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갱들 - A Fistful Of Dynamit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 동안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공중파 방송 주말에 편성된 외화 중 EBS에서 하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이탈리아 웨스턴을 만나게 되었다. 분명 몇 차례나 봤던 영화였었다. 그것도 TV를 통해 봤었고 아마도 계속 잊혀지고 지워지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같은 영화임에도 이번만큼은 각인이 될 만큼 영화 속에 내포하고 있었을 다른 요소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요즘 출판계에 봇물처럼 터진 혁명관련 서적이 아마도 이런 요소를 찾은데 많은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배경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1900년도 초반 서부시대의 막바지 상황인 멕시코는 ‘혁명’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판초 비야(José Doroteo Arango Arámbula)사파타 (Emiliano Zapata)로 대변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존이 이질적인 문명의 상징인 오토바이를 타고 멕시코를 가로지른다. 그곳에서 가족단위 좀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후안을 만난 후 그들에게 강 건너 불구경일수도 있었을 멕시코 혁명과 직접적으로 부딪친다.

영화 처음 장면, 좀도둑 후안은 소위 가진 자에 대한 열등감과 함께 조롱을 표현한다. 그가 타깃으로 잡은 역마차에는 자본과 타락의 상징을 뜻하는 인물들이 타고 있다. 지주나 공증인, 귀부인과 성직자, 그리고 미국인이 타고 있던 호화로운 역마차에 동승한 그는 모욕을 당하나 잠시 후 그들의 가족이 역마차를 습격한 후 목숨을 구걸하는 그들을 실컷 조롱하며 벌거벗겨 짐마차에 실어 살아남기 힘든 멕시코의 사막에 내버린다. 이렇게 영화의 한 축을 지탱하는 후안은 빈민과 지배층을 상징하며 부르주아에 대한 분노와 혁명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우연히 털려고 했던 은행이 정치범 수용소인걸 모른 채 그곳의 죄수들을 풀어주고 혁명의 영웅이 된 후안은 존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혁명의 정의를 부르짖는다. 



‘혁명 그건 소위 배운 사람들과 가진 자들이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다. 라는 속임수를 이용해 벌이는 행동이야.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배부르고 풍요롭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혁명의 와중에도 여전히 가난하고 배가 고프다고.’

그가 멕시코 전역을 피로 물들이며 진행되었던 혁명에 판초 비야를 비판하며 사파타를 운운하며 하는 이 말은 어쩌면 그 당시 혁명을 체험하고 있었던 멕시코 민중을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안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정부군에게 자신의 자식이 몰살당하며 점점 혁명의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내 자식이 몇 명인지도 몰랐어...이렇게 죽어서야 세어보니 몇 명인지 알겠군.’

이런 후안을 바라보는 존 역시 타국 땅에서 벌어지는 혁명을 고스란히 자국(아일랜드) 독립 투쟁과 연계하는 과정을 거친다. 폭약 전문가인 그는 이미 테러리스트란 이름으로 현상수배 중이다. 우연히 멕시코 군부의 고용으로 은 광맥의 발파작업을 위해 향하던 그는 길거리에서 좀도둑 후안을 만나 후 예정했던 그의 일상은 또 다시 혁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이기도 한 Duck you sucker!(엎드려 멍청아!)를 외치며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는 그는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에서 깊은 상처를 받고 멕시코로 도주 아닌 도주를 한 상태다. 조국의 혁명에 이바지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동료들을 잃고 그 친구를 직접 제거까지 하며 겪었을 혁명의 실패와 냉소를 품고 있다.

이런 존은 능청스런 후안과의 만남 후 점차적으로 멕시코 혁명의 중심부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메사 베르데의 봉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진압에 성공한 정부군의 고문에 못 이겨 동료들을 밀고행위를 숨긴 봉기의 주체자인 의사와 함께 추적하는 정부군을 막기 위해 마지막 임무를 자처한다.  



‘내가 다이너마이트를 처음 만졌을 땐 이것 말고도 믿는 것이 많았지..하지만 지금은 내가 믿는 건 이제 다이너마이트 밖에 없어..’

역주행하는 기관차에서 밀고자 의사에게 이런 말을 남기며 자신이 혁명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밝히며 선택권을 쥐어준다. 영화의 마지막 자신이 친구를 제거한 이유가 단지 배신자, 밀고자의 의미와는 별개로 사랑하는 여자의 연적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는 일종의 고백적인 회상 장면 후 장렬하게 폭사하며 이 거칠고 황량한 두 사나이의 혁명은 끝을 맺는다.

단지 배경이 황량한 멕시코 사막이고 국내 제목에 석양이 붙었다고 해서 이 영화를 흔히 미국 사극이라 일컬어지는 서부영화로 판단하면 감독에 대해 크나큰 실례라고 보고 싶다. 이탈리아 웨스턴의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부영화만을 만든 감독이 결코 아니다. 그의 영화가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대변되는 비정한 인간 군상들의 막장인생을 표현한 서부영화로 대표되긴 해도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같은 4시간짜리 희대의 명작도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이탈리안 웨스턴에서  불멸의 명작으로 가는 과도기적은 연결하는 역할이상으로 이 영화의 가치는 높아 보인다.

코믹스런 처음장면을 시작으로 점점 영화는 무겁게 가라앚기 시작한다. 혁명군의 대규모 학살 장면과 정부군을 저지하기 위해 존이 일으킨 다리 폭파 장면, 그리고 똑같이 정부군을 학살하는 혁명군의 모습, 영화의 마지막 열차 충돌을 일으킨 후 존의 최후까지 명감독에 걸출한 두 배우의 명연기, 엔리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까지 2시간을 넘어가는 시간에도 이 영화는 처지는 구간 없이 일정한 수위를 유지시킨다.

명작이라는 의미는 크게 까다로운 구분이 필요치 않는 것 같다. 벌써 38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감독과 주연배우 두 명은 운명하였고 음악을 담당한 엔리오 모리코네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세월의 깊음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자그마한 TV 브라운관에서도 그 영향력을 선보이고 있다.    

뱀꼬리 : http://blog.aladin.co.kr/mephisto/2657539 

 

 



 

판초 비야(José Doroteo Arango Arámbula)

878년 6월 5일 산후안델리오 아시엔다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도로테오 아랑고(Doroteo Arango)이고 프란시스코 비야(Francisco Villa)라고도 한다. 농장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일찍 부모를 여의었다.

어려서부터 농장노동자로 일했으나, 1894년 누이를 강간한 농장주인을 살해하고 멕시코 북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1910년까지 광산에서 일하거나 산적떼에 들어가 도적질을 하였으나, 훔친 돈과 물건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신망을 얻어 조직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1909년 F.마데로(Francisco Madero)가 P.디아스(Porfirio Diaz) 정권의 독재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자, 1910년 자신을 따르던 게릴라 세력을 이끌고 이에 가담하였다. 이후 강한 카리스마와 연이은 승리로 멕시코 북부지역을 평정하면서 민중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혁명이 성공하자, 민간인으로 돌아가 토지 재분배와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였다. 그뒤 오로스코(Orozco)가 마데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다시 싸움터로 나갔다. 1913∼1914년에는 마데로를 암살하고 정권을 잡은 V.우에르타(Victoriano Huerta)를 축출하기 위하여 V.카란사(Venustiano Carranza)와 연합하여 저항군을 지휘하였다.

1914년 카란사와 결별한 후 카란사 당파와 내전을 계속하였다. 1916년 미국이 카란사를 지지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뉴멕시코주에 있는 콜럼버스를 습격하였다. 그를 잡기 위해 J.퍼싱(John Joseph Pershing)이 이끄는 수천의 병력이 파견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0년 카란사가 암살되고 A.우에르타가 멕시코 임시 대통령이 된 뒤, 혁명군으로서의 삶에서 은퇴하였으나, 1923년 7월 파랄에서 암살당하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사파타 (Emiliano Zapata)

남부의 모렐로스주(州)의 소농(小農)으로 1911년 빈농들과 공동체 농민(인디오)을 이끌고 멕시코 혁명에 참가, 그 승리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혁명 지도자 F.I.마데로(1873∼1913)와 토지개혁 문제로 대립, 이듬해 11월 빈농과 공동체농민에 대한 토지 재분배를 규정한 ‘아야라 계획’을 발표하고, 그 뒤 마데로, V.우에르타(1854∼1916), 카란사로 이어지는 중앙정부에 대하여 무장투쟁을 계속하였다.

1914년에는 북부의 빈농 출신인 빌랴와 동맹하여 수도를 점령하였으나, 1915년 카란사파(派)의 반격으로 쫓겨나 모렐로스주에서 게릴라 활동을 계속하다가 암살당하였다. 그의 주장은 후에 사파타파의 군사적 ·정치적 압력으로 카란사로 하여금 토지개혁의 공약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고, ‘아야라 계획’도 1917년에 토지개혁을 규정한 조항인 헌법 27조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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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초롬너구리 2009-03-0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에, 다이너마이트 얘기한 부분은 좀 슬프네요. 여하간 원작 제목이 저렇군요.

Mephistopheles 2009-03-09 17:37   좋아요 0 | URL
영화 자체가 처음엔 코믹적인 표현으로 이어지다가 점점 깊게 깊게 진중해진다죠. 암튼 세월이 흘렀음에도 대단한 영화입니다. 시간되시고 여건되시면 꼭 한번 보도록 하세요. 로맨스는 아니지만 제법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