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유령놀이에 심취한 수민이가 큰이모가 만들어주신 퀼트이불을 찾아내왔다.

깔고 누워도 되고 덮어도 된다고 했더니 뒤집어쓰고는 유령놀이하면 되겠다면서

수민이에게 꼭 맞는다고 감탄을 연발하다가

- 이건 무슨 무늬야?

- 체크라고 하는거야. 체크. 큰이모가 만들어주신 거 알지? 

- 큰이모, 하아(감탄사),고맙습니다!

이모한테 전화걸어주겠다고 했더니 벌써 인사했다고 싫단다.

 

책상 위에 있던 메모지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데 또 엄마더러 그리란다.

동그라미,세모,네모 이것저것 그려보다가 1은 그리기 쉬울 것 같아서

- 1 쓰는 것 가르쳐줄까? 이렇게 죽 그으면 되는거야. 한 번 해봐.

- 싫어.(말은 싫다고 하면서 구불거리는 긴 세로선을 긋는다.)

- 우와, 수민이 1 잘 쓰네!

- 아니야. 이건 뱀이란 말야. 뱀

- 우아왁! 뱀이 수민이한테로 기어간다.

- 아니야, 괜찮아. 그림 속에 있는 건데 뭘.

세로선을 나란히 또 하나 그리길래

- 그것도 뱀이니?

- 이건 1이야.  옆에 있는 게 뱀이고.

태민이 기저귀를 갈고 있으려니까 선으로 채워진 추상적인 면덩어리 3개 쯤을 그려가지고 와서

- 엄마, 이것 봐. 수민이 정~말 잘 그렸지? 이건 어디 붙여야겠다.

- 정말, 잘 그렸네. 상 위에 있는 프린터에 기대 세워놓자.

- 아냐, 어디 붙여놔야 돼. 어디 붙여놓을까?

(잘 그린 그림 액자에 넣어 붙여놓는 것은 어디서 배웠는지...^^;;)

- 그런데 그건 뭘 그린거야?

- 사람.  수민이하고 이모 사람.

큰이모의 퀼트이불이 아무래도 가슴에 새겨진건가 싶어서 다시 물었다.

- 어떤 이모?  큰이모, 작은이모?

- 큰이모랑 작은이모랑

- 이모들이랑 뭐하고 있는 그림인데?

- 응, 사진찍고 있는거야. 벽돌에서.(?)

 

할아버지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차창 밖으로 말씀하시길

- 아버지, 창원간다.

- 할머니 모시러 창원가시는거야?  할머니 모시고 오믄 좋겠다.

 

- 엄마, 팔이 근지러워.

- (표준어 권장용 유도심문) 우리 수민이 팔이 가렵구나?

- 아니, 근지러워.

- (2차 시도) 팔이 간지럽다고?

- (신경질적인 목소리) 아니, 근지러워. 근지럽다고 했지!!!

- (3차 시도) 수민아, 가렵다고 하든지 간지럽다고 하는거야.

- (절규) 아니야, 근지러워. 근지러운거야!!!

엄마, 아빠부터 순도100% 경상도 태생이니 이쯤에서 포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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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6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ony 2006-07-26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께서 가렵다고 하는 거라시니까 당장 고쳤어요.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들으려 하더니 할머니 파워가 세네요.

>>sunny 2006-08-2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할머니 말씀을 잘 듣는구나.. 이모 글 너무 재미있게 쓰시는것 같아요..
제재가 재미있어서 그런가?ㅋㅋㅋ -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