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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몇 십년 동안 물건을 사다 보니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매 원칙이 하나 생겼다. 즉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것은 가격과 기능 위주로 구입하고, 오래 사용할 것은 품질과 브랜드 위주로 구매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슈퍼컴퓨터가 아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구매 원칙이다. (슈퍼컴퓨터도 10개가 넘는 제품의 10여 개 요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름있는 회사라면 품질에 대해 더 신경을 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재래시장에서 2~3만원주고 산 신발보다는 유명 제화점에서 십만원 가까운 돈을 주고 산 신발을 더 오래 신었다. 할인매장에서 1~2만원 하는 옷보다는 유명브랜드를 붙인 제품을 더 오래 입은 것 같다. 여기서 의류가 오래갔다는 것은 오랫동안 빨아도 처음의 모양이 별로 변하지 않고, 보풀이 일어나지도 않고, 단추도 안 떨어지고, 색상도 변하지 않고, 옷이 헤지거나 찢어지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예전에는 비싼 옷이 더 좋은 천을 썼고, 일반회사가 한번 할 재봉 질을 두 번했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옷의 제조원가를 알게 되는 순간, 반드시 이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옷 값 중 제조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비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제품을 중국에서 만드는 현 상황에서는 제조원가의 차이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특수한 원단을 사용하지 않는 한 말이다. 궁금한 것은 비싼 옷, 즉 브랜드제품의 품질문제가 아니라, 품질과 비교한 가격이었다.
여기서 소비자들이 헷갈리고 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비싼 제품은 좋은 품질의 제품이고, 싼 제품은 안 좋은 품질의 제품이라는 등식이 잘 안 맞는다. 거의 비슷한 원료를 가지고, 비슷한 기계를 통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특히 컴퓨터 가격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시장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컴퓨터가 다른 회사에서 만든 부품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조립품이다)
국내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만든다고 하면 아마도 CPU는 인텔, 하드는 삼성, 램도 삼성, 사운드카드는 블록버스터, 비디오카드는 지포스, LCD모니터는 삼성, OS는 마이크로 소프트 브랜드 상품 중에서 최고사양을 선택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동일한 사양의 컴퓨터 값은 브랜드에 따라 거의 백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용산전자상가의 조립 품은 80~90만원 선, 대기업의 브랜드 제품은 180만원 정도다. 이런 가격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철저한 A/S를 전제로 해도 조금 심한 차이인 것 같다.
이런 가격차이는 의류, 핸드백, 지갑, 속옷, 구두, 티셔츠, 신발로 가면 더욱 커진다. 제조원가를 알고 상품가격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는 상황이다. (물론 명품이라면 가격 안 따지고 무조건 사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닐 부어맨. 그는 어릴 때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최고의 브랜드 제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시작했다. 랄프로렌 상의, 입생로랑 티셔츠, 비비안웨스트우드 셔츠, 구찌 티셔츠, 세르지오 타치니 운동복, 빈티지 스웨터, 디아도라 반바지, 헬무트랭 청바지, 버버리 코트, 피에르가르뎅 가죽 재킷, 루이비통 벨트, 캘빈클라인 팬티 등이다.
그가 부자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평가하기에도 중 하류층 사람으로, 넉넉하지 못한 어떤 잡지사, 개인회사의 사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더 낫게 만들려고 했다. 즉 브랜드가 이야기하는 꿈을 믿고, 그 상품을 사면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 속에서 고가의 상품들을 계속 샀다. 옷장, 창고 속에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상태로 처 박혀 있는 물건들이 넘쳐 날 정도였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샀던 상품들이 나에게 약속했던 꿈을 주었나?’ ‘행복한 삶을 약속했던 옷가지들이 나를 행복의 나라로 데려갔나?’ ‘TV광고에서 보여준 환상의 나라는 어디에 있지?’ ‘내가 브랜드를 사랑하면 그들도 나를 사랑해 줄 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우리의 심리를 조작할 것뿐이다.’ ‘뭔가 찾아 헤매는 나에게 자신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불행해 진다고 겁줘서 물건을 강매한 것 뿐이다.’ ‘돈 내고 사는 순간 그들은 나를 잊어버린다. 아니 처음부터 나는 그들 안중에도 없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단지 값 비싼 물건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기업들의 광고에 속았다고 외친다. 인간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심리학이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월남전에서 사용하던 심리전술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명품을 런던 한 복판에서 불태웠다. 한 평생 사 들인 물건이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수천만원어치의 물건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이 꺼진 다음에 일어난 구경꾼들의 행동이다. 그들은 사용할 수만 있다면, 명품 브랜드만 불 타지 않았다면, 불에 그슬린 것도, 모서리가 깨진 것도 상관하지 않고 모두 다 집어갔다.
그는 광고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 다음에 자신의 물건을 사면 행복해 진다고 설득한다고 한다. 즉 광고장면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는 사람들이 TV광고의 내용을 믿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행복한 모습의 광고를 보는 순간 우울해 진다고 한다. 무의식은 TV광고의 모습과 자신의 처지를 순간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이다. 인간심리를 분석한 철저한 계획광고이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 이것은 품질만을 보장하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그 곳에는 남들과 다른 삶의 모습이 녹아있고, 그것을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브랜드가 보여주는 꿈에 동참하라고 설득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구찌 상표가 붙은 상품을 갖고 있다고, 상류층 모임에 낄 수 있는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파트에 입주했다고 행복이 보장되는가? 건강을 약속한다고 외치는 음료수 한 병 마셨다고 건강이 보장되는가? 유명 가수가 나와 이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상품을 샀다고 해서 그 가수가 당신을 기억해 줄 건가?
이런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브랜드, 명품브랜드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왜?
이 책을 쓴 저자는 심리치료사가 확인한 ‘브랜드 중독자’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기에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가 명품 구입을 중단하는 순간부터 겪은 혼란과 두려움, 우울증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아프다 못해 광고 자체를 혐오하게 만든다.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브랜드 중독증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도 그 중에 한명이고.
나는 유명브랜드를 일부러 기피하지는 않는다. 품질이 좋고, 그것을 사서 내가 기쁘다면 당연히 산다. 다만, 이 책의 저자인 닐 부어맨처럼 유명 브랜드 제품을 사기 위해 별도로 돈을 모은다거나, 당장 필요가 없는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물건 산다는 재미 하나로 사지는 않는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는가?
우리는 혹시 무언가를 사기 위해, 그것도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밤새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비하는 곳에 행복이 있다는 유혹에 빠져 아귀처럼 돈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닌지. 소비를 줄이고, 브랜드 상품이 요구하는 별도의 봉사료 값을 줄이면 그 만큼 필요한 돈의 액수는 줄지 않을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세뇌 같은 것을 받게 되지.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좋다. 돈은 더 많을수록 좋다. 더 많은 것이 좋다. 진짜 중요한 것이 뭔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네. 내가 뭘 샀는지 알아요? 라고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 이 사람들은 사랑에 너무 굶주려서 그 대용품을 받아들이고 있고, 물질을 껴안으면서 일종의 포옹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돈이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네.”
[독서경영 Point]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브랜드의 기능과 영향력이다. 그것도 단순한 이론이 아닌 한 사람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소비자가 브랜드 상품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것이 소비자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 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창업대학원에서 원생들에게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소비자가 브랜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꿈’ 그 자체를 만들라고 말한다. 그것도 광고를 위한 허망 된 꿈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가 자신의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진실된 꿈을.
하나의 브랜드가 만들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돈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꿈을 진실되게 만들어 주면, 그것을 보고 감동한 고객은 꼭 보답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을 담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