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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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존재가 극한 상황에 당면하게 되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나는 지난 1년여 동안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당사자다. 알량한 사업체 하나 건사하기 위해 모든 편법과 탈법을 머릿속에서 쥐어짜며 가지가지 되도 않는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뿐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누가 봐도 무리수이며 실현 불가능한 대안방법은 본인이 생각할 땐 무조건 성공이고 근사한 성과를 보여줄 꺼라 생각했었나 보다. 이런 무리수의 남발로 모든 상황은 악화로 치달으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피를 나눈 가족의 살점을 뜯어 먹는 걸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폭언과 원망이 튀어 나왔다. 빗발치는 빚 독촉 전화는 거부하기 일쑤이며, 법원에서 날아 온 압류통보는 외면하기 시작한다. 노동력을 제공받고 대가는 지불하지 않는 건 양반, 결국 모든 것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추악한 모습만 남긴 채 머나 먼 타국으로의 도주를 선택함으로써 결론을 내버렸다.

 

이렇게 자본에 침식당하고, 욕망에 빠져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하며 침몰하는 사람을 지켜봤다. 사람이 아닌 마귀로 보이는 순간이다. 더불어 그동안 타인에게 보여줬던 순기능적인 모든 모습과 근사한 포장이 벗겨지며 허세로 발각 나버렸다.

 

 

책 속의 내용도 내가 경험했던 인간과 다를 바는 없다.

추락하는 인간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희망과 행복보단 절망과 좌절만 끊임없이 독하게 나열한다. 2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하는 여객기의 뱅글뱅글 떨어지는 고도계를 지켜보는 심정이다. 고도계가 0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는 처절함이 책 중간부터 끝까지 기세도 좋게 질주한다. 일말의 희망이나 한줄기 빛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양이라는 가상도시 속에서의 28일은 지옥이며, 카오스며 무간도인 것이다. 사람들이 기자, 수의사, 특수부대 출신 구조대원, 의사, 간호사, 미치광이 개 도살자에게 공평한 최악의 환경 속에서 말이다.

 

작가는 여기에 또 하나의 잔혹함을 덧붙인다. 인간만 당하는 건 진부했는지, 인간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종의 생물까지 밀어 넣는다. 개와 사람이 같이 걸리는 무시무시한 전염병 상황 속에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길 줄 알며 흉기를 휘두를 줄 아는 인간은 개를 대상으로 홀로코스트를 단행한다. 그렇게 개와 인간의 시간이 화양이라는 공간에서 핏빛으로 잠식당한다.

 

여러 명의 인간 군상들과 개까지 등장시키며 진행되는 28일을 다 읽고 아 우리나라 소설도 이렇게 어둡고 지독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반갑다. 다만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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