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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력 20,30대 직장인의 힘
호리 코이치 지음, 정난진 옮김 / 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직장생활 20년이면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니다. 시장조사회사에서 첫 직장을 시작하여 중소기업을 거쳐, 남들이 말하는 대기업까지, 일반사원에서 대리, 과장, 차창을 거쳐 부장, 팀장까지 그 동안 모셨던 상관은 수십 명이고, 함께 일했던 직원은 당연히 수백 명이다.
그 동안 상사와 관계가 별로 안 좋아 부서를 이동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나와 함께 일하던 직원이 일하기 힘들다 고 나간 적도 있었다. 얄미운 동료 때문에 혼자 술 마시며 욕지거리를 해 댄 기억도 있고, 나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들다 는 직원을 달래느라 밤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 중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13년 전일이다. 회사에 임원이 새로 들어 온 적이 있었다. 그 임원은 광고 대행사에 근무하던 사람이었는데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다고 경영진에게 인정 받아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발령 받았다. 그 당시 그 업무를 관리하던 나와는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
임원이 들어 온지 몇 달 안되어 드디어 걱정하던 문제가 터졌다. 평소에도 그 임원과 내 생각이 달라 업무 방향을 조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날은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상황까지 가 버린 것이다.
임원과 언성을 높였던 그 날, 나는 부서로 돌아가 부서 직원들을 모두 퇴근 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 보름동안 부서 업무를 완전히 중단했다. 그 바람에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업무 이외의 상품개발, 관리, 홍보, 판매 업무의 대부분이 마비되었다. 그 당시 이런 내 행동에 주변의 부서장들도 동조하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무엇을 믿고 그토록 과격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두 달 후, 결국 그 임원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 일년 뒤, 경영진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출장중인 상황에서 전화로 부서 이동을 지시 받았다. 내가 관리하던 부서는 내 밑에 있던 과장이 맡고, 나는 직원이 한명 밖에 없는 신설부서로 가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한 경영자의 말은 “3일 내에 결정해서 알려주세요” 였지만, 이것은 Yes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는 말 밖에 더 되겠는가.
나는 당연히 이런 상황이 내 앞에 닥칠 때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지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자문을 구했다. 무척 심각한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해법을 열심히 이야기 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옳은 해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내린 결정을 지지해줄 수 있는 답을 찾고 있었다. 수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내 생각과 다른 것은 한 쪽 귀로 듣고 바로 흘려버렸다.
가끔 나에게 직장문제 때문에 이메일 또는 쪽지로 자신의 직장문제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 자신을 피해자라고 규정짓고 상담을 요청한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못 받고 있고, 자신이 기여한 만큼 인정 받지 못하며, 자신의 좋은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그런 문의를 받을 때마다 별로 어렵지 않게 대답을 해 주었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과거에 내가 한번쯤은 겪어본 것들이고, 직원 행동에 대한 기업이나 상사의 반응은, 하나의 조직이기 때문에, 거의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의 이념이나 가치관을 중요시 여기는 기업이나 관리자는 제외하고.
하지만 얼마 전부터 직장인들의 상담요청을 보면서 뭐라고 답변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의 대답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과거의 내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내 의견을 지지하는 생각을 원한 것이지, 어떤 현인의 진리를 듣고자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 [돌파력]은 이러한 내 고민을 더욱 심화 시켜 준 책이다.
저자인 호리 코이치는 요즘 시각으로 봐도 무척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이다. 나이 30대에 유학을 갔다 왔고, 40대에 대표이사를 지냈고, 50대에 자신만을 위한 회사를 창업했다. 그의 경력을 보면, 최소한 직장, 직업, 창업이라는 분야에서는 겪어 보지 않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들의 질문에 대해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온다. 이 책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 책 내용 중에서 몇 개의 예를 들어본다.
프리젠테이션 전날 긴장해서 잠을 못 잔다고 하소연한 직장인이 있다. 그의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변한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면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고 가벼운 수면제라도 처방 받는 것이 어떨까요?”
대기업 영업부에 근무하는 직원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다고 전직에 대해 물어보자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요즘 젊은이 중에는 기업사회의 실정도 잘 모르고 그저 회사이름만 중시하여 취직이 아닌 취사(회사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당신도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생각으로 취사를 해 버리지는 않았나요? (중략) (만약 지금 엔지니어라는 직종으로 직장을 옮긴다면) 햇병아리인 당신은 최소한 3년 동안은 밑바닥 생활을 견뎌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각오가 되어 있다면 직장을 옮겨도 좋습니다.”
또 맨 날 창업만 생각하면서도, 실제 일하지는 않는 남편 때문에 고민하는 한 직장여성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창업의 창 자도 거론할 자격이 없으니 포기하시오.”
답변 하나하나가 무척 시원스럽고, [글 고치기 전략]에서 말한 글쓰기 10가지 원칙 중 “독자의 가슴으로 직진하는 표현을 꾀하라. 군더더기는 글 심을 약하게 한다.”란 내용에 딱 들어맞는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나라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분명히 나도 저자와 비슷한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차마 그렇게 까지는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이 눈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여성직장인은 저자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이혼하라는 것인가? 남편은 포기하고 혼자 살라는 것인가?
하지만 내 고민은 이런 것이다.
첫째, 이런 방식의 답변-상대방의 감정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강한 표현-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는 점이다. 인간관계에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란 있을 수 없고, 동일한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를 놓고 봤을 때도 어떤 결과가 가장 좋은 것인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둘째,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자가 내린 결론이 맞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의 표현방식이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표현방식을 떠나 그의 말에서 틀린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또 저자가 아이를 키우는 유모도 아닌 상황에서 사람마음을 달래가며 그를 설득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거쳐야 하는 직장생활, 그 속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갈등과 번민, 하지만 새로운 것이 아닌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문제들, 이러한 것들을 직장인들이 보다 쉽고, 편안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올바른 선택을 자기 스스로가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상담에 응했던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해 준 책이며, 나에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강하게 심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