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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크롤러 - The Sky Crawle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2차 세계 대전에서나 사용되었을 프로펠러 방식의 전투기 1대가 창공을 꿰뚫고 하늘을 가르며 나타난다. 이어지는 기총소사에 상대 전투기는 박살이 난다. 탈출하는 파일럿까지 무참하게 살해하며 고고도 회전을 한다. 먹잇감을 찾는 맹수마냥 또 다른 적기를 발견하고 달려든다. 그 전투기의 옆구리엔 검은 사자가 그려져 있다.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스카이 크롤러’는 위의 설명과 같이 화려하며 정교한 도그 파이터(전투기끼리의 공중전)로 시작한다. 아마도 이번 그의 작품은 저렇게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이 주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지만 조금 더 진행하다 보면 이 생각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감독의 기존 작품들을 보면 폭력적인 액션 하나하나는 임팩트가 강렬한 만큼 그 시간은 짧고 전체의 영화 속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위와 같은 액션 신이 주를 이루진 않는다. 이번 신작 역시 마찬가지, 초반의 화려한 장면 하나로 관객들을 정신없게 몰입하게 만들고선 영화는 다분히 고요하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애니 자체는 꽤 깊고 진중하다. 누가 오시이 마모루 아니랄까봐 그의 전작 공각기동대에 버금 갈 수 있는 난해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간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형 같은 소모성 인간의 등장이나, 이런 과학력과는 동떨어진 프로펠러 추진 전투기들의 모습, 그리고 국가 간 무력대결이 군이라는 특수집단이 아닌 기업들이 대리전을 벌이는 모습까지 SF의 배경을 그리면서도 군데군데 이치에 맞지 않는 요소를 미묘하게 비틀어 끼워 넣는다. 인물들의 묘사 또한 지극히 단순하다. 흔히 봐왔던 캐릭터의 정교함은 사라지고 밋밋한 얼굴에 내뱉는 대사까지 단답형에 무미건조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이러한 표현과 설정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한 감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일 수도 있어 보인다.
‘스카이 크롤러’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궤적이 큰 포물선을 그리고 돌아온 자리가 다시 출발점인 것처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쟁이란 표면적 배경에 반환점을 돌아 다시 원위치로 회귀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거부할 수 없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와 흡사한 구조로.
이런 부동,불변의 윤회 속에 영화 속 핵심과도 같은 ‘킬드렌’의 운명을 짊어진 두 남녀가 존재한다. (주:킬드렌이란 유전적인 조작으로 성장이 멈춘 인간을 말하며, 이들은 죽을 때까지 청소년기의 상태를 유지한다.) 새로 전출된 파일럿 칸나이 유이치와 베이스 사령관 쿠사나기 스이토의 만남은 무미건조하게 시작된다. 형식적인 군의 계급에 의한 구분으로 유이치는 스이토의 명령을 받고 미션을 수행하는 종속적인 행동을 초반에 보인다. 조금씩 접근하는 그들에겐 유이치가 모는 전투기의 전임자 ‘쿠리타 진로우’의 존재가 주목되기 시작한다.
비행단 에이스 이었던 진로우는 전선에서의 전사가 아닌 다른 이유를 유명을 달리했고 그 빈자리에 유이치가 배속되어 어쩌면 그와 똑같지만 조금씩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간다. 이런 설정 속에서 거부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태생적인 운명인 킬드렌으로 태어난 두 사람의 인생은 짧은 시간동안 변하기 시작한다. 과거 진로우와 스이토의 관계와 현재 유이치와 스이토의 관계가 비교되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한다.
과거의 두 남녀는 그들의 태생적 한계를 결국 자의에 의한 죽음으로 종결되었다면 현재의 두 남녀는 유이치에 의해 그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로 유이치는 그들의 절대자일수도 있고 모든 금기를 내포하는 ‘티쳐(Teacher)’라는 적군 에이스에 도전하다 이카루스의 비극처럼 결국 격추되며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며 끝을 맺는다.
영화는 이렇게 유한성을 가진 두 인물에게 소극적이지만 처절하게 영원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준다. 마치 인형 같은 삶인 스이토에게 어쩌면 두 번째 만남일 수 있는 유이치는 그녀의 몸에 피가 돌고 체온이 느껴지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런 부분은 역대 자신의 작품에서 감독이 보여줬던 틀에 박히고 종속된 나약한 영혼들에게 무한한 연민과 동정을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과 동질감을 유지한다. 더불어 어쩌면 현실 속 스이토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는 몽상가스러운 메시지를 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항상 지나가는 길이라도 다른 부분을 밟는 경우가 있다. 항상 지나가는 길이라고 해서 경치가 똑같은 건 아니다. 그것만으론 안 되는 건가? 그것뿐인 거니까. 안 되는 건가?”
마지막 유이치의 대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돌고 도는 운명의 틀 속에 벗어나려고 버둥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