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쓰기의 어려움
글쓰기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확고한 의지 없이는 제대로 된 한 편의 글을 내놓기 어렵다. 주변인 과의 약속도 미뤄야 하고, 스마트폰의 유혹도 이겨야 하며, 쏟아지는 잠도 극복해야 한다. 내 안에서 풀어진 나를 다독이지 않으면 절대로 가시적인 생산물은 나오지 않는다. 제 안의 악마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자라야 글로서 우뚝 설 수 있다. 왜 극소수의 작가만이 살아남겠는가. 그들은 스스로 부딪치며 견뎠고, 끝내 싸워서 이긴 자들이다.
쓰는 글이 소설인 경우, 쓰는 자는 시간과 노동이란 이중고를 겪어내야 한다.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다. 가슴으로 쓰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머리는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생각하는데 필요하고, 가슴은 활자화된 소설 앞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서적 반응 기제의 확인처일 뿐이다. 소설 쓰는 데는 애오라지 묵직한 엉덩이와 예민한 손끝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 쓰기에 안착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두 가지를 끝내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건이 안 되고 시간이 부족한 핑계가 마련되어 있는 한 점점 소설 쓰기는 멀어진다.
위의 얘기는 내 것이기도 하다. 시간은 한 번도 내 편이 되어 준 적이 없었고, 글쓰기의 노동 강도 앞에 저질 체력은 언제나 무너졌다. 날마다 고군분투한 것 같지만 언제나 악마의 승리로 아침을 맞았다. 그렇다. 이 모든 건 핑계다. 묵직하게 의자에 앉아 있질 못하고, 예민하게 손끝을 놀리지 못한 자의 자기변명일 뿐이다.
삶이 빈약하니 사유가 빛날 리 없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만 있고, 그것을 받쳐줄 철학이 부족하다 보니 초조하게 시간만 보낸다. 내 안에 제대로 된 심지 하나 없어 독자에게 가더라도 공명하지 못할 소설, 이런 부담 때문에 오래 앉아 있어도 쉬이 써지질 않는다. 지나친 자기연민이나 자기성찰은 소설 쓰기의 제일 방해요소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책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오직 써라. 그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뤄도 괜찮다. 이렇게 스스로 힐링하며 버티는 나날이다.
2. 합평하는 시간
글과 관련되는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각자 쓴 글에 대해 합평하는 시간을 가질 때도 있다. 그때마다 느낀다. 써온 작품에 대해 애정을 담아 한 말씀씩 해주는 그 과정이야말로 제2의 창작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웬만한 ‘자뻑’ 환자가 아니라면 구양수·소동파 급 문장가도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다. 선인들이 익히 백 번 이상의 퇴고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잘 모르는 초보일 때는 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을 수가 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오직 쓰기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참으로 행복한 시기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글쓰기에 이력이 붙은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글을 보는 눈은 깊고 넓어졌는데, 쓰는 능력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 괴로운 나날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놓고도 안절부절못한다. 제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합평이다.
찜찜한 글을 그러안은 채 아무리 혼자 숙성시켜보아도 완벽한 내 글이 되어주진 않는다. 부끄럽지만 동료들 앞에 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은 글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적어도 쓰는 능력보단 읽는 능력이 앞선 다수의 글동무들은 적확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 말들은 대개 글쓴이가 제 글에서 느낀 여러 문제점들을 재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불필요한 설명을 없애라, 주인공에게 생동감을 불어 넣어라, 주제를 상징하는 장면에는 부연 묘사가 필요하다, 사실적 취재로 장소를 구체화 시켜라. 이 모든 충고는 글쓴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하지만 맘과 달리 한 번 만에 그런 약점 없는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합평의 장에 나를 내놓고 채찍질해달라고 간청할 수밖에 없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 문제점들을 점검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제2의 창작에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다. 다시 골방에 들어가 지우고 덧대기만 하면 된다. 적어도 백 번 쯤 그짓을 되풀이하면 된다!!
좋은 글은 공감을 전제한다. 혼자 쓰고 혼자 고치기보다, 혼자 쓰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그 길만이 너도 울리고(웃고) 나도 우는(웃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