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 2년만에 돌아온 조카들도 있고,
재민이 보러오신 큰형님과 아주버님이 이사한 고모네 들러 저녁 드시고 간다셨고,
엄마가 창원 가시고 안 계시니 아버지도 찬이 마땅치 않으실 듯 하고,
미니아빠도 좋아하고,
저녁에 장만하지 않으면 김치냉장고에서 사흘을 난 양과 곱창이 냉동실로 들어가야 할테고
이런저런 이유로 인터넷을 뒤져서 레시피를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곱창전골을 끓이기로 했다.
결혼 7년 차인데도 불구하고
요리, 청소와 정리정돈, 육아, 가정경제관리 기타 여러 방면에서 매우 비전문적인 나로서는
어쩌다가 그런 마음을 냈는지 신기한 순간이었다.
아뭏든 며칠 전부터 우리 집 물탱크에 어딘가 이상이 생겨서 물이 안 나오는지라
미니 머리도 못 감기고 밥 짓는 물도 길어다 먹는 이런 비상시국에
평소에는 해달라고 온갖 회유와 협박, 간청을 해도 미루고 버티던 일을
어찌하여 냉큼 시작하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일이 그리되려던 모양이었다.
양은 밀가루와 소금으로 바락바락 주물러서 씻어 30여분 술이랑 후추랑 마늘이랑 넣고 삶고
곱창은 죽죽 훓어내려 열심히 씻고
대,중,소 전골냄비를 좌르륵 늘여 놓고
호박,당근,양파,염통,버섯,대파,두부를 썰어 색색으로 돌려 담고
삶아진 양을 꺼내 칼집을 곱게 넣고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썰어
그 사이 조카의 도움으로 만든 양념장에 조물조물 무쳐서 전골냄비 가운데 담으니
웬일인지 그럴 듯 한 것이 맛있겠다는 기대감이 폴폴 솟아 올랐다.
미니도 옆에 앉아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어서 먹었으면 좋겠다고 성화였다.
월요일이라 바쁜 탕전실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미처 저녁 준비할 새도 없었을 아가씨는
세 조카들이랑 아주버님,형님이랑 둘러앉아 올케 요리솜씨를 칭찬하며 정다운 한 때를 보내고,
아버지도 조카들이랑 흐뭇하게 저녁을 드실 것이며,
미니아빠도 모처럼 안주다운 안주가 생겼다고 기뻐하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미니도 역시 엄마 요리가 최고야 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것을 상상하니
배시시 입가에 웃음이 났다.
물이 안 나와서 겪는 온갖 번거로움과 배고파서 앵앵거리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극복하고
아주버님 출발하실 때 육수와 함께 한 냄비를 보내고,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아버지 댁에 한 냄비를 올려보내고,
부르릉거리며 올라오는 차 소리를 듣고 우리 냄비도 가스렌지에 올려 보글보글 끓여냈다.
육수를 부어 끓이자니 왠지 냄새가 썩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이게 소위 누린내라는 건 아니겠지 하고 애써 외면하면서 소금 좀 넣고 간을 보았다.
기대와는 달리 국물 맛은 개운하고 고소한 것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 없이 이상 야릇한 것이 싱거운 건지 짠건지 분간이 되지 않고 냄새조차 개운치 않은
큰형님이 자주 쓰시는 표현으로는 니 맛도 아니고 내 맛도 아닌 역시나 그런 맛이었다.
순간 좀 실망스럽긴 했지만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었던가?!
다음 순간 기운을 내어 기다리다 지쳐 잠든 미니도 깨우고
씻고 나와 밥상머리에 앉은 신랑 앞에 냄비를 대령하였다.
나는 역시 기다리며 울다지친 막내에게 젖부터 물리고 마주 앉았는데
미니아빠가 젓가락으로 양을 집어 입 속에 넣고 씹는 순간 "와드득!" 하는 것이다.
말랑말랑 쫄깃쫄깃해도 밍숭맹숭한 국물과 먹을까 말까 한데 질겨서 씹을 수가 없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코 끝이 찡 하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가씨며 아버지며 나보다 훨씬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는데
공연히 하지도 않던 짓을 해가지고 시댁이랑 친정이랑 그 수 많은 식구들 저녁을 망쳤구나 생각하니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정말 엉엉 울고만 싶었다.
막내 여동생 표현을 빌리자면 " 윽, 분하다!" 인 상황이었던 거다.
그러자 보통 때는 간도 하나 제대로 못 맞추니 정성이 부족하니 어쩌구 저쩌구
온갖 타박에 까탈스럽게 구는 남편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애 젖 먹이면서 울기는 왜 우느냐고 짐짓 버럭거리면서
태민이에게는 두부랑 호박이랑 당근이랑 건져주고 자기는 열심히 전골(?)을 먹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3~4인 분 전골냄비에 가득 담긴 것을 국물만 자박하게 남기고 다 먹는 것이었다.
" 오늘 턱운동 한 번 자~알 했네. 내일은 여기(남은 국물)다 밥 볶아 먹으면 맛있겠다."
이러고는 양치질을 하러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지난 여름 남편에게 반가음식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다른 요리전문가 선생님 여러 분들과 함께 다니러 오셨다가
온갖 장아찌며 젓갈을 좋아하는 남편이 내가 그런 음식에 환상적인 솜씨를 보여서
때마다 나는 나물이며 풋잎새들을 그렇게 갈무리 하여 두었다가
귀한 손님이 오실 적에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상차림을 하길 꿈꾼다고 말씀드렸더니
손사래를 치며 이러시는 거다.
"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다 일찍 죽어요!"
나도 이번처럼 뜬금없이 발동 걸려서 오히려 큰일내지 말고
여느 때처럼 생긴대로, 분수를 알고 오래 살 길을 도모해야 할까보다.
곱창전골이여, 영원히 안녕!
그런데 한편으론
이 다음 번엔 여봐란 듯이 근사한 곱창전골 한 냄비 만들어내고 말리라
이런 오기가 가슴 속 한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