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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가끔 뉴스에서 보게되는 희대의 살인마라든지, 연쇄살인범들의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리며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그들이 했을 행동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을것이다. 만약 그 살인마의 자식이 내 아이와 책상을 같이 쓴다면 난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껏 그들의 가족에 관한 생각은 뒷전으로 했기때문에 그런 뒷이야기는 내 관심 밖이었다. 살인마의 자식으로 산다는건 어떤것인지, 지금까지 생각치 못했던 문제와 마주치고 보니 나는 내 자아를 가진 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어땠을까?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살인마의 자식으로 어떻게 살아야했는지,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복수극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7년의 밤이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한쪽팔에 원인을 알수없는 마비가 찾아와 퇴물로 전락한 전직 포수 최현수. 그는 아내의 바램으로 어느 한적한 시골 댐의 경비업체 팀장으로 전근하기로 하지만, 미리 살게될 집을 보고오라는 아내의 청으로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다. 알콜중독중증에 가까운 그는 술을 마시고 가다, 수목원의 주인 딸을 차로 치고 그의 미래를 위해 가만뒀어도 죽었을 그 아이를 질식사시킨뒤 댐에 수장시켜버린다. 모두 우발적인 사고인 것이다. 수목원주인은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였고, 그날도 아이를 때려서 아이가 도망치다 사고가 난것이다. 어떤 감각과 기억력으로 수목원주인은 최현수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딸의 복수를 위해 그의 아들과 최현수까지 모두 죽이려 한다. 오로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최현수는 댐을 개방하고, 방류된 물은 초당 2500톤의 양으로 그 마을을 초토화 시키고 그곳의 주민 절반과, 지원나온 형사들 4명까지 물에 휩쓸려 모두 사망하게 된다. 최현수는 사형을 선고받고 아들은 이리저리 떠돌다 한때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었던 안승환이라는 남자와 함께 살게된다. 그는 정성으로 최현수의 아들 최서원을 돌보고, 수목원주인 오영제의 복수의 칼날로 부터 끝까지 보호한다.
화자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화자가 바뀌며 시간이나 장소도 바뀌는 구조이다. 2일정도의 일을 길고긴 추억의 터널끝에 모든 사건의 정황과 마주하는 내용이다. 왜 아버지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어야 했던것인지, 왜 아들은 아버지의 업보를 대신 등에 지고, 대신 죽어간 마을사람들의 짐을 대신 지고 살아야하는가. 안승환은 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야하는것인가. 도대체 그날 밤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7년의 밤을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온 오영제. 난 또 다시 모두 피해자라는 말을 하고 싶은것일까? 아니다. 죄의 값은 분명히 치뤄야 한다.
전에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을 한것을 방송으로 본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다. 하지만 사형이라는것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형제도가 없어져도 안타까울 사건들이 꽤 많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게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있어야 한다는 편에 무게를 둔다. 죄없는 사람이 무차별적으로 죽어야 했을때는 그 죄를 지은사람이 죗값을 치뤄야 한다고 본다. 죽음이 모든것을 해결해주지도 않고, 그 죽음으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수는 없지만, 죄인에게 있어 제일 소중한 목숨을 빼앗는다는게 나름의 보상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기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무서운 존재는 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방면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 언론을 통해서 보는 억울한 죽음들을 마주할때, 그 억울한 죽음들은 어떻게 달래야하나, 그들에게 남겨진 유족들의 슬픔은 어떻게 달래야하나를 생각해 볼때 나의 부족한 소견은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최현수는 사형을 당한다. 그리고 복수의 마지막이 다가온다. 그는 아들을 살리고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는 복수의 마지막에 또 다시 아들을 구하고자 한다. 참 아이러니 하다. 자신의 아들은 소중한 목숨이고 죽어간 목숨들은 죽어마땅한 목숨들일까?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려고만 하지 그에 대한 참회는 보이지 않는다. 살인자의 아들이 설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듯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잘못은 아버지가 하고 죄에대한 단죄는 아들이 받는 것일까? 살인마의 아들을 거두고 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사회를 은근히 고발하는 뉘앙스가 풍긴다. 언론 역시 골치아픈 사건은 빨리 종결지으려고 아귀가 맞지 않는 진술은 대충 무시한다는 내용도 충격이었다. 나는 어쩌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드는 식으로, 언론이 보여주고자 하는것만 보며 그 말을 다 믿었던 꼭둑각시가 된 느낌도 받았다. 이런 일이 있지 않으리란 법도 없을진대, 나는 내가 듣고자 했던것만 듣고, 보고자 했던것만 봤으며, 보여주는 것만 보고자 했던 내가 한심하게 생각됐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개였다. 마지막 몇페이지 남겨두지 않았을때 조차도 눈을 뗄수 없고 팽팽한 긴장감이 나돈다. 한시도 날 놔주지 않은 그 긴장감은 오래토록 내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살인마의 아들이지만 아주 잘 성장한 서원을 보며 그래도 그나마 행복하게 책을 덮을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다니, 내가 책을 읽으며 이런 기분에 빠진적이 있던가 다시 곰곰히 생각도 해보게 되지만, 그런적은 없었던것 같다. 올해 보기드문 수작을 많이 접하는것 같아서 행복하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밤 또 이 책을 음미하느라 잠을 제대로 잘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만날때의 난 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