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거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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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은 감추고 싶을 만큼 지독히 냄새나고 더러운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미래와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앞 뒤로 거울을 두고 현재의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이야기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미래의 일을 볼 수 있는 소녀 카산드라와, 미래의 모든 위험요소를 확률로 계산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카산드라의 오빠...현실에선 패배자들이지만 카산드라를 만나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보고자 하는 네 명의 <대속의 주민들>. 그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을 본다.

다가올 미래의 테러를 꿈으로 보는 카산드라. 그녀의 부모와 외삼촌에 의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실험>대상으로 키워진 그녀는 실제 만들어진 능력과 특정 트라우마에 의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녀는 자폐아에 정신분열증 환자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가 말하는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를 <예감>하지.
즉 미래를 미리 느끼고 있어. 이 능력은 주의력의 한 형태지.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예감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예감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지.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은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 거야. 
 

만일 이곳에 예를 들어 언제 폭탄 테러가 터질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 능력은 관심을 받겠지. 하지만 우린 달라.
우린 네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그런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사실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야.
이 세상에 그런 종류의 정보를 알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긍정적이고 밝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모를까.
정말이지 불행하고 암울한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하여 점을 보고 신의 인도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만큼은 행복할 거라는 믿음의 반증이다. 불행과 고통이 있는 것이 인생의 당연한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의 증거이기도.
그래서 불행한 미래는 알 필요도 없이 그냥 닥치면 당하고 마는 '벼락'같은 일이 되고만다.

   
 

그건 어느 누군가에게 떨어지는 벼락 같은 거다. 누군가가 당하게 되겠지만,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것...그래서 자기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심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 

 
   

   
 

"사람들은 보긴 하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아.
듣긴 하지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아.
알긴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해.
미래를 아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야. "

"왜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너와 나, 우리는 미래에 관심을 갖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의 지평선을 보지 않으려고
오히려 고개를 돌려 버린단다.
두렵기 때문이야. 미래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닥치게 될 그 모든 불행한 일들을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거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아 있고 싶은데 말이야.
그들의 길의 끝에는,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그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거든. 그게 너무도 힘든 거야."
 

 
   

   
  사실 우리는 미래를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미래란 것은 겁나는 거거든....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국민 중 75%는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62%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우리는 나름의 방식을 사용하여 각자의 미래를 찾아내고 있어.

여기서 <미래>란 다른 미래가 아니라 <밝은 미래>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거고,
내 생각으로는 65억에 달하는 인간들 중에서 4분의 3은 한 번쯤은
도사, 영매, 주술사, 마라부, 혹은 점성술사 따위를 보러 간 적이 있을 거야.
지금 세계 각국에서 로토가 성행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굳게 믿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카산드라는 꿈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녀는 종종 꿈을 통해 과거 어느 시점에 고대의 카산드라를 만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당장 앞의 테러 정도만을 볼 수 있는 카산드라는 천년 후에 미래의 아이들 앞에서 과거의 책임을 묻고 재판을 받게 되는 일들을 겪으면서, 비로소 아주 먼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카산드라가 건너간 천년 후의 세대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베르나르의 상상력은 심각한 죄책감까지 불러 일으킨다. 미래의 세대는 우리 세대를 이기주의자에 쾌락주의자, 미래를 전혀 생각지 않은 무책임한 사람들로 원망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건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다는걸 부정할 수 없어서다. 정말 명백하지 않은가!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지만, 사실은 볼 수 있다. 앞부분에서도 인용했지만, 충분히 예감하고 예측할 수 있음에도 두려움에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과거에서 온 이 사람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한 세대 전체를 심판할 것입니다.
바로 서기 2000년의 세대, 훗날 <이기주의자들의 세대>라고 불리게 된 세대죠.
그들은 자신들의 즉각적인 쾌락을 위해
자기 아이들에게 물려줄 행성의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지구의 자원을 마구 낭비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나는 카첸버그 양을 고발합니다.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도 있었지만,
아직 모든 것이 가능하던 그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로 고발합니다"

"<위험에 처한 인류를 방치한 죄>로 당신을 고발하는 바요!"

"<단기적인 쾌락들>이라고 부른 것은 장기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
이기적인 욕구 충족들이었습니다. ...그
들은 자동차로 매연을 내뿜음으로써 공기를 오염시켰습니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잔뜩 쌓아 놓은 다음 아무 곳에나 갖다 버려 물을 중독시켰습니다.
산아 제한 없이 아이들을 마구 낳아 인구 과잉과 각종 전염병, 기아를 초래했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근본주의 이념들을 저지하지 않음으로써
파괴적인 대전들과 그 밖에 숱한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또 그들은 관광 산업과 소비 사회와 그들이 <경제성장>이라고 부르던 것의 이름으로
손 닿는 모든 것을 더럽혔습니다.."
 
   


당장 앞에 일어날 미래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혹은 그런 미래를 미리 앎으로 예방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현재의 카산드라는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여러 모순을 갖고 냄새나는 현실 앞에서 점점 의욕을 잃어간다.

주저앉은 카산드라는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는 현대의 우리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흥을 내다가 어느새 현실의 무분별한 폭격 앞에 주저앉아 절망적인 미래를 내다보며 우울해 한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희망이 되었다가 절망이 되었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미래는 마치 결정되어 있는 것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인의 <카산드라의 거울>이 아닐까.

   
 

"곧바로 오게 될 나의 개인적인 미래 외에, 인류의 전체적인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그것도 끝이 형편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거야.
지구가 살기 힘든 곳이 되는 시기가 올 것이고, 모든 것이 야만 상태로 돌아가게 될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무얼 하든 아무 소용없다는 얘기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나쁘게 끝나는 것이 사실이다만,
최후의 순간에는 항상 어떤 해결책이, 어떤 탈출구가 남아 있는 법이니까.
어떤 희망이 있지. 극히 미세한 것이긴 하지만."

"희망이라고요? 그건 바로 우리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이 아닌가요?"

 
   

   
 

나를 가만히 놔둬요!
당신은 내게 말해 주지 않았지만,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시스템 전체가 썩어 있어요. 미래의 세대들을 구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테러리스트들에게 폭탄을 팔고,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그들을 밀어 주는 게 바로 <우리>라고요!....

아무도 자기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인명을 구하기 위해 투자되는 액수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투자되는 액수만큼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아요.
광신도들로 이루어진 한 세대 전체가 몰려오고 있어요.
유유히 문명을 파괴하고,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 과거에 야만족들이 그랬듯이요.
게다가 그들의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사람들은 가치를 전도시켜서
그들을 호감 가는 <자본주의 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지식인들은 열심히 그들에게 변명거리를 찾아 주고 있어요.

 
   



확률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던 카산드라의 오빠는 스스로의 한계와 현실로 인해 죽음을 택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카산드라의 몫이 된 것 같았을 때, 절망에 빠져 있던 카산드라는 3%도 안되는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꿈을 꾼 후 용기를 내기로 한다. 현재에 서서 미래라는 거울을 바라 보았을 때,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결국 현재이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한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라는 것을.   

   
  나는 살아 있어!
나는 살아 있고, 의식은 너무도 깊고도 광대하게 열려 있어!
그리고 나는 놀라운 것들과 불안스러운 것들을 모두 포함한 이 세계를 사랑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어쩌면 변화시킬 수도 있어.
그래.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계를,
그 모든 사소한 것들과 그 모든 모순까지 사랑해야 해.
 
 
   

   
  "고대의 카산드라님,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류를 구할 수 있어요. 난 확신해요."
 
"그래, 공주야, 어떻게 구할 수 있지?"

"성공적인 미래를 상상하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 위한 방법들을 갖추는 거죠."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시도해 봐야 해요. 작은 일들부터 해볼 수 있어요.
난 미래는 아직 결정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요.
때로는 자기가 처한 곳에서 조그만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럴 수 있겠죠.
당신도 말했잖아요. 아직 탈출구가 남아 있다고요.
극히 미세하지만 분명히 있다고요"
 
   

   
  어떤 괜찮은 미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사람이 어느 순간 그것을 상상해야만 해.
우리가 있는 이 미래는...지금 네가 상상하고 있는 미래이지.
우리가 이 미래를 관찰하고 즐기면서
이곳에 더 오래 머물수록 이 미래의 존재 가능성도...
 
 
   

  

세상이 잊어버리고 포기한, 스스로도 쓰레기더미에 묻혀 하루하루 생존해 가는 <대속의 주민들>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카산드라의 예언과 그 예언에 따라 비극적인 미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상상하는대로 이루어지는 미래!! 그들이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은 꾸기 때문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미래는 미래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미래가 현재 내가 꿈 꾸는 것에 달려있다면.
<카산드라의 거울>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영향력에 대해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꿈꾸는 카산드라를 통해 현재의 내가 어떠해야할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미래를 볼 수 있고 없고 보다, 미래가 어떻게 도래하는지 알고 모르고를 떠나, 더 중요한건 현재의 '꿈꾸는 나'라는 걸.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교훈을 찾는다는건 좀 우스운 것 같지만, 카산드라가 미래의 법정 앞에 섰을 땐, 솔직하게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서기 3000년의 아이들 - 나의 미래의 후손들이기도 한-은 서기 2000년의 카산드라에게 원망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묘사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도시 전체가 노숙자 소굴이고, 우리 모두가 최악의 빈곤 상태에 있는 모습이다.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았던 서기 2000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다. 미래에 대해 무관심한 죄. 상상하고 생각한대로 만들 수 있었던 미래를 방치한 죄. 현재의 나도, 이 순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다가올 미래. 
<카산드라의 거울>을 통해 보여진 미래는 또 다른 신세계가 아니라
현재의 꿈을 그대로 담은 현재 그 자체다.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볼 수 없다>일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미래를 만들겠다면, 그걸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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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1-14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와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 멋있다, 아아.
나도 그런 거 있었음 좋겠어요.^^
늘 내 미래가 궁금하고, 자주 내 과거가 그립고 그렇거든요.

카산드라 이거 진짜 꽤 난해하네요?
예전에 <나무>, <인간>까지 읽고 베르나르는 못봐서, 감이 떨어졌는데,
철학적 명제들이 많은데요, 그래도 좋을 것 같아요, 역시!^^
인용구들 좋아요! 큭큭.
저도 틈틈이 한 권이라도 읽어야겠어요.
금단현상 그런 거 일어날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14 09:51   좋아요 0 | URL
아우..근데 카산드라 보니까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하는데
정말 좀 안되보였어요..ㅋㅋ 카산드라가 볼 수 있는 과거가 현생의 과거뿐 아니라 태초에 세포였을 시기 - 그러니까 전생과 그 전생과 또 그 전생...-부터의 자신의 모든 과거예요..
그녀는 현재는 프랑스 소녀이지만 전생엔 러시아 의사였대요..ㅋㅋㅋ
전 그런 과거로의 여행은 무서울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이 난해하다고 하시니 좀 위로가 되요.
저 원래 소설 잘 안읽는데 이거 읽으면서 재미는 있는데 좀 힘들더라구요.ㅋㅋ
그래서 연말에 다 읽었는데도 몇 일 더 뒤적이느라 도서관에서 연체도 하고..
리뷰 쓰는데도 오래 걸렸어요.
가벼운 소설 - 읽고도 아무 생각 없는거 - 이런거 읽을래요.
아이리시스님이 추천 좀 해 주세요~

마녀고양이 2011-01-1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 과연 인류가 3000년까지 갈 수나 있을까.. 좀 의심스러워요. ^^
그런데 <카산드라> 구성은 괜찮나요? 베르베르의 소설은
착상 및 도입부, 중간까지는 괜찮은데, 항상 마지막 결말을 제대로 못 하거든요.
아마 스케일이 너무 커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래서
이젠 읽는 자체가 망설여져요.

아, 별 다섯 주셨네요~ 다시 고민 중. 다시 한번 시도해봐?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14 14:12   좋아요 0 | URL
<구성>같은거 물어보시면 저 머리 아픈데..ㅋㅋ
말씀 들어보니..그런 것 같기도 해요.
스케일도 크고 과거와 미래를 막 왔다갔다하고
뭔가 확률시계도 나오고 그래서 거창한 사건을 기대한건 맞는데요
사실 마지막은 거의 저렇게 끝나요. 관념적으로..ㅎㅎㅎ
그게 베르베르의 소설 특징이군요! (저 읽어본게 없어서..)

별 다섯은...저에게 주는 칭찬 스티커예요. 두 권이나 읽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