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 미제라블』어떻게 한 마디로 이야기할까. 주문한 책은 왔지만 아직 읽지 못했고, 영화와 뮤지컬 본 단상을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적바림해봐야겠다. 장발장의 박애, 자베르의 원칙,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팡띤느의 애잔함, 가브로쉬 꼬마의 전진, 테르나디에 부부와 그 일당, 그리고 빼놓으면 안 되는 민중과 혁명... 오늘은 그 중 가장 선명한 감정이입을 가져다줬던 에포닌에 대한 헌사로 시작해야겠다.

 

 

 

 

 

 

 

 

 

  모든 혁명은 미완이다. 영원히 성공한 혁명이라는 건 애초에 있을 수 없다. 혁명의 속성은 지속적인데다 언제나 희생을 요구한다. 일회성 혁명인 ‘쿠데타’는 민중이 원하는 혁명의 기본 정신을 영속적으로 충족시켜주진 못한다. 그래서 언젠가 새로운 혁명을 야기하는 촉발제가 될 뿐이다. 혁명은 자고로 미완의 계속을 향해 질주하는 민중의 염원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빅토르 위고가『레 미제라블』에서 실패한 혁명인 1832년의 공화파 청년들의 봉기 사건을 소설적 모티프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디선가 혁명은 일어나고, 누군가는 혁명을 꿈꾼다. 혁명은 민중들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낭만적 자기 구원법이다.

 

 

 

  레 미제라블 열풍에 편승해 최근 개봉한 영화와 국산 뮤지컬 둘 다를 보았다. 영화와 뮤지컬은 각기 장단점이 있었다. 애초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했기 때문에 구조와 음악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눈길을 끄는데다 자막이 따라주니 이해하기가 쉬웠다. 뮤지컬은 우리말로 진행되는데도 가사전달이 쉽지 않아(어쩌면 우리말에도 자막을 마구 쏘아대는 텔레비전 프로에 너무 길들여진 탓인지도) 영화를 먼저 보지 않았다면 섬세한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호흡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어우러진 현장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몰입도 면에서는 뮤지컬이 나았다. 그렇지만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움직이는 힘은 영화 쪽이 좀 더 나은 것 같았다. 영화 속 비 맞는 에포닌의 아리아 앞에서 폭풍 눈물이 흘렀지만 뮤지컬에서는 그 감흥이 일지 않는 차이 정도라고나 할까.

 

 

 

  수많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이 가지만 감정이입이 가장 잘 되는 인물은 단연 에포닌이었다. 짝사랑하는 마리우스와 그의 연인 코제트를 위해 사랑의 전령사가 되어주는 것도 모자라 마리우스의 총알받이를 자처한다. 하지만 마리우스의 애도는 애석하게도 인간애적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맘에 코제트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 간의 사랑이 될 수 없었던 것. 영화와 뮤지컬에서 에포닌의 경우, 지고지순한 사랑과 희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설과 달리 아무래도 감동을 얻어내기 위해 미적 장치를 극대화 한 것 같다. 당연히 관객들은 더 빨리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에포닌이 비 속에서 안타까운 짝사랑을 노래할 때 여기저기서 눈물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보다 덜 내밀하고 덜 생각하게 하지만, 소설보다 더한 낭만적 감동을 자아내니 영화나 뮤지컬로서의 역할은 다했다고 본다.

 

 

 

  주인공도 아닌 에포닌의 역할이 무척 비중 있게 다뤄진 점이 의심스러워 소설에서 에포닌이 어떻게 그려졌나 싶어 열심히 찾아봤다. 역시 소설은 인간 보편적 감정에 더 호소한다. 사랑하면 질투하게 되어 있다. 그 점을 원작에서는 놓치지 않았다. 지게 되어 있는 싸움인 혁명 전야의 바리케이드로 마리우스를 유인한 것은 에포닌이었다. 어차피 모두의 파국이 예견되어 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그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서 뭐 그리 잘못일까, 하고 에포닌은 생각했던 것. ‘이젠 그 누구도 이 사람을 빼앗을 순 없겠지.’하는 행복한 가슴으로 마리우스 품에서 죽어간다. 코제트의 편지를 전해주는 마지막 전령사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그녀가 행복하게 죽을 수 있었던 건 마리우스의 죽음 또한 멀지않고, 그 곁에는 코제트가 아니라 자신이 있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에만 바리케이드가 필요한 게 아니다. 혁명과 사랑을 동시에 꿈꿨던 에포닌이란 바리케이드가 없었다면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이 이루어졌을까. ‘불쌍한 사람들’의 대표 아바타이자 장발장의 마스코트인 코제트 보다 에포닌에게 더 눈길이 가는 건 그녀의 캐릭터야말로 아름다운 민중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그녀야말로 가장 낮은 곳의 민중의 대변자로 내 눈에 비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혁명은 높은 곳의 생각이 아니라 낮은 곳의 행동으로 그 임무가 완수된다. 혁명과 사랑의 희생양이 되었으면서도 그걸 최대의 행복이라 여긴 에포닌을 충분히 애도해주고 싶다.

 

                                                          

 

     비가 오면 도로는 은빛으로 반짝일 테고, 강물엔 도시 불빛이 아롱질 거다. 별빛에 나무는 빛나고 아침이 올 때까지 에포닌은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에포닌의 상상일 뿐, 실제 강물은 떠나고 도시 불빛도 꺼졌다. 세상은 낯설고 에포닌이 없어도 마리우스는 잘 살 것이며 혁명 또한 계속 될 것이다. 죽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그녀의 빗속 아리아 on my own이 계속해서 환청으로 들린다.

 

 

 

 

 

**반값하는 더클래식의 레미제라블 읽기에 큰 무리는 없고, 완역본인 것 같다.

   (설마 영어본을 원본에서 줄였을 리 없겠지 하는... 자신은 없다.)

   영어로 번역된 것을 텍스트로 삼았으니 영어본을 덤으로 넣었겠지.

 

   기왕이면 불어판 원본으로 번역하고 줄 것이지... 그럼 남는 게 없을라나.

   급하게 기획된 것인지 교정 덜 된 부분이 있어 실소가 나오지만

   읽는 데엔 무리가 없다. 팀 번역이라는 별로 신뢰 안 가는 방법을 썼는데도 일관성은 있어 뵌다.

 

   민음사판형 세계문학 전집이 얼마나 읽기 불편하게 뻣뻣한지 

   성토하는 자라면  싼 값에 이만한 책 얻은 걸 다행으로 여겨도 좋을 듯. 

   (기회가 되면 펭귄, 민음사 것을 빌려와서 번역이 어떤 게 매끄러운지 봐야겠다.

    문학작품 번역은 또 다른 문학이니 직역 고집하지 않고, 복문 즐기지 않고

    경제적으로다가, 문학성을 살려 번역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승일까.)

 

*** 바리케이드 우리말 표기가 맘에 안 든다.

      최대한 불어에 가깝게 발음하려면 아래처럼 표기해야한다.

      한마디로 우리말 표기로는 불가능.

      <바 ㄹ히 까 드ㅓ> !!! 써 놓고도 웃긴다. 

      (불어는 엑센트 표시 안 하지만, 엑센트는 바, 모음에 쏠려 있다.)

      누가 우리말은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다고 구라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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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1-0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뮤지컬까지 보셨군요. 전 영화로 만족하고 펭귄클래식 원작 읽으려구요. 반값이 유혹이긴 하지만 처음 맘먹은대로ㅎㅎ

다크아이즈 2013-01-09 04:03   좋아요 0 | URL
프레님 잘하셨어요.
더클래식 것은 우려한 만큼(!) 나쁘지는 않았어요.
완역본이 아닐까봐, 엉터리 번역일까봐. 나름 괜찮습니다.

프레이야 2013-01-09 19:50   좋아요 0 | URL
아직 고민중이긴 한데
더클래식 것 괜찮다고 하시니 다시 갈등돼요.ㅎㅎ
어쩌나..

다크아이즈 2013-01-10 15:25   좋아요 0 | URL
프레님 소장하시기엔 싼 만큼 책의 탄력이 별로예요.
읽기 위한 것이라면 괜찮구요.
현명한 선택 하시어요.

뮤지컬은 이곳 끝나면 그곳으로 이동하니 관심 있으시면 보셔도 좋을 듯...

oren 2013-01-0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뮤지컬 공연이 아직도 진행중인가요?

저는 리암 니슨 주연의 <레미제라블>을 먼저 보고, 이번에 개봉된 뮤지컬 영화를 봤는데, 배역과 각색에 따라 영화 속 인물들의 개성이 너무 차이가 나더군요. 1999년 작품에서는 '자베르'가 인상적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러셀 크로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코제트 역에서도 예전 작품이 나았던 듯싶은데,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와 '혁명 상황'에 대한 아주 세밀한 묘사가 정말 뛰어난 데 놀랐어요.

저는 이번 영화를 보면서 (딱 한 번) 마리우스 때문에 눈물을 쏟았는데, 혁명동지들이 다 스러지고 난 뒤 비밀 아지트로 되돌아와 '그들의 죽음을 나에게 묻지 말라'던 대목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다크아이즈 2013-01-10 15:38   좋아요 0 | URL
오렌님이 계신 곳이 어딘지 모르겠는데 대구, 부산 공연은 1, 2월에 잡혀 있는 것 같고, 서울 정보는 잘 모르겠어요. 검색해보시고 오렌님 가시기 좋은 곳으로 선택하시는 게...
저도 리암 니슨 것 봤는데(얼마 전에도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더군요.) 저도 장발장의 리암 니슨보단 자베르 역의 제프리 러쉬만 각인되더라는...

영화마저 여성적 시각을 못 버리는 스스로를 봅니다. 오렌님이 장발장과 마리우스에게 꽂히는 것처럼 저 또한 팡띤느와 에포닌에 눈길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ㅋ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ㅋ 입매가 매혹적인 마리우스 역 배우, 유명 배우이던데 전 이름을 모른다는...


댈러웨이 2013-01-09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우왕 사진 봤어요. 완전 제 스타일!

서재 어느분께서-단잠님이었나...- 펭귄판이랑 민음사판 번역을 대표적인 단어들만 나열해서 비교한 걸 본 적이 있는데요. 펭귄판이 불어발음에 가깝게, 민음사는 영어식 발음?, 해서 민음사가 읽기엔 더 부담이 없겠더라구요(제 기준). 펭귄판은 너무 불어식이라 저는 좀 아!? 이랬어요. ㅎㅎㅎ 서점에서 비교해볼 수 있음 좋겠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잉. 아, 저도 민음사판은 읽기가 너무 불편해서 첨엔 손에 쥐도 나고 그랬어요. --;

다크아이즈 2013-01-10 15:48   좋아요 0 | URL
댈러님 저 오죽하면 서재닉네임이 <까망여인>이겠습니까? (프레이야님은 밤의 여인, 이라 생각하셨다 해서 요즘은 그게 더 좋아 해석을 바꿔 볼까 싶습니다.) 시커멓고 못생겼습니다 ㅠ 개성이려니 억지위안 삼습니다.

펭귄판이랑 민음사 어떤 게 낫대요? 저도 그 글 찾아 봐야겠어요.
님 말씀대로라면 전 당연히 펭귄판을 선호할래요. 등장인물부터 원어에 가깝게 번역했을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 <팡띤느>와 <판틴> 간에는 하늘과 땅 같은 뉘앙스 차이가... 댈러님은 아무래도 영어식 버전을 선호할 것 같아요. ^^*

민음사 판형이랑 재질 좀 어떻게 바꿔주면 안 될까요?
판형보다 더 문제가 재질 같아 보이네요. 술술 넘어가는 양질의 종이를 좀 써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