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팬이라면, 이 작은 책.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나는 보통의 전기 시리즈(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이것이 사랑일까) 가 좋아. 라거나, 나는 '여행의 기술' 과 같은 책이 좋아. 그것도 아니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과 같은 일상의 철학이야기가 좋아. 라고 할 수 있겠다. 혹은... 보통이면 무조건 좋아.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처럼 말이다. 
당신이 보통의 무엇을 좋아하던지 간에, 이 책을 좋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뭐, 앞으로 더 나올 가망성은 없어보이지만;;) 이 시리즈를 잠깐 소개한다면,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선집이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44414펭귄의 이 시리즈는 꽤나 작고 귀엽다! 보통이 70번째라서, 뭔가 의미가 있는지는 절대 모르겠지만, 왜냐, 앞의 69권의 작가들이 쟁쟁하다 못해, 문학사의 한 페이지들을 차지하고 계시는 분들이니 말이다.

원작의 제목은 on seeing and noticing 이다. 이 책의 번역 제목인 '동물원에 가기'는 여기 등장한 단편중 하나의 제목이다. 원작의 제목은 좀 더 맛깔스러운데, 
On the Pleasures of Sadness
On Going to the Airport
On Authenticity
On Work and Happiness
On Going to the Zoo
...

그래서, 제목이 On seeing and Noticing 이다.
보통의 책이 처음.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는데, ' 끊임없이 데자부.를 느낄께다. 맹세코, 처음엔 찾아보는 시도를 했음을 밝힌다. 맨 처음 리뷰 들어가면서, 어떤 스타일의 보통을 좋아하더라도, 이 책은 무조건 좋아할 것이다. 라고 했던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편의 단편( 한장밖에 안 되는 짧은 메모(on single men독신남)도 있긴 하지만서도) 이 어디선가 보통이 썼던 얘기들이기 때문다. 아마, 당신이 이미 읽고, 밑줄 빡빡 쳐 놓았던 얘기들일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간혹자주 보는 인기작가의 글을 짜집기한 책.이라고 미리 오해는 하지 말기를. 절대절대 아니다. 왜? 라고 묻는다면, '펭귄70주년 기념선집' 이다. 라고 한마디로 답해주겠다. 모르긴 몰라도, 보통의  그 어떤 히트친 장편보다, 펭귄70주년의 70명의 작가 안에 선배 대작가들과 함께 들어간 것이 그에겐 영광일 것이다.

첫 단편 On the Pleasures of Sadness 슬픔이 주는 기쁨( 원서의 제목이 너무 달콤하지 않은가!) 는 호퍼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Edward Hopper belongs to the category of artists whose work is sad but does not make us sad - the painterly counterpart to Bach or Leonard Cohen.
들어가는 제목, 슬픈데 기쁜거.에서 덜 반했다면, 첫 문장에서 쓰러지지 않을 도리 없다.( 내가 호퍼 팬이라 좀 오버하는걸 용서하시길) 이후에 나오는 얘기들은, 호퍼로 들어가는 첫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외로움, 이다. 호퍼의 작품들을 들어가면서, 외로움의 미학을 펼쳐낸다. ' 오스카 와일드가 언젠가 말했다. 휘슬러가 그것을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란 없었다. 고. 물론, 안개가 있었다. 많이. 하지만, 휘슬러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를 그리기 전에는 그걸 인식하기가 약간 어려웠을 뿐이다. 와일드가 휘슬러에 대해 말했듯이, 우리는 아마도 호퍼에 대해 말할 수 있을것이다. : 호퍼가 그것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세상에는 훨씬 적은 주유소, 리틀 셰프(런던의 체인 레스토랑 이름. 본문에 등장한다) , 공항, 기차, 모텔이 있었을 것이다'

On Going to the Airport 에서는 공항에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첫 에세이, 에드워드 호퍼, 슬픔의 기쁨에 너무 톤이 맞춰져 버려서, 두번째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 달콤한 외로움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본 듯한 이야기이다. 슬프고, 지겨울때 공항보다 나은 장소를 찾기 힘들다. 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문장 중간중간에 이국적인 장소들이 튀어나온다. 벵갈, 아프간, 캐스피언해, 또 한참 읽다보면, 캐나다, 파키스탄, 코리아  (;; 무작위.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쥐리히, 파리, 아테네...
그 장소들의 이름은 공항에서 출발, 도착, 연착, 등이 쉴새없이 바뀌는 보드판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보통과 함께 공항에 가서, ( 꼭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할 필요는 없다) 챠르륵, 챠르륵 넘어가는 이국의 장소들을 보며, 보통의 공항에서 느끼는 소회.를 가만히 들어주면 된다.



 

세번째 에세이 'On Authenticity' 진정성
우리의 클로에.가 나온다. 1번부터 26번까지, 알랭 드 보통은 연애의 모범생처럼, 책을 읽는 연애열등생인 나에게 번호를 착착 매겨, 반하기 시작하는 것에서 그녀의 키스를 얻기까지. 를 특유의 유머를( 한쪽 입꼬리 씩 올라가게 하는) 구사하며, 120% 공감을 이끌어내는 예들을 척척 들이대며, 이래도 안 재밌을래? 하기 시작한다.

 이 단락부터는 드디어, 호퍼의 외로움과 싸함을 떨쳐버리고, 여유있게 알랭 드 보통이라는 걸출한 선장을 지닌 이야기의 배에 느긋하게 몸을 맡길 수 있다.


낄낄대고 웃다 보면, On Work and Happiness가 나온다. 결론이 대략 참담한 것이, 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이라기 보다는 얄밉기 그지없었던 '불안'을 떠올리게 하는 단편이다.

번역서의 제목으로 따오기도 한 On Going to the Zoo는 짧지만, 지극히 알랭 드 보통 스러운 글인데, 세상 천지에, 동물원 브로셔를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진지하고, 재미있는 소설 읽듯이 읽어내게 할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낙타 브로셔. ) 물론 동물원 브로셔.는 부분이다. 이 짧은 에세이에 보통은 알다시피, 철학, 생태학, 역사, 문학 등을 다 끄집어내니깐.

On Single men . 독신남. 한장짜리 짧은 메모는 그냥 스윽 읽고 넘어가기.

On the Charm of boring Place 따분한 장소의 매력. 은 그의 출신지이기도 한 쮜리히에 대한 이야기이고, On Writing ( and Trouts) 글쓰기(와 송어) 는 보통의 '글쓰기' 이야기이라기 보다는 다른 이들의( 버지니아 울프, 괴테, 프루스트) 글쓰기와 독자로서( 보통 자신을 포함한)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근데, 송어는 왜???)

이 책을 읽으면서, 선택할 것은 단 하나. 전작들을 뒤적여, 어디서 나왔는지를 일일이 찾아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즐기며 읽을 것인가. 물론 이것은 하나도 안 중요하다. 그 선택을 마쳤으면, 심호흡 하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의 향연에 빠져보시길.

워낙 다작이고, 여러 스타일인지라, 그 동안 보통의 책 중 '이거!' 하고 내밀만한 책이 없었는데, 아직 보통의 책을 단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 책을 내밀겠다. 이미 보통의 팬이라면, 역시 이 책을 내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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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1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전문가 리뷰같네요

blowup 2006-08-1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심자와 마니아를 다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한 쇼호스트로군요.
하이드 님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면 정말, 총기와 열기가 뿜어져 나와요.^^
혹시 송어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랑 관련이 있는 걸까요?

하이드 2006-08-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생각 퍼뜩했는데요, 본문에는( 세장밖에 안됨;;)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_-a 집요한.. 쇼호스트인가요? ^^ 좋아라. 애거서 크리스티던가, 책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을 막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저는 책 빌려주는 인간이 아니니, 지름성리뷰를 쓸뿐입니다.
하늘바람님/ 과찬이십니다.^^;

2006-08-17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6-08-1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막혀있어요. 흑. 심심한데;; 집에가서 봐야겠어요.

하루(春) 2006-08-1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이드님의 알랭 드 보통 리뷰를 보고 나면 영어로 된 책이 사고 싶어집니다. 이 책도 역시 원서가 갖고 싶군요. 대단한 지름리뷰예요.

마늘빵 2006-08-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리뷰를 언제 썼대요. 이제 봤어요. 이거 원제가 다른거군요. 원제대로 내줬음 좋겠는데... -_-

마늘빵 2006-08-1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여기 영국 폴더에 있는 책들은 다 제 취향이랑 일치하는 것 같아요. 존 버거랑 줄리언 반즈도 빨리 보고픈데 넘 볼게 많다. -_ㅜ

하이드 2006-08-1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존 버거는... 뭐랄까, 한 수 위.라고 할까나요. ^^ 책도 많이 번역되어 나와있구요. 번역들도 다 좋아요.
하루님, ^^ 아무래도, 원서로 읽는맛, 잘된 번역으로 읽는 맛이 각각 있어요. 정영목씨 번역 좋아해요.

안나채 2006-08-1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펭귄시리즈 전집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나요? 구할 수 있으면 가격은 얼마이고 구입처좀 알려주세요. 아님 아마존에서 구입해야하나요? 아마존에서는 전집형태로 안보이고 단권으로만 보이던데.. ㅠㅠ 저한테 멜이나 쪽지로 좀 알려주세요. 부탁드려용~

하이드 2006-08-1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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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는 것 가능합니다.

musico 2006-08-1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ww.penguin.co.uk에서 £50에 세일하고 있습니다.

moonnight 2006-08-1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신간코너에 나와야 할 리뷰입네다!!! 하이드님 리뷰 읽고 나면 안 살 수가 없겠어요. 근데 왜 품절인겨 흑흑. -_ㅠ 멋진 리뷰 잘 읽었어요. 추천! ^^

하이드 2006-08-1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책이나 보내줬음 좋겠다~ 으음~
달밤님/ ^^ 이 책이 최고에요. 최고!

하이드 2006-08-1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리즈가, 제가 이번에 보내드릴 그 시리즈에요. ^^

Lauren 2006-08-2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nada에 살고 있는 처자인데, 영국 Penguin 출판사에다가 주문했답니다.. ㅎㅎ
얼렁 왔음 좋겠네요!!! 하이드님, musico님 정보 감사합니다!!

안나채 2006-08-2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사마천 2007-06-03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고 풍부한 리뷰입니다. 요즘 보통에 대한 리뷰를 써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건축에 관한 한편은 띄웠지만 거의 다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들이라 사실 보통 글에 대한 분석은 별로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