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대로 본다는 것

        - 이정재와 신동엽 사이

 

  사진 한 장이 화제다. 배우 이정재의 어떤 사진을 거꾸로 놓고 보면 진행자인 신동엽의 얼굴로 보인단다. 호기심에 사진을 검색해봤다. 정말 그랬다. 착시 현상일 뿐인데도 신기하게 보이는 건 심리학 책 속의 장면이 아니라 친근하게 느껴지는 연예인이 그 예시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제대로 본다고 하지만 실은 잘못 볼 때가 있다.

 

 

  같이 바다 구경을 가도 누군가는 갯바위 사이의 불가사리를 보고 누군가는 수평선에 걸린 고깃배를 본다. 살아있는 불가사리의 색깔이 환상적인 보랏빛이었다는 걸 고깃배를 주목한 사람은 모르고, 고깃배를 밀어내던 노을빛 구름의 잔상이 얼마나 황홀했는지는 불가사리를 주시한 사람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누구나 보이는 대로 보며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걸 합해도 ‘제대로 보는 것’에는 한참 못 미친다.

 

 

  양면을 본다는 것, 즉 제대로 본다는 건 삼자의 입장일 때나 가능하다. 당사자는 절대로 양면을 다 볼 수 없다. 당사자가 다 본다는 건 아무 것도 보지 않은 것과 같다. 인간에게 변명이 필요하고, 억울한 감정이 생기는 이유이다. 만약 당사자가 다 볼 수만 있다면 변명할 필요도 억울할 일도 없다. 변명과 억울한 감정은 내 입장의 진심을 말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사안의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다. 이정재의 얼굴을 신동엽 얼굴로 인식하는 건 내 눈이 판단한 진심이지만 그렇다고 그 얼굴의 실체가 신동엽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의 머릿속은 제 나름으로 바쁘고 눈썰미는 저마다의 방향이 있어 모든 걸 다 보지는 못한다. 내 눈의 들보보다 다른 이의 티끌이 먼저 보이고, 내 떡보다 상대 떡이 커 보이는 이유이다. 누구나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자기식대로 판단한다. 그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 ‘자기 식’이 언제나 옳은 게 아니라는 자각은 새길수록 좋다.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겸허한 두려움을 상비약처럼 지니고 다니고 싶다. 숱하게 노출되는 판단의 실수 앞에서 그 약 한 알 삼킨 뒤, 한 호흡을 쉬어 갈 일이다.

 

 

 

 

 

 

 

 

 

 

 

 

 

 

 

 

 

 

 

  2. 물살 건너기

 

  SNS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과 글이 나 자신을 말해주는 전부는 아니다. 친한 친구가 동유럽 여행을 갔다 치자. 운치 있는 블타바 강의 석양빛이 실시간으로 SNS 상에 오르고, 혀끝에 감도는 네보지젝 레스토랑의 감칠맛이 블로그를 도배한다. 그렇다고 그 친구 삶이 전적으로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친구가 남긴 멋진 흔적은 아주 부분적인 것일 뿐이다.

 

 

  생은 전면과 이면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축적된 양은 개별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반반이다. 삶에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있고 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다. 과시하고픈 장면도 있고 수치스러운 장면도 있다.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것은 단연코 전자이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알라딘 서재에 커피숍 가서 탐나는 찻잔을 훔쳐왔다거나, 아버지한테 반항하다 가죽허리띠로 맞았다거나, 매일 밤 지치지도 않고 사랑을 나눈다거나 하는 내용만 줄곧 올린다면 그보다 끔찍하고 불편한 것도 없다. 그런 일은 일기장에나 담길 일이다. 정도가 심하면 심리상담소를 찾을 일이지 만천하에 공개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개인 정보는 근본적으로 일기장에 기록되는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 은밀하고 내밀해서 보여주기 싫고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아니라, 더 이상 비밀스러울 것이 없어 보여줘도 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공개한다. 따라서 올라오는 타인의 정보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체코의 레트나 언덕의 아침노을 을 배경으로 한 SNS 속 당신도 알고 보면 나열할 수 없는 숱한 아픔과 좌절과 번민을 안고 가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소시민일 뿐이다.

 

 

  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공개된 소통 공간의 그 속성을 잠시 놓칠 때 사람들은 잠시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돈 없다 징징 짜던 자야는 그새 곗돈으로 명품 가방을 샀다고 자랑하고, 어제까지 우울하다던 축이는 시댁의 배려로 훌쩍 괌으로 날아갔단다. 만날 나처럼 남편 흉만 보던 인이는 결혼기념일이라고 남편이랑 호텔 뷔페에 갔다며 인증샷을 날린다. 이쯤 되면 도대체 난 뭐지? 이렇게 스스로를 친구들이랑 비교하게 된다. 이게 인간이다. 이런 심리적 낭패감을 맛보지 않기 위해 잘 나가는 모 작가는 절대 SNS나 블로그를 하지 않는단다. 호호헤헤거리며 선플로 서로의 우의를 결속하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끼는데다, 그것이 지나치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철학 또는 심리용어 중에 ‘대조효과’라는 게 있다. 같은 대상을 두고 확실하게 비교되는 두 상황이 제시되면 인간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같은 원피스를 옆집에서는 오백 원에 파는데 이집에서는 삼백 원에 판다면 별 망설임 없이 우리는 후자를 택한다. 그 원피스가 삼백 원의 가치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값을 비교한 것만으로 이백 원을 벌었다고 만족해한다. 실은 두 가게 주인이 같고 판매 전략상 그렇게 했을 뿐인 데도 우리는 싸게 샀다고 믿는다.

 

 

  공개된 소통 공간에서도 우리는 인간심리의 이런 단면을 볼 수 있다. 해외여행이다, 고급 레스토랑이다, 비싼 공연이다 등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올리는 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내 뜻과는 반하게 내 여건과는 맞지 않게 무리수를 둬 그들을 뒤따라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이 어울릴 리 없다.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고 어색하다. 원해서 한 행위가 아니라 상황에 떼밀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조효과는 상대적인 현상이다. 비교하는 상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내 선택은 확 달라진다. 위를 보고, 겉을 보는 것보다 아래를 보고(그게 아니라면 곁을 보고) 속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상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집중력과 심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듯 상대도 어떤 한 면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 없는 상대에게 내 심리적 낭패감을 보상하라고 기대할 순 없다. 내가 건전하고 바른 눈을 가지는 만큼의 심리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누군가 말했다. 무심히 강건해지기, 이 요법은 대조효과라는 각종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이다.

 

 

 

 

 

 

3. 모든 건 작은 것에서

 

  작은 것이 큰 것 된다. 모든 문제는 그렇게 시작된다. 당신의 사소한 눈빛 하나, 떨리는 손끝 하나에도 당신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 마음이 품은 ‘감정의 결’을 제대로 읽는다는 건 쉽지 않다. 내가 읽는 당신의 마음이 실존하는 당신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 이 두 마음의 간극을 선인들은 ‘착각’ 또는 ‘오해’라는 말로 이름 지었다.

 

 

  우선, 착각이란 말은 여간 귀여운 데가 있는 게 아니다. 상대에 대해 눈치 볼 것 없이 주체의 감정에 보다 충실한 단어이다. 그 대상이 주로 자기 자신인데다 긍정적 평가를 내릴 때 활용되는 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잘생겼다는 착각 속에 산다.’ 라거나 ‘그녀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착각한다.’라는 말 등이 좋은 예이다. 당사자의 감정에 충실할 뿐, 상대의 감정과는 그리 상관없는 게 착각 현상이다. 해서 우리는 ‘자뻑’하는 당신에게 여유 띤 웃음을 보여줄 수 있다.

 

 

  오해는 좀 다르다. 똑 같이 뭔가를 잘못 지각했을 때 쓰이는 말이지만 그 느낌은 ‘착각’일 때와는 다르다. 오해는 주체자의 감정뿐만 아니라 상대의 감정까지를 포괄한다. ‘내가 오해했다면 미안해.’, ‘우리는 서로의 오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등의 예문에서 보듯 오해에는 반드시 그 당사자들이 등장한다. 착각이 자유일 수 있는 건 대상의 눈치를 볼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해에는 자유가 없다. 누군가를 오해하는 순간, 또는 누군가의 오해를 받는 순간 그보다 더한 마음의 지옥은 없다.

 

 

  아침 텔레비전에 연륜 깊은 연예인이 나왔다. 자신은 멋있고, 날씬하고, 섹시하게 늙어가는 중이란다. 보는 이에 따라 주책이고, 뚱뚱하고,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반기를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모습이 당당하고 귀엽게 보이는 건 그 착각이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잘못된 이해라도 착각과 달리 오해가 치명적인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착각에는 자유가 허용되지만 오해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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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1-2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알찬 리뷰...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신동엽과 이정재 정말 기가 막힌데요.
신기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크아이즈 2014-01-29 11:28   좋아요 0 | URL
제가 컴맹인 관계로다가 캡처를 제대로 못했어요ㅠ
원본 사진은 거꾸로 보면 진짜 신동엽으로 보여요ㅋ
투베어원풋님? !도 설 잘 보내시어요~~

세실 2014-02-0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S는 만천하에 공개되니 부담스럽긴 하더라구요.
그나마 카카오 스토리는 지인들만 보게되니 일상을 적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포장해서 보여주게 됩니다. 누누히 강조하는 건. '보이는게 다는 아니다'......ㅎㅎ
팜므님 편안한 설 명절 되셨죠?
수상한 그녀 가족과 함께 꼭 보시길요^^

다크아이즈 2014-02-02 13:12   좋아요 0 | URL
당연히 포장해야지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그건 끔찍해요. 보는 이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ㅋ

편안하지 못했어요. 딸내미 신종 플루 걸려서 방콕했답니다. 간호한다는 명분 하에^^*
수상한 그녀 좀 미뤄야 될 것 같아요. 꼭 볼게요.
편한 휴일 보내시어요. 세실 관장님^^*

순오기 2014-02-03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 공감 꾸욱~~~~

다크아이즈 2014-02-04 13:08   좋아요 0 | URL
순정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기 언냐, 명절 뒤끝 없지요?
전 가로늦게 몸살 오려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