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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였다 ㅣ 시나리오픽션 2
안민정 지음 / 바이람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시한부인생은 늘 드라마나 영화의 주요 단골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눈물을 쏟게 만드는 뗄레야 뗄수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영화배우 이범수가 열연을 펼쳤던 <이대로 죽을순 없다>라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은 참 눈물겨웠다. 형사였던 이대로가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 남은 딸을 위해 순직처리 되길 희망하여 물불 안가리고 목숨을 거는 활동으로 표창까지 받는다는 내용이었을거다. 난 이 책을 보면서 그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 악마를 죽이고 깔끔하게 가겠다던 아버지의 계획은 알수없는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했고, 아들이 살인용의자로 몰려 아들의 결백을 밝혀야만 하는, 마음편하게 죽을수도 없는 설정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했다. 자식을 방치한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하는 아들중에 누가 더 큰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않다. 중요한건 증오 역시 또 하나의 사랑이라는거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워 그 사랑을 증오로 키웠지만 결국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증오심마저 눌러버리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모든것을 잊어버리려 일에 몰두한 한 남자를 누가 손가락질 할것인가. 진짜범인이었던 악마의 아들 역시 겉으로만 보자면 친부를 죽인 패륜아겠지만 난 왜 그가 이해되는것일까?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죽이는것도 모범답안은 아니다. 모두 피해자인 것이다.
역시 형사는 틀리다. 남들보다 더 민감한 오감을 넘어선 육감. 남들보다 더 뛰어난 추리력. 남들보다 더 끈기있는 인내심. 형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것은 맞다. 때로는 가족이 필요할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때로는 자신의 희생도 따르기도 하다. 이 책은 네단락으로 엮어져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네단락의 제목이 왜 이리도 슬픈걸까? 형사 손기철, 살인범 손기철, 용의자 손기철, 아버지 손기철. 죽기전 해야만 했던 살인이 아들이 용의자로 몰려 기를 쓰고 자신의 범행임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손기철. 그는 시한부인생이다. 진단명은 대동맥류. 큰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지면 과다출혈로 쇼크에 빠져 즉사할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그런 몸도 편치않은 그가 아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너무나 눈물겹다. 그렇다고 그의 살인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포커스로 맞추고자 하는것은 뜨거운 부정이기때문에. 어차피 손기철이 죽이지 않아도, 이미 적을 많이 만든사람은 언제든 꼭 벌을 받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동맥류임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참아가며, 약으로 다스려가며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모습은 내마음을 울리기 충분하다.
시나리오픽션 시리즈 작품이라고 하는데, 영화로 나와도 흥미진진할 내용이다. 읽으면서 줄곧 아버지역할엔 김윤석이 떠올라 나는 손기철을 배우 김윤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읽었다.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으면서 빠른시간내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족의 힘이 무엇인지, 가족간의 사랑은 어떤것인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아버지의 목숨을 건 사투는 요즘처럼 건조한 가슴으로만 살게하는 시대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내 가슴에서도 차오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분은 꼭 한번 보는게 좋겠다.
"살아야 한다. 난 아직 죽으면 안 된다.
괜찮다.
가서 말하면 된다.
내가 죽였다고, 내가 범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