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막연히 ‘나’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 ‘나라는 생각’을 불교에서는 아상(我相)이라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이고(Ego)라는 말도 쓰고 자아(自我)라는 말도 쓴다. 이 ‘나’라는 생각은 실로 일반적인 삶에서 겪는 거의 모든 심리적 고통의 근원이다. 그러나 막상 ‘이 “나”란 도대체 뭔가’ 라고 묻기 시작하면 참으로 곤란해 진다. 그 답을 찾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물 새 나가 듯 뚜렷이 잡히는 것이 없다. 이 ‘나’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매우 막연히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약 두 살쯤에 이르면 서서히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때 까지는 어린아이는 천지와 하나이다. 도와, 존재와, 전체와 하나이다. 개체로서 존재하되 스스로를 전체로부터 구분할 줄 모르고, ‘나’와 남을 달리 알지 못하며, 자신을 주장하거나 세상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개별적 존재로 의식하지도 아니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이나 이 단계의 어린아이는 무아지경(無我之境) 물아일체(物我一體) 그 자체이되 스스로 그러한 줄은 모른다. 그 의식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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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 잡는 데는 대개 몇 가지 과정을 거친다. 의식이 조금씩 발달됨에 따라 어린아이는 주변과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체가 다른 사물과 분리되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다치거나 뜨거운 것에 닿으면 고통스러움을 알게 되며, 단것을 먹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 즐겁고 흥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여 ‘나’와 ‘나 바깥에 있는 것’을 분별하게 된다.
거울에 비치는 모양은 매일 같아 보여서 몸과 ‘나’를 하나로 동일시(同一視) 하기 시작한다. 부모나 형제 등 다른 사람들도 매일 같은 이름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나’를 대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름과 ‘나’를 하나로 동일시 하기 시작한다. 의식이 좀 더 발달함에 따라서 생각도 점차 복잡해 진다. 타고난 개성에 따라 스스로의 생각과 생각의 방식이 틀을 잡기 시작하고, 의견이나 주장도 생겨난다. 생각 의견 주장 따위를 복합적으로 마음이라 부른다. 이에 따라 마음과 ‘나’를 하나로 동일시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나는 무엇 무엇이다’라고 스스로 한정 짓게 나면, 나의 존재는 단순한 개체를 벗어나 개체성(個體性)을 띠게 된다. 이렇게 하여 몸과 마음, 즉 모양과 이름을 ‘나’로 아는 생각이 일단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대개 다시는 그 진위(眞僞)를 의심하는 법이 없이 그런 줄만 알고 평생을 지내고 만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라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존재가 어찌 한낱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나, 한 줌 흙으로 변하고 말 몸뚱이의 모양새나, 허망히 떠도는 잡된 마음의 생각따위로 한정 지어질 수 있겠는가? 이름, 몸,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이는 것들이지만 이를 ‘나’로 알고 있으면 진정한 나의 존재에 대한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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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나’라는 생각은 대단한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서, 두세 살 때에는 ‘나’ 밖에 모른다. “나 좀 봐”,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내가 만든 것 좀 봐”, “이건 내 거야” … 그야 말로 나, 나, 나, 내 것, 내 것, 내 것 뿐이다. 이를 유치(幼稚)하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심리 발달상 매우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어른들도 이런 유치함을 이해하고 다 받아주고 또 칭찬도 해 준다. 이 받아줌이 어린아이의 자신감 형성에 도움을 주며 심리적으로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데 매우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 이르면 이 ‘나’에 대한 집착과 자아 중심적 태도가 점차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대여섯 살이 되도록 이렇게 ‘나, 나, 나, 내 것, 내 것, 내 것’ 하고 있으면 어른들도 더 이상 잘 받아주지 아니할 뿐더러 칭찬은커녕 꾸중을 듣기 일수다. 대부분의 사람에 있어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이 ‘나’에 대한 집착과 자아 중심적 태도는 평생을 지속하고 죽음을 맞이 하도록 그 이상의 실존적 가능성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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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단지 모양과 이름에 그 바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모양은 몸이고 이름은 마음이다. 몸과 마음에 한정된 ‘나’만을 나로 알고 있으면 삶은 끊임없는 추구(追求)와 득실(得失)로 고단해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나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내’가, ‘나’의 개체성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청년기도 지나고, 점차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 이 개체성은 마침내 큰 짐이 되고 만다. 여태까지 모든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었던 바로 그 개체성이 영원히 사라질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이 개체성의 존재가치를 정당화 해야 하고, 유치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충족되지 않아서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몸과 마음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게 마련이어서 늘 어딘가 모자람을 느끼게 되고, 무언가를 구하고 얻고자 하는 마음이 쉬지를 못한다. 또, 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 노력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눈길 마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견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얼마나 이루고 못 이루었느냐 또는 얼마나 이름을 얻었느냐 하는 등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 받는 정도에 따라서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누가 칭찬하고 알아주면 우쭐해지고 누가 비난하고 냉대하면 풀이 죽는 데, 평생을 이렇게 이리 저리 쓸려 다니고 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딘가 모자라는 것 같고 참된 평화와 깊은 만족을 알 수가 없다. 자아 혹은 아상이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으로 지어낸 허구(虛構)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이 아닌 욕구의 충족은 일시적인 즐거움은 가져올지 모르나 깊은 정신적 만족을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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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큼만이라도 알게 된 사람은 이제 이고(Ego)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삶의 온갖 마음 고생이 이 아상에서 비롯함을 보니 어찌 이를 없애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고나 아상이란 떨쳐버리거나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고, 떨쳐 버리거나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여 ‘나를 없애야 한다’ 혹은 ‘나를 죽여야 한다’ 하는 따위의 말들도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믿고 따라 하려 하면 참으로 고달파질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좋을 수가 없다.

아상이 아상을 없애려 하니, 없애려 하면 할수록 아상에 대한 믿음만 강해질 뿐이다. 아상이 실재(實在)한다고 믿는 한 무슨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도 아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단지 억지로 애써 겸손한 태도만을 좀 얻어가질 수 있을 뿐이나, 겸손이란 그 자체가 아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 겸손은 사실은 짓고 꾸미는 일이어서 거만(倨慢)함과 다르지 않다. 참된 겸손은 겸손하고자 노력할 줄도 모르고, 겸손해도 스스로 그런 줄을 모른다.

아상이란 단순한 생각 뿐이어서 그 실체(實體)가 없다. 실체가 없으니 떨쳐버릴 수도 없앨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다. 이를 직시하여 바로 알면 그것이 곧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이 ‘나라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곧 해탈(解脫)의 시작이다.

참된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짓고 꾸미기에 마음을 바삐 한 것은 공맹(孔孟)의 허물이고, 이 간단한 도의 진리를 들고 구름 위로 넘어가 버린 것은 노장(老莊)의 허물이다.

---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아상을 넘어선 어떤 것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깨닫고자 하는 마음도 처음에는 아상으로 시작한다. ‘내’가 깨닫고자 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은 나’, 혹은 ‘천지와 하나가 된 나’ 따위의 생각은 사실 아상의 극치(極致)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패기에 찬 젊은이가 산사(山寺)를 찾아와서 스승을 만나고는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 젊은이의 진지함을 보고는 노승(老僧)은 흔쾌히 허락했다. 젊은이는 참으로 열심히 수련하였다. 많은 경전을 읽고 좌선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염불이나 의식(儀式)에도 열심이었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나자 스승은 제자에게 숙제를 주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마음 공부가 어찌 되어가는지 보고서를 한 장씩 써올리게 한 것이다. 제자는 드디어 스승이 자기를 알아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여 매우 기뻤다. 첫 보고서를 쓰는 날이다. 열심히 먹을 갈고 붓을 적셔 다음과 같이 써 올렸다.

“그 동안 읽은 여러 경전에 의해서 좌선을 계속한 덕에 지난 달에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자 밝은 빛이 머리 속을 채우는 듯 하였고 지혜가 샘솟는 듯 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스승은 별 말도 없이 그저 마지 못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칭찬을 기대했던 젊은이는 좀 실망을 했지만 아무 말 못하고 물러났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젊은이는 다시 붓을 들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계속 염불과 좌선으로 정진(精進)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삼 주가 지나자, ‘나’라는 생각을 잊었고, ‘나’라는 생각을 잊자 천지가 제몸 같이 느껴지고 우주가 제 마음 같이 느껴졌습니다.”

젊은이는 이 정도면 스승께서 감탄을 하겠지 하고는 얼굴에 웃음을 띄면서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스승은 한번 슬쩍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돌아 앉았다. 제자는 실망이 대단히 컸다. 또 한 달을 열심히 수련을 한다. 그 동안 계속한 참선 수련으로 그 경지를 높인 젊은이는 이번에는 자신 있게 다음 달 보고서를 이렇게 올렸다.

“식음도 잊고 취침도 잊은 채 명상에 전념 했습니다. 그러자 아상(我相)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 우주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의식은 태초(太初)의 무극(無極)과 하나가 되었고, 제 몸은 음양의 조화와 하나가 되었으며, 제 마음은 텅 비어 오갈 곳을 몰랐습니다. 이만 하면 깨달음을 얻었다 하겠습니까?”

스승은 이를 보자 슬픈 얼굴을 감추고자 그만 눈을 지긋이 감더니 못내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는 다시 돌아 앉았다.

“그만 물러가라.”

젊은이는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뭘 잘못하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나도록 스승은 그 제자로부터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 거의 일년이나 지나서 궁금해진 스승은 사람을 시켜 젊은 제자가 어찌 수련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였다. 제자는 그 사람을 통해 보고서를 또 하나 적어 보냈다.

“깨달음이고 뭐고 누가 알게 뭡니까?”

편히 누워 있던 스승은 이를 보자 스승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 앉더니, 비로서 입가에 그윽한 환희의 미소가 떠올랐다.

---

아상의 허구를 본 마음은 온 천하가 칭찬을 하여도 거만하지 아니하며, 세상이 비난을 하여도 아랑곳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려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고 비난을 피하려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도 않는다. 얻음과 잃음을 하나로 알아, 재물과 명성이 찾아 오면 기꺼이 수용하여 옳게 쓰고, 떠나가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편하게 두어 제 본성대로 살게 하여 정신을 어지럽히지 아니할 뿐이다.

원글 출처 - http://www.dodam.org/ko/tao/understanding/i_sto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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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5-1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서재에 들렀다가 "참나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라는 말에 느낀 바 있어 예전에 갈무리해둔 거 올려본다.

반딧불,, 2004-05-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야기네요...참 좋지요??
나를 죽이는 것...그 죽인다는 것에도 이미 나는 있는 것을...

밀키웨이 2004-05-1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각시, 제가요. 불교신자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읽으면 참 좋더라구요 ^^
종교성을 떠나서보면 다 좋은 이야기이고 다 옳은 이야기이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반딧불,, 2004-05-1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저도 성경도 좋아하고
성경이 없이는 어떤 서양사도 이해할 수 없음을 동의합니다.
당연하지요..
어떠한 경전이든 보편성을 획득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남아있지도 않겠지요.

밀키웨이 2004-05-15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난 김에 그전에 성경이 어저구 저쩌구 한 글 어디 쳐박아놨는지 찾아다 올려놔야쥐~~ 룰루루~~~
ㅋㅋㅋ
알라딘 생기니 좋네요.
그전에 쓰고 쳐박은 글 다시 다 꺼내서 손보는 재미도 각별 ^^

반딧불,, 2004-05-1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그 글들 어디에 저장하는 겁니까??
멜에 저장하시는 건지...아니면...
아..제가 영 갈무리를 못하는지라 여쭤봅니다.
전 백프로 없어지거든요^^;;(사실 남길 만치 좋은 글도 아니지만서도)

밀키웨이 2004-05-1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거의 대부분의 긴 글들은 한글프로그램에서 작성하거든요.
그러니 어딘가 컴을 뒤져보면 흔적이 있더라구요.
이번에도 포맷을 새로 하면서 다 날라간 줄 알았는데 포맷하시는 분이 따로 저장해놓으셨더군요. E 드라이브에다가요.
가끔씩은 옛날에 내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던고..그런 생각이 나서 뒤져보면 재미있지 않던가요? ^^
 

"할머니"라는 말에 잔뜩 묻어나오는 것은 정겨움...따스함... 그리움... 그런 것일게다. 그런데 난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 두분이 모두 돌아가신 상태였기에 할머니에 대한 막연한 감정을 갖고 살았었다.

결혼을 하니 시댁에는 시골에 아직도 할머니께서 살아계셨다. 이야기 속에서나 텔레비젼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시할머니를 상상했다. 하얀 머리에 조그마한 체구, 바지런하시고 정갈하신 모습, 손주며느리가 이뻐서 주섬주섬 밤이며 곶감같은 것을 챙겨주시는 그런 할머니.

그런데 이게 왠일... 명절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시골에 내려갔다 -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께서는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을 못하시고 할아버지만 올라오셨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 정겨운 우리네의 바로 그 할아버지셨다. 그러기에 난 할머니에 대해서도 추호의 의심의 여지없이 달뜬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내려갔다. 그런데....허걱!

할머니의 첫인상은 너무너무 무섭다였다. 크지 않은 키에 실이 찌신데다가 목소리도 이상하시고 눈이 어딘가 불편하신지 약간 사팔뜨기처럼 보여 정말 엄마야...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할머니라고 하면 자신보다는 자손들 챙기시느라 늘 마음이 분주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우리 할머니는 자식들이고 손주고 안중에 없으시고 그저 당신이 최고..셨다.  내가 낳은 아이가 당신의 증손자이신데도 이뻐라...이리 와봐라...뭐 그런 말씀 하나 없으시고 애가 점점 자라면서 시골집을 천방지축 뛰어나니자 정신없다고..애가 왜 저런대니? 자꾸 이런 말씀만 하시는 것이다. 뭐..내 애들한테만 그런게 아니라 당신의 손자들에게도 마찬가지셨다고 시어머니께서는 원래 그러니 이해하라고 하셨지만.

시골에 가는게 점점 고역이 되었다. 7형제 중 둘째네의 며느리인지라 작은 어머니들도 많이 계셔서 시골에 내려가면 딱히 할일도 없고 어디서 무얼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다가 노상 내 아이들이 정신없다고 구박(?)하시는 할머니께 정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다가 시아버지는 왜그리 뭔가 내세우길 좋아하시는지.

시골에 내려갈 적마다 나한테 뭔가 따로 음식을 장만하라고 준비를 시키셨다. 시어머니는 가게를 하셔서 못내려가실 때가 많아 며느리인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아니, 솔직한 말로 작은어머니들도 안해오시는데 왜 손주며느리인 내가 해가야 한단 말인지... 더구나 왜 그런 걸 남자가 일일히 챙기고 살피려 드는지...꼼꼼한 시아버지는 내 숨통이 턱턱 막히게 할 때도 참 많다.

하여간..그랬던 분이 돌아가셨다. 그것도 양치기 소년마냥 위독! 위중! 준비하라! 이런 말을 들으며 넉달을 보내셨는데 이번엔 진짜였다. 하긴..결혼해서부터 할머니는 늘 올해를 넘기실 수 있을까? 그런 말을 들었으니 오래 사시긴 오래 사셨다고 할 수 있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심으로 해서 그 긴긴세월을 오로지 할머니 병수발을 하시느라 보내신 할아버지께서도 이제 당신만의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시골에 갔다가 올라올 때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릴 때마다 눈물이 났다. 당신의 그 허허로운 삶이 너무 안스럽고 그 골진 얼굴이 너무나 풍상스러워서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또 말씀하시길 "저 양반, 할머니 돌아가시면 바로 따라가실 거야. 그동안 지탱해온 건 할머니를 누가 돌보나 그것 때문이었는데 할머니 가시면 저 양반도 중심을 잃어서 바로 가실거야"라고 하신다.

여러가지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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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5-1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하나요??
조금 시원섭섭하시겠어요....하지만....주위에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진다는건 뭐라고 말로 표현할수없는 공허함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그리고...난자리는 안다고...사람이 있을땐 모르겠지만....없을때 꼭 그사람이 생각이 나더군요!....아마도 시할머님의 살아생전 모습이 가끔은 님의 머릿속을 왔다,갔다할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 받으시겠군요!!....시댁어른들이 넘 깐깐하시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죠!!......그나저나....시할아버님의 건강이 좀 염려되네요!!....과부는 그래도 오래살수 있지만....홀아비는~~~~ㅡ.ㅡ;;.....님의 마음이 정말 싱숭생숭하시겠습니다....ㅠ.ㅠ

반딧불,, 2004-05-1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시골 가시는 길인가요??
뭐라 표현하기가 힘드시리라 느껴집니다..
내 피붙이 돌아가시는 것하곤 또 다른 것이 시댁식구들이더군요..

모르겠습니다..아직까지 ...아이들이 귀찮다니 정신없다니 하는 분은 울 시아비지 빼곤 안계시니까...그래도 많이 예뻐해주시거든요..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제 열 살 생일에 돌아가셨지요..그 전 날 밤도 같이 잤었답니다..
편하게 돌아가셨고..임종 즈음때 저를 배려하느라...밖으로 내보내셨었지요..
그때 받았던 상처가..그때 받았던 황망함이 쉬 가시지 않는데...
어른들은 누구도 모르더라구요...장례준비에 바빠서...아마 그때부터 제 속으로 많이 파고들었던 느낌이 있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빌구요..
조심히 잘 다녀오십시오...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이리 서글플까요??

물만두 2004-05-1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연엉가 2004-05-1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명복을 빕니다.

밀키웨이 2004-05-1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맙습니다.
때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조사에까지 인사를 해야 하는 인터넷...
제가 해야 할때는 가끔씩은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리 인사를 받으니 마음이 정말 훈훈해지네요.

비가 많이 와서 이래저래 생각도 덩달아 많았습니다.
제가 할머니께는 정이 많이 들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친할아버지마냥 그렇게 정이 들었거든요...
계속 서성거리시는 할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많이 슬펐습니다.
앞으로 시골집에서 어찌 혼자 지내실꼬...해서 더 그랬지요.

아직 제 두 아들녀석이 어리다 보니 이번에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내일이 발인인데 안가도 된다고. 오늘도 일찍 집에 가라고 해서 일찍 왔거든요.
비가 많이 내려서 산길이 장난이 아닐텐데...싶어 걱정이 되네요.
 

왜 스승의 날 선물을 하냐구요?
그렇게 물으신다면....깨갱~~ 할말이 없습니다.
걍..남들도 다 하고  스승의 날이기도 하고
제 아들내미가 가르치기에 쉬운 놈도 아니므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도 있고...하여간...그렇습니다...;;

그래서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이쁘고 정성이 가득한 것으로 고민고민을 했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를 준비했다가 왠지...좀 그래서..
솔직히 가격이 5000원인게 좀 걸려서라는 속물입니다요..-_-;;;

하여간 그래서 다시 준비한게 요거이옵니다.
이건 정말 제가 선물해서 퇴짜 맞아본 적 없는 겁니다. (하긴...싫어도 선물인데 뭐..싫다고 하겠습니까만은 ...;;;)

일명 명화가 그려진 컵받침.
세잔, 르노와르, 고흐, 모네, 무샤 등등등 이들의 그림이 그려진 컵받침 어떻습니까?
가격은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진 받침 여섯개가 한세트로 일만 삼천원.

구경들 하소서.


로트렉


르노와르


세잔


무샤


모네 A

모네 B


고흐 A


고흐 B


드가 A


드가 B



예전에 제가 좀 우아하게 살던 시절...(애 없이 잠깐 신랑이랑 둘이만 살던 시절)
고흐 A세트를 현관 문에 조로록 액자처럼 걸어놓고 살았더랬지요.
뒤에 고리 만들어 실리콘으로 고정시켜서요.
그리고 찾아오는 손님들한테는 모네의 컵받침을 내어서 차 대접하고 그랬었는디...ㅠㅠ
지금은 걍 머그잔에다가 아무렇게나 내어줍니다.


정사각형이고 크기는 지금 자가 없어서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팀버 8은물의 제일 큰 막대(이게 10cm던가요? 팀버의 것은 12.5cm짜리가 없으니 10cm가 맞죠?)보다 약간 작습니다.  
테두리는 금테가 둘러있고 뒷면은 코르크처럼 보이지만 맨질맨질하구요.

하여간 멋지고 특이하고 부티 팍팍 나지 않습니까? 흐흐흐

이 중에서 모네 A로 준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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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1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어디서 샀나요... 전 집에서 차 마시면서 아이들과 같이 그림보고 싶은디..

밀키웨이 2004-05-13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29rental.com/shopping/goods.asp?cat_one=C&cat_two=E&cat_three=D

책울님, 여기입니다 ^^

밀키웨이 2004-05-1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러고 보니 타리님 오셨군요 ^^
ㅋㅋ 나무님 서재에서 방금 제 실수를 보고 왔습니다.
두글자로 줄이면 나무, 타리 요렇게 하면 된다는 말씀도 보고 왔구요.

정말로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 네이버 포토갤러리 June님의 사진

 

어느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는 신과 함께 해변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저편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각각의 장면마다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두 줄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의 발자국 이었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신이 언제나 그와 함께 걸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 때쯤 그는 문득 길 위에 있는 발자국들이 어떤 때는 단지 한 줄밖에 나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 그것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시기마다 그러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는 신에게 물었다.

"주여, 당신은 내가 일단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면 언제나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발자국이 한 줄 밖에 없었습니다. 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당신은 정작 필요할 때면 나를 버렸습니까? "

신이 말했다.

"내 소중한 사람아, 난 그대를 사랑하며 결코 그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마다 그대는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럴 때마다 내가 그대를 두 팔에 안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

 

 

유타 바우어의 책 [할아버지의 천사]를 읽으면 늘 떠오르는 이야기...

정말로 내 뒤에 나와 함께 하는 수호천사가 있을까? 내가 올곧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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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2004-05-1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읽은글인데 다시 읽어도 좋네요. 음악과 함께 하니 더 좋구요. 퍼갑니데이~

책읽는나무 2004-05-1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동적이군요!!....전 처음 보는 글입니다.....*.*
사진도 넘 멋있구요!!
퍼가야겠군요!!^^
 

 

 

저 빗길을 걸어볼까.. 한가롭게...다소 쓸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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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5-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 걸을까요??

음악이...가슴이 때리고..파고 듭니다....
자..같이 힘내요^^*

밀키웨이 2004-05-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빗길을 도란도란 다정하게 걸어본 게 언제인지 몰라요..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왔을 때 너무 추하지 않은 외모..너무 세파에 찌들지 않은 그런 마음을 갖고 싶어요 ^^

반딧불,, 2004-05-1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클났다..
너무 추하지 않은 외모...너무 세파에 찌들지 않은 그런 마음...
둘 다 충분하게 자신할 수 없는...저는 어찌하라고...
아...같이 안 걷고 싶으신가 보다..흑흑...

정말...아이들 키운다 갇혀지낸 몇년 간이...사람을 넘 멋대가리 없게 만들지요??

밀키웨이 2004-05-1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반디각시. 지금 말씀하신 것은 오히려 저를 두번 죽게하는 것이옵니다...ㅠㅠ
저야 나중에라도 같이 걸어만 주신다면 감지덕지지요 ^^

정말로 우리 나이 40이 넘었을 때까지도 이렇게 하고 있었으면 참 재미있겠습니다. 그쵸?

원영맘 2004-05-1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음악이 안들리는 걸까요? 플레이 눌러도 먹통~
잉잉잉...
음악 듣고시퍼요..

밀키웨이 2004-05-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저거 자동플레이로 설정해놓았어요.
그러니 누르면 당연히 먹통 ^^
좀만 계시면 아마 나올겁니다.

늘 봐도봐도 다정한 사진입니다. ^^

밀키웨이 2004-05-2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동플레이가 아니니 듣고 싶으신 분은 눌러주세요 ^^
위의 하늘그림에 깔린 음악이 들려서 수동으로 수정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