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소리도 안하고(=단 한마디도 말은 하지 않고) 여러 달이 지난 것 같다.
<숲속을 걸어요,산새들이 속삭이는 길~>이라는 노래만 자주 흥얼거렸다.
그런데 다행히 지난 열흘 간 씻기 싫은데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갈 때와
엄마랑 나란히 누워 자고 싶은데 엄마가 방 밖으로 나갈 때
여전히 감탄사처럼 들리는 엄마!를 그러니까 단 두 번 외쳤다.
그리고 어제는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니까 <아~자!>를 부르짖었다.
가락이 좀 들어가고 성조가 느껴지는 말(!)이었는데
처음에는 이른 아침이라 더 자자는 줄 알고 코 자자고 했다가 신경질만 더 부렸고
나중에 알고보니 <가자>라는 뜻이었다.
다시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화단 앞을 어슬렁거려주었더니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꿈을 꾸었는지 잠결에 아자를 외쳐서
방 문을 열고 거실로라도 데리고 나가주었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가자는 말은 확실히 알아들어서 어떤 날은 집 앞 구멍가게로 돌진하다가
"교이 먹으러 가자,교이!!"라고 했더니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교이가 있는 2층 냉장고 앞으로 달려갔다.
강엿을 한의학에서는 교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들 약 처방에 잔뜩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서
냉동실에 늘 보관을 하고 있는터라 궁할 때 가끔 한 번씩은 통하곤 한다.
전에는 거실 어딘가에 콕 처박혀서 놀고 있으면 잘 안보여서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는데
요즘엔 대답은 안해도 웃으면서 달려오는 날이 점점 늘어가고
요쿠르트와 약을 흘린 날엔 발수건을 가져와서 열심히 닦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제는 해체했던 볼펜을 드디어 원상복귀시켜서
며칠 사이 열심히 그리는 지름 2센티미터 정도의 달팽이집 모양같은 동그라미를 열심히 그렸다.
팔다리에는 빨간색 검은색 갖가지 펜과 볼펜으로 그린 자국이 떠날 날이 없다.
또 울지않고 잘 감던 머리를 어찌나 감지 않으려고 울고 발버둥을 치는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숙이지도 않고 안겨서 누워있지도 않으려드는 통에
세워놓고 위에서 그냥 물을 부을 수 밖에 없으니 서로 고생이다.
머리감을 때 머리에 씌우는 캡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사흘 동안 단식을 한 아빠가 복식을 하시느라 끓인 죽 한 그릇을
어느 날엔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떠 먹기도 했지만 단 한 번 뿐이었고
똑같은 죽도 다음 끼니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밥은 사흘 가도 한 숟가락 먹을까 말까하고
고작해야 반찬(김치와 구운 고기,나물,두부,김 따위)만 먹고
맘에 드는 과일이나 빵, 과자를 먹으려고 든다.
며칠 전에는 석 달정도 어린 남자아이가 왔는데 어쩐 일로 친한 척을 하면서
자기는 밀기만 좋아하고 타고 있을 때 움직이면 무서워서 얼른 내리는 자동차에 태워서
어깨로 밀고 앞에서 밀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즐거워했다.
그 아이가 차에서 내렸더니 쫓아달려가서 팔뚝을 잡아끌면서
자동차에 다시 타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역시 소통은 안 되어서
엄마의 중재로 잠시 다시 자동차에 올라타 준 덕분에 얼마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래도 또래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 같지만 31개월 표준발달상황에는 여전히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
바라보는 눈길에 아무래도 걱정이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