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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
마티 크럼프 지음, 이충호 옮김 / 도솔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명제 하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한다고 한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기막힌 방법을 통해 유전자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번식시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멍청한 수컷들의 사랑 역시 이와 같은 유전자의 명제를 현실로 재현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반쪽의 유전자를 암컷의 유전자와 결합시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상의 상대를 고를 것인가? 단 하나의 명제 속에서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구애하고, 암컷을 유인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인간 머리로 볼 때 도저히 더하기 빼기가 되지 않는 계산법의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번식의 칼자루를 쥔 놈은 암컷이고, 그들에게 애원해야 하는 것은 수컷인 것을. 아무리 수컷이 힘이 세고, 우수한 척해도 번식문제에 있어서는 암컷에게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다. 수십만 개의 정자를 가진 수컷과 단 하나의, 또는 정자보다는 적은 난자를 가진 암컷의 희소성이 만든 이상야릇한 생식 전쟁이다. 정자를 내 뿌린 다음에는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지만, 일단 뿌릴 곳은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 것 같지는 않다. 자기 종족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램된 방식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이들과 다르겠는가.
꽃, 조개 껍질, 리본,포유류 두개골 등으로 화려하게 집을 지어 놓고 암컷을 유혹하는 바우어새, 관리하지도 못할 암컷을 모아 놓고 이 때문에 골머리 앓는 코끼리 물범, 암컷인 척 위장해 접근해 짝짓기를 하고, 몰래 숨어 있다가 짝짓기를 끝낸 암컷에게 달려들기도 하는 잔꾀 많은 수컷, 먹고 난 곤충껍질을 거미줄에 매달아 암컷이 그것을 먹을 동안 교미하고 냅다 튀는 불쌍한 거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자식에 대한 애정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좋은 온도를 위해 근육수축을 하는 비단 구렁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끊임없이 산소를 공급해주는 물고기, 혹한 속에서 새끼를 돌보는 황제펭귄 등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얄미운 기생충의 삶은 아무리 자연 속의 조화라고 하지만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 나는 이 책을 보며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다. 그들의 행동 위에 겹쳐 친 우리모습 역시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버리는 매정함, 자식을 돈 몇 푼에 팔아 넘기는 부모, 번식 자체를 포기하는 낙태, 성을 쾌락으로 생각하며 극단적인 형태의 행동까지도 요구하는 별종 등. 태초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상한 종이쪽지(돈)과 쇠조각(동전)을 위해 성을 이용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 책에 나온 ‘멍청한 수컷’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그들이 우리를 보며 이와 같은 책을 쓴다면, 그들은 책이름을 뭐라고 할지 무척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