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말의 공격성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고 지금은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 동기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우리 사회 진보파의 언어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때로는 폭력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말을 했다. 그러다보니 진보적 매체나 논의의 장에 더 이상 참여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게 되더란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미국 진보파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울 알린스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930년대 시카고에서 빈민운동을 주도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진보적 활동가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가 교육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말의 공격성 혹은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돼지’나 ‘파시스트’라고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활동 방식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운동권이 원래 그렇지”라는 식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게 해 사회운동의 고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일반 대중의 경험세계 속에서 자신의 말이 어떻게 공명될 것인지를 중시해야 하고, 또 상대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진보의 언어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진보파의 언어 때론 폭력적

최근 인터넷 글쓰기의 영향이 커지면서 진보파들의 언어습관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보여 주목되고 있다. 집권세력과 그 수장을 ‘MB’ 내지 ‘2MB’로 표현하고 거기에 ‘명박이’ ‘쥐박이’ ‘생쥐’ ‘바퀴벌레’ 등의 모욕적 이미지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진보파들의 말과 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통치의 가혹함에 대한 강렬한 항의의 소산이겠지만,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번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진작시키기 위한 콘서트에 갔는데, 시작에 앞서 사회자가 그 취지를 설명했고 해직교사 한 분을 무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해직교사가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현 정부를 “이명박 정부”라고 지칭하자 사회자는 “MB 정부를 좋아하시나 보네요”라고 물었다. 이명박 정부와 MB 정부 사이의 언어 선택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사회자에게는 예민하게 포착되었던 듯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객석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조용했는데, 사회자가 농담이라고 말한 다음에도 여전히 조용했다. 진보파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 사이에 언어습관의 괴리가 커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말이 갖는 공격성 내지 폭력성은 주로 보수적 정향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폭도나 빨갱이, 친북좌파라고 공격하는 일이 허다했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비이성적 논리가 강요되기도 했고, 빨갱이들은 개조가 안 되고 대화로 풀어보려 했다가는 자칫 말려들기나 한다며 “때려잡자”거나 “북한에 보내자”는 무서운 주장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억압적인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진보파들 사이에서도 말이 자꾸만 나빠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 불편한 일이다.

인간적 따뜻함 뒷받침될때 힘

흑인이라는 정체성 속의 이중적 억압성을 날카롭게 문제 삼는 작품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은, “문학은 정치적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적인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분명 이 말과 글은 파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성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자로서 진보파가 갖는 사회적 가치 또한 파당적이 됨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파당성은 공정한 태도와 인간적인 따뜻함 그리고 말의 부드러움에 의해 뒷받침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보적인 것의 가치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인간적인 것의 가치가 더 넓고 풍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071809405&code=990000  

 

 


오늘 아침 배달된 경향신문을 찬찬히 읽어보며 발견한 칼럼이다. 워낙 표현력 부족에 글빨 딸리는 나에게 이렇게 생각을 대변해주는 글 솜씨 좋은 칼럼은 반가울 뿐이다. 글 몇줄에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그나마 풀리는 것 같다.


뱀꼬리 : 출처는 밝혔는데 혹시 법적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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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0-01-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요즘 신문도 잘 못보게 되는데 메피님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Mephistopheles 2010-01-10 00:11   좋아요 0 | URL
제 덕분이 아닌 저런 글을 써 주신 박상훈 대표에게 감사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해이] 2010-01-0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아하는 박상훈씨ㅋ

Mephistopheles 2010-01-10 00:11   좋아요 0 | URL
전 처음 알게 된 분이신지라 좋아질 것 같은 박상훈 씨..라고 해야 겠습니다.

쟈니 2010-01-08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훈 대표의 마지막 문단,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Mephistopheles 2010-01-10 00:13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으로는 시기적절하고 저에게 너무나 고마운 칼럼이라고 생각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1-0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훈 씨도 흉기가 된 말과 글에 당해봤을 겁니다.

Mephistopheles 2010-01-10 00:13   좋아요 0 | URL
아마도..그럴 가능성이 꽤 높겠죠.. 흉기가 된 말과 글..이젠 너무 쉽게도 접하고 만나잖아요.

딸기 2010-01-09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퍼갈게요. :)

Mephistopheles 2010-01-10 00:14   좋아요 0 | URL
아...감사는 저에게가 아니라 글을 쓰신 박상훈대표님께...^^

순오기 2010-01-0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놀란 가슴이라 더욱 울림을 주는 글이었어요. 추천 꾹~

Mephistopheles 2010-01-10 00:14   좋아요 0 | URL
우리는 놀라기만 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싶어요.

2010-01-09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grish 2010-01-1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피님 덕분에 지나칠뻔 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후마니타스의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주문하려고 맘먹고 있었는데.
좋은 책 많이 내주는 출판사래요.^^

Mephistopheles 2010-01-11 09:28   좋아요 0 | URL
저 칼럼 덕분에 저 역시 저 출판사 책 좀 검색하는 수고를 했었더랬죠..

마냐 2010-01-11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공감함다. 좋은글 소개에 감사.

Mephistopheles 2010-01-11 09:28   좋아요 0 | URL
제가..아니라 그냥 저기 저 박상훈 대표라는 분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