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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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쌓인 책들이 많아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들은 작년 수상작들보다 더 친밀하고 읽기 재밌는 작품들로 구성된 것 같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작품을 해석했을 때 훌륭한 작품보다 독자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해서 책을 읽을 때 꽤 즐거웠었다. 작품성, 작가의 이념과 말하고자 하는 말, 또 사회적 화두나 젠더 갈등이나 이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너무 몰입되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덜하게 해선 안될 테니까.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보니 매년 갈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있었고, 그래서 읽기마저 거북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문제들조차 소설의 매력 속에 녹아져있어 읽고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내가 누군가의 부모는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를 기르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서 그런지 (그게 아니더라도 제일 재밌던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 아주 인상깊었다. 이를 테면 뒷통수를 아주 제대로 맞아서 슬픈 그런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 그 외에도 전하영 님의 작품은 역시 대상을 수상할 만하다고 느꼈고,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매년 이렇게 좋은 작품들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상대를 찾는 일이 정말 드물어졌다.

"어린 사람들이 사랑이 많죠. 거의 심장을 내놓고 다니는 수준이랄까."

나의 우울과 상관없이 봄날은 아름답기만 했다. ... 항상 돌아올 것만 같은 이 계절들. 앞으로 몇 번이나 볼까. 운이 좋으면 삼사십 번쯤 더? 운이 안 좋으면...... 그건 아무도 모르지. 모르는 일이야. 아무것도. 정말. 모르는 일이지 않나? 인생이란 게 흐흐.

... 내 인생을 망치고 싶었다.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서른 살 무렵에 죽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연수와 다닐 때면 ‘다른 한 여자‘의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두 친구 중 더 아름다운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내 분투했다.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의 굴욕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요즘엔 집에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옆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 좀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느낌인데, 그게 또 너무 행복한 거야."

(......)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그래도 평생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야. 마음 맞는 친구라도 찾아서 같이 살아."

"... 자식들에 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잖아?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원래 가족들은 서로서로 잘 몰라. 너무 잘 알아도 이상하지."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을 한다.

뭐든 남들보다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 문제 없어요. 밥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야. 걱정할 거 없어.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살아봐야 알지. 좋은지 나쁜지 뭐든 당장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돈을 벌 때, 나는 종종 내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갈 수도 있는 거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야." - 안나 카레니나 -

어딘가에 있을 나의 반쪽, 너는 나를 사랑해줄까. - 미네쿠라 카즈야, 『최유기』 중 오공의 대사

어쨌거나 어떤 것들은 또 여전했다. 그러나 하나의 물음이나 대답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인 까닭에 어떤 것은 그토록 변하지 않아서 안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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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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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산책.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판중인 '말들의 흐름' 책을 두 번째로 읽었다. 첫번째 책은 유진목 님의 『산책과 연애』. 그것도 모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었고, 유진목 시인도 좋아해서 제일 먼저 읽은 것이다. 『시와 산책』 저자인 한정원 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앞으로 이름을 기억하고 알아보게 될 것이다. 이 두 책 말고도 시리즈가 더 많이 나왔는데, 다음으로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커피와 담배』? 아니면 『연애와 술』을 읽어볼까?
 책을 읽으며 매번 느끼는 건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글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었다. 내겐 책 취향이란 게 너무 뚜렷하고 좁은 영역으로 특징지어진 반면, 이 분들은 어찌나 이렇게 다양하고 폭넓게 많이 읽으셔서 내적 그릇을 키우시는지 매번 감탄을 하고야 만다. 진정한 산책가인 한정원 님도 '시'와 '산책'이라는 책 제목에 맞춰, 자신이 산책하는 일에 대해 쓰면서 또 내가 잘 알 수 없는 시인들이 쓴 시들도 짧게 옮겨와 다양한 시의 한 구절들을 느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 읽은 책 두 권 모두 베스트 셀러다. 그런데 '시'는 다소 어렵다고 느끼거나 공감을 덜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 책의 평점은 7.5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내겐 좋은 책이었다. 나는 8.2 정도의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 너무 커서 거기에는 바다도 있고 벼랑도 있고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무데도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거대해서 오히려 하찮아진다.

위로의 말은 아무리 공들여 건네도 섣부르게만 느껴진다. 위로의 한계이자 말의 한계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 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 세사르 바예호,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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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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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내게 사회과학책은 어려워서 접근금지 영역이었는데, 이 책은 왠지 끌렸다. 내가 '가난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넓은 영역의 문제가 아닌, 딱 한 가지, '재활용품 수집하는 노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면서 깊이 와닿아 남일이 아닌 것처럼, 그저 책을 읽는 게 아닌 것처럼 함께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작가가 지적하는 현실의 문제점도 명확하게 보였고, 작가가 하고픈 말이 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셋 이상만 모여도 그들의 의견이나 취향을 통일시키는 게 어려운데,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한데 '노인'이라고 묶어서 그들이 겪는 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공통적으로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위대한 정책가가 와서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아도, 그것을 다른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일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정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실 머리가 상당히 비상한 인물들인 것이다. 일 제대로 안하고 세금만 축낸다고 욕할 때도 많지만, 그 와중에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은 얼마나 머리가 아플지도 짐작이 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간과했던 걸 깨달았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국민연금, 노령(기초)연금 등으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많이 보시는 것 같단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지금 '노인'이 되셔서 '폐지를 수집하는' 일 등으로 생계를 연명하시는 분들은 그런 혜택이 생기기 전에 나이를 드셨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의 안전망에도 속하지 못하고 혜택도 받지 못해서 매번 끼니 걱정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거니까... 새삼 마음이 다시 아프면서, 나도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져가도록 바른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환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노인분들에 대한 기부활동도 하도록 작은 것에서부터 신경쓰려고 한다. (책에서는 노인에 대한 기부활동도 실상은 자신을 위한 거라고 그리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가장 문제인 지점은 노인계층의 가난이다. ...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미국의 17.8%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였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의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적었지만, 의문이 든다. 노인이 꼭 일을 해야 할까? 정부는 일정 이상의 나이가 된 사람들을 ‘노인‘이라 부르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은퇴‘를 하게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인‘의 ‘고용률‘을 계산한다. 이건 모순된 상황이 아닐까? 게다가 노인들의 가난 문제에 대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한다. ‘은퇴‘를 하게 해놓고, 질 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은퇴를 재고하자는 것과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 특히 가난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통계‘나 ‘가난한 장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폭로와 경고의 형태가 많다. 더구나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란 가난의 표상으로 쓰이곤 한다. 노인의 동년배들은 연민을 표하고, 이보다 젊은 세대는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실패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대처는 미미하다. ... 정작 필요한 건, 노인의 생활을 개선할 실질적인 방편이다.

윤민석(2015)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서 ‘피고용‘ 노인은 (대개) "근로조건과 고용기간에 대한 명확한 계약 없이 불투명하게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으며, 근로시간은 길고, 임금은 낮으며, 여러 가지 차별을 겪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고용불안을 겪으면서" 일을 한다.

사실 착취의 문제는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서 시작된다. 즉, 상품과 함께 포장재를 생산한 제조업자와 소비자에 포장재를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를 노인들이 전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인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것이다. 즉,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가난한 노인들에 대해 ‘열심히 살지 않은 젊은 날의 결과‘라거나 ‘부양해줄 자녀와의 어떤 문제‘가 있어 저렇게 사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만다. "역시 가난한 노인들은 가난한 이유가 있어."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삶이 순전히 개인의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비경제활동인구로 여겨지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다시 정부의 재정으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노인들의 삶을 ‘매년 초‘에 열리는 일용직 채용시장에 밀어 넣는 일로, 그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더구나 우리는 노인들이 일하지 않더라도, 사회서 보호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해야 할 일이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며, 그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사회의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녀는 늘 열심히 살았다. 풍족했던 젊은 시절엔 자녀들을 잘 키워보겠다며, 나이 든 지금엔 자신을 스스로 건사해보겠다며 말이다. 그녀의 노력은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 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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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쓰레기는 뭐지? - 예측할 수 없는 청소부의 하루하루
다키자와 슈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 현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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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이다. 더욱이 읽기도 너무 쉽고 재밌다. 이런 비슷한 우리나라 책(에세이)을 서점에서 다른 이름으로 본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직업정신은 숭고한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존경할 만하다. 특히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며 전문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더욱 대단하고, 누구나 피하려고 하는 힘들고 어려운, 소위 3D 직종의 일을 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작가는 자신의 본업(코미디)에 대한 열정과 목표, 즐거움이 있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부업으로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쓰레기 청소부 일을 택해서 했다. 더구나 이 책을 낼 때가 6년째라고 한다.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나는 일에 대해서는 늘 어렵다는 마음 뿐이었다. 일은 내게 구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을 해보면서도 아직까지 내게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 일이라는 게 귀천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도 타인의 시선과 만나는 부분이 있기도 해서 직업을 정할 때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글쓴이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느끼기만 했던 쓰레기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도 다시 깨닫게 되었고 말이다.
 '유퀴즈 온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얼마전에 쓰레기 청소부 아저씨가 나왔던 걸로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유퀴즈처럼 성심성의껏 그 사람을 표현해주는 좋은 프로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삽화까지도 있어서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이니(코미디언이라서 글도 재치있고 재밌다) 가볍게라고 한번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곧바로 파쇄기를 샀다. 왜냐하면 쓰레기에는 어마어마한 개인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생활의 축도라 할 만하다.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쓰레기를 내놓는 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니까 내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도 이상하고, 굳이 그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품은 생각을 어디에 간직해두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건 틀렸어‘하고 한마디로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많이 사지 말기.‘
‘너무 많이 만들지 말기.‘
‘음식을 너무 많이 남기지 말기.‘
앞으로 미래에는 이 말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서른여섯에 쓰레기 수거 일을 시작한 때에 비해 제대로 인사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일부러 미소를 짓는 일도 익숙해졌고, 몸도 튼튼해졌습니다. ... 인간으로서 성장했습니다. 성장? 뭐요? 성장이라고요?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서른여섯의 저보다 현재의 제가 더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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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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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리뷰를 써도 평론 같은 느낌으로 제법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당최 어찌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여러 책을 읽어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게 정확한 말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마음에 없는 것을 거짓으로 꾸며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쓰기 싫은데 억지로 글자 수를 늘려 적은 글을 보면 누구나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소설책은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주식 책, 다이어트 책, 에세이 등에 밀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다. 이주란 작가님은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구매 사이트의 리뷰를 보니 팬층이 상당히 두터운 것 같았다. 그런 능력있는 작가님의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따뜻한 느낌, 다정한 느낌,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 느낌 등... 작가의 시선과 표현에 따른 여러가지 느낌이 들긴 들었지만, 말하는 순간 흔해빠진 리뷰 중에 아주 못 쓴 리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내가 가난하기 때문인 걸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잘 사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다른 나라 이야기나 전래동화를 듣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지 않을까? 공감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언젠가 다시 사람 같은 것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M은 내가 다시 예전의 일상을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나를 떠났다. M이 떠날까봐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고 없었다. 나는 가끔 그때 나를 살게 한 것이 나였는지 M이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떤 순간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줄을 모르겠다.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살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뚱뚱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다. 팔십 킬로그램은 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들은 정말 내가 뚱뚱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 몸에 대해 내가 얘기하는데 더 뚱뚱해야 뚱뚱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외모에 대해 신경쓰고 싶진 않지만.

원래 가난한 것들이 더 살찐다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적도 있다.
내 경우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래 기분이 나빴다.

앞으로 내게 많은 불행한 일들이 예고되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결정하고 싶었지 갑자기 통보받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는 더 가난해질 일만 예고되어 있었으므로 가난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돈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방법을 골똘히 궁리해보고 싶었다.

오전에 몇 차례 구토를 하고 울면서 겨우 화장을 한 뒤 출근을 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여행에서 신을 운동화를 구입했다. 자기 전에는 아무래도 내가 오래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나의 몸과 마음과 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가 내 몸과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그것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

힘든 것도 거기에 있었지만 행복도 거기에 있었다.

나는 쏴ㅡ 하는 빗소리를 들었다. 비는 순식간에 퍼부었다가 순식간에 그치기를 밤새도록 반복했다. 삶에 대해 말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건 오늘 같은 날씨의 반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I 말이야. 너무 귀엽지 않았어?
너도 귀여워!
우리도 그런 아이 낳을까?
오늘?
.....
오늘 너무 고맙네.
만약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골프연습장은 못 보내겠지.
그런 걸 뭐 아무나 보내나.
만약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 먹고 나눠 쓰며 살아야 하겠지.
내 거 다 줄게.
아냐, 아냐.
우리는 다 마른 발을 포개고 누웠다. 나는 오늘 준이 전에 없이 다정하다고 느꼈다. 왜......라고 생각하며 그의 이마와 손가락 같은 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아주 깊이 생각했다면 후회할 선택 같은 걸 안 했을까?

그 순간이 한 번뿐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순간이 한 번뿐이고 누군가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지금과 좀 달랐을까. 그러니까 너도 넌데 나도 하나뿐이라고...... 수진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으나 나 자신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알았다고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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