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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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흑백사진이 나와 있는 띠지와 정성껏 만든 빨간 클로스 정장이다.
수많은 매니아 독자들이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사진집, 故전몽각 선생의 유작 <마이 와이프my wife>와 함께 묶여서 20년만에 새로 나왔다고 한다.

1000권 제작으로 후에 전선생이 선물하기 위해 사진집을 구할때도 외국잡지 파는 헌책방에서 겨우 구했다고 하니, 누군가의 책장에서 고요히 그렇게 입소문만 피우고 있었나보다.

윤미 태어나다.

이 이야기는 윤미가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된다.
친구 동생이었던 열네살 차이나는 어린 신부는 홀로 분만실에 들어가서, 예쁜 딸을 낳았다.
카메라를 들고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남편은 그렇게 윤미의 첫 사진을 찍는다.

청혼을 하고도 집장만을 못해서 (비싼 오디오와 카메라 있는 서른네살 이었다고 한다.) 윤미 오빠, 즉 전선생의 친구네 집에 있다가 나와 얻은 마포의 8평짜리 아파트,

할아버지는 윤미를 너무 예뻐해서, 윤미 만나러 온다고 새로 운동화까지 사 신으셨다고 한다. 첫 딸, 첫 손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손녀,

너무 초라해서 민망한 백일상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는데, 사진 속의 윤미 얼굴은 밝기만 하다. 세상에 걱정이 무엇이며, 고민이 무엇인지, 마냥 행복한 표정.

우리 모두 거쳐왔을 그 아기때의 순수하고 무지한 행복.

어린 엄마와 더 어린 딸
아빠이자 남편인 그의 렌즈를 통해 본 모녀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 찍는 대상.

70년대 중산층이었던 그인데, 흑백사진 속의 집안 풍경은 강팍해서, 당시 어려웠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와 대비된 행복.

더 풍요로워졌지만, 덜 행복해진다.는 삶의 파라독스

윤미는 자라고,
동생도 생긴다.


둘째 동생.
어미와 세 아이

사진집은 윤미로 시작해서 윤미로 끝나지만,

전선생의 렌즈는 윤미를 포함한 어미와 동생들, 때로는 찍사 그 자신까지
'윤미네 집', 행복한 가정을 오래도록 따라가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윤미, 중간에 초등학교 입학 사진도 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세월을 넘기는 것과 같이 묵직하다.

대학 졸업하는 윤미
조그마했던 두 동생은 어느 새 180을 훌쩍 넘긴 키의 장정으로 자라 있다.
사진 속의 윤미보다 더 어렸던 어미의 얼굴에는 흘러온 시간만큼의 주름이 자리잡고 있다.

윤미씨는 사진 속의 남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간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연애시절, 사진 찍자며 따라온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딱 하루만 내다오. 라고 했지만, 두시간만 따라다니다가 돌아왔다고.

어린시절의 사진이 가장 많고, 갈수록 사진은 적어지고,
다 자란 후의 사진이라곤 입학식이나 졸업식, 식자 붙는 날 정도라는건
아마 어느 집이나 비슷한 일일테라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윤미의 결혼식

이 결혼식을 끝으로 윤미는 윤미네 집을 떠나고,
사진집도 끝난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에는 뒤에 마이와이프, 윤미엄마의 사진들이 나와 있다.

윤미가 태어나서 결혼해서 집을 떠나기까지의 긴 세월을 무려 사랑하는 아버지의 눈으로 함께 보았다.


이랬던 아기가.

여자와 남자로 시작한 가족은 윤미라는 첫 딸이 생겨 셋이 되고,
그 뒤로 아들이 둘 더 생겨 다섯이 되었다.
계속 늘기만 하다가 윤미가 집을 떠나 출가외인이 되며
처음으로 줄었다.

첫아이의 이름을 따 윤미엄마로 불리웠을 어미나
첫아이의 이름을 따 윤미네 집으로 불리웠을 가족이나

쌉싸레한 상실감이 생겼을 것이다. 사위라는 가족이 생겼고, 손주들이 생겼어도
그 상실감은 채워지기 힘든 그런 종류의 당연하지만 여전한 상실감일 것이다.

흑백이지만, 지금보다 더 생생했던 옛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중 하나인 선영이 아빠가
세상의 모든 첫 딸들중 하나인 선영이를 찍었던 그 날.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사진과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순간과
그 사진을 찍어 준 아빠와 렌즈 너머 전해지는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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穀雨(곡우) 2010-01-2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색조처럼 현란한 사진보다 이런 무채색 흑백사진에 더욱 눈길이 가는 건
사람냄새가 나서일까요? 좋은 그림과 곁들인 글, 잘 보고 갑니다.

하늘바람 2010-01-2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정말 !

hnine 2010-01-29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린 하이드님도 귀엽다~~)

blanca 2010-01-2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는 추천을 안할 수가 없지요.

gimssim 2010-01-2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갖고 싶었는데...사진을 보니 정말 참을 수없어지네요.
사람의 풍경...시간의 풍경

Mephistopheles 2010-01-2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옛날 생각 난다....라고 말하면..바로 연식이 뽀록나는 순간...

또다른세상 2010-01-3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갖고 있는 사진집이 김영갑님 껀데 이것도 욕심납니다. ^^ 마지막 사진보니 저희 집에 처음 전화들어왔던 날 신기해하는 동생 (실은 자기가 전화 받겠다고 박박 우겨서 막 울던 모습) 찍어 놓은 사진이랑 아주 비슷한 포즈에다 옷도 비슷해서(동생이랑 한살 터울이니 그 당시엔 저런 스탈이 유행했었나봐요?ㅎ)잠깐 웃었답니다. 아~ 그러고보니 크면서 가족들이랑 찍은 사진이 거의 없네요.. 음..

BRINY 2010-01-3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미의 결혼식, 저건 몇년일까요? 저런 스타일의 웨딩드레스와 신부헤어스타일을 본 게 누구(삼촌? 5촌아저씨? 사촌오빠?)의 결혼식이었는지 머리를 짜내도 안나옵니다.

찌리릿 2010-03-0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면서, 지금 제 딸의 사진을 찍으면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제 자신과 제 딸이 떠오르네요.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에 이 사진들을 보면서 저와 제 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30년 뒤에, 자신이 찍은 딸 아이의 사진을 보는 늙은 제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서글픈 마음이 마구 밀려오네요.
그리고, 40년 뒤에 저는 이 세상에 없고, 늙은 제 딸이 '아.. 우리 아빠 진짜 쓸데 없이 별의 별거 다 찍으셨구나...'하면서 사진을 보는 모습도 연상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