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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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 타이틀에 그동안의 혼불문학상 수상작의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한국적인 색채, 한국적인 한에 관한 책이 대부분이었던 혼불문학상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의 책소개를 읽으면서 조금 의아했다.

약간의 결이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파이" 과연 이 소재가 그동안의 혼불문학상 수상작들과는 어떤 연결지점이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난 총평부터 시작하고 가야할거 같다.

나에게는 정말 어려웠다.

마치 인문학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로 되어있고, 더구나 소설이라서 그다지 어려운 단어도 없는데도 전체적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는데 힘들었다.

정확한 이름도 없고, 신분조차 정확치 않은 주인공들의 더듬어가는 모습들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에게까지 전염되어 혼돈만을 남겨주었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아직도 혼돈뿐이다.

다른분의 책소개를 읽었는데, 나와는 전혀 다른 결론으로 서평을 썼다.

이게 뭔가 싶다.

내가 놓친 것인지, 아니면 그분이 잘못 해석한 것인지 (그럴거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어쨋든 혼돈과 애매모함으로 끝이 나버렸다.

그래서 이게 뭔가 싶지만, 하나의 메시지는 정확히 다가온다.

"현대인들의 정체성"

결론이나 그것의 해석이 그리고,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게 혼돈인 이유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인 언니가 사라진 쌍둥이 동생 D, 19살 이후의 기억이 사라져 버린 X, 그런 X에게 인위적인 기억을 심어주려는 스파이 Y, Y의 상사이면서 스파이계의 중간보스인 B, B와 Y에 의해서 감시당하는 Z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D는 쌍둥이 언니가 왜 사라졌는지 모른채 언니를 대신해서 손님들의 정신과 상담을 해주고 기억하지만, 자신의 신분조차 국가에 기록되지 않은 존재이다.

X는 19살 이후의 기억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그 기억을 찾는 대신 스파이가 되어버렸고, 누구의 사주인지도 누가 자신을 감시하고 지시하는지도 모른채 스파이 일을 한다.

Y는 수많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스파이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려 무엇이 진실인지 관심조차 가지려하지 않는다.

B는 안정된 직장, 안정된 가정을 가졌음에도 진실에 대한 양심에 대한 내적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Z는 가난한 소설가로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쓰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소설을 쓴다.

이들은 각 장마다 주인공이며 화자이다.

기억이 없는 자나, 정체성이 없는 자,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이 없는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들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찾을수 있을까 싶다.

처음부터 작가는 이런 애매모함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었던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나는 몇가지의 단서들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그중에서 "패자들의 서"가 단연코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소설이다.

즉, 그것은 진실과 양심을 반영하지 않은 왜곡된 기억과 조작의 흔적이다.

우린 그런 역사를 배우고 그 역사들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역사를 쓰는 승자들은 1% 그 미만이다.

거의 99%이상의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그들에게 역사는 거짓이다.

99%이상의 사람들이 삶이 진실과 양심이지만, 그것들은 역사속에서 살수 없다.

그럼 99% 이상의 사람들은 진실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과 양심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주위에서 우리가 진심으로 믿고 따랐던 것들이 거짓이고 조작이고 왜곡이었다는 것을 많이 보았다.

가장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것이 선거공약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실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만 말할수 없다.

사회적 분위기에, 여론에, 거짓에, 가면에 속고 또 속는다.

우리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질문을 작가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어려웠고, 쉽지 않았던 거 같다.

기존의 혼불 문학상과는 꽤 다른 결의 독특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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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 최민석 초단편 소설집
최민석 지음 / 보랏빛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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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최민석 작가의 소설이다.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면서 등단하였고, 단편뿐만 아니라 장편소설도 꽤 발표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쵬니석 작가의 책으로는 처음이다.

처음 읽은 최민석 작가의 소설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여러 주제의 단편들이 서로 마구잡이 튀어나오고 있어서, 이건 뭔가 싶기도 했는데, 끝까지 읽고나니 결국 한 지점으로 모두 귀결되어 버렸다.

단편들도 모두 초단편이었다.

가장 긴 이야기의 단편이 페이지 수로 12페이지 정도였다.

모두 43개의 단편들이 256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평균 6페이지 정도 할애된 초단편이었다.

그래서, 가독력이 좋고, 빠르게 읽히며 지루할 팀이 없다.

한가지 주제로 단편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미시시피 모기떼, 탐정 김평관, 진실의 코트, 이재만, 소피아, 이리네, 개 등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ㅎ나다.

시간순서도 없이, 장소의 연결고리도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야기들이 튀어 나온다.

튀어나온다는 말이 좀 이상할수 없지만, 내게는 팝콘이 튀겨지는 상상이 되는 소설이었다.

단편마다 제목은 있지만, 단편의 한 부부만 집어내는 제목이라서 제목을 읽고서는 소설의 이야기를 가늠해내기 어렵다.

솔직히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야기들이 모두 독립적인줄 알았는데, 앞에 나온 연속되 이야기가 갑자기 다시 등장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 초단편들이 사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듯 했지만, 마치 미시시피 모기떼처럼 한순간에 역습을 가한다.

결국 이야기는 나, 즉 작가 최민석과 탐정 김평관이 갑자기 출현한 미시시피 모기떼와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책을 덮으면 허무와 동시에 놀라움이 다가온다.

허무함은 미시시피 모기떼의 결말 때문이고, 놀라움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미시시피 모기떼의 결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프레임을 처음부터 작가는 짜놓고 시작했을까? 아니면, 등장인물 (주인공)들과 결론만 지어놓고 초단편으로 쓴 것인지 궁금해졌다.

뭔가 모래알 처럼 따로따로 굴러다니는 느낌이면서도 모래시계처럼 모래들이 한방향으로 모여 결국 시간을 알려주듯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구성된 것 같았다.

각자의 이야기들이라고 보기에도 내용이 황당하고, 엉성하지만, 마구잡이 식으로는 보이지 않아 헷갈리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시계를 비교하면 오색찬란하고 형광, 야광까지 섞여있는 총천연색 모래시계 같았다.

다른 비유를 하자면,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양탄자를 짜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다양한 색실이 씨실과 날실로 겹쳐지는데, 그 과정에서 이상하고 무늬가 나올거 같지 않은데, 막상 모두 끝내고 나면, 아름다운 양탄자가 되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43개의 단편들 중에서 추천하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없다.

솔직히 내용이 유치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을 두드리는 여자, 맥주 3리터를 원샷하는 여자, 냄새나는 남자, 개로 변하는 남자, 레오 까락스 DVD나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 시와 바람 밴드의 노래를 틀으면 지루해서 못 살겠다는 듯 죽는 미시시피 모기떼, 말도 안되는 정부의 음모 작전, 엉뚱하고 거의 찍기 수준에 가까운 바보아님 천재인 명탐정등등이 등장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구성력이 너무나 뛰어났다.

깔대기도 이런 대형 깔대기가 있을까 싶을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졌다가, 미시시피 모기떼와 함께 빠져나간다.

이런 독특한 작품은 아직 만나본적이 없는 것 같다.

비슷한 류의 책으로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호불호가 매우 갈릴수 있는 스타일의 작품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국소설의 다양성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에게 이 최민석 작가의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매우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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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첫사랑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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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첫사랑>은 연극, 영화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작품 제목은 꽤 많이 들어왔지만, 솔직히 아직 제대로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유명한 <황태자의 첫사랑>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원작 소설의 형태로 완벽하게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작 소설 형태로 읽고 싶은 마음에 서평단을 신청했고, 운좋게 책을 읽게 되었다.

읽고난 내 느낌은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 대학교 1학년때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장소만 하이델베르크이고, 주인공이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라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카를부르크의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는 엄격하고 규칙적인 궁정생활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세상 물정을 익히고, 학업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하이델베르크의 학교에 유학가게 된다.

카를부르크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일들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벌어진다.

규칙적이고 규범적인 궁정생활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대학생활이 펼쳐진 것이다.

맥주도 마시고 싶은 시간에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학우회들끼기 경쟁도 하고 결투도 하는 등등 궁정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황태자는 마차가 다니는 길을 걸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니, 이런 상황이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곧 호기심으로 바뀌고 곧 그들속에서 함께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더구나 황태자의 숙소도 고급 호텔이 아닌 상대적으로 허름한 숙소로 정해지면서 그곳에서 케ㅣ티라는 여자아이도 만난다.

이제 20살의 청춘인 황태자에게 이 모든것은 불꽃이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궁정생활처럼 융성한 대접을 동반한 억압된 상황이 아닌, 그냥 억압만 존재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야간 자율학습에 학원에 시험에 입시에 숨막히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대학교 입학을 하면서 수업도 내맘대로, 100% 출석을 요구하지 않으니 출석도 내맘대로, 도강도 대리출석도 가능하고 동호회에 선배들까지...

마치 막아놓은 댐이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늦게 까지 공부하던 상황은 늦게까지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불타는 청춘의 시간에 사랑도 이별도 싸움도 있었다.

그래서,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의 모습을 보면서 내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취직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다시 학점이라는 것이 신경을 쓰게 된 모습까지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는 나의 대학시절을 매우 닮았다.

심지어 호기심과 순간적인 감정에 따른 첫사랑 역시 매우 비슷했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읽고나니 "첫사랑"에 방점을 찍은 소설이 아니라 "황태자의 성장통"에 방점이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불꽃같은 20대 초반.

그 시절을 보낼수 있었던 황태자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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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보쟁글스
올리비에 부르도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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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미스터 보쟁글스'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다.

네이버 블로거 monet3015님 블로그에서 미스터 보쟁글스의 세가지 버전을 만나볼수 있었다. (http://monet3015.blog.me/110168432065 참조)

책에도 등장하는 Nina Simone버전, 1985년의 Sammy Davis버전, 1971년 Jerry Jeff Walker의 원곡까지 잘 정리되어 만나볼수 있다.

Nina Simone버전은 느리고 차분하고 슬픈 Blues/ Jazz 버전이고, Sammy Davis버전 춤을 추며 경쾌하게 진행되는 버전이다.

책에서도 소개하듯 Jerry Jeff Walker의 원곡을 들어보면 슬픈 가사에 비해서는 일반 레코드보단는 빠른편인 45rpm으로 불러진 곡이었다.

처음에는 왜 책 제목이 <미스터 보쟁글스>인지 궁금했따.

그저 주인공인 엄마 아빠가 춤을 출때 항상 이 음악 "미스터 보쟁글스"에 맞춰 춤을 추는 것 이외에는 작가가 책 제목으로 이 노래 제목으로 선택하였는지가 궁금했따.

하지만,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이야기에 압도되었고, 그러면서 노래가 듣고 싶어졌고, 노래를 듣고나서는 이 소설 제목으로 <미스터 보쟁글스>이외에는 다른 것일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분명 처음은 Sammy Davis 버전의 미스터 보쟁글스 였다.

그러나 중반에서는 Jerry Jeff Walker 버전의 미스터 보쟁글스가 등장하면서 마지막은 Nina Simone 버전의 미스터 보쟁글스로 끝이 난다.

음악과 이렇게 매치되는 소설도 거의 처음인거 같았다.

 

주인공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소년이다.

정확히 나이를 짐작할수는 없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아니 학교 생황에 적응할수 없는 가정의 분위기로 자퇴를 하고 집에서 엄마 아빠에게 배우는 소년이다.

사회 질서라는 것에 익숙하지도 물들어 보지도 못한 소년의 눈으로 엄마와 아빠의 생활이 그려진다.

여기 또하나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작성한 비밀수첩의 이야기.

소년이 화자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에는 Sammy Davis버전처럼 춤을 추며 경쾌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소년의 아버지가 작성한 비밀수첩의 이야기가 진행될 때에는 Jerry Jeff Walker의 버전으로 진행된다.

보통의 부모들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소년에 눈에는 즐겁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로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이런 일들이 조금은 슬프게 그러나 가능한 슬픔을 즐거움으로 이겨내려는 의지의 모습이다.

이런 두 시선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사건은 절정에 치닫고, 결국 가장 슬프고 슬픈 Nina Simone버전으로 끝이난다.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사랑이 가진 숙명적인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런 사랑이 있을까? 이런 사랑을 할수 있을까?

참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오랜시간 기억에 남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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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본질
올더스 헉슬리 지음, 유지훈 옮김 / 해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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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개에 이런 글이 있다, "<멋진 신세계>의 천재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최고작".

책을 모두 읽고나서, 그 글귀를 계쏙 째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난 범인이야. 천재가 하는 이야기가 뭘 말하려는지 전혀 모르겠어"

어렵다는 말보다는 모르겠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어렵다고고 보기에는 다 아는 소재와 인물이었으나, 뭔가 산만하고 스토리가 빈약하다.

그렇다고 마구마구 무작위적으로 쓰여진 것은 아닌것 같은데, 하여간 무언가 정의하기도 힘들고, 뜬구름 잡기식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올더스 헉슬리 팬이 아니라면 미리 다른 서평들을 읽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그래서 서평을 쓰기에도 난감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정리 또는 추정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설은 크게 두개의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왜 이 구성을 채택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는 밥 브릭스와 내가 소각장으로 향하던 탤리스의 각본인 '원숭이와 본질'을 발견하여 탤리스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밥 브릭스와 탤리스를 등장시키면서 겉만 번지르한 영화 세계의 이면과 탐욕에 대한 언급이 함께 진행되는 거 같았다. (정확하지는 않은 추정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바로 '원숭이와 본질'이라는 탤리스의 각본이 등장한다.

내레이션과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극형식으로 쓰여 있는데, 참 여기가 더 난해하다.

마치 어두운 밤에 바람부는 상황에서 촛불을 들고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는 상황과 비슷하다.

뭔가 잡힐듯 하면서도 사라지고, 여긴가 싶으면 다른 곳이 나오는 그런 황당한 상황이 연속된다.

원숭이들이 영국의 화학물리학자 패러데이, 아인슈타인을 오만하고 상식없는 인간으로 재판한다.

그리고, 알프레드 풀 박사와 온몸에 NO 라는 글씨를 쓰고 있는 가리개를 하고 있는 룰라가 등장한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망한 시대로 등장한다.

미국 이외에 어떤 나라들이 멸망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알프레드 풀 박사와 에델 후크가 뉴질랜드에서 왔고, 그곳은 건재하다.

권력의 탈을 쓴 사회의 대표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선택했고, 그곳을 멸망하게 한거 같다.

식물연구를 위해 방문한 풀 박사는 황소 채찍과 매장분대가 있고, 벨리알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납치된어 그곳에서 룰라를 만난다.

그 사회는 도서관 책으로 세상을 배운 대주교가 존재하고, 대주교가 풀 박사와 지식을 나누면서 과거의 세상, 현재의 세상, 미래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나 결말이 아니었다. (솔직히 뭔가 싶을 정도이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와 내레이션이 중요하게 보였다.

그곳에 인간에 대한 실망스러움과 인간 본성에 대한 혐오, 인간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었다.

우스꽝스럽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멸망 후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무지와 어리석음 그리고 오만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올더스 헉슬리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한 주제를 너무나 불친절하게 그리고, 맥락없이 툭툭 던져내고 있었다.

더구나 1부와 2부의 연결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굳이 1부인 탤리스를 찾는 밥과 내가 등장했는지 이해할수 없어서 더욱 어려웠다.

책소개에는 열린 마음으로 읽으라고 하지만, 수준있는 상식이 없고, 올더스 헉슬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읽기 힘들것이다.

유쾌하다고 하기에는 우울하고, 우스꽝스럽다고 하기에는 이상하고, 이해될듯 이해되지 않는 소설이었다.

올더스 헉슬리를 너무 모른채 시작해서 당황스럽게 다가온 소설이라서 이 서평을 읽는 독자는 어느정도 올더스 헉슬리를 또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시작하길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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