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이드리히가 히믈러와 함께 만들어 가는 팀워크에서 하이드리히는 SS의 두뇌 역할을 한다 (SS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HHhH'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는 듯이다).


하이드리히가 그 잔인한 히틀러의 애정하는 부하였던건 맞는데, 제목의 HHhH의 H는 책소개에서처럼 히틀러가 아니라 히믈러이다.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


요즘 미국발 뉴스를 보면서 얼마전에 읽은 이 책이 계속 생각났다. 지금까지 히틀러와 나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장 극적인 학살 부분에 대해서만 영화나 책으로 접했고, 2차대전은 교과서에서 본 지식이 다라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이 책을 읽고서야 정말 심각하게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트럼프가 이슬람 7개국을 그들이 미국 국적이건 아니건간에, 미국에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던 말던 상관없이 '출신 국가'를 이유로 급작스럽게 입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나치와 똑같다. 나치가 이렇게 시작했고, 처음부터 가스실에 유대인들을 밀어넣고 학살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인들도, 그리고, 주변국들도(당시 주변국들의 지도자들이 특히 더 한심하긴 했지만)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런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낳은 것이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가 히틀러의 오른손과 같았던 하이드리히의 암살사건을 소설로 쓰는 이야기이다. 250여개의 단문으로 이루어진 '소설 쓰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인데, 독특한 형식과 역사적 사실, 중간중간 작가의 소회가 끼어들며 이미 결말을 아는 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단문이 이렇게 길게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이하다. 잔인한 이야기들이 건조하게 서술되어 그 임팩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책 속의 저자는 책을 쓰며 작가가 겪는 드라마도 함께 쓰고 있어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로 과거가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이드리히가 있고, 하이드리히 암살 임무를 담당한 체코의 낙하병 둘이 있다. 책 속의 저자는 그 둘이 영웅이라고 충분히 칭송하고, 나비효과처럼 그들의 암살 시도가 히틀러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책은 하이드리히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라 어쨌든 하이드리히가 메인이다. 


독일인의 효율성이라는 것이 몇 번인가 나온다. 끔찍하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피엔스의 미래' 에서 과학자파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그리고 인문사회학/저널리스트인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이 각각 인류의 미래는 긍정적일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했다. 참석자들은 '긍정적일 것이다' 라고 주장한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이 요즘의 뉴스를 봤다면, 트럼프를 일주일이라도 겪어 봤다면 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독일 제3제국의 정책, 특히 끔찍한 정책이 중심에는 언제나 하이드리히가 있다. 정말 놀라울 뿐이다. 1939년 9월 21일 하이드리히는 직접 서명한 『점령지의 유대인 문제』공문을 관련 부서들에 전달한다. 유대인들을 게토에 몰아넣기로 결정했으며 유대인 평의회 '유덴라트'를 창설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다. 제국보안부 직속 기관인 악명 높은 유덴라트는 아이히만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하이드리히는 이 아이디어가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것을 본 적이 있다. 피해자들이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디어의 핵심이다. 어제는 약탈, 내일은 파괴.

하이드리히가 자신이 만든 가장 악랄한 부대, 아인자치그루펜을 처음 사용한 곳이 폴란드다. 나치스 친위대 보안방첩부와 게슈타포 대원들로 이루어진 이들 SS 특별 부대는 독일 국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인간 청소'임무를 담당한다. 팀마다 작은 소책자를 받는다. 얇디얇은 종이로 된 소책자에는 필요한 모든 정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다. 그 정보란 점령된 지역에서 제거해야 할 모든 사람의 목록이다. 즉, 공산주의자, 교사, 작가, 기자, 사제, 기업가, 금융가, 공무원, 상인, 부유한 농부... 조금 유명하다 싶은 사람은 다 있다. 수천 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그리고 이들 불순분자들이 친척이나 친구의 집으로 피신할 경우에 대비해 이들의 주변 인물 목록도 적혀 있다. 이름마다 옆에 인상착의가 적혀 있고 사진이 붙어 있을 때도 있다. 하이드리히의 정보국은 이미 우수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치밀한 준비는 조금 과한 면이 잇는 듯하다.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부대들은 무턱대고 아무나 쏘아 댔다. 폴란드 시골에서 제일 먼저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12~16세의 보이 스카우트들도 있다. 시장 광장에서 벽에 일렬로 선 채 총살을 당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 예배를 한 사제들도 총살된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상인, 지역 명사 들을 총살시키는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바로 일어난 일이다. 아인자츠그루펜의 활동을 자세히 기록한다면 보고서는 수천 페이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일 이후로 그들이 처리한 일은 '기타'라는 두 글자로 요약되게 된다. 심지어 무수한 '기타'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소비에트 연방에서까지.

1942년 5월, 아인자츠그루펜이 추진하는 학살 임무에 투입된 병사들은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학살하는 대신 점차 이동식 가스실을 쓰기로 한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매우 간편하고 기발하다. 유대인들을 태운 트럭에 배기가스 호스를 연결해 일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방법이다.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학살에 참여하는 병사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고도 유대인들을 한 번에 더 많이 죽일 수 있다. 두 번째, 학살 담당자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시신이 핑크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단점은 사람이 가스에 질식되어 죽는 과정에서 변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독가스 사살 후 매번 트럭 바닥에 널린 변을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드리히는 이동식 가스실의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하이드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좀 더 탄탄하고 완벽하며 효율적인 방법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이드리히는 경청하고 있는 장교들에게 불쑥 한마디를 덧붙인다. "유럽의 유대인들에게는 전부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이미 유대인 100만명 이상을 처형했으니 참석자 중 하이드리히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