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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를 넓혀라 - 광개토 태왕 코드 27
윤명철 지음 / 마젤란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제 세계는 하나의 나라나 마찬가지다. 오늘 서울의 일이 몇 시간도 안 되어 미국 방송에 나오고, 한두 달 전에 중국의 작은 성에서 만든 상품이 버젓이 대형할인점 매장에 놓일 정도다. 이제는 지구공화국이 탄생한다는 말도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쉬운 게 있다. 그것은 토끼모양의 한반도 반 쪽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두 개의 나리로 쪼개져 동일한 민족이면서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멀게 살아가야만 하는 불쌍한 신세다.
국민학교, 중학교 역사 시간 때, 한 민족도 한 때는 중국 땅까지도 차지했던 거대 민족이고,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발명품도 많다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업은 잠시뿐. 역사책을 뒤로 넘기는 순간, 당과 연합해 한반도의 일정지역만 차지한 신라 역사가 다음의 길고 긴 장들을 이끌어간다. 고조선, 발해, 부여, 고구려의 과감함과 웅대함보다는 섬세하고 세밀한 신라왕관, 경주 지역의 아름다운 절, 술 잔이 돌아가는 연못과 같은 것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동아시아 땅덩어리를 호령하던 우리 민족의 피는 서서히 묽어지고, 한반도 땅덩어리에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며,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한’민족의 ‘한’ 이 머리 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말로는 기상을 높이고, 세계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라고 외쳐대면서, 한 쪽에서는 우리 핏줄은 원래 작은 땅덩어리에서 서로를 죽이지 못해 싸우며 살아온 민족이라는 증거만을 계속 외우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 알렉산더와 같은 위대한 왕이 없었던가?
광개토 태왕, 대왕보다 더 크고 위대한 왕의 이름이고, 실제로 그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위대한 지도자다. 한 때는 중국과 대등하게 힘을 겨뤘던 한민족의 위대한 왕이자. 한반도를 중국으로부터 지켜왔던 고조선의 직계 자손이다.
18세 나이,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생 정도인 그가 왕이 되어 제일 먼저 한 일은 백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역사를 되돌리는 것이었다. 즉 고구려 백성들에게 그들만의 기상을 높이고, 선조 때부터 당해왔던 백제에 대한 아픔을 잊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해 냈다.
어린 그가 그런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의 백제와 북의 거란을 거의 2개월 차이를 두고 신속하게 공략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고구려의 부활을 알렸다. 백제를 치고 난 다음, 남들은 이제 쉬겠거니 생각하며 마음 놓고 있는 틈을 몰아 바로 적국으로 돌진한 것이다. 그러한 고구려의 민첩성에 적국 사람들은 얼마나 식은 땀을 흘렸을까.
그 때부터 시작한 그의 정복. 거대한 제국을 꿈꾸며 한반도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거점만을 골라 그곳을 정복하고, 이를 기점으로 수륙양면의 거대한 고구려 재건사업을 펼쳤다. 정확히 말하면 고조선의 꿈을 재건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광활한 만주벌판을 말을 타고 달리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 곳은 그가 태자 때부터 고구려재건을 생각하며 신하들과 함께 달렸으리라 예상되는 지역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를 달리며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맹세했을 것이다. ‘이곳은 고구려의 땅이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다’라고. 그리고 왕이 되자 그곳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기 위해 다시 달렸고, 결국은 그 땅을 손에 넣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기상이 살아있는 듯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내용 속에서 잊혀지지 않은 광개토 태왕의 모습이 몇 개 있다.
하나,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필요한 요충지만을 골라 순차적으로 만들어 나간 점이다. 한반도와 중국의 전 지역을 무력으로 공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목’을 정확히 판단하여 그 지역을 신속하게 고구려 세력 하에 두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모든 지역과 교류했다. 마치 사냥을 위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는 사자의 모습이 떠 올랐다.
둘, 그가 행한 모든 것의 배경에는 자신에 대한 분명한 주체성과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고구려의 뿌리인 고조선의 위상을 회복한다. 나는 하늘의 아들로부터 나온 직계 자손이다’와 같은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자신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그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셋, 일의 진행시기와 절차를 잘 다스렸다는 점이다. 즉 활동할 수 있는 계절에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정복을, 추운 겨울이나 우기에는 고구려의 문화와 백성들의 안녕을 위한 사업에 힘을 쏟은 것이다. 그 결과 군사력과 문화, 땅과 정신이 함께 커가는 선 순환 고리를 만들었고, 이것이 고구려를 이끄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 왔는가? 이러한 해답은 저자 말대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며,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역사가 바로 그 증거다.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수 많은 이야기 속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우리의 본질을 설명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의 미래 향을 결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구려. 이는 단순히 신라에 점령당한 삼국 중의 하나가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한 민족을 지켜왔단 수문장과 같은 역할을 한 우리의 국가이며, 우리 민족이 세계를 향해 민족의 주체성과 그에 걸 맞는 역량을 보여줬던 우리의 뿌리다.
[독서경영]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과 조직 구성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1. 조직원들이 간직한 기업의 역사는 무엇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2. 그들이 갖고 있는 미래 향의 모습은 어떤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3. 사업의 비전 구현을 위해 올바른 ‘목’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곳을 정확하게 확보해 나가고 있는가?
4. 리더의 꿈은 무엇이며, 그가 진정으로 그곳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