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의 ‘쾌도난마’ 는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정치와 시사를 건드리는 일대일 토크 쇼인데도 왠지 무겁지 않아 좋다. 어눌한 듯하면서 능구렁이 같이 상황을 잘 이끄는 진행자의 솜씨 덕에 부담없이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너무 편향적 정치 성향을 가졌거나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출연자가 나와 한 편의 코미디를 연출해 줄 땐 이 프로그램이 정녕 시사 토크를 표방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 심리학자가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여성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발언 때문에 각종 매체가 또 한 차례 시끄럽다. 아마 박 후보 스스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론’을 펼치니 반발심에 그런 의견을 낸 모양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으니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보고 싶을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 와는 별개로 여성으로서 황당하기 그지없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여성이라는 자각을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 나 같은 시청자는 금세 흥분지수가 높아질 만하다.

 

황상민 교수의 논지는 대개 이렇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식기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이다. 여성의 대표적 역할은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애를 키우는 것이다. 박 후보가 결혼을 했나, 애를 낳았나? 학교 다닐 때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대우받는데, 결혼하고부터 여성들이 차별 받는다. 따라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여성의 차별을 이야기하기가 사실 힘들다.’

 

이 말 속엔 모름지기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시집살이도 해보고, 남편 보필도 제대로 해봐야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아가 모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온갖 세파에도 끄덕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경험한 경우라야 진정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이런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여성관을 가진 자가 있을까. 이런 마인드를 가진 학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에 나와 떠들 수 있다니 한심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여성은 다만 여성일 뿐이다. 결혼하고, 애 낳고, 세상 단맛 쓴맛을 경험해봐야 꼭 여성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정된 의미의 여성은 전 여성의 반에도 못 미친다. 결혼 안 한 여자, 아이 안 낳은 여자, 세파에 시달려보지 않은 여자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여성이다. 모성이 없어도 여성이요, 심지어 여자라고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는 단순 생물학적 남성도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건 마초적 성향의 남자 잣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남성적 시각으로 같은 여성을 바라보는 치들과 더불어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가 저런 시각의 보유자들이다.

 

 

 

** 제 정치적 성향과 이 글과는 아무 관련 없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여성으로서 흥분하고 있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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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와르님 전적으로 동감이에요. 그 방송 며칠전 저도 봤어요. 어이없는 저런 분이 심리학자에 명문대 교수라니ᆢ 김연아교생실습 건으로도 어이없이 발언하고 그 발언 후의 태도는 더 어이없더니 ㅠ 저런 생각과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ᆢ 에잇 그 생각하면 또 열오르니까 접고 오늘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입시일로 마음 많이 쓰이시겠지만요. 좋은 결과 바라는대로 있기를요!

다크아이즈 2012-11-04 22:15   좋아요 0 | URL
저는 논란이 되기에 다시 보기로 봤어요. 김연아 건 때 정신 차렸거니 했는데 자제가 안 되나 봐요.ㅠ

오후에 기숙사 가서 아들 만나고 왔는데 넘 시원찮네요ㅠㅠ
나중에 프레이야님께 상담할지도 몰라요. 도와주세요.^^

글샘 2012-11-0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상민, 이 사람, 똑똑한 바보 같애요.
김연아의 문제도 분명 누구도 지적 안하는.. 엘리트 스포츠의 문제점이란 점에서 문제제기할 수 있었고,
박근혜 역시, 여성을 내세우지만 남성보다 더 남성스런 스타일의 사고방식을 문제제기한 점에선 똑똑한데,
표현하는 방식이... 누구에게나 욕먹을... 바보같은 소릴 하는 거죠.

다크아이즈 2012-11-04 22:17   좋아요 0 | URL
하긴 멍청한 바보는 사랑스럽기나 하지
똑똑한 바보는 답이 없네요.

이슈 되는 사람 끌어들이면 시청률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으니 종방에서 부르는 거겠지요. 종방스럽게요~~

별족 2012-11-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요, 저는 말할 방법을 못 찾았어요.
박근혜가 '여성'인 거는 맞는데, 여성 정체성을 자각하는 저는 어떻게 박근혜를 찍지 않을 변명을 '여성대통령이라는 프레임?안에서 설명하지?' 싶은 거지요.

다크아이즈 2012-11-05 15:26   좋아요 0 | URL
별족님 그 고민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제 정체성을 자각한다해도,꼭 여성대통령 프레임 안에서 우리가 그 변명을 해야할 필요성은 없거든요. 그런 인간적 연민을 박 후보가 파고드는 듯해서 '여성 대통령 후보'를 내걸며 선거운동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아요.

별족 2012-11-05 15:2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그래서, 굉장히 거친 표현이지만 황상민이란 분이 하신 말씀에 수긍했거든요. '여성의 문제'를 하나도 겪어보지 못한 '여성'이 대통령으로서 정치를 할 때, 그 사람을 어떻게 '여성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라는 문제제기였다고.

별족 2012-11-05 15:3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여성대통령 후보'를 내걸어 선거운동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라는 다른 표현으로 이해했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