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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액션 - 선택과 행동의 경제적 오류 분석
크리스토퍼 시 지음, 양성희 옮김 / 북돋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3월 초인가 약국에 영양제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영양제를 달라고 하자 판매원이 하는 말, “손님.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나이가 들면 몸에서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하고....” 말을 들어보니 내가 사려던 영양제보다 더 좋은 것 같아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대답은 한 달분 15,000원. 내가 찾던 영양제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이었다. 그것을 달라고 하자 그 사람은 영양제 두 통이 든 상자 하나를 갖고 왔다. 값은 30,000원. 한 달분이 15,000원이니까 두 통이면 30,000원이라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30,000원을 주고 영양제를 샀다.
근데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내가 사려던 것은 평소 먹던 영양제과 비슷한 가격의 한 달분 영양제였는데, 내 손에 들린 것은 2달치였고, 지불한 돈은 30,000원이었다. 왜 나는 30,000원을 주고 두 달분을 샀을까? 한 달분만 살 수 없으면 안 사면 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머리 속에는 판매원이 처음에 한 말, ‘한 달분 15,000원’이란 단어가 입력되어 있었다. 지불한 돈은 30,000원이지만 어차피 한 달분은 15,000원 (내가 원했던 것과 비슷한 가격. 게다가 좀 더 좋은 상품이라는 말)이니까 말이다. 두 달분을 사도 다 먹는다면 크게 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단순히 영양제 하나 산 것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며칠 전 같은 약국에서 똑 같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때도 뭔가를 사려고 갔는데 판매원이 약 하나를 소개해 줬다. 내가 사려는 것과 함께 먹으면 좋다는 것이다. 말을 들어보니 얄팍한 나의 건강지식으로도 말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약(치료약이 아니고 영양제다)을 달라고 했더니 큰 통 하나를 들고 왔다. 가격은 한 달분 14,000원, 통에 든 것을 나눠 팔수가 없기 때문에 두 달분(28,000원)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약을 보여주면서 판매원이 몇 번을 강조한 말. “한 달분은 14,000원입니다.” 마치 최면을 걸듯이 말이다.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나는 판매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한 달분만 샀으면 하는데요. 선생님에게는 두 달분이던 세 달분이던 똑 같이 한 달분은 14,000원이겠지만, 저는 이 약을 사서 한 달분도 다 못 먹으면 한 달분을 28,000원에 산 게 되거든요. 14,000원이 아니라.”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판매원을 뒤로 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 책 [이코노믹액션]에서는 “두 달분을 30,000원”에 샀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서는 “한 달분을 15,000원에 샀다”고 착각하는 것을 ‘정박효과’라고 한다. 이는 판매원이 맨 처음에 강조한 말이 내 머리에 각인되어 그 다음 내용도 앞의 말과 유사하게 해석해 버린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설득법에서도 칭찬을 먼저 하고 문제점을 나중에 말하라고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1,2,3,4,5,6,7,8을 차례로 곱한 값과 8,7,6,5,4,3,2,1을 차례로 곱한 값이 각각 얼마냐고 물으면, 단 5초 내에 답하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앞의 곱셈보다 뒤의 곱셈 값을 더 높게 말한다고 한다. 숫자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 결과는 똑 같은 공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뒤의 공식이 ‘8’이란 숫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코노믹액션]의 저자는 평소 우리가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결정들이 실제로는 잘못 해석된 판단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심리회계장부의 효과’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차이’ ‘선물과 인센티브에 대한 오류’ ‘위험선택 회피경향’ ‘손실회피 심리’ ‘거래효용에 대한 편견’ ‘매몰비용의 오류’ ‘정박효과’ 등 다양한 심리상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 맞아 나도 예전에 이런 식으로 결정한 적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아래 문제를 읽고 답을 생각해 보라.
[질문 1] 어느 날 A상점에 갔다가 괜찮은 만 원짜리 자명종 시계를 발견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 당장 살 생각이었다. 이 때 누군가 B상점에서 판촉행사를 하는데, 똑 같은 자명종 시계를 5,000원에 팔고 있다고 말해 준다. A상점에서 B상점까지는 차를 타고 10분을 가야 한다. 당신은 B상점으로 가겠는가?
1) 간다 2) 안 간다
답을 생각해 봤으면 또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보라
[질문 2] 당신이 어느 날 C상점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66만 원짜리 명품시계를 발견했다. 친구가 전화를 걸어 D상점에서 완전히 똑 같은 시계를 65만 5,000원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C상점에서 D상점까지는 차로 10분을 가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D상점으로 가겠는가?
1) 간다 2) 안 간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질문 1]에서는 B상점으로 간다고 하고, [질문 2]에서는 D상점으로 안 간다고 대답한다. 위의 질문을 보면 상점에서 상점으로 이동하는 거리도 같고, 할인되는 가격도 동일하게 5,000원인데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경우를 ‘비례편견’이라고 설명한다. 할인되는 가격은 동일하게 5,000원인데, 사람들은 금액보다 할인율에 더 집착한다는 것이다. 조금 고급스럽게 말해서 ‘비교수익’에 현혹되어 ‘절대수익’을 간과한다는 의미다. 이런 사례는 나를 포함해서 주위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자주 발견한다. 당신은 어떤가? 대형할인점의 광고전단지를 보면 항상 할인율을 할인가격보다 표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상인들은 소비를 할 때 실제 할인금액보다 할인비율을 더 중시한다. 당신이 조금 덜 정상적이면서 조금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할인금액과 할인을 통해 절약할 수 있는 돈을 계산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에게 선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도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뭔가를 준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선물주고 욕먹을 상황도 생긴다. 단지 선물 받은 사람들이 선물준 사람 앞에서 말을 안 하니까 모르는 것뿐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바닷가 작은 오두막에 혼자 외롭게 사는 노인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을에 사는 개구장이들이 떼로 몰려와 오두막에 돌을 던지며 시끄럽게 굴었다. 노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이들에게 욕도 하며, 달래도 봤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에게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또 올랐다. 바로 저자가 말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오두막에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불렀다. 아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집 앞에서 노니 무척 좋구나. 이 할아버지가 외롭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오늘부터 너희들이 오두막에 돌을 던지면서 놀면 할아버지가 하루에 500원씩 줄게.”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재미있게 놀면서 돈까지 받으니 그 아니 기쁘겠는가.
그런데 일주일 후,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가난해서 돈이 별로 없구나, 오늘부터는 500원이 아니라 100원을 줄게.” 그 다음 날, 평소 할아버지 집 앞에서 돈 던지며 놀던 아이들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다시 일주일 후, 할아버지는 다시 아이들을 불러 이제 돈이 다 떨어져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부터 아이들이 아예 오두막에 나타나지 않았다. 재미있지 않은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돈 받겠다고 오두막에 돌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재미있게 놀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받던 돈을 안 받는 순간, 오두막에 가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면밀히 따지면 아이들이 처음 오두막에 돌을 던질 때와 똑 같은 상황이 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아이들은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행동과 돈 가치를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자는 이런 상황을 보며 ‘뭔가를 주는 것이 안 주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안 좋은 상황을 야기 시킬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정부의 빈민층 지원금, 자원봉사에 대한 보상, 매장에서 주는 어설픈 사은품 같은 것은 액수나 사은품 자체가 생색낼 정도가 아니면 아예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미국 통계를 인용하며 창업의 실패확률이 80% (미국에서 창업 후 10년을 넘기지 못한 비율인데, 필자 생각으로는 한국보다 나은 것 같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회사 경영진이 자신의 경영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경영상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자주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창업자들은 경쟁률과 경쟁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고 자신하며, 자신의 판단이 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다른 회사들이 다 실패해도 자기 회사는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심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기계처럼 모든 것을 정확히 계산해 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돈의 액수만큼이나 그것을 사용하는 장소와 의미,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본다. 만원을 가진 사람이 기부하는 천원과 백만 원을 가진 사람이 기부하는 천원의 차이는 분명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적인 판단이나 돈, 재무와 관련된 상황이라면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판단이 오류를 범할 여지는 없는 지 깊이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손에 쥐어진 돈 만 원의 가치는 어디서든지 동일한 만 원의 가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돈이란 완벽한 대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힘들게 고생해서 번 돈이나 복권 당첨금이나 똑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즉 의외의 부수입이라도 허투루 써 버리지 말고, 힘들게 번 돈이라고 지나치게 아낄 필요가 없다. 100만원 중 1만원과 10만원 중 1만원은 똑 같은 교환가치로 생각해야 한다.”
[독서경영]
내가 가진 돈의 가치를 돈쓰는 상황과 돈을 벌어드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본다.
책에 나온 사례를 보며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대입해 보면 고객들이 어떤 방식으로 상품의 질과 가치 등을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