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마이그 메이. 그는 3살 때 헛간에서 놀다가 화약이 터지는 바람에 눈이 멀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시각장애인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인도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 냈다.

그는 장애인올림픽에서 세 번이나 금메달을 획득했고, 알파인 스키 활강부문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장애인대회가 아닌 일반인 대회다), 사업가로 장애인을 위한 휴대용 GPS를 개발해 판매중이고, 세계 최초로 레이저 턴테이블을 공동발명한 발명가이기도 하며, 한 때는 CIA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진짜 미녀다)를 아내로 둔,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기꺼이 길을 잃어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반부는 그가 시력을 상실한 후 살아온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결혼할 때까지의 모습까지, 후반부는 46세에 두 번의 수술을 거쳐 시력을 회복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이었다.

독자들은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했으면 “그래서 그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면 그만이지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도 책 중반 쯤에서 주인공인 마이크 메이가 수술하는 장면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주인공이 “보이네요. 보여요.”라고 말하는 내용을 보는 순간 책을 덮을 뻔했다. 다음 내용은 틀림없이 그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명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반 이상이 남은 분량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4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끝까지 다 보고 말았다. 마이크 메이는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시력장애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 보인다는 것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 속을 강하게 흔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마이크 메이의 엄마인 오리 진이다.

하루는 메이가 엄마에게 월넛 크릭 시내까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도 되는지 물었다. 그 곳은 교통량도 많고 집에서 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리 진의   눈 앞에는 구급차가 달려오고, 아들이 피를 쏟으며 길거리에 쓰러진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학생이, 그것도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인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심에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린 진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로 오른편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고, 차나 트럭소리가 들리면 그냥 멈추고 기다려야 해. 너무 힘들어지면 주저 말고 방향을 바꿔 돌아와야 하고, 그리고 혹시 말이야. 겁이 날까봐 걱정하지는 마라. 겁이 날 때 겁이 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녀 역시 아들이 집을 나간 다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이를 데리러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엄마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의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3시간이 지난 후, 마이크는 “나 왔어요. 엄마”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던 3시간동안 아마도 오리 진은 지옥 끝까지 내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에게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마이크 메이는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고, 단지 눈이 불편한 사람일 뿐이라는 의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갔다. 달리기시합, 축구시합엔 반드시 끼었고, 스키 활강분야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마음으로는 내 아이가 강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내 자신의 괴리를 느끼게 한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시력에 대한 부분으로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다. 마이크 메이를 수술한 의사의 말로는 그의 시력은 우주비행사를 해도 될 정도의 시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메이가 볼 수 있는 것은 물체의 색깔과 움직임뿐이다. 글자를 읽을 수도 없고, 물체의 거리감도 못 느끼고, 사람들의 얼굴도 구분을 못하며, 물건을 식별할 수도 없다. 그저 앞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 메이에게 계단은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한 칸씩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이지 않고, 땅바닥에 줄이 그어져 있는 것같이 보일 뿐이다. 사람의 얼굴도 눈, 코, 입, 귀가 붙여 있는 것만 알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누드 해변가에서 나체로 다니는 사람을 보며 가슴이 나온 여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를 구분 못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가슴이 앞으로 나온 것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본다는 것’은 눈 앞에 있는 물체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수동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는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아주 어릴 때 시각을 상실한 사람은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각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갑자기 길이 조금 어두워졌다고 치자. 그 때 일반인은 그것이 옆 건물 때문에 그림자가 생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마이크 메이와 같은 사람, 다양한 시각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평평한 길의 색이 갑자기 어두운 색으로 변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림자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메이같은 사람이 길을 가다 갑자기 색이 변하면 그림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고?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길의 색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그림자 때문만은 아니잖는가? 보도블록이 깨져도 그림자가 생긴다. 맨홀이 있으면 그곳도 색이 달라진다. 횡단보도역시 인도와 차도간의 높이 차이 때문에 색이 달라진다. 계단도 마찬가지이고, 길 가운데 통제라인이 쳐 있어도 색이 달라진다. 게다가 땅이 움푹 파인 곳도 색이 달라진다. 메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같이 색이 달라진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한국 사람의 얼굴차이는 금방 알면서 흑인들은 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즉 시각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이다. 한국사람 얼굴은 차이가 많고, 흑인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2차원적인 사진에게 원근을 느끼고,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속에서 거리감을 계산하고, 책상 위에 놓인 볼펜 하나를 거침없이 집을 수 있는 것도 눈이 아니라 뇌 속에 저장된 사물에 대한 정보 때문이다. 단지 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인간 뇌의 용량이 엄청나다보니)

세 번째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마이크 메이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그가 직면한 문제는 시각정보가 없다는 것보다 시각정보를 아무리 많이 입수해도 이를 처리해줄 시각신경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때 시력을 상실함으로써 보는 것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다른 용도로 대체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도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물체간의 거리감, 물간간의 미세한 차이, 음영 등을 구분할 수 없는 평평한 2차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칼라와 움직임만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이 두 가지는 아주 초보적인 감각이기에 다행히 그에게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현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찾기 시작했다. 즉 일반인보다 뛰어난 촉감, 잘 들리는 귀, 놀라운 기억력, 지팡이, 인도견 등이었다. 그리고 시각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기보다 촉감으로 느끼고, 기억력을 통해 차이를 확인한 후, 시각을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누군가, 어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먼저 만지고, 과거의 장소와 다른 점을 찾아 암기했고, 그 후 시각을 통해 확인하는 방법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는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 시각신경이 아닌,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를 사용하여 부족한 시각신경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시력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려 왔어. 제대로 기능하기 못하는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는 부분을 따라잡기만을 기다렸지, 그 당시에는 그게 정답인 줄 알았어. 하지만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거야.”

물론 시각정보를 대신해 기억력으로 그 부분을 메우겠다는 시도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난 분량의 시각정보(어쩌면 가장 복잡한 정보가 시각정보 아니겠는가)를 모두 암기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오래 전에 오리 진(엄마)에게 배운 대로 자신의 삶을 기꺼이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설사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는 불가능하지에 도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린 시력수술을 결정했던 이유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기 위해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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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에 빠진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뜻밖의 미스터리
치우커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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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세상 일이 항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 이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취사선택해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진실이 왜곡되어 사실과 다르게 승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기록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진주만 공습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그 사실을 미국에 미리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권력자들은 국민들을 쉽게 설득시키기 위해, 일본이 먼저 미국을 선제공격한 것처럼 만들어 참전의 이유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일본 공격을 이미 알고도 진주만이 쑥대밭이 되도록 놓아 두었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이야기다. 이것도 역시 미국의 젊은 병사들을 더 이상 죽게 놔 둘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원폭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원자폭탄의 위력을 시험하고 소련을 겁주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내용을 읽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가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 나오고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사건 하나하나가 너무 간단하게 정리되어 세계사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보다는 겉 핣기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무척 많은 것 같다. 게다가 한 제목 당 한 페이지 조금 넘은 분량의 내용으로는 그저 요약내용 그 이상을 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날개 잃은 천사, 밀로의 비너스 이야기는 너무 오랫동안 들어 왔던 이야기다. 우연히 발견된 여신상, 그 때부터 두 팔이 왜 없어졌는지, 많은 학자들이 팔의 모양을 가지고 싸웠고,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나 팔 없는 지금의 모습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이다. 근데 책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다음에 ‘왜?’라는 의문점에서 끝났다. 이 책에서도 해답이 아닌 의문으로 끝이 난 것이다.

시저와 브루투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내용 그 이상이 없다. 시저가 죽기 전에 한 말, 그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생각했다는 말, 그러나 브루투스는 시저를 자신의 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말, 그것이 다이다.

노예무역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봤고, 그 당시의 참상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수백만 명의 흑인노예가 잡혀왔는데, 그들을 대륙으로 운송하는 가운데에서 수 많은 노예들이 죽었는데 거기서 무슨 의문이 생기는가? 이 내용이 ‘의문의 세계사’라는 제목의 책에 들어온 이유를 잘 모르겠다.

또 페스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과거 유럽에 무서운 병이 돌았는데 그게 바로 페스트였고, 죽은 시체가 넘쳐나 길바닥에 버려진 채였다. 그러다 보니 시체들이 전염병을 더 악화시켰고, 그런 식으로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으려면 페스트가 왜 발생했는지,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이유 때문에, 누군가 고의적으로 병을 만들어 냈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가 있어야 그것이 ‘의문의 세계사’가 되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그 이상 이야기가 없다. 그저 무서운 병이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한 페이지 내용으로 끝이다.

여자일지 모른다는 히틀러 이야기, 나치스의 상징은 하켄크로이츠 이야기, 자유의 투사 드골의 이야기, 조지 패튼 장군의 이야기, UN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마셜플랜에 대한 이야기, 케네디와 카스트로에 대한 이야기, 빌 클린턴의 이야기, 다이애나 왕비 이야기 등에서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 의문의 세계사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어떤 점이 왜 의문스러운지, 그것이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왜 다르게 전달되었는지 당시의 상황과 등장인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의문을 푸는 것이 아니라. 평소 궁금했던 것을 나열했다는 것 그 이상의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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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액션 - 선택과 행동의 경제적 오류 분석
크리스토퍼 시 지음, 양성희 옮김 / 북돋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3월 초인가 약국에 영양제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영양제를 달라고 하자 판매원이 하는 말, “손님.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나이가 들면 몸에서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하고....” 말을 들어보니 내가 사려던 영양제보다 더 좋은 것 같아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대답은 한 달분 15,000원. 내가 찾던 영양제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이었다. 그것을 달라고 하자 그 사람은 영양제 두 통이 든 상자 하나를 갖고 왔다. 값은 30,000원. 한 달분이 15,000원이니까 두 통이면 30,000원이라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30,000원을 주고 영양제를 샀다.

근데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내가 사려던 것은 평소 먹던 영양제과 비슷한 가격의 한 달분 영양제였는데, 내 손에 들린 것은 2달치였고, 지불한 돈은 30,000원이었다. 왜 나는 30,000원을 주고 두 달분을 샀을까? 한 달분만 살 수 없으면 안 사면 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머리 속에는 판매원이 처음에 한 말, ‘한 달분 15,000원’이란 단어가 입력되어 있었다. 지불한 돈은 30,000원이지만 어차피 한 달분은 15,000원 (내가 원했던 것과 비슷한 가격. 게다가 좀 더 좋은 상품이라는 말)이니까 말이다. 두 달분을 사도 다 먹는다면 크게 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단순히 영양제 하나 산 것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며칠 전 같은 약국에서 똑 같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때도 뭔가를 사려고 갔는데 판매원이 약 하나를 소개해 줬다. 내가 사려는 것과 함께 먹으면 좋다는 것이다. 말을 들어보니 얄팍한 나의 건강지식으로도 말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약(치료약이 아니고 영양제다)을 달라고 했더니 큰 통 하나를 들고 왔다. 가격은 한 달분 14,000원, 통에 든 것을 나눠 팔수가 없기 때문에 두 달분(28,000원)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약을 보여주면서 판매원이 몇 번을 강조한 말. “한 달분은 14,000원입니다.” 마치 최면을 걸듯이 말이다.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나는 판매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한 달분만 샀으면 하는데요. 선생님에게는 두 달분이던 세 달분이던 똑 같이 한 달분은 14,000원이겠지만, 저는 이 약을 사서 한 달분도 다 못 먹으면 한 달분을 28,000원에 산 게 되거든요. 14,000원이 아니라.”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판매원을 뒤로 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 책 [이코노믹액션]에서는 “두 달분을 30,000원”에 샀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서는 “한 달분을 15,000원에 샀다”고 착각하는 것을 ‘정박효과’라고 한다. 이는 판매원이 맨 처음에 강조한 말이 내 머리에 각인되어 그 다음 내용도 앞의 말과 유사하게 해석해 버린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설득법에서도 칭찬을 먼저 하고 문제점을 나중에 말하라고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1,2,3,4,5,6,7,8을 차례로 곱한 값과 8,7,6,5,4,3,2,1을 차례로 곱한 값이 각각 얼마냐고 물으면, 단 5초 내에 답하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앞의 곱셈보다 뒤의 곱셈 값을 더 높게 말한다고 한다. 숫자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 결과는 똑 같은 공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뒤의 공식이 ‘8’이란 숫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코노믹액션]의 저자는 평소 우리가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결정들이 실제로는 잘못 해석된 판단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심리회계장부의 효과’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차이’ ‘선물과 인센티브에 대한 오류’ ‘위험선택 회피경향’ ‘손실회피 심리’ ‘거래효용에 대한 편견’ ‘매몰비용의 오류’ ‘정박효과’ 등 다양한 심리상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 맞아 나도 예전에 이런 식으로 결정한 적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아래 문제를 읽고 답을 생각해 보라.




[질문 1] 어느 날 A상점에 갔다가 괜찮은 만 원짜리 자명종 시계를 발견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 당장 살 생각이었다. 이 때 누군가 B상점에서 판촉행사를 하는데, 똑 같은 자명종 시계를 5,000원에 팔고 있다고 말해 준다. A상점에서 B상점까지는 차를 타고 10분을 가야 한다. 당신은 B상점으로 가겠는가?

                                      1) 간다          2) 안 간다




답을 생각해 봤으면 또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보라




[질문 2] 당신이 어느 날 C상점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66만 원짜리 명품시계를 발견했다. 친구가 전화를 걸어 D상점에서 완전히 똑 같은 시계를 65만 5,000원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C상점에서 D상점까지는 차로 10분을 가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D상점으로 가겠는가?

                                      1) 간다          2) 안 간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질문 1]에서는 B상점으로 간다고 하고, [질문 2]에서는 D상점으로 안 간다고 대답한다. 위의 질문을 보면 상점에서 상점으로 이동하는 거리도 같고, 할인되는 가격도 동일하게 5,000원인데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경우를 ‘비례편견’이라고 설명한다. 할인되는 가격은 동일하게 5,000원인데, 사람들은 금액보다 할인율에 더 집착한다는 것이다. 조금 고급스럽게 말해서 ‘비교수익’에 현혹되어 ‘절대수익’을 간과한다는 의미다. 이런 사례는 나를 포함해서 주위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자주 발견한다. 당신은 어떤가? 대형할인점의 광고전단지를 보면 항상 할인율을 할인가격보다 표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상인들은 소비를 할 때 실제 할인금액보다 할인비율을 더 중시한다. 당신이 조금 덜 정상적이면서 조금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할인금액과 할인을 통해 절약할 수 있는 돈을 계산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에게 선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도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뭔가를 준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선물주고 욕먹을 상황도 생긴다. 단지 선물 받은 사람들이 선물준 사람 앞에서 말을 안 하니까 모르는 것뿐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바닷가 작은 오두막에 혼자 외롭게 사는 노인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을에 사는 개구장이들이 떼로 몰려와 오두막에 돌을 던지며 시끄럽게 굴었다. 노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이들에게 욕도 하며, 달래도 봤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에게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또 올랐다. 바로 저자가 말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오두막에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불렀다. 아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집 앞에서 노니 무척 좋구나. 이 할아버지가 외롭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오늘부터 너희들이 오두막에 돌을 던지면서 놀면 할아버지가 하루에 500원씩 줄게.”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재미있게 놀면서 돈까지 받으니 그 아니 기쁘겠는가.

그런데 일주일 후,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가난해서 돈이 별로 없구나, 오늘부터는 500원이 아니라 100원을 줄게.” 그 다음 날, 평소 할아버지 집 앞에서 돈 던지며 놀던 아이들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다시 일주일 후, 할아버지는 다시 아이들을 불러 이제 돈이 다 떨어져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부터 아이들이 아예 오두막에 나타나지 않았다. 재미있지 않은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돈 받겠다고 오두막에 돌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재미있게 놀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받던 돈을 안 받는 순간, 오두막에 가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면밀히 따지면 아이들이 처음 오두막에 돌을 던질 때와 똑 같은 상황이 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아이들은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행동과 돈 가치를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자는 이런 상황을 보며 ‘뭔가를 주는 것이 안 주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안 좋은 상황을 야기 시킬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정부의 빈민층 지원금, 자원봉사에 대한 보상, 매장에서 주는 어설픈 사은품 같은 것은 액수나 사은품 자체가 생색낼 정도가 아니면 아예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미국 통계를 인용하며 창업의 실패확률이 80% (미국에서 창업 후 10년을 넘기지 못한 비율인데, 필자 생각으로는 한국보다 나은 것 같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회사 경영진이 자신의 경영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경영상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자주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창업자들은 경쟁률과 경쟁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고 자신하며, 자신의 판단이 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다른 회사들이 다 실패해도 자기 회사는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심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기계처럼 모든 것을 정확히 계산해 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돈의 액수만큼이나 그것을 사용하는 장소와 의미,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본다. 만원을 가진 사람이 기부하는 천원과 백만 원을 가진 사람이 기부하는 천원의 차이는 분명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적인 판단이나 돈, 재무와 관련된 상황이라면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판단이 오류를 범할 여지는 없는 지 깊이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손에 쥐어진 돈 만 원의 가치는 어디서든지 동일한 만 원의 가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돈이란 완벽한 대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힘들게 고생해서 번 돈이나 복권 당첨금이나 똑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즉 의외의 부수입이라도 허투루 써 버리지 말고, 힘들게 번 돈이라고 지나치게 아낄 필요가 없다. 100만원 중 1만원과 10만원 중 1만원은 똑 같은 교환가치로 생각해야 한다.”




[독서경영]




내가 가진 돈의 가치를 돈쓰는 상황과 돈을 벌어드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본다.




책에 나온 사례를 보며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대입해 보면 고객들이 어떤 방식으로 상품의 질과 가치 등을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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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넥션 - 너를 치유하고 나를 치유한다
에릭 펄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한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었다. 그녀는 기존의 ‘임사체험’ 책에 나온 내용과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영원한 빛 가운데로 들어갔지만 그 때 어디선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싫다고 거부하다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모은 임사체험 책을 보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말을 한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죽기를 거부하던 사람이 빛 가운데로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긴 한가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이 책, 리커넥션의 저자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후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고.

저자는 어릴 때부터 조금 남다른 면이 있었다. 영적으로 발달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무엇인가 오가는 물체를 느끼기도 하고, 또 몸 안에 이상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지진이 일어날 것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당연히 그가 예상한 지진이 곧 일어났고.

어른이 되어 카이로프랙틱 의사가 된 그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아픈 부위에 손을 대기만 하면 병이 낫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도 이러한 상황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한 후, 환자가 아프다고 했던 부위가 아프고, 어떤 때는 환자를 치료한 후 자신의 손에 물집이 생기기도 했고, 또 얼굴이 마치 호빵처럼 붓는 것을 보며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곧 유명해 져서 TV, 라디오에 출현했고, 신문이나 잡지에도 그의 이야기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다른 능력을 가진 치유자로서 의대에서 강의도 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유방법을 강의도 한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가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은 옆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힘을 쓰는 것도 아니고, 주문을 외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촛불을 키거나 예식을 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저자의 손을 환자가 아프다는 부위 위에 가만히 얹히기만 할 뿐이다.

당신 앞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뭔가 남다른 것을 보리라 기대 했건만,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의사가 환자의 몸에 손만 대고 있는 장면뿐이다.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치료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자신의 몸을 이용하기에 저자 스스로는 할일이 없다고 한다. 도리어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떤 힘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환자가 낫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 책, [리커넥션]을 보며 예전에 봤던 책 내용, 과거 내가 경험했던 일 등 많은 것이 생각났고, 책에 나와있는 저자의 행동이나 말이 전혀 낮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이제 시작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즉 중세암흑시대에서 인간의 의식이 한 단계 수직 상승하여 르네상스세대로 넘어 갔던 당시의 상황을 보는 듯했다. (조금 과장된 해석인가?)

이 책에 나온 몇 가지 이야기 중 독자들이 머리를 갸우뚱할, 그러나 내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보겠다.

우선, 어머니가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다. 임사체험과 관련된 책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난 어떤 물질(에테르)가 되어 죽은 자신을 바라본다고 한다. 자신은 아직 죽을 것을 느끼지 못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 말하지만 그들은 죽은 이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리고는 마중 나온 누군가를 따라 어딘가로 가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온한 빛을 보게 된다. 영혼들은 그 빛으로 들어가기 직전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심판한다. 그리고 그 때 이 생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과 어려움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내용을 보면 “에이. 순 뻥”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임사체험과 관련된 책에서 하도 비슷한 내용을 많이 봐서인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 중에서 종교인들을 건드리는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천당과 지옥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심판하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행과 괴로움도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신은 하얀 빛으로 느낄 뿐이며  실체가 없으며, 그 빛이 바로 우리 영혼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즉 우리의 영혼이 바로 신의 일부분이라는 의미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는 영혼이 이 세상으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자신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온통 하얀 빛 속에서는 모두가 똑같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저자가 환자를 치유하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치유하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그저 어떤 힘이 자신을 도구로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치유의식을 한답시고 촛불을 키고, 기도를 하고, 염을 외우고, 몸을 깨끗이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치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치유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가 자신을 통해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치유가 되고 안 된다면 그건 자신이 치유를 자신이 한다는 자만심이 아닌가? 저자가 강조하는 말이다.

세 번째는 무엇인가가(우주의 힘이든, 창조주의 뜻이든 간에) 이제 원래의 인간으로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한다. 즉 오래 전에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던 그 무엇과 다시 결합하기를 원한다(Re-Connection)는 것이다, 저자는 그 모습을 아담과 이브의 모습일 수도 있고, 지구상에서 사라진 애트란티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쨋든 우리는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갖고 있기에, 과거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예전에 말한 것처럼, 스캇팩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인간은 자연법칙과 역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진 창조주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의식혁명]에서 인간의 정신적 수준은 뇌의 지적 수준이 아닌 파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높은 파동을 보이는 인간은 그것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수만, 수십만 명의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파동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예수는 파동 측정 수에서 상위랭킹에 속한다. 최고는 아니고.

네 번째, 저자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끈의 원리’를 이야기 하면서, 우주에서 가장 작은 입자는 소립자보다 더 작은, 즉 특정 주파수로 진동하는 ‘띠의 고리’라고 묘사한다. 이는 우리가 사는 차원(4차원)이 전부가 아니고 동시에 10~12개 차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곳, 그리고 또 다른 세계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내용은 요즘 인기를 끄는 [시크릿]류의 책에 담긴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타임머신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리커넥션(Re-Connection). 이 책은 어떤 평범한 의사가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치유력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집중하면 ‘희한한 치유’를 소개하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러면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저자와 같은 치유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런 내용을 마지막 장에 정리해 놨다. 다만 저자가 항상 강조하는 말, ’나에게 왜 이런 능력이 생겼고, 치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나는 그저 내 몸을 빌려주는 것뿐이다.‘라는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왜 이런 류의 이야기(영혼, 영성, 치유, 오래된 미래 등)가 요즘 따라 빈번하게 이야기 되는지에 관심을 갖고 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의식 자체가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츠는 [메가트렌드2010]에서 책 내용 전체를 영성과 사랑이란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그가 보는 미래는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인간 스스로가 영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 환경과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이다. 마치 더러워진 환경을 스스로 자정하듯이 말이다. 나이스비치는 이런 자정활동이 가능한 이유를 점차적으로 높아지는 인간의 영성 수준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이 인간들로 하여금 원래의 모습과 재결합(Re-Connection)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잊어버린 과거의 순수 파장을 되찾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 서점에 가면 이런 단어들-‘사랑’ ‘감사’ ‘배려’ ‘믿음’ ‘신뢰’ ‘긍정’ ‘꿈; ’영혼‘ ’잠재의식‘ 등-들이 담긴 책을 자주 본다.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쓰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혹시 이런 현상이 저자가 말한 독특한 파동(저자의 표현으로 말해서)으로 인해 사람의 의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무엇인가가 자원고갈 직전의 황폐해진, 뜨거운 열기로 지구 전체의 환경이 변하고 있는, 게다가 폭발직전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식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이성을 갖고 찾아낸 수많은  문제해결책들이 결국엔 우리의 숨통을 조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 상황에서 말이다.

[Re-Connection]이라는 단어를 보며 예전부터 들어왔던 ‘오래된 미래’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방법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책 한권의 내용을 너무 확대해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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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베포포와 마법의 동전
구메 준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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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윌버라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아 다른 사람의 돈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그러나 운이 없었는지, 아니면 사업경영을 잘못했는지 그만 망하고 만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파산신고를 했고, 이로 인해 돈을 투자했던 사람들은 한 푼도 변제받을 수 없게 되었다. 화가 난 사람들은 소년의 집으로 몰려와 돈을 던지며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소년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던진 돈에 머리를 맞아 죽고 만다.

돈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 그는 도대체 돈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야 하는지 고민을 했고, 결국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여행을 떠났다.

소년은 여행길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니데바노라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를 통해 인간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받고, 그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건너야 갈 수 있다는 그 곳을 향해 가는 소년에게 할아버지는 준 네피오라는  열매를 준다, 먹으면 힘을 얻는 열매다. 덕분에 사막 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에 도착한 소년은 그 곳에서 어떤 사람(외계인)을 만나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곳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이었다.

책을 보면 저자는 그 곳을 무척 재미있게 표현했다. 우리가 흔히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곳처럼 그리고 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한 빛에 감싸여 있고,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곳에도 우리들처럼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이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사용하는 돈은 무척 특이 하다.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발견해서 파는 사람과 흥정을 끝내면 마치 전자화폐처럼 결정한 액수가 상대방 지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더 희한한 것을 아무리 물건을 사도 지갑의 돈은 항상 채워지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무한정 채워주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사던지 간에 말이다. 따라서 이 곳에서의 돈은 무엇인가 살 수 있는 기능으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자신이 남에게 무언가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즉 남들이 필요한 것을 많이 가진 사람,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이 도와준 사람이란 의미다. 남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당연히 그 만큼 많은 돈을 가질 수 밖에 없고, 남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 만큼 돈을 많이 상대에게 주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써도 가진 돈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 물건 값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끼는 것인지, 사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끼는지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는 상황은 요즘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인공 윌버는 그 곳의 왕에게 물어봤다. 물건을 아무리 사도 돈이 없어지지 않고, 부족한  황이 생기기 않는다면 누가 구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겠느냐고. 그 때 왕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 즉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은 계속 도움만 받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도움만 받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계속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다보면 자신도 남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이런 마음이 점점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돈. 우리가 알고 있는 돈의 의미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표시가 아니라, 자신이 무언가를 가질 수 있는 권리의 상징처럼 알고 있다. 돈을 부릴 수 있는 권한, 남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시간,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성공했고, 남보다 위대한지를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 애를 쓰고, 돈이 없으면 불안해 한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래전 물물교환시절, 그 때에는 운반이 어렵고, 보관이 힘든 것을 교환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돈을 만들었다. 당시 어떤 물건을 교환하는가의 문제를 얼만큼을 교환할 것인지로 물물교환의 개념을 바꾼 것이 바로 화폐, 돈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가 바뀌고 자본주위사회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단순히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는 도구의 개념을 벗어나 한 인간의 가치와 위세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수단이 되어버렸다, 돈이 많으면 훌륭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어디서든지 바로잡아야할지 모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돈만 생각하니 그것을 도외시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책에 나와 있는 사라베포포라는 마을, 지구상에 존재했다고 하는, 자신이 남을 도와준 표시로써 돈을 활용했다고 하는 그 마을이 그리워진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인 것 같다. 나는 몰라도, 내 자손 중의 누군가가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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