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렇다.

 

집이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자연과의 격리를 뜻한다. 인간은 나약한 피부 때문인지 산짐승, 들짐승의 가죽을 벗겨 몸에 걸침으로써 체온을 유지하여 생명을 연장했다면, 집은 의복보다 더 나아가 인간들의 자기보호 수단 방편의 시초였었다. 매서운 바람을 피해서 혹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눈을, 포식동물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피해 사람들은 벽을 만들고 천정을 만들어 공간을 형성시켰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 보니 벽과 천정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수평팽창 혹은 수직팽창의 순서를 거치게 된다. 모여살기 시작하며 형성된 도시에는 최소의 면적에 최대 수용을 목적으로 높은 건물들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이렇게 건물은 인간의 문명과 더불어 발전을 거듭해왔다. 더불어 끝없는 욕심 때문이지 1인당 차지하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부의 상징으로 측정되는 시대까지 오게 되었다.

 

여러 건축가들은 이러한 맹목적 발전에 작은 틈을 만들어 갇혀진 공간에 자연이라는 요소를 유입하는 시도를 실험해 왔다. 연어가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격리의 심화로 인해 회귀의 본능은 그에 걸맞게 발전해 왔다. 건축물 한가운데 바람의 길을 만들어 주고 빛의 유입을 거스르지 않으며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끊임없이 방법과 생각을 추구해오고 있다.

 

 

  “감성이 없는 건축은 건축이 아니다. 공간은 물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만일 그것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면 그것은 건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리카르토 레고레타-

 

멕시코 태생의 리카르토 레고레타는 이런 자연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온 건축가 중에 한명이다. 건물의 상징성과 우월함보단 공간에 거주하고 상주하게 될 사람들에게 자연을 망각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딱딱한 돌과 차가운 시멘트,유리를 통해 구현해 왔었다. 내가 그를 처음 접한 건 해석은 20%도 불가능한 컬러풀한 건축 원서를 통해서였다. 비록 글로 이루어진 설명은 판독이 불가능했으나 그가 실현시킨 건축물의 반도 보여주지 못했을 단편적인 사진만으로도 그가 말한 자연을 느끼기엔 충분했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머나 먼 타국으로 날아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라는 곳에 그가 설계한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아시아에서 단 두 개 밖에 없는 그의 작품이라는 것. 더불어 2011년 생을 마감한 그가 남긴 유작에 속한다는 것. 여러 의미로 따진다면 제주도에 존재하는 “카사 델 아구아“는 우리에게 작은 축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냉정하게 말하면 임시건축물에 속하며 현행법상 철거의 수순을 밟게 되어 있다. 내가 지금 이 페이퍼를 끄적이는 그 순간. 어쩌면 차가운 포크레인의 삽과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잡부들의 오함마에 여지없이 깨져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건축물이 철거된 자리엔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예상을 해본다. 화려한 리조트, 호텔? 이도저도 아니면 잠깐의 휴식을 위한 팬션? 아니면 명목상 공원? 그 어떤 것도 카사 델 아구아를 대신할 수 없어 보인다. 우리가 불국사 덕수궁을 보고 있듯이 수 백년이 흐른 후 우리의 후손들은 볼 수 있는 건물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다.

 

김중업씨의 건축물들이 그러하듯, 청계천의 수표교, 피맛골이 그러하듯 우리가 가지고 있었을 사람다운 공간 하나하나가 개발의 미명하에 사라지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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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2-12-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강제철거 보류 되었다네...

paviana 2012-12-2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너무 잘 됐네요. 나라망신은 피하게 됐으니....진짜 철거할까바 조마조마했어요

Mephistopheles 2012-12-22 08:58   좋아요 0 | URL
말 그대로 보류랍니다.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철거가 이뤄질지도 몰라요. 멕시코 정부까지 나서서 철거를 반대한다는데 쌩까고 철거하다 진짜 국제적 망신 지대로 당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