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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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에 대한 나의 지극한 사랑을 말로 하자면, 오늘 밤을 새어도 부족 할 것이다. 홍어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매운탕으로,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더한 삼합으로, 튀김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홍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켜준다. 그러나 나는 홍어를 먹을때 초장이나 소금기름장을 전혀 찍어먹지 않는다. 홍어를 먹을때 다른것이 첨가되면 홍어의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홍어는 비싸다. 그 비싼 홍어를 먹으면서 홍어를 느낄수 없다면 그건 비극인 것이다. 홍어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나는 생날것의 향을 즐긴다. 목포에 근접한 전라도에서는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그 잔치는 이미 2류다. 홍어가 올라왔어도 제대로 삭힌 홍어가 아니라면 그것도 2류다. 제대로 삭혀서 한 입 먹는순간 코에서 더운 김이 훅 끼쳐나와야 1류라고 할수 있다. 제대로 삭힌 홍어의 맛이라면, 강한 암모니아 향때문에 코에서 더운 김이 나오고 그 충격에 제대로 눈을 뜰수가 없으며 머리는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 전해져 오며 그 다음날에는 입 안의 점막이 모두 벗겨져야 최상급의 홍어맛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홍어는 이런 충격적인 맛때문에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이런 홍어를 잡아서 파는 중간상인 조선시대의 문순득 이라는 사람의 표류기라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우이도의 스물다섯 난 젊은이 문순득은 홍어를 내다팔기 위해 작은아버지를 포함한 6명이 항해에 오른다. 그러나 바람에 막혀 그들은 표류하게 되고 열하루만에 류큐에 닿는다. 그 곳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다 고국으로 돌려보내지기 위해 중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가는 도중 또 바람에 휘말려 이번에는 서쪽으로 열흘넘게 무작정 흘러가다 여송(필리핀)에 닿는다. 그 곳에서 간신히 입고 먹고 생활하다 다시 중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문순득을 포함한 조선인표류자 6인중 4명이 먼저 중국으로 출발한다. 이때 문순득과 어린아이 김옥문이 낙오된다. 표류중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따른던 작은아버지와의 이별은 그에게 큰 슬픔과 충격이었겠지만 그 특유의 긍정적인 시선이 슬픔은 뒤로한 채 앞날을 기약하며 그곳의 생활방식과 문물, 언어를 배우며 지내게 된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다시 중국으로 향하게 되고, 중국에서 조선사신단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며 길고 긴 3년하고도 석달이 넘는 표류가 끝이 난 것이다.

문순득은 시대를 잘 못 타고 태어난 사람이다. 오로지 양반만이 득세하던 시절, 홍어잡이는 천하디 천한 신분이라 아무리 머리가 총명하다 한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여송으로 중국으로 표류하며 그 곳의 언어를 익히고 그곳의 생활방식과 자신의 생업과도 큰 연관이 있는 배의 구조를 샅샅이 눈여겨 보았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는 천민이라 글을 모른다. 그의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정약전이 기록을 하였을 뿐이다. 그 짧은 기간동안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대단할 뿐더러 눈여겨 봐온 모든 것 들을 잊지않고 모두 기억해내어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 그가 시대를 잘못 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총명한 머리로 무엇인가를 해내도 해냈을 것이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를 이룩해도 이룩했을 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때, 한가지 오해를 한 점이 있었다. 홍어잡이 문순득, 그 혼자 작은배에 혼자 작업을 나갔다가 홀로 표류를 당한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6인이 승선했었고, 절대 홀로 외로운 표류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가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 것은, 내가 지금 사는 이 곳 거제엔 지금도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자 나가거나, 부인과 함께, 아니면 아들과 함께 둘만 나가는 일이 대부분 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내 직장동료중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는 동료가 있었다. 그 동료의 아버지도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분이셨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 동료에게 해경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배만 있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럴때 대부분 눈치를 챈다. 빠지셨구나 하고. 그러나 제발 살아계시기를 어디선가 피하고 계시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무서운 일임엔 분명했다. 내 동료는 울음을 터뜨리며 급히 현장으로 떠났고, 두시간뒤 온 연락에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바다밑에서. 우리는 오열했고 잠시 후 장의차에 운구되어 온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물을 치시다 그물에 휘감겨 빨려 들어가신 것이라 한다. 이때 만약 옆에서 누군가 돕는다고 하다 나머지 한명도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옷에 칼을 휴대한다고 한다. 그런 위급 상황시에 바닷속에서 그물을 잘라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실 많은 어부종사자들이 그렇게 항상 칼을 휴대하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잃게도 만든다. 자연의 힘을 어찌 인간이 대항할수 있으며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동안, 표류자는 문순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신으로 가다 표류를 당한 경우에는 그 표류자가 글을 알기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표류자는 글을 모르는 어부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문자를 깨우치지 못해 경험하기 힘든 일을 당하고도 그저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로 회자되다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사연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문순득이 정약전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책에서는 여러번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리고 그 외롭고 외로운 유배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문순득의 표류기는 정약전에게도 삶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로 향하는 길에서 그들이 나눈 얘기도 내 눈물샘을 건드린 부분이기도 하다. 우애좋은 형제가 나란히 유배지로 가는동안 이제 헤어지면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도 하지 못하는 밤이 얼마나 서글펐을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유배지에서도 학문의 꽃을 피우며 그들 자신의 발전을 꽤했다니 역시 위인은 위인이다.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사진을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한가로운 일본 어촌마을의 잔잔한 풍경을 보니, 얼마전 일본을 휩쓴 쓰나미와 지진때문에 대 참사를 당한 모습이 떠올라 너무 마음이 아프고 쓰라리다. 문순득이 표류하다 흘러간 곳은 류큐라고 하여 그 당시에는 일본과는 또 다른 국가 였으나 일본이 흡수하려는 그 시대였다. 류큐는 언어도 일본과는 틀리다고 한다. 내가 얼마 전에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라는 책에 주인공 가족이 오키나와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주인공 지로라는 꼬마가 오키나와에서 어른들이 하는말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바로 그 곳인 것이다. 지로의 고조할아버지쯤 되시는 아카하치도 이 책에 홍길동일지도 모른다는 홍가와라 아카하치로 소개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보여 내심 반갑기도 했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도 소개된 바 있을 정도로 이 표류기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표류에 표류를 거쳐 오랜시간 표류를 했다는 점과, 표류자가 그 나라의 문물을 익혔다는 점과, 여러나라를 떠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것을 잊지않고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점이 무척이나 큰 의미로 남는다.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가 흘러간 곳을 200년이 지난 지금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그의 표류로 인해 그 나라에 기록이 남겨진 것은 우리 사람이 그곳에 살았던 자취가 지금 현대에 살고 있는 나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 생각 될 정도이다. 그의 표류행이 얼마나 힘들고 험난했을지,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겨야만 했는지, 꼭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을 그의 마음과 한 가정의 가장을 잃고 젊은 과부가 되버린 그의 아내의 마음이 전해져 와서 이렇게 편하게 읽고 있는 지금 미안해질 정도다. 전라남도 해남에는 아직도 문순득이 지은 집이 남아있다고 한다. 해남에 가게 되면 꼭 한번 방문해 그를 기리고 싶다.

문순득의 표류기
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읽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만 보기 아까운 생각, 아버지가 보시면 너무 좋을 내용, 꼭 한권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오르는 책이다.


1805년 1월 8일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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