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브라운 - Harry Brow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작년 초 클린트 이스트우드(클간지옹이라고 불린다.) 감독 겸 주연의 영화를 만났었다.  그랜 토리노. 무엇하나 허투루 만드는 일이 없는 이 노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이런 에너지와 아우라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한 가지 생각만을 가진 외통수 노인네가 현실사회의 문제를 묵과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며 떳떳하게 맞서는 영화는 감동을 떠나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1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화를 만난다. 배경은 미국이 아닌 영국. 그랜 토리노에서 보여줬던 사회적 문제를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해준다. 마약, 미성년자 매춘, 10대들의 무자비한 폭력.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 제도권에 속해 있지 않은 미성년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공권력의 커버라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규제와 제재가 없으니 그들의 행동은 점점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이 결국 살인을 부른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 가능한 노인을 괴롭히고 핍박하다 이에 저항하는 그을 집단 린치를 가한 후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권력은 이들에게 어떤 제재도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배경 속에 영화 제목과도 같은 살해된 노인의 친구인 해리 브라운의 저항이 시작된다. 시작과 동기는 그랜 토리노에서 월트 코왈스키의 모습과 흡사하다. 10대 불량배의 폭력에 희생된 친구를 잃고 분노하는 해리는 그랜 토리노의 코왈스키가 이웃집 유색인종 소녀의 성폭행 사실을 알고 벽에다 주먹질을 해가며 피를 바르는 모습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의 공통점은 전쟁을 겪은 전직 군인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단 해리 브라운은 특전대출신.)

발단은 비슷하게 시작하나 이어져 진행되는 방법론과 결과론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랜 토리노에서 보여주는 월트의 행동은 자기희생적으로 생명을 산화시키는 결말로 준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반면 해리 브라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방법을 고수한다.

폭력이 일상이며 마약과 매춘, 섹스로 얼룩진 그들에게 주글주글한 손으로 무자비하게 총알을 박아준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직접, 간접적인 인물을 가리지 않고 하나하나 응징해나가는 모습을 피를 칠하면서.. 허술한 공권력을 비웃고 조소하는 그들에게 법 위에 존재하는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강력한 응징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분명 비현실적인 모습을 내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대중에게는 표현하지 못하는 크나큰 공감을 불러와준다. 흡사 테이큰 이나 모범시민에서 보여줬던 딸을 찾기 위해, 가족의 복수를 위해 행하는 폭력에 통쾌하고 후련한 감상을 느끼는 것처럼. 



그러나 이런 부류의 영화는 말초적인 공감을 느끼기엔 충분하지만 그 이상 혹은 그 이하 무언가 심어줄 여지는 일찌감치 포기하게 하는 반발력을 가진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어느 순간부터 현실을 간결하게 이입하는 모습을 감상 중에 대입하곤 한다. 이런 경우를 따진다면 해리 브라운 역시 그냥 저냥 시간을 잡아먹기 쉬운 노익장 액션영화로 느껴지게 된다. 

단지 배우가 누구인가 하는 건 중요하게 다가온다. 클간지와 비슷한 연세를 잡수신 ‘마이클 케인(혹시라도 누구? 하시는 분들은 배트맨-다크 나이트,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을 완벽하게 보좌하는 집사 알프레드를 기억하면 될 것이다.)의 연기만큼은 각인시키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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