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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JUSTICE 1 - 정식 한국어판 ㅣ 시공그래픽노블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외 그림,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아이들이 높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치거나 귀한 생명을 잃게 되는 사건들.
요즘이야 이런 뉴스가 잘 보이질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빈번하게는 아니지만 뜨문뜨문 발생되었던 사건인데 말이다. 대게 사고가 난 아이들의 공통적인 복장은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름대로 이름 붙이자면 "슈퍼맨 신드롬"이라고 해야 하나. 크립톤 행성인인 슈퍼맨, 포괄적 의미로 에일리언인 그의 초인적인 활약상에 매료되어 마치 자기도 그와 같은 신체구조가 아닐까 하는 어리고 미숙한 마음에서 혹은 객기에서 비롯된 사건 이였을 것이다.
하긴 나 역시도 태어나 처음 찍는 엑스레이가 6백만 불의 사나이처럼 기계부속품이 잔뜩 찍히는 사진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결론이야 당연하게도 허연 뼈가 나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엑스레이가 나왔으니까..이렇게 내 유년시절에 알게 모르게 많이도 영향을 줬던 미국산 슈퍼히어로들의 인식은 머리가 커가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입고 있는 복장에서 벌써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경이 조금씩 희석되어져갔다.
세상에나 쫄 바지 위에 빤스를 걸쳐 입다니..이건 변태도 보통 변태가 아니다. 란 판단으로 시작된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판단기준은 종국에는 팍스 아메리카나로 점철된 다분히 정치적인 잣대로 거부되어지고 멀어져 갔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알게 모르게 지나갔을지도 모를 30대 중반. 나는 다시 그들을 찾기 시작했다. 허무맹랑한 그들의 초인적인 능력의 맹목적 동경이라기 보단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온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그와 더불어 빡빡하게 돌아가는 현실세계에서 아주 약간이나마 도피처를 마련하고자 싶은 닳고 닳은 사회인은 약아빠진 도주였을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할리우드 극장가에 걸리기 시작한 DC코믹스의 라이벌 격인 마블판 슈퍼히어로들의 영화들도 제법 성공을 거두고 있고 이에 부흥하여 국내에서도 속칭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이러한 DC코믹스들이 제법 근사한 퀼리티를 가지고 출판되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캐릭터들과 함께 다양한 히어로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내가 택했던 책은 어쩌면 이들의 종합선물셋트적인 성격을 가진 저스티스란 3권짜리 단행본 이였다.
하나의 슈퍼히어로가 아닌 코믹스 주연급 등장인물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패거리로 몰려나오는 저스티스는 등장인물들의 볼륨감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출판된 이런 종류의 책들을 월등히 압도하는 모습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이 렉스 루터(슈퍼맨의 악당)를 집단린치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슈퍼히어로들의 패거리에 맞서서 그들의 숙적들도 역시 조직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 저스티스란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단점으로 변이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정의를 부르짖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의 화려한 멤버들로 인해 스토리가 집중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에 주연을 차지하고도 남을 배우들을 모아 만든 영화가 산으로 가는 듯 한 느낌처럼 말이다. 더불어 문화권이 다른 나라이기에 생전 처음 접하는 낯설고 새로운 슈퍼히어로들과의 만남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치더라도 한 장 한 장 혹은 한 컷씩 자리 잡고 있는 만화는 대사가 들어간 말풍선이 민망할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일러스트로 꽉꽉 채워 조금은 산만해진 서사가 들뜨는 것을 가라앉혀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서비스일지도 모를 그들의 새로운 코스튬을 마지막 권에서 보여주는 장면까지 따진다면 책 자체 구입을 후회할 여지는 없다고 보여진다.
단. 우락부락한 근육질(원더우먼도 굉장한 근육질로 묘사된다.)에 거부반응이 있거나, 야들야들하며 동적인 일본만화 캐릭터에 익숙해져 이와 반대적 성향을 가진 만화를 기피한다면 권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