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기일 며칠 전부터 시댁에 가 있다가 며칠 지나고 돌아오니 꼭 일주일이 지났다.

아버님은 하나 뿐인 아가씨가 초등학교 5학년, 미니 아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을 걷이를 마치고 나자마자 그만 쓰러지셔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빈 손으로 큰 댁에서 분가하여 정말 열심히 농사를 지어 논 마지기나 장만한 때였다는데...

요즘 표현으로 치자면 40대 과로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잔치 집에 다녀오실 땐 조끼 주머니에서 먹을 것을 꺼내어 주시고

소를 팔아서 아들이 갖고 싶어하는 전축을 사주셨다던 아버님,

아가씨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싫다고 가슴 아픈 소리를 했다.

나이 터울이 많이 지는 형제들이라 오빠들은 모두 자라 취직이다 공부다 해서 타지로 나가고

초등학교 다니던 아가씨 혼자 집에 남아 있으니 그 정이 더 애틋하셨던지

비 오는 날이면 (다른 아버지들은 안 그랬는데 우리 아버지만) 우산을 들고 딸을 마중나가셨단다.

여름에 농부는 비가 오면 논이고 밭이고 보살펴야 할 것이 많아 더 바빴을테니

아마도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이나 겨울 쯤이 아니었을까?

봄비, 여름비보다 더 차고 시린 겨울비를 막아주던 아버지의 우산이 걷히자

그 후로 10 여년 세월이 먹구름이더란다.

아버지랑 함께 했던 일들, 말씀들은 기억나지만 이젠 아버지 얼굴이 가물가물하다는 아가씨에게

그래도 니는 얼굴이 가물거리기라도 하지, 나는 아예 기억이 없다

며 설움을 더하는 작은 형님을 보니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아버지 사랑을 모르고 지낸 형님이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

갓 시집 온 5년 전만해도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소처럼 부지런히 일하시던 어머님도

이제는 깜박깜박 정신이 흐려지는 날들이 많고 녹내장, 백내장이 겹쳐서 온통 눈 앞이 흐려지시니

아버님 제사를 지낸 다음 날 결국 백내장 수술을 하고 돌아오셨다.

그나마 대학에 다니는 큰 조카가 할머니 곁에 며칠 있기로 하여 돌아오는 걸음을 간신히 옮겼지만

잘 지내셨냐는 미니아범 물음에

" 외로버서..."

하시며 한숨을 지으시던 어머님을 답싹 안아 모셔오지 못하는 내가 참 부끄럽다.

큰 형님께서 혼자 힘이 드시니 거처를 옮겨가시자고 자주 말씀드리지만

"소도 먹여야 되고 내가 거기(아파트) 가서 뭐 하게! 싫다." 하시던 어머님이

조카에게는 "거기 방이 있나? " 라며 한 걸음 물러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친정부모님도 여전히 힘드시지만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새삼스러운 일주일이었다.

날마다 지지고 볶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 받으며 힘들어하는 시간들이 되풀이 되어도

마지막까지 서로 기대고 의지할 이는 자식보다는 친구보다는 아내와 남편인가 보다.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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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1-11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어머니 인생은 아마 허전하실 거예요. 자식들 다 성공하면 뭘 하겠어요. 당신 곁엔 아무도 없는데... 저도 요즘 저희 부모님 보면서 그런 생각 많이 한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하는데도 친정엄마께서는 항상 "왜 이제야 전화를 하느냐"고 하십니다. 그나마 저도 아버지가 곁에 계시니 천만 다행이지요. 님, 자주 전화 드리고 생각해 드리는 예쁜 며느리 되어 드리세요. 늘그막에 무슨 낙이 있겠어요. 그죠?
우산과 아가씨 이야기는 가슴이 아리네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아요.

순오기 2007-11-1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핑하네요~~~ 부모님은 누구의 부모님이나 한결같은 사랑을 갖고 계셔요!
저도 아버님 혼자 계셔서 남 얘기 같지 않네요.
 

에~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하고 결혼하면 그게 무슨 결혼이냐?

- 어제 일일연속극을 보며 남긴 한 마디

 

아, 시워~언하다! 물이 뜨거운데 왜 시원한거지?

- 오랫만에 목욕탕에 가서 탕에 들어가 앉자마자 하는 말, 어디서 주워들었을까나?

 

언니, 시험 잘 쳐. 내가 있잖아!

- 수능 치는 아라언니에게 남긴 문자.  제발 네가 있어서 언니가 시험을 잘 치길 바란다.

 

바람이 쑥쑥 들어갈 때는 허파가 커다래지고, 바람이 밖으로 나갈 때는 날씬해지는거야.

<인체>는 몸에 관해서 라는 뜻이야.

- WHY 시리즈 전 30권을 선물로 받고 혼자 그림을 보면서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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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1-10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아이들은 따라쟁이에요. 특히나 딸내미들은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엄마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고 따라하던 걸요.

2007-11-1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름 전에 만 48개월이 지난 미니는 지금까지 제대로 감기 한 번 한 적 없지만

올 봄부터 오금과 목언저리에 아토피로 여러 달 고생을 했고

무엇보다 먹는 것을 즐기는 탓에 위장에 열이 쌓여 코피를 자주 흘린다.

몸 속에 쌓인 열이 뿜어져 나갈 곳을 찾다보면

특히 새벽녘에 이불을 흠뻑 적실 정도로 펑펑 쏟아져나와

부모를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탕약을 먹이면 나아진다는데 기초체력 뒷받침용 환약만으로 지금까지 어영부영 지나쳐오고 있다.

 

포도를 씨와 함께 껍질째 먹는다든가 닭다리를 하나 차지하고 뜯어먹는 것은 기본이다.

닭고기는 열이 많은 음식이라 피하는 게 좋고 대신 오리를 먹이라해서

얼마 전에 그야말로 오랫만에 닭다리를 여유있게 뜯으며 갑자기 닭은 다리가 몇 개냐고 한다.

뜬금없는 질문이라 닭다리가 몇 개냐고 되물었더니 4개라나?

먹고 있으면서도 실컷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발현된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곧 2개로 정정하고는 헤헤 웃는다.

 

생선도 실컷 뼈를 발라 살만 담아놓아도 뼈에 붙어 남아 있는 조그만 살 부스러기를 먼저 먹는 날도 있다.

족발을 삶아놓으면 다른 또래 친구들은 돌아보지도 않는데 역시나 하나 들고 꼼꼼하게 뜯어먹는다.

갈비는 물론 갈비살보다 뼈에 붙은 고기를 선호한다.

 

엊그제는 미니 아빠가 회를 포장해서 사 왔는데

찐새우(내 집게손가락만한 크기) 세 마리가 곁들여져 왔다.

머리떼고 꼬리떼고 껍질벗겨 받쳐올리니 맛있게 먹고는

아빠가 새우머리를 씹어먹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 새우머리도 먹는 거예요?

- (별 생각없이) 응,먹어도 되. 새우는 머리가 제일 맛있는 부분이래.

말이 떨어지자마자 새우머리 하나를 덥석 씹어물고 긴 수염만 남겼다.

 

어제 저녁엔 돼지고기 수육을 먹는데

아빠가 1/4 크기로 자른 양파 한 겹에 고기를 올려놓고 쌈싸듯 먹자

아주 자연스럽게 양파 한 겹을 벗겨들고 작디작은 고기 올려놓고 우적우적 씹었다.

이번엔 <매워,매워>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뱉어낼 고비를 넘기고 결국 삼켰다.

- (미니아빠가 탄식하며) 햐~! 애들은 어디가서 꼭 부모하는대로 따라할테니 정말 잘해야겠다.

 

써놓고 보니 무엇이든 엄청 잘 먹는 아이로 그려진 것 같은데

날마다 간식(관식이라던 발음이 많이 완화되었다) 타령만하고 밥은 끼니마다 평균 세 숟가락이다.

한 끼 굶으면 그 다음끼니는 반 그릇 쯤 먹지만...

(엄마가 너무 반찬을 안해줘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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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0-1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토피라, 우리 큰아이도 아토피 때문에 고생 좀 했는데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약 먹고, 치료 받은 후 괜찮아졌어요. 아빠께서 한의사시니까 잘 알아서 하시겠지요?
절대로 슈퍼에서 파는 과자류는 먹이지 마세요. 가장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홍수맘 2007-10-1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수는 맘에 드는 반찬이 있는 날은 폭식!, 그렇지 않은 날은 간식으로 몸매(6세 20kg이상 즉 약간의 비만이예요. ^^;;;)를 유지한답니다.
요즘 계속 20kg넘으면 절대 안 된다고 구박을 주는데도 절제를 잘 못하네요.ㅜ.ㅜ
그나저나 날씨가 추워지는데 미니가 걱정이네요.
미니야~. 아프지마요. 코~.

miony 2007-10-1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그러잖아도 아빠가 의사면서 뭐하냐는 핀잔 숯하게 들었답니다. 저희도 약 달여먹이고 90%정도는 나았는데 나머지가 잘 안 낫네요. 과자도 그렇지만 인스턴트 냉동군만두 한 두개 먹으면 바로 발갛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뭐 좀 맛난 것을 만들어 먹여야하는데^^;;;

홍수맘님,어른도 특히 먹는 일에 절제하기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제가 데리고 돌아다녔더니 미니도 며칠 연달아 코피를 쏟고 콧물감기가 한창입니다.
홍수는 건강하게 가을 겨울나기를 바랄께요.^^
 

미니는 매운 음식이라면 질색이어서 김치도 겨우 몇 조각 물에 씻어서 먹어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덕지덕지 묻은 김치도 입가를 벌겋게 물들이며 집어먹는다.

엄마가 대충 양념 털어내고 좀 작은 조각으로 나누는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다.

게다가 어떤 날은 김치로 끼니를 때우려든다.

우격다짐으로 밥 두세 번 먹이곤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김치를 좋아하다니 김치대장이라고 불러야겠다고 하니

미니가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는 말투로 <김치돌이죠~!>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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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1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아이 정말 잘 키우셨네요.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라니..

miony 2007-10-1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운 것도 잘 먹는 식성은 절대 키운 것이 아니랍니다. 청양고추를 잔뜩 넣고 부침개를 부쳐먹는 시댁 어른들을 볼 때 타고 난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큰아이는 아직 고추를 안 먹는(못 먹는?)저를 닮은 것 같구요^^

소나무집 2007-10-1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도 김치를 너무 좋아해요. 어떤 날은 밥상 위에 김치를 차려놓고 왔다갔다 하다 보면 접시가 비어 있는 날도 있어요. 단 외할머니표 김치에 한해서만요.

miony 2007-10-18 23:33   좋아요 0 | URL
아이들 외할머니께서 무척 솜씨가 좋으신가봐요.
소나무집님도 그 분의 따님이시니 역시 그러실테고.

음식솜씨,손 맛 - 이런 것들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라 너무 부럽네요.
 

그동안 좀 자랐다고 생각만 했는데

봄에는 바닥에 약간 끌릴 듯이 길었던 바지들이 깡총하게 짧아서 발목이 드러난다.

아이들은 시시때때 자라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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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10-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철이 바뀔 때마다 실감을 하네요. 언제 크는지...

miony 2007-10-18 23:30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