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와이프가 어느날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유일한 목격자인 개에게 말을 할 수 있게끔 훈련시킨다. 내가 그녀의 흔적을 쫓아가며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내용의 구성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무거운 주제의 가벼운 접근에 대해 조금은 억지스러움이 느껴지고, 좀 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기보다는 그저 느슨하게 매듭이 풀린 채로 끝나버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저 강한 매듭은 슬픔이라는 감정뿐이라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렉시에 대해서는 주인공과 독자 모두 알 수 없다. 그녀 내면의 무엇이 그토록 그녀의 감정을 흔들리게 했는지, 그리고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끔 했는지 끝끝내 밝혀지지 못했다. 차라리 간단히 '우울증'과 같은 병명으로 결론지어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역자의 말마따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른 이의 감정을 쫓아가보며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것이 아니겠는가. 아주 가끔 누군가의 예상치못한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죽음이란 우리와는 동떨어져 있는 무엇이 아닌, 바로 우리 삶의 연장선의 그 어느 한 지점에 있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우리에겐 사실 그 죽음을 어느때나 무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죽음이 나를 빗겨가지 않을 것임을 난 불현듯 느끼곤한다. 때문에 한때는 유서를 미리 써놓고 항상 주변을 정돈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려고도 했었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던건 나도 사람인이상 죽음을 태연히 받아들일 자신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후의 먹먹함이 아직도 전해지는 것 같다. 우린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진실을 보기 싫어서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 속 아름다움과 따뜻함과 좋은 것만이 진리처럼 여겨지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 그에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우린 세상을 포장하고 나를 포장하는게 아닐까. 렉시는 그 이면의 어떤 것을 보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녀에겐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 속의 나에겐 따뜻함과 원만함의 장애가 될 수 있는 두 개의 심장 중의 하나인 차가운 심장일 것이고.

감추지 않고 왜곡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사실 진실은 그리 따뜻한 것이 못되니까. 완벽히 포장된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포장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모습을 볼 용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아야 할 것임을. 그리고 지금도 알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그 내면때문에 더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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