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의 국경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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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작가의 책은 <슬롯>을 읽었었따.

꽤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기에 이번 새로운 작품인 <유희이 국경>을 보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나니, 신경진 작가의 <슬롯>과 겹쳐지면서 이상동 헝가리 문학 박사의 서평처럼 예리하고 도발적인 이야기의 전개와 빠른 흐름이 다시 신경진 작가를 기억하게 하였다.


소설은 "이혼하자"라는 네 단어 한문장의 문자 메시지에서 시작된다.

이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차영희, 문자 메세지를 며느리에게 보낸 것이다.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신유희로 이소설의 주인공이고, 6개월간 남편 정상훈과 별거하고 있다.

문자 메시지를 그것도 "이혼하자"는 문자 메시지를 별거중인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니가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신유희의 결혼 생활은 뻔하다.

재단 이사장인 시어머니, 시어머니 재단 법인 대학의 정ㅊ치학 교수인 남편, 그리고 가난한 작가인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신유희.

모든 것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진부한 스토리이다.

시어머니와의 만남에서 이혼을 하지만, 남편의 출마를 위해 1년 동안 이혼을 미루고, 대신 실제 이혼상태를 유지하는 댓가로 건물을 주겠다는 시어머니의 각서를 들고 돌아온다.

이 사건은 신현우 작가, 즉 유희 아빠의 예측대로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선의의 행동이 불행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예감하였으나, 상대방 즉, 시어머니의 요구를 들어주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실질적 이혼상태라는 시어머니의 말만 믿고, 신유희는 "자유"라고 느낀다.

박다니엘이란느 건장한 사내와 연하면서 협력업체 엔지니어인 한민중, 그리고, 지우라는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직장 사장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신유희는 세남자, 아니 네 남자 사이에서 각기 다른 감정들을 느끼면서 그들과 섞여 지내게 된다.

결국 신유희의 망상적 행복한 의식과 자유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런 망상과 자유는 시어머니가 사람을 써서 자신을 미행하였고, 사진을 직고 뒷조사를 하고 있따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차츰 베일을 벗는다.

특히, 남편인 정상훈이 공천을 받게 되면서 망상은 차디차고 참혹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신유희의 아버지 신현우가 집필한 <국경>이라는 책.

그리고, 그 책속에서 찾아 떠나는, 또한 신유희가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엠버르 오르삭 (인간의 나라).

5살 어린 남자와 음독 동반 자살을 한 신유희의 엄마.

그리고, 책속의 모든 이들이 찾고자하고 갖고자 한 것들.

Glykos to (살인자의 호수)라는 무서운 이름의 장소에서 만난 것.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나라, 엠베르 오르삭의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 신현우는 "희망이 있다면 노동자뿐이었다"라고 말했지만, 신유희는 "희망이 있다면 사랑뿐이다"라고 말한다.

정답도 없고,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자유 의지"가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신경진 작가의 특징이 드러난 소설이다.

<슬롯>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 <유희의 국경>을 자동차 운전여행에 비교하면,

초반은 60km/s으로 편도 3차선 직선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초반은 여행의 시작과 같이 새로운 인물의 만남등으로 호감이 간다.

하지만, 중반도 역시 같은 속도로 달린다.

그래서 지루해 진다.

그런 지루해진 여행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커브길이 나오고, 시속 100km~120km의 빠른 속도로 달려낸다.

결국 그 빠른 속도는 곧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앞에서는 좀더 빠른 속도를 내거나, 직선도로가 아니라 커브길을 넣고, 뒤에서는 좀더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진행하면서 여행을 마루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슬롯>도 비슷하였지만, <유희의 국경>은 <슬롯>에 비해 좀더 깊은 생각의 시간이 필요한 작품인거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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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 학교에 갇힌 아이들
마이클 노스롭 지음, 김영욱 옮김, 클로이 그림 / 책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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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책 소개를 읽자마자, 윌리엄 골딩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파리대왕>이 생각이 났다.

핵전쟁을 피해 비행기에 탑승한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으로 인해 무인도에서 표류하면서 발생하는 일들을 다룬 작품이었따.

이 작품에서 고립된 무인도, 아이들만의 고립이라는 점에서 <트랩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파리대왕>을 연상케 한 것이다.

<파리대왕>의 소년들은 무인도라는 한정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이 가진 추악한 탐욕과 무시무시한 악마성을 드러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학교는 심각성을 깨닫고, 1시에 조기 하교를 결정하고, 스쿨버스에 아이들을 실어 집으로 보낸다.

이런 경우 항상 스쿨버스를 안타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데, 이 학교에서는 7명의 아이들이 일탈을 한다.

주인공 스코티 윔스와 그의 절친, 피트 두보이스, 제이슬 길레스피는 실습실에서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 학교에 남아 있었다.

그외 문제아로 찍힌 레스 고다드, 주인공 스코티가 짝사랑하는 크리스타 오리아, 크리스타의 단짝 친구 줄리 앤더슨, 그리고 고스족처럼 음침한 기운을 보이는 엘리야 제임스가 역시 스쿨버스를 타지않고 학교에 남았다.

그리고, 마침 당직이었던 교사 고슬선생님까지.

고립 첫날 고슬 선생님은 구조를 위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되면서, 2미터 이상 쌓이는 눈때문에 아이들 7명만이 학교에 갇히게 된다.

엄청난 눈으로 고립 첫날 전기와 난방이 끊기면서 제한된 공간에서 난방과 전기없이 버티기는 시작된다.

 

제한된 공간에서 고립, 그리고 어른이 한명도 없이 남는다는것, 이러한 점에서 <파리대왕>과 구도는 같았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이 있는 점, 핵전쟁같은 인류멸망이나 문명파괴가 아닌 한시적인 자연재해라는 점, 어떤 식으로든 외부의 소리를 들을수 있다는 점, 야생이 아니라 인간이 지은 피조물인 학교라는 점, 고립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교라는 고립공간을 탈출해야만 살수 있다는 점에서 <파리대왕>과는 달랐다.

그래서인지, <파리대왕>에서 보였던 인간의 추악하고 잔인한 면보다는 10대들만의 발랄함과 친구들간의 우정등의 밝은 면이 두드러진 분위기였다.

아마도 앞서 말한 고립된 조건의 차이에 의해서 나타난 차이인거 같다.

비록 그들의 갇혀 있는 상황을 외부에서 모를수 있다는 불안감은 있지만, 전쟁같은 상황이 아니었고, 바깥세상은 눈폭풍우에서 점차 자기모습을 찾아가고 있었기에 구출될거라는 믿음은 가능성이 있는 믿음이었다.

음식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파리대왕>에서 아이들은 먹은 것을 구하기 위해 사냥과 채집을 해야 했지만, <트랩 학교에 갇힌 아이들>은 땅콩버터, 식빵, 햄, 통조림을 먹고 버텼다.

잔인한 살육이 없이도 풍족한 음식은 아이들을 극단으로 보내진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주변에서 있을수 있는 현실적인 "고립"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 책을 덮고나서, 성선설과 성악설이 생각이 난다.

난 성악설을 믿는다.

인간의 본성에는 악함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본성이 교육에 의해 "선하게 사는 법", "남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고 본다.

전쟁이라는 극한ㄱ에 몰리지 않고, 선하게, 남과 어울려 살던 아이들이 고립된 것이다.

극한에 몰렸다고 보지 않는다, 그냥 난제에 부딪힌 거라고 본다.

물론 마지막 부근의 피트와 스코티의 행동은 극한 상황에 놓였다는 판단아래의 희생이긴 했다.

그래서 이책을 읽고나서, 인간 본성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

가독력 있고, 벌어지는 재난의 상황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또, 이야기의 결말도 열려 있어서 꽤 좋은 추천할만한 책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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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의 검 소설NEW 3
김이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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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의 검"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하사한 검.

그리고, 금란가사; 신라의 대국통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함께 당나라에서 가져온 것.

인터넷을 찾아보니, 금란가사는 부처님이 걸친 가사인데 통도사에서 일본이 약탈해 갔다는 것을 찾을수는 없었고, 금란가사 환수위도 찾아지지 않았다.

김이수 작가는 소재로 금란 가사를 채택했고, 우국주의의 상징처럼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을 이용하여 그가 약탈한 소재로 금란 가사를, 그가 한국에 놓고간 소재로 가토의 검을 써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낸것이다.

꽤 리얼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워낙 일본에서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가 많은 탓에 당연히 통도사의 금란가사도 가져갔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중요한 히데요시가 선사한 검을 가토 기요마사가 한국에 놓고갔다는 설정은 인터넷을 찾아보게 만든 요인이긴 했다.

소설의 주요 소재에 대한 설명은 이쯤으로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 한다.


처음 소설의 도입은 전도유망한 국회 출입기자인 김영민이 어느 날 이복형인 김영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형의 죽음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형이 한쪽 귀가 잘린채로 차에 치여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후에 경찰 조사를 통해서 형은 뺑소니를 당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어 도로위에 버려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형이 세관관리국에서 물건을 빼돌린 혐의로 감사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형의 죽음을 파헤쳐 간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꽤 좋아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일본 추리소설을 읽었었고, 바로 연이어서 <가토의 검>을 읽고나니 앞선 일본 추리소설과 견주어서도 떨어지지 않는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반전이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중간중간 김영민 기자의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재미를 더해간다.

그의 어릴적 아픈 기억부분 돌이켜 생각해보면 복선이 되고 있었고,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범인과 작가에게 완벽히 속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 우국주의에 대한 경계심, 가토의 검, 금란가사 환수등은 모두 그냥 소재일뿐.

무릎을 치는 완벽한 한편의 살인사건이 살해피해자의 동생 김영민 기자의 감정들과 얽히면서 완벽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나서, 나는 닥터강의 이야기에 동의할수 밖에 없었다.

"사이코가 출세하는 이 사회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항상 착하고 돈없고 어리버리하면 코가 베이고 (아니 여기서는 귀가 베였다), 이용당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림받는 이세상...

범인에 대한 분노, 그리고, 씁쓸함과 여운.... 


김이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가토의 검>,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그의 다음번 소설이 나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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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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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문학상 제5회 수상작. 이 타이틀만으로 난 아마 이 책을 읽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역사상 좋아하는 선조들 중에서 한명인 전봉준장군, 녹두장군에 대한 소설이라서 더욱이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몇년전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열광하였다.
그때도 난 "한국판 레미제라블"사건이 바로 동학혁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우리의 역사는 왜 저렇게 그려지지 않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들었었다.
혼불문학상에서 전봉준 장군의 이야기를 다뤄주어서 너무 고마웠고 반가웠다.

전봉준 장군에 대해서는 그가 동학혁명을 일으킨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해서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국운이 넘어가고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을시기, 동학혁명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때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우리의 혁명이 성공했다면.
더 많은 동조가 있고, 배신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기대되면서 그립다.
욕심쟁이 민비와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대원군 사이에서 정치는 방향을 잃고, 친일파가 득세하고 백성은 핍박을 받던 그 시기.
살아남기 위한 선택은 혁명이었고,그 혁명에서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갔고, 조선의 병사들은 일본과 한편이 되어 자신의 백성들을 죽여갔다.
슬프고 안타깝고 너무나 비참한 우리나라 역사의 한페이지가 그렇게 접혀가는 모습이 <나라없는 나라>에 담겨있다.

전봉준 장군에게는 죽은 아내가 있었다는것, 결혼시킨 첫째 딸이 있었다는 것, 갑례라는 혼례를 치르지 못한 딸이 있었다는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조총부대가 앞장서는 일본군대를 죽창으로 막아내야 하는 암담한 죽음의 길에 "살아남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온 가족들.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 전봉준 장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라는 점에서 가슴이 저렸다.
한 가정의 아비이며, 누군가의 아들들이었을 사람들이 죽으러 가는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모습은 찬란하고 장엄하게 보였다.

과연 현대 사회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이렇게 나서는 사람들이 있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현재에도 싸우고 있다.
그런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미디어 매체들은 어떻게 그들을 매도하고 있는지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보여져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살아남아 있길 바란다.
마치 혼불처럼...
그래서, 이광재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기억해주고 파헤쳐주고 연구해주고 글로 만들어주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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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의 70마일 단비청소년 문학 11
로베르트 클레멘트 지음, 함미라 옮김 / 단비청소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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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유럽은 난민 문제로 골치아파하고 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사람들이 내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살아가기 위해 유럽으로 몰려오는 상황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몰려오는 난민에 EU의 나라들을 모두 소극적으로 대체하고 있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만이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적극적 난민수용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무조건 받아라고 말할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살기 위해 즉,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난민을 모른척하는 것은 죄악같이 느껴졌다.
특히 최근에 터키 해변에서 숨진채 발견되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의 사건이후에 생존을 위한 탈출하는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쪽으로 더 지지하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 맞춰 <천국으로의 70마일>이라는 책 출간을 만나게 되었고,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로베르트 클레멘트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의 소개를 보고 가장 와닿은 말은 "가장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삶 그 자체'이다라는 말이었다.
작가의 경력에 맞게 수많은 난민들을 상황을 조사한 후에 이 책을 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책에 대한 믿음감이 들었다.
하지만, 난민으로서 겪은 일을 직접 쓸수 있는 난민출신의 작가의 책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책의 주인공 사아드와 샤라가 무정부상태의 국가 소말리아에서 탈출하여 유럽으로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아드는 소말리아에서 디그퍼 종합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아내와 두딸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소말리아는 우리가 뉴스를 접하였듯이 내전에 휩싸였고, 집은 폭격을 맞았고, 아내와 큰딸은 사망하고 만다.
사이드는 막내딸 샤라를 데리고 소말리아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결국 배에 오르게 된다.
뉴스에서 보듯이 이런 난민들을 상대로 거금을 뜯어내는 난민장사가 판을 치고 있듯이 책에서도 도주를 돕는 업자들의 횡포가 드러난다.
밀항을 알선한 업주는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태웠고, 배 역시 나룻배와 같은 고깃배였고, 더구나 보트를 운전할 선장역시 없는 상태였다.
결국 그들은 보트피플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옥같은 소말리아에서의 탈출은 역시 지옥같이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기한없이 떠도는 배와 굶주림으로 지쳐가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
다행히 사이드와 샤라가 탄 배는 육지로 무사히 구출되지만, 난민 수용소의 삶또한 지옥같았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폭력성은 결국 생존을 위해 탈출한 난민들을 또다시 죽음으로 몰아간다.


책의 엔딩은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캐나다에 도착하였다고 하더래도 사아드와 샤라가 살아가기는 녹녹치 않을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로베르트 클레멘트 작가가 그렇게 그들에게서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결론으로 맺은것 같다.
사실 난민들에게 가장 좋은 해피앤딩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터전을 이루고 살수 있는 환경이지 않을까 싶다.
난민들을 도와주려는 노력도 전세계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난민이 발생하기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몇몇 못되고 사악하고 이기적인 어른들에 의해 전 국민들이 난민신세가 되는 이런 상황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나니, UN의 역할이 허울뿐이 아닌가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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