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제 겨울은 연탄으로 시작해서 연탄으로 끝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뒷광에 채워지던 연탄들..
제 키보다 더 높이 쌓여진 연탄을 보다보면 어린 마음에도 왜그리 숙연해지던지 몰라요.
방학이면 지면보다 낮은 연탄아궁이에 언니랑 동생이랑 동그랗게 둘러앉아
연기에 캑캑거리며 해먹던 뽑기.
멀쩡한 국자를 다 버려놓는다고 아버지께 번번히 혼나면서도
별다른 간식이 없던 우리 남매들에게 설탕 녹은 누리끼리한 액체에다가
하얀 소다를 쪼끔 찍은 나무젓가락을 휘휘 저으면
순식간에 샛노랗게 부풀어오르는 그 마술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지요.
열심히 녹이고 젓고 붓고..그러다가 일어설라 치면 골이 띵~~~해 오는 것이!
한순간 휘청~~! 하는 그 기분마저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신이 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겨울밤은 어찌 그리도 춥고 긴지..
깊이 잠들기 전에 꼭 연탄을 갈고 자야 하는데
우리 세자매는 그걸 번갈아가면서 하기로 했지요.
체온으로 따땃해진 이불 속에서 나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뒷꼍으로 연탄 갈러 나가기.
다 끝내고 나서 후다닥 이불 속으로 파고 들면 차가와진 몸에 밀려오는 그 따뜻함이라니....으흐흐흐
천하에 무서운 것 없는 독종 작은 언니는 웃기지도 않게
연탄광에 살고 있는 귀뚜라미(?)를 무서워했어요.
어느날 밤엔가는 잠이 든 제 코 끝에 한기가 느껴오고
어렴풋이 누군가 울어대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부시시 일어나보니 뒷방문이 활짝 열려있고
작은 언니가 추운 뒷꼍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어요.
귀뚜라미가 무서워서 도저히 광에 못 들어간다고 말이죠.
바부바부...너, 바부야?? 대신 연탄을 갈아주며 핀잔을 주어도 여전히 훌쩍거리던 작은 언니.
겨울마다 텔레비젼에서는 방구들이며 문지방을 잘 확인하여 연탄가스 사고를 예방하자는 방송이 나오건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울 아부지, 한번도 확인을 한 적이 없었더랬지요.
어느해 겨울인가...
연탄가스로 우리 자매들은 전부 다 제 정신을 못차리고 골골거리고 있었는데
다른 방에서 주무시기에 암것도 모르는 아부지는
학교도 안가고 저러고 늦잠 잔다고 밖에서 타박하시던 소리가 어릿어릿 들려왔더랬지요.
밖으로 놀러나가기 전에 연탄불을 제일 약하게 숨죽이고
노란 알미늄 냄비에 적당히 신 김장김치 송송 썰어서 물 남실남실하게 부어
아궁이위에 올려놓고 나갑니다.
신나게 놀고 돌아와보면 국물이 자박~~하게 줄어들고 김치는 푹 물러져
이 하나 없으신 할아버지라도 훌훌 잡수실 그런 찌게가 되어 있지요.
그 김치찌게에다가 동치미 국물이랑 같이 먹던 저녁이라니....
기름보일러로 바꾼 겨울...
밤마다 연탄 갈러 나가던 고역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연탄아궁이가 없어져서 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어찌 그리 아쉽고 섭섭하던지...^^
- 들리는 음악은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OST 중 '그리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