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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를 볼것도 없다. 제목만 보거나 들어도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책중독자라는 표현도 신선했지만 책중독자의 고백이라니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말을 보고도 궁금하지 않다면 당신은 이런 봄날, 흩뿌려지는 벚꽃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냉혈일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빛 아래, 콧등을 간지럽히는 살랑대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은 나를 들뜨게 만들기도 한다.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은 없지만, 왠지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다. 하다못해 갈 곳이 없다면 시장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날 나는, 가끔 눈이 피로해지면 눈길을 올려 흩날리는 벚꽃을 가끔 감상을 하며,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을 보며 즐거워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첫장부터 내 무거운 고개를 수없이 끄덕이게 만들고, 어느덧 저자의 존재는 까막한 하늘로 올라가 태양처럼 빛나듯, 나같은 소시민은 절대 따라할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책의 초반부엔 자신이 과연 책중독자인지 먼저 테스트를 한 뒤 읽도록 되어있는 구조이다. 얼마나 편한가! 일단 스스로가 어느단계인지를 깨닫고 책중독자의 고백을 들으니 내가 그동안 책에게 해왔던 습관이나 행동들을 꼼꼼히 되짚어 볼수 있었다. 나의 책중독지수는 밝히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웃었고, 수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손을 뗄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보자면,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책갈피가 필요없었다는 얘기다. 그 말인즉슨, 책을 들게되면 단번에 읽게 되었다는 뜻이다.
책중독자들에겐 여러부류로 나뉘지만, 특히 장서광과 애서가로 나뉜다는 점이 새로웠다. < 애서가는 책 고르는 법을 알아서, 다양하게 검토한 후 책을 늘려간다네. 장서광은 그저 첩첩이 책을 쌓아올리지, 때로는 그것을 들여다보지도 않고서. 애서가는 책을 음미하지만, 장서광은 책 무게를 달거나 평가한다네. >
아주 잘 설명한 글이다. 아마도 저자가 그 뒤에 말하고자 하는게 어떤건지 이 소제만 봐도 알것 같지 않은가?
이 책은 종종 만화가 그려져있어 책중독자의 고백에 이끌려가는 나의 영혼을 잠시 현실로 되돌리게 한다. 웃음이 터지지 않을래야 터지지 않을수 없는 만화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무시무시한 아내 혹은 남편의 눈을 피해 책을 무사히 집으로 들여가는 미로게임이나 상상속의 환상의 책방의 그림들은, 자칫 저자의 정신병동에서나 들을 소리라고도 할수 있는 말들을 그저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현실세계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노하우 전수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지게 하는 적절한 안배같아 보인다.
나는 책의 어떤 한 부분을 인용하는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주 흥미로운 십계명이 있어 잠시 옮기고자 한다. 십계명중 폭소를 터뜨린 3계명만 간추리도록 하겠다.
< 책을 다룰 때의 십계명 > 中 3계명
1. 책 한 귀퉁이를 접어 페이지를 표시하거나 심지어 그렇게 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차고에 있는 단두대로 즉시 인도된다.
2. 손가락에 침을 묻혀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은 즉시 교살당할 것이다.
3. 책등에 금이 가게 하는 자는 즉시 이 서재의 주인에게 보고할 것이며, 그런 자의 두개골에도
금이 갈 것이다.
책에 대해 괴팍한 집착을 보이는 어느 책중독자의 서재 옆에 붙어있는 십계명이라 한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행위는 나 역시 용납할 수 없지만, 내가 봤을때는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트릴만 한데도 실제로 누군가의 서재옆에 붙어 있는 십계라 하니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목과 몸이 분리되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서재는 눈으로 보기만 해야할 듯 싶다. 혹시 내 옆의 누군가도 책중독자 일수 도 있으니 말이다.
책중독자의 치유방법은 역시 책중독자 답다. 책중독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한다. 책사느라, 또는 책 읽느라 모든것을 잃고 철처한 패배속에서 승리를 가질수 있다고 한다. 그러려면 걱정말고 책을 아주 심한 곤경에 빠질만큼 책을 사들여라 충고한다. 역시 책중독자 답지 않은가! 이런 결론이야말로 책때문에 결혼도 하지못한 책중독자 톰라비 답다 할수 있다. 톰라비는 간혹 장서광의 행동을 많이 보였지만, 책도 상당히 많이 읽은듯 하다. 책안의 책정보나 그간 책중독에 빠졌던 책중독위인들의 행보나 그들이 썼던 작품들이나 그들의 세계를 깨알같은 유머를 섞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우리에게 알려준다. 책 없이는 못사는 책중독자나 책귀신들이나 책쟁이들은 한번쯤 자가테스트를 해보는것도 좋을것같다. 아무리 결과가 좋지않아도 웃음을 잃지 않고 책을 대할 수 있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그런 책이다. 이런 봄날 아주 유쾌한 책을 읽었다. 벚꽃구경을 다녀온 듯 마음도 즐거워졌다.
나의 영혼은 책으로부터 안전한가?
당신의 영혼은 책으로부터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