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핸디캡은 참 여러 가지 있겠으나, 그중에 최악은 편도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왼쪽 편도선이다. 한 번 붓기 시작하면 어중간하게 부어 버리는 게 아닌 약간 뻥을 쳐 썰어서 한 접시 되는 정도로 그 상태가 심각하다. 이런 연유로 제대로 한번 부어버리면 난 그냥 쓰러져버린다. 고열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당연히 짐승 같은 식욕이 추락하며 자연스럽게 다이어트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저번 주 토요일 아침 목구멍이 좁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냥 방치했더니만 바로 그날 저녁 편도선이 부어버린다. 병원도 못가는 토요일 저녁, 난 그냥 집에 있는 해열제를 섭취하며 하루를 넘겼으나 일요일은 더더욱 상태 악화. 응급실을 가야해 말아야 해. 하다가 낑낑 거리며 기절해있다 월요일 아침 동네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의 소견은 역시나 급성 편도선염. 편도가 심하게 붓고 농까지 차 있는 상태라며 입천장 쪽과 혀밑까지 목구멍의 반 정도가 부어올랐다며 수분 섭취 많이 하고 처방해 준 약 꾸준히 복용하며 절대 안정하라 하신다.( 선생님 저 지금 백수에요~) 그렇게 삼일 정도를 지냈더니 고통은 덜해도 붓기는 빠지지 않는다. 더불어 밤만 되면 몰려오는 열을 동반한 통증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는 사태까지 와버렸다.

하긴 내가 다니는 이비인후과는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이 여간해선 강한 항생제나 주사를 처방하진 않으신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몸에 면역력이 형성되어 자연 치유되는 상황을 유도하신다. 결코 나쁜 방법이 아니며 오히려 요즘 같은 의료행태에 비하면 바람직한 치료방법임에는 동의하지만, 나에게 사실 아파서 집에서 뒹굴 거릴 짬이 없는 입장이다 보니 병원을 바꿔보았다.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조금은 현대적인 이비인후과를 방문한 어제. 목은 부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진찰을 받기 위해 입을 벌린 순간 바로 이런 말을 들었다.

“메스로 째고 고름을 빼야겠군요.”

식겁. 아니 뭔 칼질..아프지 않다 강조를 하지만 그래도 겁이 나는 건 사실.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이는 간호사 두 분이 바로 마취주사를 세팅한다. 그리고 쿠욱. 잠시 후 빈 주사 통으로 부어오른 편도에 직접 바늘을 꼽고 뭔가를 열심히 잡아 뽑으신다. 아주 징글징글한 색채를 자랑하는 정체모를 엑기스(?)가 주사기에 채워져 나간다. 잠시 후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더 곁드신다.

“일차적으로 빼냈으니, 이제 살짝 칼집을 내볼게요. (선생님 전 생선이 아니어요)”

끝난 게 아니란다. 끝난 게 아니란다…….대뇌이며 시퍼런 메스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한 것도 잠시. 입안을 가득 채웠던 그 무언가의 불쾌함이 살짝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곧이어 흡입 호스가 입안으로 들어가 요상한 흡입소리를 내며 역시나 불결한 자태를 뽐내는 무언가의 덩어리를 한가득 빨아들인다.

“다 끝났습니다. 마취가 깨어나면 살짝 통증이 올 수도 있으니, 그건 처방해준 진통제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식사 잘 드세요 일단 회복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고 나서 그 날 저녁. 정말 하룻밤 만에 다시 수다쟁이가 되어 버렸고, 그 기세를 몰아 백수티를 벗어나기 위해 학원 레슨 때문에 마님이 자릴 비운 사이 청소부터 시작해 빨래, 주니어 공부, 운동까지 거뜬하게 커버해버렸다. 이건 뭐 갤갤거리며 겨울잠 자는 반달곰에서 알라스카 불곰으로 변신한 기분이다.

여간해선 먼저 갔던 할아버지 병원의 진찰 방식을 따르고 싶었지만, 이번 추석 즈음하여 인생 후반전 휘슬이 울리는 결정적인 시기인 만큼 골골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급진적 진찰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를 고사하고라도 이번에 느낀 점은 인간의 몸은 참 간사하다는 것. 어떻게 마취주사 한방과 메스질 한 번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수직 상승 돼 버리는 몸 상태는 경의롭다기 보단 왠지 간사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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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9-0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벌한 후기이지만, 그래도 경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메피님 연휴 잘 보내시고 우XX 곰으로 어여 돌아오셔요.^^

순오기 2011-09-0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편도선 붓는 고통, 저도 알만큼 알지요. 겪을만큼 겪었고요.ㅜㅜ
고생하셨네요~ 그래도 거뜬하게 수직상승 하셨다니, 추석 이후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