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식당 - 먹고 마시고 여행할 너를 위해
박정석 지음 / 시공사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나보다 아홉살 많은 누군가 내게 그랬다. '내가 너 나이라면 정말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볼 것 같아'. 이 말이 아직도 내게는 하나의 충격으로 남아있다. 아, 물론 내가 나보다 아홉살 어린 애한테도 이렇게 말하겠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 20대는 후회로 점철된 삶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말을 이제 20대의 끝이 되어서야 느낀다. 그러니까 나이와 후회가 비례했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더 이상 이렇게 후회만 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나의 이 소심한 성격이 이런 이런 삶을 더욱 조장해버렸다. 좀 더 대범하게 살 필요가 있다. 그 연장선으로 황급히 다가올 황금연휴의 방콕행 비행기를 알아봤다. 그렇지만 주말도 평일 못지 않게 바쁘게 살고 있는터라 갑자기 모든 걸 취소하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여행은 물건너 간 것인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내가 바로 여행을 선택한 것은 이 책의 영향이 크다. 동남아시아는 거리상 가깝지만 언제나 내게는 먼 곳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필리핀 말고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데, 휴가가 턱없이 부족한 고충의 직장인으로서는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다른 여행책을 읽어도 막연히 그 나라에 가고 싶은 생각은 든다. 그런데 이 책처럼 그 욕구가 강렬했던 적은 처음이다. 태국으로 시작하여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버마에 종지부를 찍는 여행의 소재는 바로 '음식'이다. 오래전부터 동남아의 현지 음식을 항상 궁금해했던 나는 집근처 식당에서 박스에 담아주는 나시고랭과 팟타이를 즐겨 먹고 있다. 문득 나시고랭을 처음 먹었던 때가 생각난다. 밥알이 하나씩 살아있는 볶음밥 다운 볶음밥에 이국적인 향이 짙게 배인 음식에 반해버려서 감탄을 연발했었다. 책에서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길거리에서 흔히 먹어볼 수 있는 음식들의 하나로 소개해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현지에서 먹는 음식이 한국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좀 더 맛있을 것 같다.

 

책을 덮으면서 내게 강렬하게 남는 곳이 생겼는데 '버마'이다. 음식을 맛으로 먹기보다는 그저 배를 채우는 용도로 취급하는 듯 한 곳. 그만큼 식당이 별로 없고, 냉장고도 없어서 동물성 단백질보다는 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곳. 정치적인 아픔이 깃든 곳인 버마.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버마인들을 책을 통해서 만났을 뿐이지만 단숨에 그 어떤 곳보다도 더 마음이 갔다. 여행으로서 즐거움을 목적으로 찾는 곳이 아닌 삶을 배울 수 있는 그 곳이 바로 버마가 아닐까 싶다.

 

아주 맛있는 여행책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독자라도 책을 읽고 나서 시간만 된다면 바로 비행기 예약을 하게끔 만든 책이었다. 훗날 또 후회하기 전에 이 열대식당들의 매력을 반드시 직접 만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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