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젖소를 떨어뜨린 이유
알지라 카스틸유 엮음, 임소라 옮김 / 좋은생각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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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는 재미있다. 읽기도 쉽고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무슨 말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지 그 의미를 잘 몰라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교육받았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있다. 인생 자체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가치와 태도를 우화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책 내용을 크게 ‘지혜, 사랑, 믿음, 인생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나눠 해당 주제에 적합한 우화들을 소개한다. 이미 존재하는 글을 엮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때는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돌려 치는 것 같은 문장 표현에 혀를 차기도 했다. 역시 우화는 평소 때는 잘 느끼지 못하는 의식들을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어디서 왜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듯한 내용들이다.

책 내용들이 다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에 깊이 와 닿은 내용들이 있었다. 아마도 지금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되돌아 보게 해 줬기 때문인 것 같다.

우선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제목의 우화였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비통해 하던 왕, 하지만 전쟁에 승리하여 개선하며 즐거워 하는 왕에게 그의 아버지가 남긴 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기쁨도 슬픔도 잠시일 뿐,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감정이라는 말일 것이다.

‘절벽에서 젖소를 떨어뜨린 이유’. 이 내용은 젖소에 의존하여 변화없이 살던 한 가정이 젖소를 잃어버리자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바꿨고, 이로 인해 예전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변화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안정된 현재의 삶을 놓치기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빗대어 한 말 같다.

‘무엇을 위해 뛰는가’. 한 고승이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 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토끼는 여우로부터 능히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제자는 여우가 토끼보다 더 빠르기에 여우가 토끼를 잡을 것이라고 했다. 그 때 고승은 여우가 토끼를 잡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여우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뛰지만 토끼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루하루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든 이야기다.

물론 토끼처럼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듯이 악착스럽게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에게는 여유로움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매 순간 내 앞에 놓인 일과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는지.

우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오래 기억하게 해 준다. 딱딱한 내용이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커피 한잔 마시며, 한 장씩 읽어보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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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가 자기 발등을 찍는 30가지 실수
빌 리 지음, 박수철 옮김 / 예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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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20년. 관리 받는 직원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관리자랍시고 직원들을 평가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면, 과장 시절 때 임원 한 분이 한 말이 생각난다. 방과장. 자네 직급이 제일 좋을 때야. 과장으로 권한도 있고, 관리할 직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을 책임지지 않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과장 자리거든. 이때 즐기라고. (내가 과장 시절에는 과장이면 진짜 과의 장이었다. 지금처럼 직급만 과장인 시절이 아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잘 와 닫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더 빨리 차장, 부장으로 진급하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 보면 그 임원이 해 준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적당한 권한과 적당한 책임.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관리자로서 가장 힘들 때는 내가 뽑은 직원이 말을 안 들을 때다. 만약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해 내 부서로 보낸 경우라면, 인사과에 전화해서 불평이라도 터뜨리겠지만, 내가 좋은 직원이라고 주장해서 뽑아 놓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것인가. 아무리 리더십이 뛰어나고, 직원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사람은 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 법.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나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은 상관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별 효과가 없다. 좋은 직원을 원한다면 그 일에 맞는 직원을 뽑아야만 한다. 괜히 거만하게 난 누구든지 잘 훈련시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가는 쪽박차기 딱 좋다.

 

이 책, [관리자가 자기 발등을 찍는 30가지 실수]는 관리자라면 그가 누구던,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간에 동일하게 겪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내용 하나하나가 낮 설지 않고, 제목만 봐도 그 장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내용을 읽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 관계, 조직문제, 업무 관리에 특별한 묘책이 있겠는가.

 

좋은 사람을 뽑아 정성을 다해 알려주고, 그가 하는 일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것, 그러다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대안을 찾아 준비하는 것, 이것이 관리자의 임무이자 자신이 맡은 사업을 성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최소한 과장급 이상의 직원들과 이제 막 팀장이 된 신임팀장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이하 직급의 사람들이 보면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릴 것 같고, 베테랑 관리자들이 보면 별 감흥을 받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이 책 내용이 베테랑 관리자들의 문제를 다루지 못해서는 아니다. 내용을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예를 다루고 있다. 다만. 책 내용이 너무 논리적이라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관리방식이 몸에 밴 그들의 감성을 움직여 주지 못할 것 같다. 관리자들이 겪는 문제의 대부분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업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예문에서 이 책에 나온 30가지의 사례를 가지고, 직장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스토리텔링 식의 글을 써 보면 어떨까? 그런 내용이 어쩌면 관리자들에게 더 많은 감흥을 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일단 관리자가 겪는 실수에 대해서는 이 책의 내용을 넘는 경우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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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가 온다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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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표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사람이 있다. 이름은 존 헨리. 토목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타고난 힘과 강인한 체력을 가진 성실한 인물이다. 그가 실존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가공할 힘과 불운한 인생 마감 때문에 유명해 진 것만은 틀림없다. 

어느 날, 한 세일즈맨이 새로 출시된 증기기관 드릴을 가지고 그가 일하는 공사장을 찾아왔다. 그는 그 기계가 어떤 사람보다도 빠르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존 헨리는 그를 비웃으며 시합을 제안했다. 자신과 기계 중에서 누가 먼저 산허리를 뚫고 나갈 수 있는지 대결해 보자는 것이다. 시합은 진행됐고, 결과는 존 헨리의 승리였다. 간발의 차이로 존 헨리가 산을 먼저 뚫었다. 그를 응원하던 동료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그 역시 힘차게 한쪽 손을 올려 환호에 답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힘차게 손을 흔들던 존 헨리는 쓰러졌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인간과 기계와의 싸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 때부터 인간은 기계와 힘겨루기를 하지 않았다. 인간의 근력은 더 이상 기계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기업가들은 수 많은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체해 버렸다. 경영자들에게는 불평도 하지 않고, 쉴 필요도 없는, 기름과 윤활유, 가끔씩 손봐주기만 하면 되는 기계가 더 편했기 때문이다.

1996년에 또 한번의 기념비적인 시합이 있었다. 10년 동안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카스파로프와 컴퓨터 간의 체스 시합이다. 결과는 인간이 졌다. 그리고 다음해 1997년, 딥블루라는 슈퍼컴퓨터와의 재시합에서 또 패배를 맛봤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인간두뇌의 마지막 저항’이라고도 하고, ‘대혼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03년의 3차 대결. 그 때 카스파로프는 슈퍼컴퓨터와의 시합에서 비겼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인간은 더 이상 컴퓨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시합을 끝낸 카스파로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간에게 몇 년간 유예기간을 주었을 뿐이다. 바야흐로 기계들은 매 경기마다 이길 것이고, 우리는 단 한 게임이라도 이겨보고자 발버둥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인간이 가진 왼쪽 뇌, 즉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계산적인 뇌,는 더 이상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과학’ ‘기술’ ‘논리’ ‘합리’ ‘사고’ ‘분석’ 등의 고상한 표현과 함께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지배해 온 왼쪽 뇌의 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양을 종이호랑이라고 비웃으며 최신무기와 자본을 앞세워 이 세계를 점령한 서양의 힘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도끼에 제 발등을 찍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강점인 과학문명과 선진 자본주의, 즉 왼쪽 뇌의 논리가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과거 계산 빠른 컴퓨터가 단순지식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듯이, 이제는 전문성을 자랑하던 미국 회계사(월 5,000달러)의 일 조차도 일정부분이 대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어떤 기업은 아예 회계업무 자체를 인도 회계사(월 300달러)에게 맡기고 있다. 영어가 가능한 나라, 전화상으로는 미국인지 인도인지 알 수 없는 인도의 회계사들이 미국 회계사의 10%도 안 되는 비용으로 미국인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사’자 붙은 고급지식 노동자도 컴퓨터와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의 우수한 인력들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준화된 양식으로 인한 상담료 인하, 의사의 전문성보다 고가장비 보유수에 의한 병원의 등급 결정, 전산망 확대에 따른 일반 관리직의 퇴출 등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인건비가 비싸기로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런 상황에서 안전 지대인가. 과거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중국, 인도로 갔던 기업들이 이제는 전문직과 관리직 업무자체를 그 곳으로 옮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뭣 모르고 직장을 그만 두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왜 쓸모가 없어졌는지도 모른 채 그저 세상만 원망할 뿐이다. 아직도 더 일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것만으로는 어렵다. 이러한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자동화, 단순화, 표준화, 양식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세상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예전과는 다른 추가적인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왼쪽 뇌 중심의 능력에 오른쪽 뇌가 주도하는 기능인 ‘하이 컨셉트’와 ‘하이 터치’감각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 컨셉트'와 '하이 터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이 컨셉트(High Concept)에는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 트렌드와 기회를 감지하는 능력,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 언뜻 관계가 없어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뛰어난 발명품으로 만들어내는 능력등과 관계가 있으며, 하이 터치(High Touch)는 마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 어떤 사람의 개성에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요소를 도출해내는 능력, 평범한 일상에서 목표와 의미를 이끌어내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위해 6가지 재능을 키우라고 강조한다.

1.       (이제 상품과 서비스의 단순한)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라.

2.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안 된다. (재미와 설득이 가능한) 스토리를 겸비해야 한다.

3.       집중만으로는 안 된다. (작은 부분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4.       논리만으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과 배려가 가능한) 공감이 필요하다.

5.       진지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놀이도 필요하다.

6.       물질의 축적만으로는 부족하다. (물질적인 풍요를 느끼는 사회에서 이제는 삶과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나는 저자가 제시한 6개의 재능 중에서 몇 개나 갖고 있을까. 이것들은 그 동안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 정확하게 표현하면 필요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없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감성', '공감', '여유', '즐거움', '이야기' 등은 배가 부르게 되면 그 때  생각하자고 뒤로 밀어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노래하고, 시를 쓰고, 색깔을 만들어 내고,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재능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좋게 표현하면, 삭박한 기계와 논리, 숫자를 뛰어 넘어 인간 본연의 감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마치 암흑의 중세시대를 뛰어 넘는 인간 회복의 르네상스 시대가 온 것 같다.

감동을 원하는 세상, 아름다움을 찾는 세상, 공감과 조화를 원하는 세상. 멋지지 않은가? 그 동안 경제논리에서 뒤로 밀려난 인문과학의 등장을 예고하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보며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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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
마티 크럼프 지음, 이충호 옮김 / 도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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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명제 하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한다고 한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기막힌 방법을 통해 유전자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번식시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멍청한 수컷들의 사랑 역시 이와 같은 유전자의 명제를 현실로 재현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반쪽의 유전자를 암컷의 유전자와 결합시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상의 상대를 고를 것인가? 단 하나의 명제 속에서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구애하고, 암컷을 유인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인간 머리로 볼 때 도저히 더하기 빼기가 되지 않는 계산법의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번식의 칼자루를 쥔 놈은 암컷이고, 그들에게 애원해야 하는 것은 수컷인 것을. 아무리 수컷이 힘이 세고, 우수한 척해도 번식문제에 있어서는 암컷에게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다. 수십만 개의 정자를 가진 수컷과 단 하나의, 또는 정자보다는 적은 난자를 가진 암컷의 희소성이 만든 이상야릇한 생식 전쟁이다. 정자를 내 뿌린 다음에는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지만, 일단 뿌릴 곳은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 것 같지는 않다. 자기 종족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램된 방식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이들과 다르겠는가.

, 조개 껍질, 리본,포유류 두개골 등으로 화려하게 집을 지어 놓고 암컷을 유혹하는 바우어새, 관리하지도 못할 암컷을 모아 놓고 이 때문에 골머리 앓는 코끼리 물범,  암컷인 척 위장해 접근해 짝짓기를 하고, 몰래 숨어 있다가 짝짓기를 끝낸 암컷에게 달려들기도 하는 잔꾀 많은 수컷, 먹고 난 곤충껍질을 거미줄에 매달아 암컷이 그것을 먹을 동안 교미하고 냅다 튀는 불쌍한 거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자식에 대한 애정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좋은 온도를 위해 근육수축을 하는 비단 구렁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끊임없이 산소를 공급해주는 물고기, 혹한 속에서 새끼를 돌보는 황제펭귄 등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얄미운 기생충의 삶은 아무리 자연 속의 조화라고 하지만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 나는 이 책을 보며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다. 그들의 행동 위에 겹쳐 친 우리모습 역시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버리는 매정함, 자식을 돈 몇 푼에 팔아 넘기는 부모, 번식 자체를 포기하는 낙태, 성을 쾌락으로 생각하며 극단적인 형태의 행동까지도 요구하는 별종 등. 태초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상한 종이쪽지(돈)과 쇠조각(동전)을 위해 성을 이용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 책에 나온 멍청한 수컷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그들이 우리를 보며 이와 같은 책을 쓴다면, 그들은 책이름을 뭐라고 할지 무척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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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Code: An Ingenious Way to Understand Why People Around the World Buy and Live as They Do (Paperback) - 『컬처 코드』 원서
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 / Broadway Books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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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말, 지프 랭글러는 미국시장에서 옛 지위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사커 맘(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넓고 편한 SUV차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회사 출근용으로, 아이 통학용으로, 쇼핑용으로 지프 랭글러는 조금 부족할 것 같지 않은가.

크라이슬러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소비자조사를 실시했고, 수십 개의 FGI(포커스그룹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조사결과는 차가 좁고, 불편하고, 쿠션이 없고, 기타 등등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대답이 나왔다.

조사결과에 따라 경영진들은 현재의 차를 개조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현재의 착탈식 문(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문)을 고정식으로 교체하고, 지붕도 컨버터블형(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아닌 고정식 지붕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다 편안한 좌석과 더 넓어진 짐 공간을 만들어 기존 SUV차량과 거의 같은 차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크라이슬러만의 독특한 이미지와 기능을 가진 지프 랭글러가 사라질 상황이었다.

그 때 이 책의 저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시장조사를 다시 실시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미국인들이 지프에 대해 갖고 있는 코드는 (Horse)이다. 그것은 드넓은 들판을 달리거나 일반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험난한 곳을 거침없이 달리는 그 무엇이다. 말은 화려한 장비도 없고, 안장도 거친 가죽이며, 말을 탄다는 것은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지프 랭글러는 지금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만 한다. 다만, 말을 탈 때 다는 전조등은 둥근 모양이기에, 현재 차의 사각 전조등을 원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이 제안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말을 따랐고, 다음과 같은 지프 랭글러 광고를 방영했다.

한 어린아이가 개 한 마리와 산 속에 있다. 그런대 갑자기 개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간신히 나무에 매달려 있다. 아이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가까운 마을로 달려간다. 길가에 도착한 아이는 다가오는 세단형 자동차를 그냥 보내고, 미니밴, SUV도 보내더니, 지프 랭글러를 보자 도와달라고 손을 흔든다. 지프 랭글러를 몰고 아슬아슬한 산악 지형을 올라간 운전자. 그는 민첩한 동작으로 개를 구해낸다. 아이가 개를 끌어안고 운다. 그리고 운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뒤를 돌아보지만, 지프 랭글러는 이미 방향을 돌려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이가 고맙다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을까.

! 미국인들이 이 광고를 보고 무엇을 연상했을까. 아마도 미국 서부시대의 정의로운 보안관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미국인의 우상인 존 웨인과 같은 정의의 보안관 말이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 무법천지인 서부에서 불의를 없애는 정의의 사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내세우지도, 자랑하지도 않는다. 불의를 없앤 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이 말 없이 자기 길을 갈 뿐이다. 이 때 은 이들과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품이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지프 랭글러는 미국시장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말과 같은 느낌을 주는 지프 랭글러에 환호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크라이슬러가 유럽시장에서 지프 랭글러를 팔 때는 어떻게 했을까?  그 곳에서도 을 연상시키는 광고를 했을까? 글쎄다.

저자가 조사한 유럽 사람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지프에 대한 개념은 미국사람과는 달리, 해방자(Liberator)이라는 코드였다. 그들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을 히틀러로부터 해방시켜준 미국인의 지프를 연상했다. 미군이 독일군을 몰아내고 그 지역으로 들어올 때 맨 앞에서 부대를 이끈 차가 바로 지프이기 때문이다.

크라이슬러는 유럽시장을 위해 새로운 광고를 만들었다. 그것은 지프의 역사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을 해방시킨 미국인이 타고 다니던 지프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프 랭글러와 전쟁당시의 지프를 연계 시킨 광고다. 크라이슬러가 유럽 사람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이 차가 바로 당신들을 해방시켜 준 바로 그 차입니다. 이다.

저자는 말한다.  “’컬처코드란 우리가 속한 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다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 각자를 자신이 속한 문화에 의존하게 하는 이 제 3의 무의식은 바로 문화적 무의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독특한 무의식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상품에 부여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히 기능상 차별화가 아닌, 각각의 사람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욕구(want)에 맞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컬처코드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시장조사 방법으로는 어렵다. 사람들은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해 주려고 하고, 게다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무의식,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meme(밈)이라는 문화코드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존재한다. 따라서 저자는 컬처코드를 찾기 위해 조사자들을 수면상태로 만들기도 하고, 어떤 단어와 관련된 사진을 오려 붙이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조사자들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야만 그들의 문화코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미국 사람들의 지프와 말을 연결시키는 연상내용, 프랑스와 독일 사람들을 통해 발견한 해방자라는 개념은 평소에는 느끼기 어려운 것들이다.

내가 이 책을 보면 감탄한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시장조사회사의 수석연구원 경력 6년, 그 후 신규사업과 신상품개발 업무로 인해 항상 시장조사를 옆구리에 끼고 살아 왔지만 저자와 같은 개념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객관성과 논리성만이 시장을 지배한다고 착각한 채 살아 왔다.

인간의 가치와 태도를 결정하는 문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것 들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면 남자는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옳다는 인식 같은 것이다. 이 때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어떤 상품이나 사물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저자 말대로 마케팅에서 블랙박스로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볼 수 있는 열쇠를 갖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문화는 저마다 이런 단어(해와 달 같은)들에 대한 해석 즉 코드가 다르다. 코드를 찾아내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 즉 우리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행동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안경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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