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름에게 - 베를린, 바르셀로나, 파리에서 온 편지 (서간집 + 사진엽서집)
박선아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도 인터넷이었던 것 같다.) 펜팔친구가 있었다. 부산에 살던 나보다 두 살 혹은 세 살 위인 남자였었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검정고시를 쳤었던 것 같다. 나름 온실 속에서 자라온 터라 나와는 삶의 궤적이 너무도 다른 이 펜팔 친구에게는 그저 예쁜 편지지에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부치고 답장을 받는 재미에 빠졌었었다. 그때는 예쁜 편지지도 많았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지도 않았던 때라 펜팔이 그저 내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아빠가 우연히 우편함에 꽂힌 편지를 보고 뜯어서 읽게 되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렇듯,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가정환경 또한 평범하지 않은 것에 매우 큰 위험을 느끼고 당장 펜팔을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 후 몇 번 더 편지 왕래는 있었으나 결국은 흐지부지 되어 버렸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그 때의 내가 떠오른 것은 그 후 한 동안 편지라는 것을 써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참 누군가에게 편지 쓰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 후 누군가에게 쓰긴 했어도 내 진솔한 마음과 우리의 에피소드를 담아내며 애틋하게 썼던 경우는 사실 없었다. 지금 그런 편지를 쓴다는 것은 피치 못할 상황에 있을 때가 아니고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책을 사니 반은 책이고, 반은 엽서다. 책 속에 나와 있는 사진들을 엽서로 그대로 만들었다. '도대체 이런 엽서를 누가 쓰지' 싶다. 사진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을 때 어떻게 찍든 유의미한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이 엽서들은 그저 저자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에 불과하여, 책을 이렇게 만들어 낸 점이 매우 아쉽다. 가격에 비해서 책의 내용은 너무 협소하며 반은 엽서로 채워버려 랩핑해서 판매하니, 농락당한 기분이랄까.

 

여행을 떠나서 잠시 복잡한 일상을 버리면 여러 생각들이 몰려오게 된다. 내게 그런 순간들은 참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거기에 외로움이 더해져서 스스로가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제 가끔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면 이국적인 배경과 이국적인 맛의 커피 한 잔을 두고, 나도 저자처럼 누군가에게 부치든 못 부치든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싶어진다. 그 편지가 모인다면 이 책보다 더 근사한 나만의 책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