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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여기 한 인간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문장을 엮어 나간다. 오로지 그 작업 하나로 작품이 태어난다. 어떤 직업이든 여러 사람이 협력하며 작업하게 마련이지만 소설만큼은 혼자서 작업한다. 그 작업으로 얼마나 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번역되는 미스터리 소설 열에 아홉은 읽는 편이라 모리 히로시의 책도 읽어봤을법 하긴한데, 표지며, 제목이며, 줄거리며 묘하게 취향 안 맞을 것 같아 밀어두고 있다가, 아마도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읽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긴 했던 것 같고) 처음 접하게 되는 책이 내가 책 써서 돈 이만큼 벌었어. 하는 책이라니. 1억엔(10억원) 벌이의 작가답다. 어떤 독자라도 끌어들인다. 


모리 히로시는 누구? 로 시작되는데, 평범한 이력은 아니다. 전혀 참고가 될 것 같지 않다. 데뷔 19년차에 280여권을 출판했고, 애니 저작권 수입도 크다고 들었고, 원래 공대 조교수 출신, 소설을 부업으로 시작하고 나서도 10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돈을 위해 소설을 쓰고,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평범한 작가는 평범해서, 별난 작가는 별나서 팔리는 것이 책일테니, 작가로서는 평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라는 것의 바운더리가 그런거겠지. 


10억원을 버는 작가가 아무리 일본이라도 탑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대신, 탑작가가 많겠지) 

소설을 그야말로 돈 버는 일로 이공계 스타일로 환산해서 계산해 놓은걸 보니 어질어질하다. 

예를 들면, 문학잡지 같은 매체에서는 원고지 매당 4천~6천엔의 고료를 받으니 50매짜리 단편이나 연재소설을 쓰면 20만~30만엔, 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자재가 따로 필요 없으니 매출이 곧 소득(->이런 말을 하는건 뭔가 아마추어들의 로망. 같은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당 6천~ 15천엔을 받는 만화가에 비교하며, 만화쪽이 시간도 20배 이상은 더 걸리고, 어시들 월급도 줘야 하니, 글작가들의 효율이 얼마나 좋은가? 라는걸 글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위화감 잔뜩 느껴진다. 

신문 연재 소설은 회당 분량이 5만엔 정도, 매일 게재 하므로 연수입이 1,800만엔 정도라고. 신문연재 많이 하셨던 미미여사가 떠오르며, 아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돈계산, 작가의 시급.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데, 시간당 6,000자 정도 된다고 한다. 이 숫자를 내는데도 지극히 이과계스러운 계산방법이 나온다. 여튼, 그렇게 해서 계산한 집필노동의 시급 10만엔. 시급 백만원

여기에 문장손질, 교정쇄 점검 등을 넣어 절반쯤으로 보아 5만엔. 금액만 보면 매우 좋은 조건인데, 누구나 이런 조건으로 작업할 수 있는건 아니지. 라고. 네네.. 

책 한 권에 담는 장편소설은 대개 원고지 400~ 600매 정도, 장편 한 작품을 잡지 연재하면 대강 200만~ 300만엔의 고료 

얼마전 트위터에서 모작가님이 천권 팔아야 백만원인데, 책 좀 달라고 하지 말고, 사라, 사. 하는 글을 봤다. '작가의 수지' 를 읽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물론 일본에서 돈 가장 잘 버는 작가 중의 하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차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에 읽은 새로운 필자가 새로운 독자보다 많아진다는 기사도 생각나고.


저자의 데뷔작 <모든 것이 F가 된다> ... 인쇄 부수 보니, 할 말이 없다. 

작가의 '데뷔작' 초판 인쇄 부수 18,000부. 그로부터 9개월 사이에 6쇄까지 증쇄하여 첫 해에 61,000부를 찍고, 인세로 600만엔. 이 작품은 3개월마다 신작 발간되었고 ( 이미 다섯 작품을 써 둔 상태였음) 문고본의 초쇄는 6만부 였다. 노벨스판이 24쇄까지 나와 누계 139,600부, 문고판이 60쇄까지 나와 누계 639,000부. 합해봐야 78만부니 백만부에는 한참 못 미쳐서 밀리언 셀러 경험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긴 하지만, 한 작품으로 크게 히트한 적은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작가 본인이.

이 책의 시급도 계산해 두었다. 시급 100만엔. 토탈 60시간 정도 걸렸는데(처음 출간이어서 시간 많이 걸렸다고)

다만 한번에 받은건 아니고, 20년을 두고 받은 것. 


작가에게는 증쇄가 곧 불로소득이라고 썼지만, 그보다 먼저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구나' 하고 안도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만큼 벌 수 있는 것은 다 출판사 덕분이다. 나는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하다. 별생각 없이 원고를 보냈다가 운 좋게 편집자 눈에 들었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궁합이 잘 맞는 편집자를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그 사람들의 비즈니스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한편, 매정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독자에게는 그다지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내 책을 읽고 재미가 없어도 독자들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가 있다. 재미없는 책을 만나더라도 책 한 권값을 쓴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내 책을 만나는 독자도 많으므로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책 좀 사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이 책이 당신에게 책 구입비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대개 궁합의 문제이므로 내가 어떻게 해 주기가 힘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지만, 맞는 말.


소설 집필을 '노동'으로 보는 시각은 아마도 이 세계에서는 소수파일 것이다. 나의 감각이 마이너인지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읽는 독자가 계속 당황스럽고 있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책시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정확하게 수치를 알지는 못하지만, 많이 날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런 일본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작가가 일본에도 일상적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소설계에서는 수십만명 정도라고 할 정도로 적다고 하고 있다. (문득 생각나는 우리나라 SF 독자 3000명 설) 저자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모든 것이 F..> 도 20년을 두고 78만부 팔렸으니 일본인의 0.6%가 산 것. 1,270명 중 한 명 꼴. 이 수치가 TV 시청률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었을테니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울트라 마이너한 분야" 인가! 라고.


"실제로 모리 히로시 정도밖에 안 되는 자도 꽤 좋은 조건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혼자서 만들어내고, 경비도 안 들고, 비교적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랑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인세만이 수입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잡지에 웬만한 단편이 하나 게재되면 50만엔 정도 받을 수 있고, 청량음료 제조사에서 소설 집필 의뢰 받았는데, 이 때 원고료는 작품 하나에 1,000만엔이었다고 한다. 단편 하나에 오백만원, 소설 원고료 1억? 


웹다빈치 라는 사이트에 블로그 글을 매일 연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매일 1,000자 정도를 올렸는데, 원고료가 300자에 5,000엔. 하루 원고료 15,000엔, 이때 블로그 올린 글들이 3개월마다 문고본 출판되어 인쇄수입까지 합하면 블로그만으로 해마다 천만엔의 수입. 하루 15분 작업으로 이만큼 벌었다. 


지금, 내가, 리뷰 쓰면서 계속 돈돈 하고 있는것 같은데, 내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이런 책입니다. 

제목, '작가의 수지' 


얼마전 일본의 전자서적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기사 하나 읽고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전자서적 시장이 작고, 돈도 안되고, 미래도 없다. 뭐 이런 기조의 기사였다. 모리 히로시는 전자서적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접치고 있는데, 미래에는 책이라고 하면 '전자서적'을 가리키게 될것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를 읽을 때도 궁금했는데, 전자서적의 인세는 15~ 30%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인쇄서적의 인세가 8%~12%로 일본과 같으니 전자서적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을 때도 느꼈는데, 모리 히로시도 문단? 에서 상당히 독특한, 마이웨이를 걷는 작가이지 싶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일본에서 터부시 된다는 작가의 '수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편집자의 말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 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은 작가의 책을 본적이 없다는 말에 공감) 놀랍다. 


'수입' 뿐만 아니라 '지출'에 대해서도 쓰고 있고, 출판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 뿐 아니라, 내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걸 보면, 작가가 직업이 아닌 사람들도 직업의 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만한 보편적인 '새로운'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있다. 


'수입'에서 입이 떡 벌어졌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의 수지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 에 대해 일부분(아마 꽤/가장 중요한 부분)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니깐, 이런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안 했던 이야기잖아.  


이 책을 사면서 인세 5%를 모리 히로시의 모형정원기차 만드는데 보태는건가. 라는 생각같은 걸 해볼 수 있다. 

자신의 감을 믿을 것.
늘 자유로울 것.
한때라도 좋으니 자기가 가진 논리를 믿고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해 전진할 것.
그리고, 좌우지간 자신에게 ‘근면함‘을 강제할 것.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가 전부다.
최적의 건투를! (‘스카이 크롤러‘속 대사)

어쨌거나 꾸준히 활약한 작가였다.
올해(2015년) 4월로 데뷔 19년차가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한 책은 278권, 총 판매 부수는 약 1,400만부, 이 책들로 벌어들인 돈은 약 15억엔이다.

작가로 살다 보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슬럼프를 겪어 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소설 집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벌이니까 마지못해 쓰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좋아하니까 쓴다는 사람은 열정이 식었을 때 슬럼프에 빠진다. 자랑할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판과 비난을 받으면 의욕을 잃는다. 그러니까 그런 감정적 동기만으로 버티면 언젠가 감정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이니까 쓴다는 사람은 슬럼프를 모른다. 글을 쓰면 쓴 만큼 돈을 벌 수 있다. 마음은 배반하지만 돈은 배반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수전노 같은 말본새로 들리겠지만, 정직하게 하는 말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수전노가 되게 마련이다. 애초에 이 책의 주제는 정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이다. 내가 번드르르한 말을 싫어하는 탓에 결과적으로 미움을 받는 캐릭터가 되고 말겠지만, 그것도 일이라는 것의 본질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이외의 직업, 아니 어떤 직업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을 놓고 ‘보람‘이니 ‘꿈‘이니 하는 환상을 품는 젊은이가 많다. 그것은 그런 이미지를 심으려고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인데, 현실 사회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환상일 뿐이다.

오리지널 작품을 만든다(창작한다)는 것은 ‘노동‘만으로 평가받는 행위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글자만 쓰면 되는 작업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옮기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글을 써도 비난받는다. 새로움이 없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절찬해 주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혹평을 하더라도 수천 명, 수만명의 대중이 지갑을 열 만한 매력이 개개의 작품마다 필요하다. 이는 구체적인 노하우로서 이 책에 소개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재능‘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나는 재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 하면 ‘사고력‘이나 발상력‘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도 재능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재능이 없으면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착상이 떠오를 때까지 오로지 기다리면 된다. 스포츠나 음악이나 연극이라면 이렇게는 안 되겠지만 글쓰기라면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 자체는 본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아니므로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하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잇을 수는 없는 시적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주 많은 것 같다. 나도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것을 알았다. 도구도 동료도 필요 없다. 초기 투자도 없다. 게다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면 매우 즐거워 보인다(가령 이 책의 내용처럼). 개중에는 아이디어가 말라서 힘들다느니 슬럼프에 빠졌다느니 마감에 쫓겨 밤을 새웠느니 하며 고생하는 척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노동 조건은 결코 나쁘지 않다.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는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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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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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리히가 히믈러와 함께 만들어 가는 팀워크에서 하이드리히는 SS의 두뇌 역할을 한다 (SS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HHhH'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는 듯이다).


하이드리히가 그 잔인한 히틀러의 애정하는 부하였던건 맞는데, 제목의 HHhH의 H는 책소개에서처럼 히틀러가 아니라 히믈러이다.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


요즘 미국발 뉴스를 보면서 얼마전에 읽은 이 책이 계속 생각났다. 지금까지 히틀러와 나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장 극적인 학살 부분에 대해서만 영화나 책으로 접했고, 2차대전은 교과서에서 본 지식이 다라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이 책을 읽고서야 정말 심각하게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트럼프가 이슬람 7개국을 그들이 미국 국적이건 아니건간에, 미국에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던 말던 상관없이 '출신 국가'를 이유로 급작스럽게 입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나치와 똑같다. 나치가 이렇게 시작했고, 처음부터 가스실에 유대인들을 밀어넣고 학살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인들도, 그리고, 주변국들도(당시 주변국들의 지도자들이 특히 더 한심하긴 했지만)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런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낳은 것이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가 히틀러의 오른손과 같았던 하이드리히의 암살사건을 소설로 쓰는 이야기이다. 250여개의 단문으로 이루어진 '소설 쓰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인데, 독특한 형식과 역사적 사실, 중간중간 작가의 소회가 끼어들며 이미 결말을 아는 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단문이 이렇게 길게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이하다. 잔인한 이야기들이 건조하게 서술되어 그 임팩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책 속의 저자는 책을 쓰며 작가가 겪는 드라마도 함께 쓰고 있어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로 과거가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이드리히가 있고, 하이드리히 암살 임무를 담당한 체코의 낙하병 둘이 있다. 책 속의 저자는 그 둘이 영웅이라고 충분히 칭송하고, 나비효과처럼 그들의 암살 시도가 히틀러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책은 하이드리히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라 어쨌든 하이드리히가 메인이다. 


독일인의 효율성이라는 것이 몇 번인가 나온다. 끔찍하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피엔스의 미래' 에서 과학자파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그리고 인문사회학/저널리스트인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이 각각 인류의 미래는 긍정적일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했다. 참석자들은 '긍정적일 것이다' 라고 주장한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이 요즘의 뉴스를 봤다면, 트럼프를 일주일이라도 겪어 봤다면 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독일 제3제국의 정책, 특히 끔찍한 정책이 중심에는 언제나 하이드리히가 있다. 정말 놀라울 뿐이다. 1939년 9월 21일 하이드리히는 직접 서명한 『점령지의 유대인 문제』공문을 관련 부서들에 전달한다. 유대인들을 게토에 몰아넣기로 결정했으며 유대인 평의회 '유덴라트'를 창설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다. 제국보안부 직속 기관인 악명 높은 유덴라트는 아이히만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하이드리히는 이 아이디어가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것을 본 적이 있다. 피해자들이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디어의 핵심이다. 어제는 약탈, 내일은 파괴.

하이드리히가 자신이 만든 가장 악랄한 부대, 아인자치그루펜을 처음 사용한 곳이 폴란드다. 나치스 친위대 보안방첩부와 게슈타포 대원들로 이루어진 이들 SS 특별 부대는 독일 국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인간 청소'임무를 담당한다. 팀마다 작은 소책자를 받는다. 얇디얇은 종이로 된 소책자에는 필요한 모든 정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다. 그 정보란 점령된 지역에서 제거해야 할 모든 사람의 목록이다. 즉, 공산주의자, 교사, 작가, 기자, 사제, 기업가, 금융가, 공무원, 상인, 부유한 농부... 조금 유명하다 싶은 사람은 다 있다. 수천 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그리고 이들 불순분자들이 친척이나 친구의 집으로 피신할 경우에 대비해 이들의 주변 인물 목록도 적혀 있다. 이름마다 옆에 인상착의가 적혀 있고 사진이 붙어 있을 때도 있다. 하이드리히의 정보국은 이미 우수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치밀한 준비는 조금 과한 면이 잇는 듯하다.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부대들은 무턱대고 아무나 쏘아 댔다. 폴란드 시골에서 제일 먼저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12~16세의 보이 스카우트들도 있다. 시장 광장에서 벽에 일렬로 선 채 총살을 당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 예배를 한 사제들도 총살된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상인, 지역 명사 들을 총살시키는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바로 일어난 일이다. 아인자츠그루펜의 활동을 자세히 기록한다면 보고서는 수천 페이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일 이후로 그들이 처리한 일은 '기타'라는 두 글자로 요약되게 된다. 심지어 무수한 '기타'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소비에트 연방에서까지.

1942년 5월, 아인자츠그루펜이 추진하는 학살 임무에 투입된 병사들은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학살하는 대신 점차 이동식 가스실을 쓰기로 한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매우 간편하고 기발하다. 유대인들을 태운 트럭에 배기가스 호스를 연결해 일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방법이다.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학살에 참여하는 병사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고도 유대인들을 한 번에 더 많이 죽일 수 있다. 두 번째, 학살 담당자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시신이 핑크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단점은 사람이 가스에 질식되어 죽는 과정에서 변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독가스 사살 후 매번 트럭 바닥에 널린 변을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드리히는 이동식 가스실의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하이드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좀 더 탄탄하고 완벽하며 효율적인 방법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이드리히는 경청하고 있는 장교들에게 불쑥 한마디를 덧붙인다. "유럽의 유대인들에게는 전부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이미 유대인 100만명 이상을 처형했으니 참석자 중 하이드리히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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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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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 의 '안녕'은 봉주르이다. 만날 때 하는 인사, 슬픔, 안녕?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살 때 제목의 뉘앙스를 주정뱅이, 안녕? 이렇게 생각했다. 막상 읽어보니, 아듀, 주정뱅이여.... 이런 의미였다.

 

어느 열대야가 계속되던 밤을 보내고 나서 밤의 열기를 빼기 위해 아침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첫 단편 '봄밤'에서 울어버렸다. 애인에게 전화했다가 더 펑펑 울어버렸다.

 

중증 알콜중독자인 영경과 역시 중증 류마티즘 환자인 수환은 같은 요양원에 입원해 있다. 유난히 의가 깊고, 위험한 증상의 연인을 요양원 사람들은 '알류커플'이라고 불렀다. 왜 눈물이 쏟아졌을까. 수환이 다정한 사람인 것이 너무 슬펐다. 둘이 너무 사랑하고, 수환이 너무 다정한 것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들은 마흔셋에 각자 친구의 재혼식 뒷풀이에서 만나고, 동거하게 된 십이년 동안 요양원 들어오기 전 두 달을 빼놓고는 한 번도 떨어져보지 않은 커플이다. 나빠지기만 하는 류마티즘 환자와 중증 알콜중독자. 그들에게 남은 미래는 얼마 없고, 그 와중에 그들은 너무나 사랑하고. 십이년이라는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감사하고, 함께 죽는 것에 또 감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는게 그렇지는 않고, 둘만 서로 사랑해도 가족도 있고, 사정도 있고. 이 작품의 무엇에 버튼이 눌려서 나중에 애인에게 읽어주다 또 울고, 생각만해도 또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모르겠다. 지금, 전화를 안 받고 있는 너무 다정한 내 애인때문일까.

 

다음 단편인 '삼인행' 에서는 세명의 친구가 지방에 먹거리여행?으로 놀러가는 이야기이다. 그 중 둘은 부부였다가 헤어질 예정이다. '봄밤'이 너무나 맘을 분탕질쳐나서 다음 단편은 담담하게 읽었다. 소품 같은 이야기이고, 술주정하는 것이 리얼해서 웃었다.

 

'이모'라는 단편도 좋다. 똑똑한 이모는 평생 가족에, 가족 중에서도 남동생 도박빛 갚느라 인생을 저당 잡혔는데, 어느 날 다 때려치고, 5년간 모은 돈을 가지고 독립하고 연락을 끊는다. 2년만에 췌장암 말기로 나타나 글쓰는 외조카며느리와 주기적으로 만나기로 한다. 응집된 한, 자신의 가능성을 처박고, 희생하며 자신을 쥐어짜고, 마침내 독립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카메라'는 섬뜩하다. 좀 정신 나간 것 같은 동료작가와 술을 마시게 된다. 동료작가는 모르지만, 그 남동생과 잠깐 사귀었다. 단편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이 작품의 주정뱅이는 문정과 문정과 사귀었던 관주의  누나인 관희.

 

'역광'에서는 예술가캠프에 참가한 풋내기 소설가가 번역가이다 소설가로 데뷔한 눈이 멀어가는 위현이라는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 관념적인 이야기들이 위현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달이라는 배우 출신 작가 등의 등장인물, 숲 속이라는 배경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독특하다.

 

'실내화 한켤레' 는 약간 호러의 느낌이다. 쓰면서 보니, 정말 다양한 주정뱅이들이 모여있구나.  

 

마지막 작품인 '층'도 앞의 단편들과 다른 느낌이다. 싫은 남자들이 나오는데, 싫은 딱 그 이유로 여자 주인공이 남자를 피한다. 왜 싫은지도 딱 짚어준다.

 

리뷰 쓰기 전에 다시 홀홀 넘기며 읽었는데, 좋은 단편집이다. 술이 막 땡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정뱅이들이 너무 비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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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1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안녕 ㅡ의 안녕이 그렇군요? 전 만날때와 헤어질때 다시만날 때 를 상상한 안녕 였는데 ㅡ 복합적인 안녕 !^^
좋은 때 ㅡ안부를 묻는 의미도 있고 ...그 모든 것의 안녕
말이죠 . 주정뱅이는 술을 참지 못하고 반복하듯 ...그런 날들의 복합적 안녕 과 주정뱅이 ..로 !

하이드 2016-08-18 20:46   좋아요 1 | URL
저는 완전히 비극으로.. 세상과, 사랑과, 우정과의 안녕들, 그리고 사건의 마무리로서 과거와의 안녕. 이렇게 읽혔는데, 마냥 슬프고 헛헛합니다.

[그장소] 2016-08-18 20:54   좋아요 0 | URL
네 ..비극으로 읽으셨네요 .
슬프죠 ..술을 마시지않고 못 견디는 일상이란 ...^^
저도 때때로 (?)책에 매몰되어 감정이 엉키곤 합니다..

아애 2016-08-24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술을 마시지 않아도 우린 모두 그렇게 취해야만 살 수 있는 아픔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술을 마셔도 아픔을 잊기 위해 취해 살고 있다는 것에서 모두들 주정뱅이라 생각했어요.

하이드 2016-08-26 11:33   좋아요 0 | URL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한 상태라니 너무 힘듭니다. ㅜㅜ
 
위험한 독서의 해 - 내 인생을 구한 걸작 50권 (그리고 그저 그런 2권)
앤디 밀러 지음, 신소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위험한 독서의 해' 는 저자가 한동안 책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한 1년을 말한다. 


저자가 3년동안 읽은 책이라곤 댄 브라운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어휴, 아저씨, 3년동안 책 한 권 안 읽고, 한번 읽어보겠다고 리스트 만들었군.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해할법도 한 것이 책 안 읽고, 무슨 책으로 인생을 개선하겠다는둥 하니깐 말이다. 인생 개선 프로젝트로 독파할 책 리스트를 만든다. 는건 좀 뜬금없는 계획인 것 같고, 미리 말하건데, 다 읽고난 다음에도 책 읽는 것이 어떻게 인생을 개선시켰다는건지 잘 모르겠다. 저자가 말하는 인생 개선은 얼마전 읽은 '읽는 인간'의 오에 겐자부로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책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일 터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책을 사는 행위 자체와 책의 내용 습득을 혼동한다." 


저자는 집에 있는 책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책들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요구의 초점이 되었다. 요컨대 낭비해버린 돈, 흘러보낸 시간, 미뤄온 중요한 일들에 대한 비난 그 자체였다 목록을 만들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껏 읽지 않았다는 게 정말 창피하게 느껴지는 책들을 쭉 적을 것이다. 난해한 작품, 고전, 거짓된 나의 장서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밟히는 책들 위주로. 그런 다음엔 모두 읽어나갈 것이다. 


저자가 인생을 개선하기 위해 책 리스트를 만들고 읽어나가기로 결심한 것과 별개로 위의 글들은 상당히 찔린다. 확실히 지금 내 옆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책들이 쌓여 있으니 말이다. 낭비해버린 돈....흘러보낸 시간... 음.. 


저자는 읽은척 하는 것, 혹은 정말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안 읽은 그런 책들을 자신있게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 이부분이 '인생 개선'이라는건데, 사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긴하다. 다만, 저자가 책을 멀리하다가 1년간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의 방향타를 틀 결심을 했다는건 삶이 '개선'된건 맞다. 그 과정과 수단과 수양의 옆에 '책'이 있었던 것고 맞다. 그러니, 삶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의 리스트에서 읽기 고전하는 책들이 두 권쯤 나온다. 하나는 두번째로 읽은 <미들마치>이고 나머지는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미들마치>를 읽는 초반에는 그래도 맘을 잘 다스린다.  


우리는 의견이 화폐가치를 갖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좋아요' '싫어요'라고 말하라는, 단숨에 결정을 내리고 신용카드로 죽그으라는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단번에 이해할 수없는 뭔가를 접했을때, 결코 단숨에 판단하거나 휙훑고 갈 수 없는 것과 마주쳤을 때는? '싫어요'라고 한다면 부적절한 반응일것이다.<미들마치>가 싫다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보다 먼저 나왔고, 우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한참을 더 존재할 테니까. 그보다도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리라.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노력해봐야겠어요. 


나는 <미들마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쳤다. 인내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읽을때는 .. 


일주일 동안 <인간의 굴레>를 읽은 후, 나는 이책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아내에게 과감하게 이렇게 말할 정도로. "이 책은 쓰레기야." 

"그래, 당신이 좋아할 책은 아니었어." 티나가 대꾸했다."하지만 <면도날>은 괜찮아." 


책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인생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뒤에 뭐라고 블라블라 하는데, 여튼 악담을 퍼부으며 독서를 포기한다. 난 모옴의 <인생의 베일>을 참 좋아하는데, 요 근래 접하는 모옴에 대한 악평은 흥미롭다. 

며칠전 트위터에서 비슷한 평을 본 적 있는데 '내가 보기에 몸은 스스로를 인간 성격에 대한 빈틈없는 심판관쯤으로 자부하는 듯했다.' 라는 저자의 평과 비슷한 평이었다. 몸의 책을 읽은지 오래되서 정말 그런가, 그것이 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인가 싶어 몸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기 싫은 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종류의 책은 꾸역꾸역 읽지만, 어떤 종류의 책은 별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덮는다. 가장 최근에 미련 없이 덮었던 책은 잔인하고 지루하고 지루했기 때문에 덮었다. 저자의 답도 같다. 포기할 책은 망설임없이 포기한다. 그건 저자의 직업때문이기도 한데, 전 서점 직원이자 편집자로서 들어오는 텍스트를 다 읽기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싫어하는 책 읽으면서 얼마든지 시간 낭비할 용의는 있지만, 고문당하는것 같은 느낌이다 싶으면 덮는 것 같다. 


그렇다. 저자는 3년간 책을 안 읽었지만, 전 서점 직원이자 편집자이고, 영문학 전공자이며 책벌레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육아와 일로 책에서 3년간이나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책'을 읽는 것이 '인생개선 프로젝트'가 된다는 것도 좀 신기하다. 


그들은 돈을 획득하기 위한 미친 투쟁을 수행하려고 인생을 즐겁고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결코 그 돈을 적절하게 향유할 만큼 문명화되지 못하리라. (...) 그들은 자신의 탐욕이 낳은 결과에는 귀먹고 눈멀었으며 무감각하였다. 일체의 고상한 생각과 열망을 상실한 그들은 시궁창을 기어다니면서 벌레를 잡아 모으려고 꽃들을 꺾어버렸다.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들> 


저자의 리스트를 조금 훑어보면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찰스 부코스키<우체국>,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로버트 트레슬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들>, 아이리스 머독 <바다여, 바다여>, 존 케네디 툴 <바보들의 결탁>, 사무엘 베케트 <이름 지을 수없는 것>, 패트릭 해밀턴 <하늘 아래 2만 개의 거리들> 등이다. 마음가는대로 적은 리스트라고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저자가 되고 싶은 인간상을 정의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부분은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며 누구라도 그렇듯이, 나 역시 나도 리스틑 만들어볼까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리스트 역시 새로 사는 리스트 아니고 ||||| 새로 사는 리스트 아니고 ||||||| 정말 오랫동안 안 읽고, 아니 책등만 읽어온 책들 중에서 읽어볼 책들을 골라볼까 했던 거다. 1년 말고 남은 2015년동안.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마음가는대로 골라 만들었을때 그 리스트가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 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재미있겠다.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내가 리스트를 결국 만들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가 몇년이나 워밍업? 하며 리스트 만들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으니 나도 큰소리만 쳐둘까. 


저자가 추천하는 리스트의 책들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저자 맘대로 고른 리스트다. 인생을 개선하고 싶다면 개선하고 싶은 본인 맞춤의 고유'인생'의 리스트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책과는 거리가 먼 저자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좋은 것이! 하는건줄 알았는데, 저자는 내공이 차고 넘치는 내가 좋아하는 '편집자' 저자다. 그러니 읽을거리도 많고, 다시 '읽는 인간'의 오에 겐자부로와 비교하게 되는데 (전혀 다른 책이지만!) 삶과 책을 밀접하게 연관시킨다는 점은 '읽는 인간'에 이어 다시 한 번 책과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더글라스 애덤스를 엄청 좋아하고, 실제로 네 번이나(?) 만난 에피소드를 저자의 아이때부터 현재까지의 각각의 시기를 돌이켜보며 적고 있다. 애덤스가 죽기 전 참여했던 마지막 작업한 BBC 라디오 방송에서의 말도 인상적이다. 애덤스는 전자책과 전자출판이 가져올 결과를 기대하면서 한 말이었지만, 이번 생에는 전자책에 별 관심없는 내게는 또 다르게 들린 좋은 말. 맨 앞에 인용했던 쇼펜하우어와 좀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자기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얘기하는걸 들으면,사실은 책읽기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접시와 음식을 혼동하는 것 같달까요. 


나는 '책'도 사랑하지만 '책읽기'를 사랑하고, '책 사기'를 사랑.. 이게 아니라. 여튼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위. 평소에는 의식 못하는 것들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책읽기.를 재미를 위해서건 배우기 위해서건, 일단은 그 뒤에 '내 인생을 위해서'라는 골을 가지고 있다면,책읽는 마음이 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인생을 위해 책을 읽으세요. 

책읽기가 인생을 개선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책을 읽듯이 재미를 위해 읽지는 마십시오. 야심가들처럼 배우기 위해 읽지도 마십시오. 

부탁하건대, 당신의 인생을 위해 읽으십시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샹트피의 르루아예 양에게 보낸 편지, 185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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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9-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너무 즐겁게 읽었어요. 저는 요새 조금 반대로 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내가 사거나 소장한 모든 책을 읽으려 했는데 이제는 초반 좀 버티다 아니다 싶으면 멈추고 처분해요. 그냥 이제 시간이 한정 없이 남아서 정말 나랑 안 맞는 책도 다 읽을 나이는 지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요.

하이드 2015-09-14 22:41   좋아요 0 | URL
저는 워낙 읽는대로 다 정리하고, 다시 읽고 싶은거 두 번, 세 번 사는지라 집에 있는건 거진 안 읽은 책... 이 몇 천권이나. 일단 산 책들은 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산 책들이라 읽긴 읽는 편인데, 아주 가끔 안 맞는거 있으면 (주로 동물 죽이고 그런거 모르고 샀을때;) 안 읽어요.

리뷰에 빠트렸는데, 인생의 책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나옵니다. 50권 리스트의 마지막이죠.
그런 인생의 책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어요.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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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대법원 등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판결을 도출하는 다수 법관의 의견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원작이 있고, 영화가 있는 경우, 나는 글자를 먼저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소수의견'의 경우에는 원작이 있는지도 몰랐고,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던 경우다. 원작을 영화로 만들때 꽤 높은 확률로 실망스럽고, 아주 좋아야 본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이건 내가 책읽기를 영화보기에 비해 월등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의 경우는 영화를 먼저 본 것도 괜찮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자체로도  굉장히 좋았고, 윤계상이란 배우가 처음으로 정말 멋진 배우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계상과 윤변호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없었고,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던 대석의 역을 유해진이 맡은 것도 괜찮았다고 본다. 김옥빈이 맡은 기자 역도 괜찮았는데, 여기에 법학과 교수 이민주가 빠진 것은 너무 아쉽다! 책에서도 영화에서처럼 몇 번인가의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 중에 야당 의원이 얼렁뚱땅 하고 지나간것이 알고보니 이주민이 나오는 꽤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이주민은 등장하는 윤계상,유해진,야당의원,이준형기자,염교수 등등에 녹아 있다. 박재호역은 이경영이 맡아서 더 인상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책에 나온 부분이 거의 빠지지 않고 다 나왔다. 


영화 '소수의견'이 정말 좋았던건 내게 변호사가 주인공인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혔기 때문인데, 책으로 읽으면 법정물에 더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법정씬이 좀 오버스러웠던 점이 유일하게 거슬린 점이었는데, 책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다 좋았어서 영화는 이 점이 좋았고, 책은 이 점이 좋았다. 는 정도의 비교만 계속 된다. 


내용을 다 알고 읽는데도 정말 재미있게 밤을 꼴딱 새며 읽었다. 영화는 원작에 굉장히 충실해서 재미있는 부분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담았고, 책에서는 윤변의 과거와 배경에 대해,그리고 변호사로서의 고민에 대해 더 디테일하게 나와 있어 좋았다. 


'소수의견'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 전문용어인건가 하고 찾아보지 못했는데, 법정용어로 맨앞에 썼듯이 '다수 법관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이다. 그러고보니 간간히 뉴스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철거현장에서 아이가 죽었고, 아이의 아빠가 경찰을 죽였다. 아이 아빠, 박재호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윤변호사는 박재호의 아들 박신우를 죽인 것이 철거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학벌도 인맥도 없고 집도 가난하고 의욕도 없는 평범한(?) 국선변호사에게 떨어진 사건 중에 하나였던 그는 사건을 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알게 되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에서 '정당방위'로,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보통 국선변호인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왜 국선변호인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국가가 나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내가 국선변호인인 한 국가는 나에게 돈을 준다. 그건 의지와 생계 사이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런 기로에 봉착하면 양자택일을 하는 대신, 그냥 현재를 택한다. 나머지 문제는 미래라는 관성에 내맡긴 채 삶을 굴려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곧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사람들은 그런 때를 맞는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평범한 직업은 아니지만, 그들 세계에서 윤변호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우연히 맡게 된 사건,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 그는 인생 사건이 될 박재호 사건을 맡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평범한 누군가도 언제든지 이렇게 시험에 들 수 있다. 그럴 때의 선택이 항상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수 없지만, 계속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자만하더라도 반성할 줄 알고, 인생에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계속 밟히는건 거부하는 그런 '작은 인간' 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윤계상이 윤변 그 자체인듯 너무나 잘 표현해주었고, 책에서 그 디테일을 채울 수 있었다. 


"만약, 만약에 내가 국선전담변호사를 그만둔다면." 

대석은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 넌 국가소송이 끝나기 전에 굶어죽어. 이기지도 못할 재판과 정의에 대한 알량한 환상 때문에. 넌 평범한 민사소송을 해본 전력도 없잖아." 


나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삶의 국면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있었다. 법대를 졸업하는 날부터,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국선변호인이 된 지금까지. 기척 없이뿌려진 무수히 많은 질문들. 기억은 시간 속으로 제각기 흩어졌지만 질문들의 몸통은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 




"올리버 홈즈 전 미국 연방대법관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 사람은 재직기간 동안 연방대법원 자료실에 파격적인 소수의견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놨습니다. 한때는 그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자 그가 내놓은 소수의견들의 대부분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주류적 입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형사 법정에서도 모자라 이제 민사 법정에서까지 검사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누군가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투견처럼 용맹한 검사 군단으로 우리의 목을 물어 뜯어버리겠다는 의지를. 그들은 두려워하길 바랐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사실 쾌감에 가까웠다. 이 나라 모든 검사의 적이 된다 한들,우리는 여전히 단 한 사람의 변호사일 뿐이다. 낭만적이었다.

서랍 안에는 별게 없다. 통장은 하나다. 거래내역도 잔고도 짧다. 숫자는 일곱 자리다. 642만 7847, 당연히 달라는 아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죽도록 세상을 달린 결과가 그거였다. 세상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종종 커다란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나는 세상을 향해 투덜걸지 않는다. 다행히 변호사가 됐기 때문이다.

청구금액이 11억 원이라면 소송인세 비용만 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원고들은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의 부동산 소유자들이었으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다. 나는 적어도 이들이 가진 피해의식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단지 한 세기 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자기 아들이, 또 자기 손자가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

세상의 주어진 하루마다 많은 생물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상들이, 많은 문화들이 도태된다. 그것은 멸종이고 멸종은 적자생존의 법이다. 연민은 자연의 법을 거스르는 허위인가. 나는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연민은 왜 진화했는가. 그렇다면 연민은 왜 도태되지 않았는가.

나는 걸어나갔다. 4번 배심원이 남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저 개새끼. 법정을 나설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으스대는 얼굴. 이 법정에서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만이 솔직하고, 자신만이 실천주의자라고 공표하는 확신에 찬 얼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래 왔다.

우리는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역사를 사는 것이다.

노무현 (前 대한민국 대통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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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5-08-1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계상의 연기에 대해 말들이 오고 가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윤계상 연기 좋아요. 80%만 힘 준 연기.
슈트 뒤로 슬쩍 내비치는 쓸쓸함..또는 처연함 같은 아우라도 좋고 90년대 일본 드라마 주인공 같은
길게 기른 뒷머리 스타일도 좋고...ㅎ 기대없이 본 영화인데 아주 좋았습니다. 묻히기 아까운 영화.
(연기의 밀도로 치면 권해효 아저씨..톤 좋더군요)

하이드 2015-08-1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완전 너무 좋아요. 제가 최고 좋아하는 탐정들 다 가져다 붙이고 싶을만큼요. 뭔가 연기안하는듯, 드라이하고, 무표정하고, 드럽게 피곤해보이는거. 진짜 잘하더라구요.

푸른희망 2015-08-1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속 윤계상이 딱이다 싶었어요 그가 아니면 누가 할까~~ 후줄근한 수트도 피곤과 갈등에 쩐 어정쩡ㅎᆢㄴ 표정도 좋았네요 약간의 사심도 함께^^;;
요즘 책을 빌려읽는 .중인데 이 책도 끌리네요 확 사버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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