어내는 청소년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실패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현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에너지를 생존에만 올인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인식하고 자아 욕구를 발견하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의지와 복지혜택으로 빈곤에서 벗어나서 청년이 된다고 하더라도 빈곤의 여파는 계속된다. 저자는 빈곤 아동들이 갖추기 힘든 것이 바로 '역량'이라고 한다. 여기서 역량이란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빈곤 아동이 역량 혹은 자립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친구, 교사, 사회복지사와 복지관 등, 자신을 믿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필요하다. 


"사람이 힘을 내고 노력을 하는 데는 혼자만의 결심과 성취 욕구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인식,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하는 사회적 욕구가 인간의 발전과 성숙에는 필수적이다."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아마티아 센은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했다.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하고, 타인으로부터의 인식, 사회에서 해 내고 싶은 역할에 대한 욕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빈곤 아동의 경우 이것들이 자타의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역량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과 자아정체감이 필수이다. 청소년에게 자아정체감과 진로 탐색은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 가난에서 벗어난 지현, 연우, 우빈 등 자아정체감을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친구들이 진로 탐색에도 유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진로 선택의 고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 살고 싶은 삶,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활동은 뚜렷한 진로 전망이 생기면 훨씬 긍정적인 패턴을 보였다. 즉,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향해 관심이 집중되면 이전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관계는 자연스럽게 단절이 되었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노력이 쏟아졌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과 조건에 대해 외부로 그 탓을 돌리거나 세상의 평가에 쉽사리 휘둘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적극성을 가지고 현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 진로를 한 정보 탐색, 도움이 될 만한 사회적 관계 만들기 등을 행동으로 옮겼다." 


내 일이 아닌 것 같이 여겨지는 사회 문제들이 있다. 자극적인 뉴스를 접할때만 한 번씩 사회를 욕하고 지나가게 되는 그런 문제들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바로 나의 문제다. 이 책은 빈곤 아동 문제가 왜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의 문제인지 알게 해준다. 어떤 증명이 필요한 선별적 방식이 아닌 청년 세대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의 사회정책들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청년 정책들을 보고 지나쳤는데, 작년과 올해에는 그 청년 정책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진다는 뉴스를 많이 봤다. 빈곤 아동에 대한 사회 인프라와 그들에 대한 인식 변화와 지원, 학교의 역할 확대,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 지금 우리에게 가장 우선시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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