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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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장기하.

장기하와 얼굴들-별거 아니라고

https://m.youtube.com/watch?v=DwXUiFb3B3U

“아름다웠던 사람아 그리운 나의 계절아
이 노래가 들린다면 한 번 더 내게 말해줄래
조그마한 약속마저 이제는 두려운 내게
뭐든지 두려워할 건 없다고
알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고.”

장기하와 친분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장기하와 친구인 친구들이 있다. 있었다. 딱 한 번 장기하가 나에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십 년도 넘은 예전, 공연을 마치고 사인을 받을 때였다. “00(친구 이름) 친구시죠.” 그러고는 또 주절주절 뭔가 말했지만 저 한 마디만 기억난다. ㅋㅋㅋㅋ
그러니까 나는 팬일 뿐인데, 열성팬까지는 못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앨범 시디를 사 모으고 모든 트랙을 여러 번 들었다 정도의 팬이다.

글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먼저 유명해진 사람의 글을 접하면 가드를 올리고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글쓰기가 생계이자 주업인 사람에 비해 감추고 가리고 보여줄 것을 골라야만 한다는 강박,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느낌. 그런 책은 유명세에 힘입어 잘 팔리는 듯 보이던데, 잘 알려진 사람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보려는 기대로 책을 펼친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에 책 여러 권 쓴 선배가 자기 SNS에 이 책을 조금 가혹하게 평가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솔직히 나도 재미가 없다...하면서 책 읽기를 쉬었다. 그러고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잔뜩 찾아들었다. 그가 드럼치던 시절부터 뺀드뺀드짠짠에 첫 솔로로 낸 노래, 그리고 근 십 년 간 나온 이런 저런 곡들….여전히 좋았고 내 취향이었다.
책의 문장에는 장기하가 쓰는 노랫말의 느낌이 약간씩은 녹아 있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확실히 어려운 일이라, 노래로 부를 때의 맛깔스러운 강세와 리듬과 목소리 주변에 어우러진 멜로디와 비트 같은 게 제거되고 나니 읽기에는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나무늘보가 쓴 글을 읽는 것 같아...그래서 나도 느릿느릿 읽기로 했다. 느릿느릿 읽다보니 다 읽긴 했다. 아, 별로야, 하는 생각을 꾹 참고 200페이지 조금 못 미칠 무렵, 그러니까 책 후반부로 접어들자 그제야 이거 좋네, 하는 글이 나왔다.
‘사막에서 혼자’와 ‘인공지능의 바다’라는 글이 나는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조슈아트리 사막을 여행하며 알몸으로 누워 별을 보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홀로 보컬 녹음을 하는 일은 그 일을 겪은 장기하만이 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원 스트리밍의 추천곡 리스트에 대한 단상도 음악을 신중하게 골라 듣고 무언가 느낄 줄 아는 사람, 음악을 통해 남들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비 내리고 해가 지는 스위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중년 남자를 만난 이야기는 정말 부럽고 좋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 부분은 꼭 베껴놔야지, 누군가의 호의를 마냥 의심하고 싶을 때 한 번 쯤 떠올려봐야지, 했다.

- 우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그게 다였다.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토머스에게 물었다. “그제는 차도 태워주고, 어제는 만년설도 보여주고, 오늘은 집에까지 초대해주고…...생판 남인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토머스는 대답했다. “그저께 너 처음 봤을 때, 딱 봐도 외국인인 사람이 그 비오는 산을 혼자 오르고 있는 걸 보고 와, 이 친구 산을 엄청 좋아하네, 생각했지. 산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잖아.”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3집부터 5집까지 앨범은 스테레오 아닌 모노로 제작되었다. 마지막 앨범 이름 모노 역시 그 모노였다. 5집 보컬은 사막에서 녹음될 뻔 했다. 장기하는 2019년에 한 곡도 쓰지 않았다.(여기까지는 알게 되어 신났던 부분) 매니저 너굴이 최근 결혼했다(어쩌다 보니 그분 차를 두 번 얻어탄 적이 있다. 홀대에 서러워하며 나와 맞지 않는 성격이다, 하던 기억도…). 장기하는 파주로 이사갔다. 자동차는 아이써티를 탄다.(여기까지는 별로 안 궁금한데...알게된 부분)
장기하가 라면에 생계란과 김과 햇반을 곁들여 먹는 부분은 제일 읽기 힘들었다. 남이 뭘 어떻게 먹는지 워낙 관심이 없어서 그 부분을 공들여 쓰고 읽는 게 공력 낭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먹는 얘기가 제법 자주 나오는데 내가 먹는 일에 관심이 없어 그렇지,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읽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에 살을 빼고 그걸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생활 습관을 바꾸고 지속하는 어려움을 생각할 때 존경심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음악가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벨벳 골드마인에서 크리스천베일이 청소년기에 좋아했던 맥스웰 데몬을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 취재하며 과거를 회상하듯, 팬으로서 관찰해 온 기억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각도기를 잘 재자 다짐하며...사실 읽고 보면 별거 없을 테니 (재미도 그닥….)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길…

음악하는 장기하를 처음 본 날. 사실 이건 후천적 기억이고, 스무살 새내기가 음악동아리에 들어가 처음 선배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선배들이 공연을 마치고 평가 회의 하는 자리에 우연히 1학년은 나 혼자 끼어서 회의를 구경했다. 그러다가 동아리방이 있는 건물 아래층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있다고 했다. (이름도 기억해 쓰바 페스티벌…) 회의를 하다말고 선배들은 동아리를 졸업한 선배 밴드가 나온다면서 나를 데리고 학생회관 라운지로 갔다. 거기서 눈뜨고코베인을 처음 만났다. 요즘의 나는 너바나는 듣지 않지만 눈뜨고코베인의 노래는 아직 찾아 듣는다. 그 정도로 최애 밴드이다.
얼마 전 식탁에 마주 앉은 (역시 그날 같은 공연을 보았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홍대 앞에서 눈코의 공연을 함께 본) 동거인에게 물었다.
눈뜨고코베인 노래 엄청 좋은데 왜 인기가 없지? 왜 별로 못 떴지?
그게 인기가 좋으면 이상한 거 아냐? 하는 답변으로 내 취향의 소수자성만 확인했다.
다시 스무살 그날로 돌아가면, 솔직히 보컬 깜악귀의 엄청난 개성만 눈과 귀에 들어왔고, 깜악귀는 우리 동아리랑 상관 없고 줄 튕기는 두 오빠가 선배들이라고 했다. 다른 멤버에 비하면 다소 평범(멀쩡?)해 보이는 장기하가 드럼을 치고 있었다. 이기타가 찍어 준 눈뜨고코베인의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 뮤비를 선배들과 함께 찾아보며 킬킬 거렸다. 다른 멤버는 다 예명?닉네임? 같은 걸 쓰는데 드럼의 기하, 는 가명 같지만 본명이라 신기했다. 머리에 빨래집게를 꽂고 스틱 대신 페트병으로 드럼을 치는 무심하고 퉁퉁한 드러머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같은 해 발매된 학내 컴필레이션 앨범 속 ‘만약 니가 아주 나쁜 놈이라면’으로 장기하의 솔로 작업물과 목소리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했고 충격받았다. 이 사람 재주가 많네, 크게 될 거야, 했다. 그런데 장기하는 곧 군대에 끌려갔다. 미니홈피 파도를 타고 들어가 일기 같은 걸 훔쳐보고는 곡을 쓰고 있구나, 했다. (부끄럽지만 미니홈피 훔쳐보기는 워낙 많이 해서 이건 다른 이와 헷갈린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제대 후 장기하는 ‘청년실업’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에 잠시 참여했다. 오랜만에 공연에서 본 장기하는 입대 전 알던 모습보다 체중이 한참 줄어들어 보였다. (청년실업을 함께 하던)이기타는 반대로 살이 찌기 시작해서, 두 사람은 조금 닮았다고 생각해왔는데 뭔가 장기하는 이기타가 되고 이기타는 장기하가 된 느낌이 었다. 장기하는 드럼 대신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했다. 그의 존재감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EP앨범이 나왔다.(나중에 내가 EP로 가내수공업 앨범을 낼 때 그 앨범의 크래프트 케이스나 라벨지 같은 하드웨어를 벤치마킹했다...베낀 거지 뭐…) 친구 한 명과 선배 한 명이 얼굴들 멤버로 합류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백댄서겸 코러스인 미미시스터즈와 함께 디시인사이드의 인디밴드 갤러리 등에서 인기 패러디 소재가 되었다. 나도 부푼 팬심에 장기하의 노래를 엉망진창으로 따라부르고 녹음해 인터넷에 올리곤 했다(…). 멤버인 친구들이 초대해 준 덕에 홍대 앞 크고 작은 공연장, 각종 야외 락페스티벌, 세종문화회관 공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2-3년 간 그들의 초기 공연을 잔뜩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군대를 가면서 멤버 탈퇴를 하고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기가 와서 라이브 공연을 보는 일은 2집 이후로는 없었다. 그렇지만 무럭무럭 자란 아이가 이후에 나온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들을 아주 좋아했다. 세 살 부터 열 살이 된 최근까지 아이는 그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따라 부르거나, 노래 가사로 그림책을 만들거나, 경건한 자세로 시디 플레이어에 그들의 음반을 걸고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꼼꼼하게 들었다. 1곡 반복 기능을 알려주자 몇 시간 씩 같은 노래를 틀어 멀미가 난 적도 있다. (술탄오브더디스코의 통배권이 나왔을 때는...시디를 사주고 곡 반복 기능을 알려준 것을 매우 후회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 소식을 들었다. 아쉬웠다. 밴드 음악과 함께하는 청춘의 시기가 종료되었습니다, 하는 알림을 받는 기분이었다. 멤버였던 선배 하나는 이제 내 동거인과 텔레비전을 만들고 있다.(왕년의 기타리스트 둘다 텔레비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내게는 묘하다...비디오 킬더 래디오스타 하는 느낌...)
해체 후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꾸준히 듣는다. 시디로 듣고, 음원앱으로 듣고, 유튜브로 뮤직비디오를 찾아본다. 노랫말과 나직한 목소리와 멜로디가 위로가 될 때가 아주 많았다. 그들의 음악을 아직 많이 좋아한다. 첫 책을 통해 장기하의 긴 글을 처음 접한 소감은, 음, 다음 책보다는 솔로 앨범이 많이 기다려진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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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0-17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같은 시간을 살아온 기쁨 느끼고 갑니다. ㅋㅋㅋㅋ 저는 외로운게 외로운 거지 받고 그 자식 사랑했네까지 좋아했는데, ˝그게 인기가 좋으면 이상한 거 아냐?˝였군요 ㅋㅋㅋㅋㅋㅋ 아, 음악 동아리 하셨구나. 궁금해요. EP도 듣고 싶어요. 매일매일 새로운 매력 보여주시는 열반인님! (이러다 내가 10년 뒤에 반유행열반인님 팬으로서의 기억을 회상하는 포스트 쓴다...)

반유행열반인 2020-10-17 21:33   좋아요 1 | URL
솔직히 말하자면 눈뜨고코베인은 장기하가 나간 뒤 객원드럼 파랑이 연주한 3집 머더스 하이가 갓띵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제 EP는 공식 유통된 적 없고 저한테만 재고 몇 개 있는데 나중에 뵐 때 하나님께는 꼭 드릴게요 ㅋㅋㅋㅋ제 회상을 쓰실 일은 단연코 없을 걸요...회상할 게 음씀 ㅋㅋㅋㅋㅋㅋ

하나 2020-10-17 17:22   좋아요 1 | URL
오 넘 신난다! 내 친구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음악인이었어~ 이 떨리는 마음 주체 못하고 동생한테 말했더니 “꼭 꼬시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뭘 꼬셔 왜 28살한테도 먹히는 열반인님. 그리고 뭘까 다른 사람의 마음도 열어버리는 글쓰기 늘 감탄해요. 저도 쓸까말까쓸까말까 하다가 마음이 막 열림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0-17 17:57   좋아요 1 | URL
아닌데 그냥 하나님이 콩깍지 단단히 씌인 건데 ㅋㅋㅋㅋ곧 풀릴 걸요 마음도 열고 이거저거 막 풀어 놓으세요 ㅋㅋㅋㅋㅋㅋ

바다그리기 2020-10-18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EP 받고싶어요..... (받을 자격이나 친분이 턱없이 모자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냥 소심하게 마음이라도 살짝... 남기고 갑니다)

바다그리기 2020-10-18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라도 제 댓글이 부담스러우실까봐 걱정돼서.. (맞아요, 저 트리플 a형이랍니다 ㅜㅜ) 그냥 님이 부르신 노래가 궁금해서 남긴 댓글이니 맘 쓰지 마시길요. (이래서 제가 댓글을 잘 안남긴답니다. 후회가 취미예요)
예술적 재능은 일맥상통 하는거라 한가지를 잘하는 사람은 여러가지 방면에 다 재능이 있다던데 그 말이 맞구나, 새삼 느끼게 되네요.^^
언젠가 님이 쓰신 소설도, 님의 노래도 들을 기회가 있길 바라봅니다^^

2020-10-18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8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8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8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8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1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1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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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1 황정은.

지난 해 같은 날 어떤 책을 읽었는지 북플이 알려준다. 일 년 전 너는 누군가에게 건네려고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서둘러 읽었지만 이미 가지고 있다는 말에 도로 들고 온 적이 있다. 오늘 너는 같은 이유로 부지런히 황정은의 ‘연년세세’를 읽는다. 따라 읽고, 따라 읽어, 하며 겹치는 책을 늘려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꾸 두 장을 겹쳐 넘기는 착각을 했다. 페이지 수를 확인하면 한 장이다. 아무래도 평량이 높고 두툼한 종이를 썼나 봐. 마침 양장판에 두께도 비슷한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두 책을 비교해 보니 같은 페이지일 때 이 책이 삼십 퍼센트쯤 두껍고, 전체 쪽수는 이 책이 백 페이지 가까이 적었다. 가격은 같았다. ㅋㅋㅋ...
황정은이 건네는 문장과 이야기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 무거운 물성을 부여해도 그럴만 하지 싶다가도, 조금 더 죽은 나무, 날라야 할 늘어난 무게, 몇 푼 더 지불해야 하는 누군가의 노동의 대가, 차지하는 공간의 부피, 그런 걸 생각하면 최선인가요? 하고 묻고 싶었다. (황정은 작가 팬들이 때리러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연작소설로 네 이야기만 묶은 것은 적절했다. 다른 단편소설집 마냥 꼭 일곱 편 내외로 묶을 필요는 없지. 완결성 독자성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여운.
(그러니까 책 무게와 두께를 줄이고 책값을 내려 달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좋은 책을 접하게 하라는 독자의 아우성이었습니다…)

다섯 권 째 읽은 작가의 책이고, 아직 세 권이 남아서 신이 난다. 이번 소설은 많이 말하는 대신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삶이 고단한 이유에 관해 읽는 사람이 스스로 묻고 찾도록 했다.
책을 다 읽은 뒤 왠지 모르게 이순일을 가운데에 놓고 가계도를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렸다. 글씨 못난 것 봐.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 이 소설이 가족 이야기로 읽힐지 궁금하다고 써 놨다. 내가 한 일을 보면 나는 적어도 그렇게 읽었다. 가운데에 이순일을 놓는 이야기는, 그간 많이 부족했다. 한영진이나 한세진이 힘든 이유는, 이순일부터 잘 살기를 잘 모르면서 힘들게 겨우 살아남는 데에만 모든 힘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더 오래된 고통부터 차례차례 톺아 넘어가는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파묘
무덤을 해체하는 이들은 악의 없이 늙은 시골의 농부들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릎이 아파 느리게 외조부 묘에 닿은 이순일을 기다려 주지 않고, 마지막 인사의 기회도 주지 않고, 묘를 파헤치고, 뼈조각을 태우고, 가루로 부숴 허공에 흩어 보낸다. 충분한 애도를 허용하지 않는 세상, 죽은 사람에게는 그저 마지막 불운일 뿐이지만, 기억과 상실을 적절히 추슬러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하다. 소리 없이 저지르는 폭력이다. 이순일이 아픈 손가락마냥 여기는 한세진만이 이순일의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한다.

-하고 싶은 말
이 소설 제목을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할 수 없는 말’로 자꾸 잘못 떠올렸다. 아무도 아닌, 을 아무 것도 아닌, 으로 자꾸만 잘못 읽는다고 속상?못마땅?해 하던 작가의 말이 괜시리 떠올라 머쓱….
‘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거짓말.’
두 말 사이에는 간극이 있지만 나는 저 두 말을 붙여 놓고 싶었다. ‘그 모든 진짜같던 거짓말’(이건 브로콜리너마저)에 속아 ‘너무 늦었어’하며 어떤 말도 들어줄 여력 없이, 생각할 틈도 없이 노동에 지친 삶을 살게 된 한영진을 미워할 수 없었고 그저 안타까웠다. 다른 이들의 편안한 잠을 도울 이불을 팔지만 정작 이불을 파는 사람은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늦은 밤.
소설 합평 모임에서 K-장녀, 라는 말을 처음 듣고 저게 뭔가 했는데, 가가호호 대대손손 이어지는 장녀 희생의 서사를 여기에서 또 마주하니 입이 쓰고 썼다. 저도 장녀거든요…

-무명
눈 속에 처박힌 채 입안 가득 맛을 본 무명맛의 눈. 이름 없는 자. 제목을 자꾸 유명으로 고치고 싶어졌다. 그러면 자꾸 유명을 달리하다, 유명한 사람 같은 게 생각나서 에이 아니잖아, 했다.
순자로 살아온 이순일의 삶. 순자라는 이름이 흔한 만큼, 순종을 미덕으로 삼고 부모가 있건 없건 돌봄 노동을 위해 희생되고, 배움과 직업 선택의 기회 따위는 말살되고, 그러다가 재산을 양도하듯 배우자에게 넘겨져 또다시 자기 아이와 자기 아이의 아이를 키우다 늙는 삶이 너무도 흔하고 보편적이어서 슬펐다. 나도 그런 보살핌이 없었으면 자라나지도, 내 아이들을 키우지도 못했겠지.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입을 막는 대신 나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왜 자꾸 외면하게 되는 걸까. 고통이 전달되는 걸 피하지 않고 듣고 묻고 위로하는 사람이 결국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거야.

-다가오는 것들
미아 한센뢰베의 영화 제목에서 소설의 제목을 따 왔다. 나는 보지 않은 영화이다. 뉴욕에 간 한세진이 이모 할머니(이순일의 이모)의 손녀 제이미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일. 911과 세월호 참사와 탄핵촛불집회와 미군과 결혼 이민을 떠난 재미 동포들과 해외 입양 고아들까지. 하나하나 중요하고 기억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지만 한 소설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국가폭력, 이라는 말을 보자 문득 묻고 싶었다. 그래서, 촛불 이후 정말 그 말이 지시하는 힘과 행위와 작위와 부작위가 사라졌나요? 아직 남은 잘못들은 왜 말하여지지 않나요? 지금, 정말 정의로운 나라가 되는 중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아직도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넘쳐나나요? 그 이유라고, 적이라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올라갔을 때 보이는 얼굴은 정말 결백한가요?
왜 갑자기 정치글 됨 ㅋㅋㅋ
하미영의 섬세함이 예민함이 되지 않고 질병이 되지 않는 세상이란, 가능할까, 행복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것들을 너무 미워하지 않고 덤덤하게 맞이했다 다시 흘려보낼 수 있을까. 궁금함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해를, 세대를 거듭해도 달라지지 않은 (징그러운) 것들. 이 원래 이 독후감의 제목이었는데 형용사를 빼 버렸다. 괄호 안에 그러나 우리를 망치지 못한, 같은 말을 넣거나 문장 뒤에 그러나 우리가 바꿔나갈 것들, 같은 희망적인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소설책 안에서 나는 그런 희망을 찾지 못했다. 내가 숨은그림찾기를 못하는 놈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어. 그것이 정말 비결이면 어쩌지.’ 당한 폭력과 모욕과 수모를 잊는 것 밖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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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0-11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님의 책은… 맨날 미뤄두기만 해요. 왠지 그 작가님 책은 조용한 저녁에 각잡고 앉아 읽어야 할 것 같아서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09   좋아요 3 | URL
용감하고 씩씩하게, 읽읍시다 ㅋㅋㅋ이 책은 (실제 중량이) 무겁지만 페이지는 200페이지가 안 되고 잘 썼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비교적 명확해서 잘 읽히실 거에요. 더구나 기시감 심하고...(어 이거 내 얘긴데, 우리 엄마 얘긴데, 내 친구 얘긴데, 이런 얘기 어느 책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봤는데.....) 그런데 절대 뻔하지 않게 썼고...

파이버 2020-10-11 17:24   좋아요 2 | URL
모두 아는 얘기를 뻔하지 않게 썼다니 소설로서는 극찬인데요. 반유행 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고 도전~ 일단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 둘게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33   좋아요 2 | URL
아 갑자기 책임감 묵직 ㅋㅋㅋㅋ읽고 안 좋았다 하시면 제가 환불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

파이버 2020-10-11 17:39   좋아요 2 | URL
ㅎㅎㅎ 아녜요 저도 (한권밖에 안읽었지만) 황정은 작가님 호감이에요~ 환불할 일은 없을테니 안심하십시오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0-10-11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쓰신 후기만으로 완독한 느낌입니다! 배송중이 책은 반송해도 되겠어요!ㅎ
인물관계도 정말 감사합니다! 뭔가 많은게 얽히고 설켜있네요!ㅎ 즐건 저녁시간 되십시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37   좋아요 2 | URL
반송하시면 곤란합니다! 스포 없는 글 쓰고자 했는데ㅜㅜ폐가 안 되었길.
제가 오독한 부분도 많을 테니 꼭 직접 읽어보시고 좋은 서평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막시무스 2020-10-11 18:10   좋아요 2 | URL
별 말씀을요! 좋은 관점을 제시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가족소설이 아닌 관점에서 볼수있도록 눈에 힘을 줘 보겠습니다!ㅎ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이 책도 문단 앞 들여쓰기 안 함..,대세인 편집 방식인가.,,,읽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예전에 작은 출판사가 그런다고 깠는데 큰 출판사도 그러는 거 보니 보고 따라했을지도....그냥 이유가 궁금함. 네모 반듯 예쁘라고? 가독성은 뒷전? ㅋㅋㅋㅋ다른 이유 아시는 분 무지렁이에게 가르침을 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다른책(아직 안 읽은)들과 창비의 다른 책들을 펴보니 ㅋㅋㅋ작가의 책만 모두 들여쓰기 안 했다. 작가의 요청인 듯 ㅋㅋㅋ깊은 뜻을 알 길이 없네...

바람돌이 2020-10-11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책 다 읽고 내일쯤부터 읽을텐데 저 가계도 펼쳐놓고 읽어야겠어요. ㅎㅎ 아 그리고 글씨 저에 비하면 엄청 좋으십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0-11 20:39   좋아요 1 | URL
펼치고 읽을 정도는 못 되는 솜씨고, 읽으시다가 오류가 있으면 정정해주세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syo 2020-10-11 2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글씨 왜 귀여워요. 특히 ‘뉴질랜드‘ 부분이 압권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20:41   좋아요 2 | URL
이름마저 만수르. 탈조선 성공에 다가서 위대한 뉴질랜드에 정착 일보직전인 한씨 집안 막내이자 장남...을 귀엽게 썼군요. (독후감에 남자 인물은 너무 언급을 안 해서 댓글로 흘림...얼른 보세요 ㅋㅋㅋ갑자기 황정은 전도사 하는 중 ㅋㅋㅋㅋ)

2020-10-12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2 0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0-10-12 0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게도 저장 ㅋㅋㅋ

- 2020-10-12 0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나 오타 대장이긴 한데 가게도 가계도 ㅋㅋㅋㅋㅋㅋㅋ 잘 참고 할게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0-12 07:42   좋아요 2 | URL
저거 다 읽고 정리하면서 그려본 거라 ㅋㅋ소설 읽을 때는 그닥 필요 없어요 ㅋㅋㅋㅋ

하나 2020-10-15 2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따라 읽어야지~ 가계도 저장 ㅋㅋㅋ 222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06   좋아요 2 | URL
내 글씨 부끄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 2020-10-15 21:10   좋아요 2 | URL
귀여운데여 ㅋㅋㅋㅋㅋ 보조자료 믿고 저도 주문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11   좋아요 2 | URL
아 나...황정은님께 커미션을 요구해야 겠다...돈으로 말고 다른 소설 더 많이 써주시는 걸로다가...ㅋㅋㅋ 과로사 노노 만수무강하옵소서 만수르무강

하나 2020-10-15 21:1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웃으면 안 되는데 졌네요 ㅋㅋ 저는 디디의 우산부터 읽어야 돼요 친구가 자기 인생작이라고 강제 선물함.. ㅋ 저도 백의 그림자 좋았어요.(알라딘에서 열반인님이 책 젤 잘 판다!)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25   좋아요 2 | URL
저는 디디보다는 연년이 좋고, 백은 바로 옆에 꽂혀 있는데 안 보고 아끼는 중 ㅋㅋㅋㅋ누가 너무 좋았다 해서 사놓고 책등만 마냥 바라보며...

2020-11-1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5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5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2020-11-11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윳!빛!깔! 열반인님 💚 축하드려요!! 나도 우리 누나 따라서 이 책 샀음을.. 알라딘은 기억해죠요! 이쯤되면 황정은님도 커미션 받아줘야 된다~

반유행열반인 2020-11-11 15:36   좋아요 2 | URL
아이참 ㅋㅋㅋ감사드립니다. 두 달 째 받으니 이게 뭐라고 좋은데 하나님이 주시는 축하와 격려가 더 좋음 ㅋㅋㅋ 커미션 받고 다음 소설로 갚고 ㅋㅋㅋ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201009 작자미상. 이케다 가요코 구성.
제목은 여기저기서 인용구로 많이 들었는데, 책이 있길래 보았다. 처음부터 책은 아니었고 인터넷 메일로 구전설화 마냥 인터넷 민담, 민화(네트로어, 이런 용어도 이 책에서 처음 들음)로 넷상에 떠돌던 글이라 한다. 뿌리를 캐고 보니 미국 환경학자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밑바탕이 되었고(원래는 마을 사람이 1000명), 그 글이 변형되어 메일로 떠도는 걸 어느 일본 교사가 학급통신 이메일로 공유해, 다시 학부모가 메일링 리스트에 올려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엮은이가 글을 다듬고 그림을 덧붙여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하고 글을 아는 마을의 극소수에 속한다.
행복, 생존, 사랑, 구원, 희망이 덧붙은 마지막은 삶에 대한 감사와 내가 누리는 것을 마을의 다른 이웃에게까지 넓히길 요구한다. 작고 짧은 책이지만 참 거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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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0-10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를 갈라놓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는 하루 보내 보아요 오늘도 :)

반유행열반인 2020-10-10 09:46   좋아요 1 | URL
그 부분이 좋기도 한데 저는 ‘비열한 힘’이 전체와 어울리지 않게 되게 튀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덧붙고 붙다보니 이런 온도차는 어쩔 수 없구나 싶으면서도 ㅋㅋㅋ 프로파간다에 발작 일으키는 못된 성미가 감동에 늘 뭘 끼얹음 ㅋㅋㅋㅋ

하나 2020-10-10 09:4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열반인넴 그런 못된 성미가 넘 좋아여 ㅋㅋㅋㅋㅋ 계속 못돼주세요 💚💚💚 (오타 맘에 들어서 냅둠 ㅋㅋㅋㅋ 나의 열반인넴)

반유행열반인 2020-10-10 09:54   좋아요 1 | URL
넴 한 글자로 에미넴 된 거 같다 ㅋㅋㅋ에미넴 이름부터 패드립이라 좋다 ㅋㅋㅋㅋㅋㅋ

하나 2020-10-10 09: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묘하게 어울려요. 아 나 올해 운이 빵빵 터지나바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타났어 ㅋㅋㅋㅋㅋㅋ 아침부터 활명수 백개 마신 사람 올림 ㅋㅋ
 
[전자책] 더 해빙 -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이서윤.홍주연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01009 이서윤, 홍주연.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많은 사람의 욕망이 보인다. 읽기 전부터 책을 팔기 위한 마케팅의 방식, 제시하는 책에 관한 정보, 상품평과 상품평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각이 잡힌다. 고 하면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읽었다고, 책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고 ㅎㅎㅎ
어쨌거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과 감정으로 읽고 싶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가른다. 많이 팔린 책일수록 신중하다. 대개 읽지 않기를 택하거나 남들이 읽을 만큼 다 읽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읽기 시작한다. 뒷북이기도 하고, 정말 좋은 책은 그렇게 오래 지나고도 계속 읽는 사람이 생기고, 중쇄를 찍고, 그래서 정말 읽을 만 하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책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다. 어느 순간 중고 시장에 물밀듯 매물이 쏟아져 나온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폐지값으로 나온다ㅎㅎㅎ. 그 책의 구매자가 더는 소장할 가치를 못느껴서 일때도 있고,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한, 사재기 이후 다시 되팔아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덕분에 펴보지도 않은 새 책을 쥐기도 한다. ㅎㅎㅎㅎ
전자도서관 이용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렇게 내 돈 주고 사 볼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궁금한 책을 접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돈은 안 들지만 소중한 시간을 버려야 하지… 그래도 궁금하잖아. 왜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 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은 뒤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과 기대와 미래에 관한 긍정적인 마음을 품을까. 이번에는 그런 호기심으로 펼쳤다.
사십 대의 기자 출신 직장인 기혼 육아 중인 여성이 부자들의 구루라 불리우는 이서윤을 만난다. 시작부터 드라마 요소가 깔려 있다. 베일에 쌓인 신비, 비행기를 타고 설렘과 흥분 속에 이탈리아 밀라노 관광지에서 갖는 첫 만남. 사실 첫 만남이 아니라 십 년 전 취재를 위해 이미 만났던 사이, 다시 만나기 위해 겪는 과정, 수소문, 이메일,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아 제발 만나고 싶은데 하는 갈망. 그리고 바람의 실현.
서윤과 만나 대화하며 알게 된 생각과 행동 방식을 화자가 실천하며 아, 이거였구나 하고 삶의 변화를 느낀다. 그 사이사이 이서윤이 만난 다양한 내담자들의 사례, 이러이러한 조언 후 그것을 잘 실천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다는 삽화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뜬구름 잡는 주제와 조언이 반복되어 나타났지만 책 자체가 나쁜 책은 아니었다. 그냥 이런 책에 희망을 가지고 펼치고, 이런 책을 읽은 뒤에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얼마나 팍팍하고 빈곤한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저자들과 책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를 잘 꿰뚫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믿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한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 말해주는 책은 그것이 가짜 위로일지라도 얼마나 따뜻하고 뿌듯하게 느껴질까. 그런 위로를 발판 삼아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사람이 생긴다면 이 책이 정말 인생을 바꿨다고 할 것이고, 불행히도 불행한 삶만 계속된 사람들에게는 가짜 해빙, 가짜 부자를 좇으셨네요, 하면 될 것이고. 불행에 파묻히느라 거짓말이었어! 하고 원망할 여력도, 아니 이런 책을 읽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 인생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그 인과관계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통계는 평균치일 뿐, 그 안에 표집된 개체의 삶도, 표집 바깥의 삶도, 아무도 단언할 수는 없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조금 덜 괴롭히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 건 그거대로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저는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네요. 부럽습니다. 부자되시길. 아, 그전에 부자가 뭔지 구체적인 정의부터 내리고 부자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면 조금 더 설득력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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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2 0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캡처해주신 글들 보면서, 아아ㅡ 신선했던 말들 마저 이제 하나마나 한 소리가 되었구나 싶어 쓸쓸해 집니다... 하긴 나역시 세상의 자장 안쪽에 있지...

반유행열반인 2020-10-12 07:44   좋아요 1 | URL
자장면 먹고 싶다...저 이 책 읽지도 않고 되게 욕하다 읽고 나서 욕하자 하고 읽음 ㅋㅋㅋ그런데 무슨 책이든 만듦새 엉성하더라도 잘 팔리는 건 밑줄 칠 구석 몇 개는 있다는 깨달음...

- 2020-10-12 07:48   좋아요 1 | URL
전 쌀국수 국물이 마시고 싶다.. 나 이제 힐링에세이 그만 읽을래요 ㅋㅋㅋㅋㅋ 뭔가 이 책을 보니 이제 하산할 때가 된 것 같아..

반유행열반인 2020-10-12 07:51   좋아요 0 | URL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쟝쟝이어...

- 2020-10-12 07:54   좋아요 1 | URL
우린 결국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해요... 흑...

반유행열반인 2020-10-12 11:14   좋아요 1 | URL
하산 정도가 아니라 제가 쟝쟝님 밑에 입산하여야 겠습니다...가르침을 주소서 구루여

- 2020-10-12 12:02   좋아요 1 | URL
라고 더 해빙 21%에 써져 있습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0-12 12:23   좋아요 0 | URL
읽고도 까먹은 나새끼 쟝쟝님 피셜인 줄...그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데 난 못한다 이거지 ㅋㅋㅋㅋ자꾸 감동받는다 이거지 ㅋㅋㅋㅋㅋ
 
코스타리카 라스 로마스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커피를 주문하고서 연휴가 끼어서 열흘 만에 받아 마셨다. 지난 달 적립금 이벤트 덕에 마시지도 않고 백자평을 써서 천원 받았다 ㅋㅋㅋ적림금이란 무엇인가...백만 년 만에 당선작 되어서 적립금 지갑이 통통. 이게 뭐라고. ㅋㅋㅋ
커피 봉투만 열어도 구수하고 단 내가 나는 커피였다. 이름이 자꾸 헷갈려서 뭐?크리스마스 커피? 토마스 커피? 했다. 
생각난 김에 코스타리카를 검색했다. 남아메리카가 아니고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였다. 파나마 위에! 니카라과 아래! (니카라과가 저기 있는 것도 처음 앎...) 아메리카의 그 잘록한 병목 같은 부분! 나라 이름은 풍요로운 해안. 실제로 해변이 아름다운 곳. 무성한 원시림. 군대 없는 나라!!!
알라딘 커피야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된다. 세계에 모르는 나라가 아직도 너무너무 많다. 
해변이 아름다운 잘록한 밀림의 나라에서 온 커피는, 내릴 때도 향이 좋고 달달 고소하고 신맛은 거의 없었다. 
시다모 디카페인 아껴먹는 중인데 품절이라 아쉬웠다. 빙하수로 카페인 뺀 정말 맛있는 커피였는데!!! 새 디카페인 커피도 나왔다 하니 다음에는 그걸 먹어 봐야지. 
커피도 한 잔 마셨으니 연휴에도 열심히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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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0-09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추카추카추!! 체실비치에서는 줘야죠!! 알라딘 일 좀 제대로 하네~~~ (근데 아쉽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왜 안 주지? 이달에 두개 줬어야 마땅한데,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듯 알라딘..)

반유행열반인 2020-10-09 10:23   좋아요 1 | URL
저는 어 그저 그런 리뷰를 주네... 했어요. ㅋㅋㅋ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하나님만 꽂힌 거 같은데?? ㅋㅋㅋㅋ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댓글로 바람 잘 잡아주신 덕입니다.

하나 2020-10-09 10:28   좋아요 1 | URL
에이~~ 저는 둘 다 정말 좋았구요! 열반인님이 한발짝 떨어져서 근데 여자 행동에 대해서는 왜 자세히 설명 안하니? 이런 시각 보여주시는 거 넘 좋았어요 ㅋㅋ 날카로운 누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담에 나라도 이만원 적립금 줘야게따 내가 젤 꽂혀서 ㅋㅋㅋ 오늘도 즐거운 독서데이 보내십쇼~ ^^

반유행열반인 2020-10-09 10:32   좋아요 1 | URL
하나님의 성원에 힘입어 사만원 받은 기분으로다가 계속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좋은 가을날 푹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