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에서 무지무지 심심한 산골소녀, 하루에 한 번은 물감놀이를 한다.
스케치북이나 공책에 아직은 아무런 형상이나 선도 없는
면으로만 이루어진 황칠 수준의 추상화(!?)를 그린다.
그래도 무얼 그린건지 설명은 장황한데 당장 기억나는 것이 없다.
자기는 뭐든지 못 그린다고 늘 엄마가 수민이를 그려달라고 하길래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다 점 두 개 찍으면 눈, 가운데 작대기 그으면 코, 씩 웃는 입을 그리면 얼굴이 된다고 가르쳤다.
그랬더니 나름대로 동그라미라고 주장하는데 역시나 면추상화를 그리면서 부르는 노래가 걸작이다.
" 동그란 얼굴의 엄마는 날마다 수민이를 야단치고~"
오늘은 12가지 색 물감을 다 써서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것만 안간힘을 써서 짜내어야 했다.
제일 많이 남은 색부터 순서대로 흰색, 황토, 노랑,주황,빨강이었다.
아이들이 따뜻하고 밝은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의 편견인가?
초등학교 아이들 크레용 중에서 노랑색이 가장 먼저 닳는 것이 밑그림을 노랑으로 그리기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행복한 아이들은
밝고 따뜻한 계열의 색을 좋아한다는 것 같던데 싶어서 은근히 걱정을 해보았다.
물감놀이 할 때 수민이가 가장 먼저 집어드는 색은 남색이다.
그 다음이 검정, 하늘색, 갈색, 초록, 연두.
그런 색은 물감튜브 속으로 붓을 집어넣어 바닥까지 훑어내어 다 쓴지 오래인 것이다.
동그란 얼굴의 엄마가 수민이를 너무 많이 야단치는 것일까?
물감놀이를 마치고 나면 발부터 허벅지까지 군데군데 골고루 물감을 묻힌 것으로는 모자라는지
마루에 있는 김치냉장고 옆면이나 유리창 구석 같은데서 심심치 않게 붓터치를 찾아볼 수 있다.
겨우 물감만 뚜껑닫아 치워놓고 물통이랑 팔레트,스케치북은 엄마한테 미루고는 손을 씻는다.
오늘은 수건걸이에 수건이 없었는데 아무 말 없이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양손으로 손사래를 친다.
"손 닦아야지. 여기 수건있다. 이리 와!"
"괜찮아. 안닦아도 돼.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언니가 그랬어!"
놀러온 언니 중에 누군가가 수건없이 말리는 법을 가르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