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01 | 302 | 30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샬' 이라는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책은 평화로운 영국의 어느 시골의 풍경 사진으로 시작된다. 뒤로는 나즈막한 산이 보이고, 들판이 있고, 앞에는 할아버지와 손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잔잔한 강물위의 조각배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옆 귀퉁이에 써 있다.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

그리고 다음장 . 흑백사진이지만, 왠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보이는 하늘과 산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 일고여덟채.

' 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어떤 무게나 견고함도 모두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숲 속. 그리고 아마도 아래에는 도로가 있는 듯 삐죽 윗부분만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전봇대와 전깃줄. 한 벌목꾼이 나무 밑에 깔리고, 의사에게 연락한다. 의사는 클락션을 계속 울리며, 벌목장으로 서둘러 간다. 앞에 오는 차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나무에 깔린 사람이 클락션 소리를 듣고 의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닥터 사샬이다.

나무에 깔려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어쩔줄 몰라 하는 동료들에게 의사가 가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클락션을 계속 울리는 사샬 박사. 짙은 안개 속의 당황한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클락션 소리만큼 반가운 소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으나, 이 작지만 무거운 '행운아'라는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뒤적이니, 닥터 사샬의 환자를 대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 좀 특이하다.  존 버거는 시골의사의 생활과 가치관을 쫓고, 장 모르는 시골의 환자들, 그리고 의사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제목은 '행운아' (A Fortunate Man)이다.

첫페이지에서 작가는 사진 속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 중심에는 물론 ' 사샬 박사' 가 있다.

사샬 박사는 작은 마을의 모두를 안다. 처음 시작은 전쟁중의 해군 군의관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된 것에 크게 보람을 느끼고 그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권위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전쟁 후에 그는 결혼을 하고 ( 존 버거는 여기에서 그의 직업적인 삶에 대한 것만 이야기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소속의 시골 의사의 길을 택한다. 늙은 의사의 보조의사로 시작했는데, 움직이기 싫어하는 늙은 의사덕분에(?) 젊은 의사는 직접 현장에서 환자를 대할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는 항상 과로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시골에서의 제2기는 삼십대 중반즈음에 찾아왔다. '이십대처럼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대신, 스스로를 직시하고 제 2의 위치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 삶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나이를 먹는 자신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의 환자들도 같이 나이들고 변해가는 것을 본다.

늙은 파트너가 죽고, 사샬은 수술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환자의 육체적인 병만 볼 뿐 아니라, 환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과 그리고 환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을에서 특권을 지닌 존재가 된다.  마을 사람들이 사샬을 특권을 가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들은 상식에 의존하는 데에 반해, 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은 절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상식은 탐구하려는 정신, 즉 철학과 구별되는 한에서만 하나의 범주로 존재할 수 있다.'

존 버거는 사샬의 '의사'라는 직업과 직업관 등을 관찰하고 고통과 질병, 두려움, 죽음. 그리고 '의사' 에 대해 사유한다.

'몸이 아플 때는 많은 관계들이 단절된다. 질병은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왜곡되고 분열된 자의식을 형성한다.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그에게 허락된 특별한 친밀감을 사용해서 그 깨진 관계를 보상해 주고, 환자의 악화된 자의식에 다시 사회적인 성격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사샬은 마을에서 특권을 가진 존재라고 앞서 말했다. 여기에서 '특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리나 뇌물, 권력과는 관계 없다. 그의 특권은 마을 사람들 누구이건 그를 가족의 하나로 여기고, 자신을 맏기고, 그에게 의존하고, 그를 존중하는 등의 마음에서 얻어지는 ' 특권'이다.

그런 사샬의 지금의 고민은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이다. 숲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일, 가족, 가정-을 유지하기를 기대하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잠자리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 주말판 신문, 주말의 술집, 이런저런 게임, 농담 등-을 계속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최소한의 것에 안주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자라왔다. '사는 게 그런 거죠' 라고 말한다.

그러나 숲사람들과 달리 사샬은 삶에서 최대치를 기대한다. 숲사람들에게 특히 아버지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아 역시 삶의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때로는 직업학교에 연결해주거나 ,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숲에서의 삶이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존 버거는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다.

'사샬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샬은-우리 사회의 끔찍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행운아이다.'

존 버거는 시골 마을 의사인 사샬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지(알지) 못하는 우리의 끔찍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표현 못하는 것조차도  그의 관찰을 벗어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 된다. 우리가 의사에게 의존하는 이유,  몸이 아플 때 관계의 단절과 그 단절을 이어주는 의사의 역할, 의사와 환자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풀어낸다.

한 편의 고요한 풍경 사진으로 시작한 이 글의 마침은 사샬이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의 인용이다. 그 논리는, '그 금욕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긍정적 비전의 씨앗을 그 안에 담고 있다. '

"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 매일 누군가 죽어가죠-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나도 리뷰를 이 인용으로 마치고 싶지만, 사샬박사의 직업관과 같은 그의 다짐은 가장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죽음만큼 강력한 말이라는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없다.

늦게나마 존 버거를 만나게 된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행운아' . 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almas 2005-02-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좋은 리뷰군요. 추천 하나.^^
저도 존 버거 애독자 중 한 사람이랍니다.

하이드 2005-02-0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흑. 감사합니다. 존 버거 책 리뷰 쓰기 너무 힘들어요. ㅜ.ㅜ ( 힘들지만 잘 썼다가 아니라, 힘들어서 억지로 겨우겨우 그럭저럭 쓰고말다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책 3권있고, 꼭 주문하고 싶은 책이 두권 더 있어요. 꽤나 많이 번역되어있네요. 그리고, 이 좋은 책들에 왜 제 허접한 리뷰가 첫 리뷰인지;; 아는 후배가 번역하셨다니! 전 항상 역자 프로필이나 후기를 재미있게 보는데, 이 분은 지금 EBS PD로 있으시고, 제가 사려다 품절되서 못 산 '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 탐사' 를 번역하신 분이시더군요. 그리고, 이 전에 읽은 존 버거의 ' 그리고 사진처럼..' 를 번역하신 분은 의대 나오셔서, 사진공부 하시고, 현재 사진가, 가정의학 전문의를 하고 계시더군요. 사진 에세이도 내시고, 열화당의 사진책도 많이 번역하신 것 같고. 재밌어요. ^^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화당에서 나온 존버거의 책이다 . 하얗던 표지는 며칠새 손때가 타서 꼬질꼬질 해졌다. 원제는 And Our Faces, My heart, Brief as Photos. 이다.

그의 글처럼 심플한 표지와 목차이다. 1부는 시간, 2부는 공간에 대한 것이다. 목차인즉 1. 한때 2. 여기서

작가의 어느 한 때에 관한 글들을 모아 놓았다. '어느 이야기의 한때'에서는 테이블 위 한장의 사진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진이 들어가야 할 부분은 네모만 그려져 있고, 우리는 지금부터 이야기할 존버거의 이야기에서 네모 속의 사진 안에는 앙카라 교외 어느 판잣집의 한 방에   여섯 남자가 일렬로 서 있는 것을 상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 각기 다른 몸집의, 표정의, 옷차림의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노동자이다. 그들은 노동조합연합인 DISK가 불볍단체로 규정되면서 체포되거나, 사형당하거나, 도망중이다. 이 한장의 사진은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으며 정치란 원천적으로 억압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잇다. '유토피아는 양탄자 위에서만 존재한다. 하나, 그들의 삶을 지배해 온 것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그들은 알고 있다.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희망이다'

'암스테르담에서의 한때' 에서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온 그의 사랑하는 여인 헨드리키에를 말한다. 거기서 그는 그림들이 보여주는 천재성 때문이 아닌 그 그림들이 연유된, 그리고 그림들이 표현하고자 한 삶의 경험들이 말 이전에 다가와 말의 영역 너머로 옮아가 버리는 것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지나간 어느 한 때' 에서는 죽음과 헤어짐을 삶과 사랑을 말하고, 오손에서의 한때에서는 상실을 말한다.

두번째는 '어디서' 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제목도 없다. 작가는 떠남과 이별, 행복,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계속 써내려가면서  이 책의 리뷰쓰기란 정말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 있다!

존 버거는 이 짧은 에세이집에서 어느 한 때와 장소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과 차원과 우주를 오고가며 하고 있다. 인생에서 맞닥트리는 사건. 우연. 이벤트들을 대하는 그는 사소한 것에서, 흔해빠진 것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멀어짐, 이별, 행복 등을 보고 - 그런 거창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 군더더기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 몸으로 치면 체지방 0%의 군살 하나 없는 그러나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지 않는 호리호리하면서 단단한 몸매이다.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을 것 같지만, 읽을수록 멘토가 되어주는 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 론리하트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책과 교감하는 순간이 있다. 마음이 동해서, 소리내서 읽지 않고 못배기게 만드는 책. 오늘 아침, 이 책 너세네이얼 웨스트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 이라는 제목의 책과 교감했다.  

"인간은 늘 꿈을 가지고 자신의 비참함과 싸워왔다. 과거게 꿈은 아주 막강한 것이었지만 그 꿈은 이제 영화, 라디오, 신문 때문에 유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꿈을 배신한 사례가 무수하게 많았지만 최근의 이런 매체들은 정말 최악이었다."

첫 페이지의 저 문장은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첫문장은 아니었고, 소설 뒷부분쯤에 나오는 이 소설을 뚫고 있는 한 문장이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 꿈을 잃도록 조장하는 미디어들. 그 미디어들로 대표되는 세속.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이 세상.

미스 론리하트는 신문에 투고하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는 남자다. 이 책과 나의 궁합이 잘 맞은 것은 둘째치고,  너세네이얼 웨스트는 정말 내가 이때까지 만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정말 맛깔스럽고,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먹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 자는 도피주의자야. 자신의 내면적 정원만 단장하려 든단 말이야. 하지만 어디로 도망가겠나? 그 자가 자신의 성격이라는 과일을 과연 어떤 시장에다 내다 팔 수 있겠나? 요사이 영농위원회는 실패작이거든."

절망녀, 상심녀, 모든게 지겨운 여자, ( 그러고 보니, 소개 되는 편지들이 다 여자로 부터 온 것이다.  유일하게 남자로부터 온 편지는 미스 론리하트에게 직접 건네지고,  파티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전달되지 않는다. ) 들로 부터 받는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의 구세주가 없는 인간들의 갑갑한 이야기들은 독실함과 의구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기독교인인 미스 론리하트를 황폐화 시켰다가, 집착하고, 강박하게 했다가, 굳건하게 했다가, 결국은 깨달음을 줬다가 그 즉시 모든 것을 빼앗는다.  얼마전에 본 J.D. 셀린저의 ' 바나나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들' 의 결말을 떠올리게 하는 허무하고도 강렬하고도,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전페이지서부터 읽게 만드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 이런 , '바나나피쉬를 위한..'를 보고 최고로 강렬한 문장이라고 평했던게 엊그제인데...) 사실, 마지막 결말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처음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강한 인상으로 박혀버렸으므로, 외려, 전체적인 아우라에 비하면, 결말이 약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처럼 15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을 읽고나니 수많은 의문이 든다. 의미심장해보이는 수많은 상징들로 가득차있다. 일독을 한 지금은 애써 분해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으려한다.

해럴드 블룸님의 '교양인의 책읽기' 를 보고, 잽싸게 샀던 두 권의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책이었다. 그의 평을 끝으로 리뷰끝.

"미국 사회의 어두운 비전을 이처럼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은 두 번 다시 없다. [미스 론리하트]는 [위대한 개츠비],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 [성단]을 능가하는 작품이다. 20세기의 미국 산문문학을 통틀어서 [미스 론리하트]의 작품 수준을 능가하는 소설을 쓴 작가는 포크너 단 한 사람뿐이다. "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 ( 예일 대학교 및 뉴욕 대학교 교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5-02-0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녀, 상심녀, 모든 게 지겨운 여자......
저는 이 책 나오자마자 열광하며 샀었어요.
그런데 기대에 뭔가 조금 아주 조금 못 미친 듯.^^

로드무비 2005-02-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사진 확대해서 보려고 왔어요.
근사한데요?^^

하이드 2005-02-0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나왔을때 언젠가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이번에 .. 라기엔 좀 되었지만, 해럴드 블룸의 ' 교양인의 책 읽기 ' 읽고 사 뒀다가 이제야 읽었는데, 너무 맘에 듭니다. 두번, 세번 읽어도 계속 좋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 책입니다.

balmas 2005-02-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추천 하나에, Thanks to도 들어갑니다.^^

하이드 2005-02-03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고맙습니다. BALMAS님 >.<

드팀전 2005-02-0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2년전 쯤 봤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그다지 강한 이펙트를 주진 못했나봐요.아니 그 의미를 전부 이해하기엔 좀 인내가 부족했다는게 맞는 말이겠지요.주인공이 좀 당혹스럽게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은 기억이 나네요.언젠가 다시한번 의미를 새기며 읽어봐도 좋을 책이리라 생각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애서광 이야기 범우문고 192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민정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기쁨을 주는 책이 있다.

이 책.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 애서광 이야기'에는 자체로 하나의 수필과 같은 이상보 교수의 작품해설로 시작해서, 고서 애호 취미의 옹호추진자로 영국의 호사가며 문학자인 옥타브 유잔느(Octave Uzanne, 1852~1931) 가 쓴 단편 소설집 [애서가를 위한 이야기(Contes pour les Bibliophiles)](1895) 중 에 실렸던 '시지몬스의 유산' , 그리고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 해설, 과 이어지는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슈테판 츠바이크의 ' 보이지 않는 수집품' 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 [시지몬스의 유산]은 애서가인 라울 규마르와 그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가 고인이 된 시지몬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서로간에 가장 탐나는 고서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이들은 시지몬스가 죽자, 라울 규마르는 그의 수집품들을 사고자 하나, 시지몬스의 유언에 의해, 책은 절대로 판매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권리는 사촌 여동생 에레오노르에게로 넘어간다. 자신보다 네살이나 많고( 54) 게다가 흉측하기 그지없는 그녀와 결혼하고자 하는 라울 규마르와 고인이 된 시지몬스에게 에레오노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하고야 만다.

두번째 이야기 [애서광 이야기]의 해설부분에는 역사책 속의 '애서광 ( bibliomanias) 에 대한 전설같은 얘기들을 몇가지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 관심을 끌었던 몇개는 '나'의 독백 중 ' 책을 사랑하면서 읽고, 책을 귀여워하면서 읽고, 책과 친하게 지내면서 읽는다. 이것이 책에 대한 나의 태도다. 책은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이며 선생이다. 또 둘도 없는 '마음의 위안'이며 '환희의 원천'이다. ' 그리고 미야기 현의 아라하마아리에 조쿠카셉아카마쿠라시라는 책 미치광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굉장한 부자였는데, 너무 심하게 책을 사들이는 바람에 금치산자 선고를 받기도 했다. 라는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 [애서광 이야기]는 헌책방 주인 갸코모의 이야기이다. 이 음침하고, 책밖에 모르는 남자는 역시 건너편 서점 주인 바프테스토에게 강렬한 경쟁심을 느낀다. 어느날 바프테스토의 집에 화재가 나고, 갸코모는 목숨을 걸고 원하는 책을 들고 나온다. 그야말로 책을 위해 살인도 하고, 책을 위해 목숨도 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 [보이지 않는 수집품]은 책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야기답게 슬프고, 감동적이고, 무언가 초월해야 할 것 같은 마음가짐이 들게 하는 단편이다. 60년동안 미술품을 모아온 한 퇴역군인에 관한 이야기. 그는 말년에 시력을 잃는다. 그의 수집품들을 싸게 사볼까 간 '나'는 깊은 감동을 받고 나오며 말한다. "저는 새삼스레, 아마 괴테가 한 말 같은데 , '수집가는 행복한 인간들이다'라는 옛 격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erky 2005-01-2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베르? 혹시 마담보바리 지은 작가인가요? '애서광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 책인데, 하이드님 글 읽어보니 재밌을거 같아요.

하이드 2005-01-2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플로베르 책인것처럼 책소개가 나와 있는데요, 안에는 세 작가의 단편 3개가 나와 있어요. 범우문고에서 나온 2800원짜리 ( 예전에 1500원 하던) 얇고 쬐끄만 문고판 책이랍니다. 저도 책 좋아하지만, 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 읽으면, 뭔가 휴식을 취한달까 위안을 얻는달까 하는 느낌이에요. 저도 책 많이 사서 '금치산자 선고 받음' 까지는 아니라도, 좀 말도 안되게 읽는 것보다 많이 사기는 하거든요. 위

panda78 2005-01-2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읽었지만, 츠바이크의 단편은 다른 책에 실린 걸 읽은 기억이 나네요. ^^
다른 단편도 재밌을 것 같아요.
 
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 페이지도 안 쪽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종이질은 또 뭐하러 이리 좋담. 쓸데없이 여백도 많고, 각주는 또 왜 다 이리 뒤에 달렸담...

그 어떤 불평도 사소하다. 서경식의 책 앞에서는.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두 번째 읽는 서경식의 책이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이제 읽을 책도 두권 밖에 안 남았는데( 청춘의 사신,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아쉬움에 소년시절 그가 읽었던 책들을 뒤적여 보고,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평범한 독서일기일꺼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서보다 더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와 함께 본 미술 작품 앞에서 그랬듯이, 또 한번 그의 삶을, 그의 영혼을 엿보는 독자가 되고만다.

소년 시절의 책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되살려 적은 것만은 아니다. 책꽂이의 먼지 쌓인 책들을 몇십년전 소년의 나이일때의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노래는 추억을 실은 마차' 라는 글을 본 적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교 3학년때 처음 지방에 내려가서, 할 일이라곤 공부밖에 없었던 막막했던 때가 떠오르듯이. 저자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을 보면, '절대로 울지말자' 고 주인공 마르틴 타라처럼 다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글자를 읽지 못해서 급식비를 못 낸 부끄러움에 훌쩍이던 기억을 떠 올린다.  가난한 집안 형편때문이려니 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엄마가 글자를 못 읽는다는 부끄러운 사실은 탄로나지 않았으니 그냥 그런 걸로 해두면 되겠구니' 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던 기억을 떠 올린다.

[그 책을 읽었던 나날의 정경은 기묘하리만치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데 반해, 이야기의 중심 내용에 대한 기억은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기억난다. 지난 여름 한참 추리소설에 빠졌을 때 몇년만의 폭염에 집에는 에어컨도 없고, 회사 들어와서 최대 슬럼프에 빠져서, 주말에 소파에 기대 누워 미스테리 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그 때 읽었던 추리 소설들을 보게 되면 당시의 막막함과 무기력함과 나른함이 떠오르는걸까?

저자의 전작에서 드문드문 나오던 가족사는, 저자의 소년 시절을 쓴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나온다. 서준식이나 서승의 어린시절에 대해 서경식의 목소리로 듣고 있노라면, 난 이미 그 사람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아픈 시절을 겪은 서경식의 가족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머리 좋은 작은 형은 '서승'이고 반항아에 탁월한 운동신경의 독서를 멀리했던 막내형은 '서준식'이다. 작은형 서승은 막내인 서경식을 지나치리만치 귀여워해서 마치 소중한 장난감인양 대했고,  막내형은 좋아하는 표현으로 가끔씩 이슥한 심야에 왕복 4-5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장거리달리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던 막내형이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나니고,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이라 부르던, 수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서경식에게 '독서'란 자기 단련인 동시에 휴식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학교를 빠지고 책방에서 책 몇권을 머리맡에 쌓아놓고 한 권씩 읽어 나가는 것은 그의 최대의 기쁨이었다. 몸이 아프면, 혹은 꾀병을 부려서라도, 기대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다. 아플때 읽는 책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었다. '아프니깐..' 하면서 변명처럼 잡은 책들. 서경식은 막내형의 위의 편지를 받고 형의 그 말을 본인에 대한 가차 없는 항변의 여지가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학교 때까지는 한 반에 네댓명의 조선인들이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본인이 조선인인것을 숨기고자 노력했고, 고등학교는 명문 고등학교에 시험봐서 입학했는데, 단 한명 재일조선인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열등감으로 차 있는 서경식의 어린 시절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에 대해, 민족에 대해 너무 일찍 깨달아야만 했던 그에게 '책'이 있었고, 거기에서 해답을 구했다. 가끔은 그 해답을 찾기도 했다.  그는 분노하기 보다는 슬퍼하는 소년이었다.

[모두들 "어린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가능한 일이라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같은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되짚어보면, 그리움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나름의 슬픔과 괴로움이 마음속 저편에서 되살아온다.]

서경식의 담담하지만 묵직한 글은 생각보다 더 가슴 깊이 자욱을 남긴다. 평소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일본 시선 몇권을 골라 본다. 새삼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들을 구석에서 꺼내 본다. 읽을 엄두 못내고 있었던 루쉰의 책과 프란츠 파농의 책들을 드디어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저자가 끝내 읽지 못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오기반 재미반으로 주문해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5-01-1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사신도 있는데요. ^^;;

하이드 2005-01-1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도 있어요. 이런;;;; 고쳐야지;;

하이드 2005-01-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쫌;; 말 안되는 것 같지만;; 판다님 제보 감사해요 ^^)/

panda78 2005-01-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ㅡ^ 히히-
음.. 그리구 아무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요즘 부어스틴 [창조자들 3] 을 읽고 있는데, 미스 하이드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이드 2005-01-1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잇, 판다님은 역시 지름신의 다른 모습!

하이드 2005-01-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끄덕.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01 | 302 | 30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