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파리를 걷다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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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첫 인상은 <올드> 그 자체였다. 온갖 네온 싸인과 쭉쭉 뻗은 대로 가득히 질주하는 차들로 가득찬 서울 사람의 눈에 파리의 첫 느낌은 <오래된 신비함>이었다. 사진들로만 봐 왔던 파리의 도시 곳곳은 정성들여 연출한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왔다. 

<올드 파리를 걷다> 제목을 보는 순간, 그때의 그 느낌들이 강렬하게 다가와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을 지 모르지만, 내가 보았던 십 수년 전의 파리의 거리가 그대로 펼쳐지는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그저 멋진 풍경과 감초 같이 곁들인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던 이 책은 인상보다 훨씬 더 묵직하다. 2010년 파리를 방문한 사진작가 진동선은 1890년대를 기점으로 온갖 만국 박람회가 열렸던 파리가 어떻게 변해 버렸는지, 각종 산업과 기계 문명으로 인해 파괴되고 버려진 <올드 파리>를 끈질긴 시선으로 찾아 다닌다. 그가 찾아다니는 <올드 파리>의 실마리는 일종의 도큐먼트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는 <외젠 앗제>의 시선이다. 

 

   
 

외젠 앗제 

1857년 2월 12일에 태어나 1927년 8월 4일에 세상을 떠난 파리 사진가다. 1868년에는 어린 선원이었고, 1876년에는 유랑 극단 배우였다. 1896년 파리에서 사진을 시작한 후 프랑스 문학과 미술에 초현실주의 영감을 제공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사진을 제공했다. 파리 현대화와 대도시화를 목도하고 그 모든 대도시적 시간과 사건과 역사를 카메라에 담았으나 정작 본인은 1927년 사진 1만 7천여 점만 남기고 쓸쓸하게 삶과 이별한 카메라의 서정시인이었다. p.32

 
   

  

   
  올드 파리의 몰락 - 낡은 도시, 오래된 건물, 비좁은 뒷골목이 붕괴된다...앗제는 올드 파리의 길을 걷고, 사진을 찍었다. 외상과 내상을 입은 옛 궁전, 교회, 건물, 어느덧 잊히고 몰락해가는 지난 삶의 풍경과 풍속을 카메라에 담았다.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비루한 삶의 거처, 직업, 사람들이었다.
앗제의 사진에 거대한 용광로와 목재 연료의 가마가 나란히 공존하는 사진이 있다. 증기기관과 나란히 수차가 내달리고, 휘황찬란한 백화점 옆에 낡은 구멍가게가 있다. 멋진 턱시도를 입은 신사 옆에 초라한 넝마주이가 공존하는 사진이 있다. 또 나자빠진 지난 시간의 잔해 뒤로 한껏 솟아오르는 철골,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 새로운 상품으로 채워진 상가, 만지지 말고 오로지 눈으로만 보아야 하는 쇼윈도 사진이 있다. 모두 옛 파리의 마지막 숨결을 암시한다. 사라진 시간을 누설한다. p.65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변해가는 파리의 마지막 모습들을 끊임없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앗제의 시선을 따라 저자도 골목 골목을 누비고 있다. 올드 파리의 찬란했던 영광과 혁명의 기치 아래 뿌려진 수많은 피의 울부짖음, 전 세계의 유행과 개방의 중심지가 된 파리의 빛과 어두움으로 가득찬 그 골목 골목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그 곳에 서려있는 역사와 인문학적 예술적 사실들을 풀어내고 있다. 

<사진 에세이를 넘어서 인문학적 에세이를 꿈꾸었다. 또 기행문을 넘어서 소설을 꿈꾸었다...p.388> 

저자의 에필로그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책은 사진집의 첫 인상을 무색케 하는 인문학적 에세이라고 정의해야 할 듯하다. 사라져 가는 올드 파리에 대한 감상에서 시작하는가 했더니, 사라져 가게 된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 그 시대의 문인과 예술가들의 감성을 서정적인 사진과 객관적인 자료들을 잘 버무려 놓고 있다. 

앗제가 활동하던 시기의 파리, 1890년대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파리는 그야말로 예술가들의 무대였다. 인상파 화가들, 초현실주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파리의 거리로 까페로 골목으로 모여들어 그 시대의 현재를 담아내고 미래를 그려내기에 분주했다. 그 시작은 <마네>였다. 

 

   
 

그에게 <인상<은 현대적 삶의 단상이다.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알리는 환각적 풍경에 대한 인상이다. "마네의 그림은 그림을 통한 신구 간의 날선 싸움 혹은 과거와 미래를 두고 벌이는 시대 인식의 투쟁"과도 같다. 
인상은 순간의 이미지다. 순간에 관찰된 감각적 인식이며 관찰자의 감각기관에 수용되는 짧은 잔영이다. 그러나 내면을 응시하는 힘, 보이지 않는 순간적인 것까지 삶의 본질로 끌어안은 현대성의 인식이다. 바로 마네의 그림이다.
모네, 세잔, 피사로 같은 새로운 회화의 선구자들도 마네가 뿌리였다. 실제로 마네와 함께 파리 교외에서 작업했으며 햇빛에 반사되는 것처럼 현대 파리 사람들이 여흥을 생생히 목격했다. 파편적인 삶, 덧없는 삶, 떠밀리듯 휩쓸려가는 부초 같은 삶에 대한 현대성의 감각을 공유했다. 모두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이성의 출현이었고, 파편적인 파리의 시간, 덧없는 파리의 삶에 대한 인상이었다. p.120

 
   

 

책 곳곳에서 예술가들을 만난다. 마네, 시인 보들레르, 모네, 세잔, 르느와르, 피카소, 샤갈, 마티스, 만 레이, 장 콕토, 키키, 키슬링.......
책에서만 화보에서만 사진에서만 보던 그들이 파리의 골목 골목을 어울려 다니며 파리의 로통드 까페에 앉아 예술을 논하며, 어느 골목 어귀의 작업실에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것. 사라져 가는 올드 파리의 어느 구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현장 속으로 어느새 나도 들어가 있었다.
개개의 예술가들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인상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등으로 규정지어 있는 '사조'로 배우고 알고 있는 그 시대 그 생각의 흐름이 파리라는 도시에 온전히 녹아져 있는 듯한 감동.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경험이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그저 활자로만 경험하기에 너무 아쉬운 풍경이다. 

 

   
 

그 중 까페 로통드가 전위 예술가들의 본거지였다. 아방가르드 예술 정신의 발신지였고, 다다에서 초현실주의까지 세계 미술의 전진기지였으며 현대미술을 오늘의 모습으로 있게 한 역사적 장소였다. 1900년에 문을 연 로통드는 전화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했다. 바야흐로 몽파르나스 시대였다. p.207

 
   

  

사라져 가는 것들 - 시간을 포함한-에 대한 외젠 앗제의 집요하고 꼼꼼한 시선은 그것이 <올드 파리>의 기록이었음에도 어느 덧 현실을 초월한 <초현실주의 파리>로 규정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의한 정의였겠지만, 20세기 초의 파리가 얼마나 빨리 급격하게 옛것을 벗어버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과 몇 년 전의 것이 <올드>가 되었다가 <초현실>까지 되어 버리는 문명의 어두운 뒷면. 

그러니까, 내가 보고 왔던 파리는 내 기준으로 <올드>였던 것. 난 그때 파리가 <올드>와 <뉴>를 참 조화롭고 아름답게도 잘 지켜왔다고만 생각했었다. 과거의 시간을 모두 싹 쓸어버린 서울과 비교하면서...하지만 그들의 뒷면도 그리 조화롭지만은 못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시간은 사라져버린 것들의 현재다. 

 

   
 

20세기 초반의 파리는 모든 면에서 초현실이었다. 급격한 발전과 속도로 아우성이었고 혼란이었고 아노미였다.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과 동물이 차에 치였다. 인공조명에 밤이 낮이 되었고 새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민들은 사라진 산책길에 망연자실했고 붕괴된 파사주에 길을 잃었다.
초현실주의는 이 같은 정황에서 꽃을 피웠다.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감각상실을 막고, 무의식의 흐름을 차단하고, 속도의 시공간이 어떻게 우리를 이끌어가는지 깨어나게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꿈과 환상으로 채색된 초현실의 모습이라는 것을 자각시켰다. p.222
 

 
   

 

   
 

유행이 올드 파리의 몰락에 한몫했다. 지겨움을 느끼는 속도, 새로움을 요구하는 유행의 속도가 작용했다. 유행은 태생적으로 시간의 산물이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때, 시간의 죽음을 조롱할 때 태어나는 시간의 얼굴이다. 치명적이지 않은 유행은 없다. 어떤 유행도 치명적이다. 죽음을 전제하지 않는 유행은 없다. 죽이고 밀어내지 않는 유행은 없다. p352 

 
   

 

현재 파리의 화려함과 멋스러움에 감탄하지만 끊임없는 <올드 파리>에 대한 향수와 집착. 그건 사라져 가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리라. 앗제의 묘를 찾는 것도 사라져 가버린 <올드 파리>의 뒷 모습에라도 경의를 표하려는 작가의 마지막 예의 같기도 하다.  

현재,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어떤 것들의 초현실일까. 내가 발디딛고 있는 현실이란 것은 또 어떤 것들을 죽이고 밀어내고 만들어진 인상일까. 저자가 본 20세기 초의 파리는 무자비하게 그 족적을 없앤 주범으로 나오지만, 21세기 초의 대한민국에서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래도 파리는 훨씬 <올드>에 대해 예의바르다는 것이다. 그게 선진국이어서, 파리여서, 프랑스여서라기 보다는 앗제처럼, 이 책의 저자 처럼 사라진 <올드>에 대한 경외와 존경으로 끝없이 뒤쫏는 사람들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파리에 가고 싶다. <올드 파리>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오늘도 초현실의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는 <뉴 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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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서울만 하겠습니까... ㅠㅠ

아,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 끙.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2-09 09: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사라져가는 파리라니...
파리를 그렇게 평가하면 서울은 뭐...우리의 사라진 수천년 역사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되는거죠?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정말 미친 듯이 유럽엘 가고 싶더라구요.
우리 둘이 갈까요?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2-0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올드 파리.
두 분 또 벌써 파리 가셨다, 큭큭.
파리. 두 자가 들어간 책은 그것만으로도 선물이예요, 그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2-09 20: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아이리시스님도 콜? ㅋㅋㅋ
여자들끼리 가는 여행은 어떨까요?
 
우리아이 수학약점 - 엄마가 먼저 알고 쉽게 잡아주는
송재환 지음 / 글담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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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별 유형별 짚고 넘어가야 할 초등 수학의 개념과 원리 - 학년 시작 전에 참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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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1-20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수학공부까지 해야하는 이런 책.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20 16:02   좋아요 0 | URL
저 큰 딸 옆에서 수학 문제도 푸는 여자예요..ㅠ.ㅠ
요새 엄마 노릇하기 힘들다니까요..
 
카산드라의 거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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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은 감추고 싶을 만큼 지독히 냄새나고 더러운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미래와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앞 뒤로 거울을 두고 현재의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이야기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미래의 일을 볼 수 있는 소녀 카산드라와, 미래의 모든 위험요소를 확률로 계산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카산드라의 오빠...현실에선 패배자들이지만 카산드라를 만나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보고자 하는 네 명의 <대속의 주민들>. 그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을 본다.

다가올 미래의 테러를 꿈으로 보는 카산드라. 그녀의 부모와 외삼촌에 의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실험>대상으로 키워진 그녀는 실제 만들어진 능력과 특정 트라우마에 의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녀는 자폐아에 정신분열증 환자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가 말하는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를 <예감>하지.
즉 미래를 미리 느끼고 있어. 이 능력은 주의력의 한 형태지.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예감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예감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지.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은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 거야. 
 

만일 이곳에 예를 들어 언제 폭탄 테러가 터질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 능력은 관심을 받겠지. 하지만 우린 달라.
우린 네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그런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사실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야.
이 세상에 그런 종류의 정보를 알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긍정적이고 밝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모를까.
정말이지 불행하고 암울한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하여 점을 보고 신의 인도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만큼은 행복할 거라는 믿음의 반증이다. 불행과 고통이 있는 것이 인생의 당연한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의 증거이기도.
그래서 불행한 미래는 알 필요도 없이 그냥 닥치면 당하고 마는 '벼락'같은 일이 되고만다.

   
 

그건 어느 누군가에게 떨어지는 벼락 같은 거다. 누군가가 당하게 되겠지만,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것...그래서 자기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심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 

 
   

   
 

"사람들은 보긴 하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아.
듣긴 하지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아.
알긴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해.
미래를 아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야. "

"왜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너와 나, 우리는 미래에 관심을 갖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의 지평선을 보지 않으려고
오히려 고개를 돌려 버린단다.
두렵기 때문이야. 미래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닥치게 될 그 모든 불행한 일들을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거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아 있고 싶은데 말이야.
그들의 길의 끝에는,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그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거든. 그게 너무도 힘든 거야."
 

 
   

   
  사실 우리는 미래를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미래란 것은 겁나는 거거든....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국민 중 75%는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62%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우리는 나름의 방식을 사용하여 각자의 미래를 찾아내고 있어.

여기서 <미래>란 다른 미래가 아니라 <밝은 미래>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거고,
내 생각으로는 65억에 달하는 인간들 중에서 4분의 3은 한 번쯤은
도사, 영매, 주술사, 마라부, 혹은 점성술사 따위를 보러 간 적이 있을 거야.
지금 세계 각국에서 로토가 성행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굳게 믿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카산드라는 꿈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녀는 종종 꿈을 통해 과거 어느 시점에 고대의 카산드라를 만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당장 앞의 테러 정도만을 볼 수 있는 카산드라는 천년 후에 미래의 아이들 앞에서 과거의 책임을 묻고 재판을 받게 되는 일들을 겪으면서, 비로소 아주 먼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카산드라가 건너간 천년 후의 세대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베르나르의 상상력은 심각한 죄책감까지 불러 일으킨다. 미래의 세대는 우리 세대를 이기주의자에 쾌락주의자, 미래를 전혀 생각지 않은 무책임한 사람들로 원망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건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다는걸 부정할 수 없어서다. 정말 명백하지 않은가!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지만, 사실은 볼 수 있다. 앞부분에서도 인용했지만, 충분히 예감하고 예측할 수 있음에도 두려움에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과거에서 온 이 사람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한 세대 전체를 심판할 것입니다.
바로 서기 2000년의 세대, 훗날 <이기주의자들의 세대>라고 불리게 된 세대죠.
그들은 자신들의 즉각적인 쾌락을 위해
자기 아이들에게 물려줄 행성의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지구의 자원을 마구 낭비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나는 카첸버그 양을 고발합니다.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도 있었지만,
아직 모든 것이 가능하던 그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로 고발합니다"

"<위험에 처한 인류를 방치한 죄>로 당신을 고발하는 바요!"

"<단기적인 쾌락들>이라고 부른 것은 장기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
이기적인 욕구 충족들이었습니다. ...그
들은 자동차로 매연을 내뿜음으로써 공기를 오염시켰습니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잔뜩 쌓아 놓은 다음 아무 곳에나 갖다 버려 물을 중독시켰습니다.
산아 제한 없이 아이들을 마구 낳아 인구 과잉과 각종 전염병, 기아를 초래했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근본주의 이념들을 저지하지 않음으로써
파괴적인 대전들과 그 밖에 숱한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또 그들은 관광 산업과 소비 사회와 그들이 <경제성장>이라고 부르던 것의 이름으로
손 닿는 모든 것을 더럽혔습니다.."
 
   


당장 앞에 일어날 미래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혹은 그런 미래를 미리 앎으로 예방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현재의 카산드라는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여러 모순을 갖고 냄새나는 현실 앞에서 점점 의욕을 잃어간다.

주저앉은 카산드라는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는 현대의 우리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흥을 내다가 어느새 현실의 무분별한 폭격 앞에 주저앉아 절망적인 미래를 내다보며 우울해 한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희망이 되었다가 절망이 되었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미래는 마치 결정되어 있는 것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인의 <카산드라의 거울>이 아닐까.

   
 

"곧바로 오게 될 나의 개인적인 미래 외에, 인류의 전체적인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그것도 끝이 형편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거야.
지구가 살기 힘든 곳이 되는 시기가 올 것이고, 모든 것이 야만 상태로 돌아가게 될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무얼 하든 아무 소용없다는 얘기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나쁘게 끝나는 것이 사실이다만,
최후의 순간에는 항상 어떤 해결책이, 어떤 탈출구가 남아 있는 법이니까.
어떤 희망이 있지. 극히 미세한 것이긴 하지만."

"희망이라고요? 그건 바로 우리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이 아닌가요?"

 
   

   
 

나를 가만히 놔둬요!
당신은 내게 말해 주지 않았지만,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시스템 전체가 썩어 있어요. 미래의 세대들을 구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테러리스트들에게 폭탄을 팔고,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그들을 밀어 주는 게 바로 <우리>라고요!....

아무도 자기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인명을 구하기 위해 투자되는 액수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투자되는 액수만큼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아요.
광신도들로 이루어진 한 세대 전체가 몰려오고 있어요.
유유히 문명을 파괴하고,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 과거에 야만족들이 그랬듯이요.
게다가 그들의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사람들은 가치를 전도시켜서
그들을 호감 가는 <자본주의 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지식인들은 열심히 그들에게 변명거리를 찾아 주고 있어요.

 
   



확률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던 카산드라의 오빠는 스스로의 한계와 현실로 인해 죽음을 택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카산드라의 몫이 된 것 같았을 때, 절망에 빠져 있던 카산드라는 3%도 안되는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꿈을 꾼 후 용기를 내기로 한다. 현재에 서서 미래라는 거울을 바라 보았을 때,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결국 현재이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한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라는 것을.   

   
  나는 살아 있어!
나는 살아 있고, 의식은 너무도 깊고도 광대하게 열려 있어!
그리고 나는 놀라운 것들과 불안스러운 것들을 모두 포함한 이 세계를 사랑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어쩌면 변화시킬 수도 있어.
그래.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계를,
그 모든 사소한 것들과 그 모든 모순까지 사랑해야 해.
 
 
   

   
  "고대의 카산드라님,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류를 구할 수 있어요. 난 확신해요."
 
"그래, 공주야, 어떻게 구할 수 있지?"

"성공적인 미래를 상상하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 위한 방법들을 갖추는 거죠."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시도해 봐야 해요. 작은 일들부터 해볼 수 있어요.
난 미래는 아직 결정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요.
때로는 자기가 처한 곳에서 조그만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럴 수 있겠죠.
당신도 말했잖아요. 아직 탈출구가 남아 있다고요.
극히 미세하지만 분명히 있다고요"
 
   

   
  어떤 괜찮은 미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사람이 어느 순간 그것을 상상해야만 해.
우리가 있는 이 미래는...지금 네가 상상하고 있는 미래이지.
우리가 이 미래를 관찰하고 즐기면서
이곳에 더 오래 머물수록 이 미래의 존재 가능성도...
 
 
   

  

세상이 잊어버리고 포기한, 스스로도 쓰레기더미에 묻혀 하루하루 생존해 가는 <대속의 주민들>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카산드라의 예언과 그 예언에 따라 비극적인 미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상상하는대로 이루어지는 미래!! 그들이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은 꾸기 때문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미래는 미래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미래가 현재 내가 꿈 꾸는 것에 달려있다면.
<카산드라의 거울>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영향력에 대해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꿈꾸는 카산드라를 통해 현재의 내가 어떠해야할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미래를 볼 수 있고 없고 보다, 미래가 어떻게 도래하는지 알고 모르고를 떠나, 더 중요한건 현재의 '꿈꾸는 나'라는 걸.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교훈을 찾는다는건 좀 우스운 것 같지만, 카산드라가 미래의 법정 앞에 섰을 땐, 솔직하게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서기 3000년의 아이들 - 나의 미래의 후손들이기도 한-은 서기 2000년의 카산드라에게 원망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묘사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도시 전체가 노숙자 소굴이고, 우리 모두가 최악의 빈곤 상태에 있는 모습이다.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았던 서기 2000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다. 미래에 대해 무관심한 죄. 상상하고 생각한대로 만들 수 있었던 미래를 방치한 죄. 현재의 나도, 이 순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다가올 미래. 
<카산드라의 거울>을 통해 보여진 미래는 또 다른 신세계가 아니라
현재의 꿈을 그대로 담은 현재 그 자체다.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볼 수 없다>일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미래를 만들겠다면, 그걸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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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1-14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와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 멋있다, 아아.
나도 그런 거 있었음 좋겠어요.^^
늘 내 미래가 궁금하고, 자주 내 과거가 그립고 그렇거든요.

카산드라 이거 진짜 꽤 난해하네요?
예전에 <나무>, <인간>까지 읽고 베르나르는 못봐서, 감이 떨어졌는데,
철학적 명제들이 많은데요, 그래도 좋을 것 같아요, 역시!^^
인용구들 좋아요! 큭큭.
저도 틈틈이 한 권이라도 읽어야겠어요.
금단현상 그런 거 일어날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14 09:51   좋아요 0 | URL
아우..근데 카산드라 보니까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하는데
정말 좀 안되보였어요..ㅋㅋ 카산드라가 볼 수 있는 과거가 현생의 과거뿐 아니라 태초에 세포였을 시기 - 그러니까 전생과 그 전생과 또 그 전생...-부터의 자신의 모든 과거예요..
그녀는 현재는 프랑스 소녀이지만 전생엔 러시아 의사였대요..ㅋㅋㅋ
전 그런 과거로의 여행은 무서울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이 난해하다고 하시니 좀 위로가 되요.
저 원래 소설 잘 안읽는데 이거 읽으면서 재미는 있는데 좀 힘들더라구요.ㅋㅋ
그래서 연말에 다 읽었는데도 몇 일 더 뒤적이느라 도서관에서 연체도 하고..
리뷰 쓰는데도 오래 걸렸어요.
가벼운 소설 - 읽고도 아무 생각 없는거 - 이런거 읽을래요.
아이리시스님이 추천 좀 해 주세요~

마녀고양이 2011-01-1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 과연 인류가 3000년까지 갈 수나 있을까.. 좀 의심스러워요. ^^
그런데 <카산드라> 구성은 괜찮나요? 베르베르의 소설은
착상 및 도입부, 중간까지는 괜찮은데, 항상 마지막 결말을 제대로 못 하거든요.
아마 스케일이 너무 커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래서
이젠 읽는 자체가 망설여져요.

아, 별 다섯 주셨네요~ 다시 고민 중. 다시 한번 시도해봐?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14 14:12   좋아요 0 | URL
<구성>같은거 물어보시면 저 머리 아픈데..ㅋㅋ
말씀 들어보니..그런 것 같기도 해요.
스케일도 크고 과거와 미래를 막 왔다갔다하고
뭔가 확률시계도 나오고 그래서 거창한 사건을 기대한건 맞는데요
사실 마지막은 거의 저렇게 끝나요. 관념적으로..ㅎㅎㅎ
그게 베르베르의 소설 특징이군요! (저 읽어본게 없어서..)

별 다섯은...저에게 주는 칭찬 스티커예요. 두 권이나 읽다니!!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해왔다. 관심있는 여러 심리학 책들에서도 그랬고,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도 내 안의 어린 아이를 찾아내는 연습도 했었고...하지만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실행에 옮겨 변화하는건 다르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난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어른 아이'의 상태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못했었다. 여전히 감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상처가 나에게 준 행동적 심리적 영향 이전에, 상채기가 난 곳의 통증을 붙잡고 거기에서 머물며 아프다 아프다 했었다. 지금은? 지금은 무덤덤하다. 살아보니 내가 살아낸 과거가 상대적으로 나빴다고만 할 수 없다는걸 어른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도서관에 서서 잠깐 손에 붙들었던 책이다. 꼼꼼히 읽지는 못했지만 대충 흝어보다가 공감가는 부분들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진부한 여타 심리학 책들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들은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나의 '성격'이라고 불리는 인격적 현상에 대해 이제껏 정의했던 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부분을 발견했기에 나름 만족스럽다. 책 자체는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많은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에세이처럼 가볍게 설명하고 있다.

  

부모님의 잦은 불화, 불안정한 거주...의지할 데 없었던 맏이는 결국 나 말고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결론을 내려고 내린게 아니다. '나'란 존재 말고는 그 어느 것도 믿음을 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위태함을 가지고 있는 주변 관계로 인해, 그래서 난 더더욱 나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성향도 사실은 정말 '책'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책으로 숨는 것'이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해 무관심 한 것'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기 싫어하는 것' '일정한 거리 두기의 달인'

그런 모든 것이 내가 그저 무심한 성격의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람에 대해 무관심 한 것, 아니 정말 무관심하다기 보다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 것. 싸우지 않는 것. 그것은 성격이 쿨하거나 긍정적 독립이라기보다는 어릴적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경험, 쉽게 부모를 의지할 수 없었던 상황, 그런 상처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막연히 어린 시절의 어떤 것과 연관이 있으리란 추측은 나 역시 할 수 있었지만, 이 책에서 단호하게도 그걸 '도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와 닿는다. 

'도망'   

 

나 같은 경우는 겉으로는 절대 표현하지 않았던 두려움과 불안 - 언제 혼자 남겨질지 모르는-이 부모로부터의 불완전한 감정적 '도망'으로 표출되었다.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것.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대 내 불안과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것. 부모의 불안정한 상황에 내 감정이 휘둘리지 않게 보호하는 것. 그것은 어렸던 나에게 '무관심'과 '거리두기' 같은 현상으로 반복 훈련되어졌던 듯 하다. 그것이 부모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느꼈던 것 같다. 내 감정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감정에서 '도망'나와 버린 꼴이다.  

불안한데 두려워하지 못하고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슬픈데 울지 못하고 (울지 않기로 하고), 기쁠 때 기뻐하지 못하고 (기쁨을 드러내지 않기로 하고)...행복할 때도 최악의 불행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 웃기는 일이다. 한참 중학교 때 나는 모든 일에 무표정하고 시크한 사람을 동경했던 것 같다. 사이보그. 어떤 물리적 환경, 심리적 환경에도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 (사실은 그런 것이 자아가 아예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그게 얼마나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내 삶을 속박하고 있는지...하나 하나 거슬러 내려오며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나의 모든 인간관계를 규정지었던 것들이 결국 '감정적 도망'이었던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소소한 일상과 관계 맺음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거의 없는 것, 눈 앞에서는 충실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것. 친절하지만 '정'은 없는 것.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가장 매정하고 차가운 것. 내가 가지고 있는 남편에 대한 '믿음'도 남편이 절대 나를 버리지 않고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니 얼마나 네거티브한가.

항상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관계는 가족이었다. 가족들로 부터 받는 상처는 혹은 배신은 파장이 크다. 가족이 날 배신하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의 행동을 규정짓고 한계를 짓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게 한다. 그것이 지금 내 나이에까지 굳어져 이젠 그게 내 '성격'이 되어버린 것. 그건 일종의 '감정적 관계로부터의 도망'이다. 

 

뒷 부분에 결론지어져 나와있는 부분은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 하는 궁금함따윈 없다. 뻔하니까. 그런데 마음이 흡족한 이유는 내 상태를 어떤 '말'로 정의 내릴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해결하는데, 혹은 받아들이는데 반 이상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이제 어떤 '상태'로 '바뀔' 나이는 지났다는 거.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   

 

하지만 한 가지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끄집어 내는 것이 지금도 역시 필요한건, 우리 아이들 때문이다.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수 많은 것들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겪었고 힘들어 했던 것들만큼은 다시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아야 되지 않을까. 난 지금의 나를 그렇게 '나쁜 상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와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싶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기쁨에 동참하고, 자신의 모든 희노애락을 거리낌 없는 당당함으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갔으면 한다.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존재니까. 우리 아이들만큼은 본연의 인간답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 역시 불완전한 '나의 어떤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테지. 안다. 그러니 그 부분도 맡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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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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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머스탱 2020-02-29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숨는것 신기하게도 저와 비슷한 부분들이
 

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2011년 1월의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베스트 플레이어- 왜 우리는 열광하고 그들은 세상을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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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소피 쉴라르 지음, 강미란 옮김,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황경식 감수 / 톡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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