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 한 번의 연애

 

 

  지금 대한민국은 스토리텔링 열풍 중이다. 교육, 역사, 문화·관광, 심지어 수학이나 과학에서도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고유 영역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사람들 관심을 유도하고 나아가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이야기 형식보다 나은 게 없다. 순간의 미학인 방송 광고조차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 방식을 택했을 때 훨씬 더 구매욕을 자극한다고 하지 않는가.

 

 

  각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저마다 지역 알리기와 지역 관광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그 방안으로 스토리텔링이 주목받게 되는데, 각종 보도에 따르면 포항 지역에도 이런 방식이 도입되었다. ‘문화스토리발굴사업’의 일환으로 일억원의 창작 지원금이 지원되었는데, 성석제의『단 한 번의 연애』는 그렇게 탄생한 포항 관련 소설이다. 이 소설이 많은 독자를 만날수록 포항에 대한 간접 홍보 효과 및 문화관광 콘텐츠로서의 활용 가치는 드높아질 것이다.

 

 

  고래잡이 딸을 사랑하는 해녀 아들 이야기가 중심축인데, 그 공간적 배경이 포항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레 간접 광고 효과를 바라게 된다. 구룡포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행적을 따라 가다 보면 포항제철소가 나오고, 송도해수욕장이 보인다. 보경사를 휘돌아 마성까지 접수한 뒤 고래잡이와 먹거리를 살피다 보면 어느덧 순정한 한 남자의 연애사가 마무리 된다. 연애 소설, 후일담 소설, 풍물 기행기 등 세 박자가 어우러진 이야기로 읽힌다.

 

 

  한 발 주춤한 구성, 등장인물에 대한 일관성 부족, 스토리 전개에 대한 개연성 의문 등 몇 가지 독자로서 불만스러운 점도 있었다. 작가로서의 최대한 자유의지가 담보되었다 해도 스토리텔링이라는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내기에는 좀 더 숙성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스토리와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바라는 건 독자로서 과한 욕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 특정지역에 대한 관심과 여행 욕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건 시민으로서 당연한 소망이다.

 

 

 

2.  아브락사스

 

 『데미안』의 소주제는 ‘알 깨고 나오기’ 이다. 싱클레어가 보낸 새 그림 편지에 대한 답으로 데미안은 다음과 같은 쪽지를 준다.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신학교 시절 분신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시절 헤세는 선과 악, 신과 악마, 밝음과 어둠 등 이 세상을 이분법적인 세계로 나누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예민하고 조숙한 신학생은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아브락사스를 끌어들였다. 좋은 생각, 신에 대한 의지, 도덕적 잣대 등이야말로 세상을 트집 잡기 쉽고, 인간 내면을 옭아매는 파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악덕의 세계 역시 다른 한 세계이고, 그 또한 인간을 지배하는 한 관념으로 보았다.

 

 

  금기에의 내면적 모든 도전은 아브락사스로 불릴 만하다. 저급한 욕망과 성스런 영혼 따위로 인간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경직된 사고를 대신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를 아브락사스에 담아내고자 했다. 젊은 음악가 피스테리우스를 만나 싱클레어는 그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주고받는다. 피스토리우스가 음악을 하는 건 단지 음악은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싱클레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편할 테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험난할 거야. 그래도 한번 가보지 않을래?’ 이렇게 아브락사스를 알리는데 급급한 피스토리우스 역시 낡은 세계에 지나지 않았다. 싱클레어로서는 자신의 내면을 알아가는 게 더 급선무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싱클레어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실행하고자 했다. 길들여진 훈계, 윤리적 죄책감 등에 쌓여 있는 한 아브락사스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밝고 어둠, 신과 악마, 좋고 나쁨 이 모든 이분법을 버리고, 신인 동시에 악마인 세계를 향해 제 영혼의 날개를 단 모든 것들이 싱클레어에게는 아브락사스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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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1-2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의 소설이 탄생된 배경이 흥미롭네요. 저도 포항은 참 많이 가본 곳이에요. 고모님도 계시고 외사촌도 살고 또 고향친구들도 몇몇 살고 있고요. 포항제철소, 구룡포, 죽도시장뿐만 아니라 동해시장도 가봤고 군대 갔다가 휴가 나왔을 땐(1984년쯤) 북부해수욕장에서 해수욕도 즐겼던 곳이 '포항'이에요. 언제 기회되면 저 소설 좀 읽고 저도 옛추억을 좀 더듬어 보고 싶네요.
* * *
"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마이크 아이스너, 월트 디즈니 前 CEO)

다크아이즈 2013-01-30 11:13   좋아요 0 | URL
어쩐지 오렌님은 동해안 쪽하고 인연이 깊으실 것 같았어요.
고향 친구들까지 포항을 접수했다니 산업도시라서 전국구? 이런 생각이 ㅋ

스토리와 전달하는 기술 - 이게 안 되니 글쓰기가 늘 어려운 것인걸요.

페크pek0501 2013-01-2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의 제목에 끌려서 왔어요. 제목도 내용도 좋네요.
간단명료해서 깔끔한 글 그리고 핵심을 찌르는 글...

제가 4년 동안 서재활동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1년간 글이 잘 써지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글감도 저절로 생겼고 글이 잘 풀렸어요. 그리고 나선 글이 잘 써지지 않더라고요. 요즘도요...
팜 님을 보니 요즘 글이 잘 써지는 시간 같아요. 저처럼 1년으로 끝나지 마시고
계속 이어지시길... 저는 님에게서 배우고 자극을 받겠습니다.ㅋㅋ

아, 오래전에 읽은 데미안을 보니 새롭네요. 지금 읽으면 다른 느낌이겠죠?

다크아이즈 2013-01-30 11:19   좋아요 0 | URL
페크언냐, 이래뵈도 저 서재질 무려 7년이 넘었다는 ㅠ
들락거릴 때보다 방치하는 기간이 훨씬 길어서 탈이지요.
이 짓도 언제 휴면기에 들어갈지 몰라요.
서재 좋은 점이 하고 싶을 때 하고, 말고 싶음 말고. 흐흐~
먼지 좀 쌓여도 금세 탈탈 털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에요.
애인 같으면 진작에 패대기 당했겠지만, 개인서재는 충실한 애완견 같아서 안심이 됩니다.^^*

글을 쉽게 쓰는 편이 못되어서 늘 힘들어합니다. 페크언냐처럼 고수들 보면 신기하고,존경스럽고,본받고 싶고... 그런 복합적인 생각이 드는 걸요.^^* 쓰는 동안은 가열차게 따라갈게요.^^*



이쁘니꼬꼬얌 2013-02-2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단한번의 연애>를 읽고 리뷰를 찾아보다가 들르게 되었습니다. 맨 윗분의 댓글처럼 저 역시 소설의 탄생 배경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포항의 일본마을, 구룡소, 목장..장소들이 반복해서 나오니까 나중에는 정말 궁금해지더라구요. 암튼 글 잘읽었습니다. 리뷰 정말 잘쓰시네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