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군 ‘위안부‘ 동원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위안부‘ 동원은 1930년대 파시즘 시기 특히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전시동원이 본격화 했던 1937~4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 쟁점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부상하고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문제를 보는 시각도 변화해왔다. ‘정신대‘ ‘종군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등 피해자를 지칭하는 용어도 변화해왔는데, 이는 진상규명의 진척 및 시각의 변화를 반영한다.
2. 일본군은 왜 군 위안소를 설치했던 것인가?
ㆍ‘위안부‘ 제도는 남성을 ‘총알받이‘로 만들기 위한 장치였고,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만듦으로써 일본은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ㆍ군 위안소가 제도화되는 과정에는 기본적으로 공창제가 깊숙히 연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근대적 공창제에서의 창기는 그야말로 성을 매매하는 존재이다. 무엇보다 근대적 공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성매매를 국가가 관리한다는 것이다.
공창제는 남성의 성욕을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으로 여기게 만들면서 성매매와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냈다.
3. 그들이 부인하는 역사적 사실
ㆍ일본군 ‘위안부‘는 조선에서만 동원되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의 여성들이 동원되었다. 심지어 백인도 있었다.
하지만 만 21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조선에서 동원된 여성들이 매우 높았다. 이는 일본의 ‘위안부‘들이 대체로 21세 이상의 성매매 경험자였던 것과 다르다.
그 이유는 ‘추업 사용 목적 부녀 매매 단속에 관한 국제조약‘ 및 ‘부인 및 아동의 매매 금지에 관한 국제조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은 두 조약을 비준했느나, 식민지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ㆍ군 ‘위안부‘의 동원 방법으로는 군과 경찰에 의한 납치, 인신매매 등이 거론되지만, 사실은 취업사기가 굉장히 많았다. 취업사기나 인신매매가 많았다는 점에 대해 일본정부나 우익들은 ‘위안부‘동원이 군이 개입하여 강제로 행한 것이 아니라 업자들의 소행이며, 이것은 결국 성매매였다는 논리늘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군과 경찰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개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자료와 증언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ㆍ군과 경찰은 업자들의 선정과 허가뿐만 아니라 ‘위안부‘의 이송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위안소는 부대를 따라 이동했고, 전쟁 말기에는 별도 시설도 없이 참호, 산속, 동굴 등에서 ‘위안부‘들은 성폭력을 강요받았다. 폭탄 파펀, 총알 등이 몸에 박혀 전후에까지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많은 것도 대다수가 폭격이 쏟아지는 중에 군인들과 같이 전장에 있어야 했던 상황 때문이다.
ㆍ패전 후에는 집단학살의 대상이 되었고, 유기된 경우에는 현지인들에게 일본인으로 몰려 복수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점령지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여성들 중 고국으로 돌아오길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도 정조를 훼손한 자신은 결혼도 할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 오랫동안 침묵한 이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포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말부터이다. 전후 40년 동안 이 문제는 수면 아래 묻혀 있다가 1980년대 민주화의 여파 속에서 활발해진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ㆍ순결 이데올로기라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성이 이 문제를 지체시켰다. 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해온 한국사회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몸이 더럽혀진 죄인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위안부‘ 피해는 개인적 수치일 뿐 구조적 폭력으로 인식될 수 없었던 것이다.
5. 거꾸로 가는 과거사 청산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
ㆍ일본 국가가 책임지고 배상하라는 것
ㆍ재발 방지를 위해 이 내용을 교과서에 실어서 교육시키라는 것
ㆍ관련자들을 처벌하라는 것
그런데 일본의 우경화 시점부터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기는커녕 기존의 합의한 것마저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교과서에서 ‘위안부‘ 기술의 삭제에도 모자라 소녀상을 없애라는 것은 군 ‘위안부‘ 문제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것이지 후대에게 알리고 교육시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태도는 아니다.
ㅡ
이번 장은 영화 <귀향>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처음 주인공은 강제로 끌려갔지만, 주위에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자리를 준다고 해서 끌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영화에서 소개 된 위안소는 군이 설치했지만 경영은 민간업진들에게 위탁하는 군 전용 위안소이다. 이로 인해 위안소에 있는 여성들은 돈을 벌 수도 없는 지경일뿐만 아니라 성병이 걸려도 죽음으로 내몰리고, 전쟁이 끝나도 집단학살의 대상이었다.
1990년 ‘위안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으로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지만 당시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부분 또한 영화에서 잘 보여준다. 어려운 발걸음으로 주민센터에 갔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장면이나 알아듣지 못하는 공무원이며, 수근거림이 있던 분위기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일본이 무조건 잘못했지만, 지금 할머니들은 일본이 아니라 조국과 싸우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요구를 듣지않고 마음대로 합의한 조국때문에 더 힘겨운 합의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할머니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바뀔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거친것이 아니라 진정한 평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평등하지 않았던 때의 할머니들에게 우리의 관심이 그들을 돕는 작은 한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