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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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가 많다는 것이 예전에는 일종의 훈장처럼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 50이 넘으면 어디가든지 상석에 앉았고,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존경을 받았다. 이들은 당시(1970~1908년대) 젊은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한 ‘일제시대’라는 암흑기를 살아왔고, 참혹한 6.25사변에서도 살아남았으며, 4.19를 통해 우리나라를 민주국가로 만들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세상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남에게 짐을 얹히는 사람처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오래 살아가지고 주위사람들 힘들게 해?’ 이거다. 여기서 나이 먹은 사람이란 50대 이상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가끔 젊은이들은 나이 먹은 사람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잘난척한다고 하고(급격하게 변해가는 세상을 쫒아가지 못한 죄로), 나이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고, 나이를 먹어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 젊은 사람들의 돈으로 연금을 줘야 한다는 말에 짜증을 낸다. 게다가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더 줄고 있는 취업 자리마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으니 더더욱 얄밉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이 먹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말하는 젊은이들 역시 얄밉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 사람이 나이든 사람들이고, 이들이 들어가길 원하는 회사를 만든 이들도 바로 나이 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젊음을 믿고 큰소리치는 그들을 키운 게 바로 우리들 아니냐고 따지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언성이 높아진다.




어떻게 보면 요즘 세상은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 아니라,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간의 갈등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서로가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다보면 결국 싸움밖에 할 게 없다. 어떤 게 정답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만큼 살았으면 멋지게 한 인생 마감하면 서로 좋은 것을 이것조차 자신의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이다 보니 더욱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수명만 길어졌으니, 요즘 세상에서 인생이 길어졌다는 것을 참 기쁨으로 만끽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나이 50대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거의 20년 동안 가족들을 버려둔 채 오로지 직장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건만 자신이 뽑아 키운 사람에게 퇴사통고를 받았다. 그것도 회사 밖의 음식점에서. 그녀는 이제 당신도 나이를 먹었으니 회사를 위해, 젊은  이들을 위해 퇴사해야 한다고 통보하고는 짐을 싸서 집으로 보내줄 테니 회사에 다시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고 말하곤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당시 주인공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특히 주인공처럼 20여 년 동안 직장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의 경우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무력감, 자신을 보호해 줄 보호막조차 없이 험난한 사막으로 쫓겨난 듯한 두려움, 혼신을 다해 충성을 바친 회사에 대한 배신감, 게다가 남은 몇 십 년의 삶을 살아갈 방법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느껴야하는 삶 자체에 대한 공포 등 자신의 인생과 직장을 맞바꾼 사람만이 겪어야하는 두려움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심정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고작 직장생활 4~5년하고 퇴사통고를 받은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기 살 길 찾기에 더 열심을 다해 살아왔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을 훌륭히 딛고 일어섰다. 그것도 남들은 이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나이라고 하는 64세에 말이다. 몸이 힘들고 머리조차 잘 안돌아갈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온갖 청소에,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는 커피점 파트너. 게다가 집에서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매장까지의 거리까지 모든 것이 무척 힘든 상황에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인생3막을 무척 만족스럽게 보고 있다. 과거 직장에서 큰소리치고, 편안하게 살아가던 모습보다 더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 과거와는 달리 스스로 직접 움직여 완수해낸 일들, 지시와 복종관계가 아닌 믿음과 신뢰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의 관리시스템, 게다가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주인공의 성격까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건들을 거의 완벽하게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훌륭하게 바꿨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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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다는 것 - 나를 돕는 건‘오직 나 자신뿐이다!’
나다니엘 브랜든 지음, 홍현숙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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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어라.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너 자신뿐이다. 세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긴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자신 있다고 소리쳐도 뒤돌아서는 순간 ‘과연 내가 저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게 우리들이다. 이런 상황은 주변에서 아무리 ‘너는 할 수 있어’라고 외쳐봐야 자기 스스로가 확신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크게 두 개의 삶을 살았다. 하나는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판단하는데 있어 자신이 없었던 삶, 그래서 항상 두렵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삶, 또 하나는 나도 뭔가 세상에 기여할 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던 삶이다. 나는 이런 삶을 되돌아보며 무엇이 나를 이토록 극에서 극으로 옮겨놨는지 많이 생각해 봤고, 그 결과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나에 대한 자신감의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은 잘 다니던 대학교 전공을 바꿔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할까. 이왕 멋지게 살아갈 거면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나에게 과거와는 다른 삶을 제공해줬다. 주위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학사 증을 두 개씩이나 받으려고 하냐고 따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이전에 자신에 대한 자신감(Self-Esteem)이 필요하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행이란 것이 따라야 하며, 실행을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되던 안 되던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속에서는, 물론 실패보다는 성공에 대한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겠지만 이와 같은 마음가짐 자체가 바로 자신감에서 시작된다. 바로 나에 대한 자신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의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자기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 입장에서는 안 될 확률보다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일을 진행한 것이지, 해 봐야 거의 안 될 것이 확실한 일을 하늘만 믿고 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말은 자칫 잘못하면 무척 무책임한 말이 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일,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서부터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 하다못해 시험공부를 하고, 남다른 자신을 찾겠다는 것까지도 모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다.




이 책은 심리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임상결과, 환자와의 상담내용을 토대로 하여 자신감이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감을 어떻게 개발하고, 유지, 강화시킬 수 있는지 설명한 책이다. 언뜻 보기에는 고리타분한 이론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맞아!’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다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궁금하게 된다.




나도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자신감에 대해 기본적인 논리를 설명한 책인 줄 알았지만 계속 책을 보면서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었고, 평소 자신감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한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인줄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오늘 내리는 결정, 어제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이유 없이 두려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일들이, 자신의 마음속에는 뭐라고 설명했던지 간에, 자신감과 깊이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자신감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평소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이라도 그 자신감을 좀 더 확고하게 키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생각지 않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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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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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와는 다른 신체구조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의 한 유형이긴 하지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여성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이기에 울어서는 안 되고, 남자이기에 가족을 책임져야 하고, 남자이기에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되고, 남자이기에...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 물론 여성들도 ‘여자이기에’ 하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라났겠지만 남자인 나는 모르니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남자가 가장 자존심 상할 때가 자신의 가정을 책임질 수 없다고 느낄 때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서인지는 몰라도 가족의 먹고 살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수 없을 때, 가족의 여러 가지 일들을 앞에 나서 해결하지 못할 때 남자는 남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했다고 느낀다. 물론 세상을 살아보니 나도 이제야 비로소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아직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 가끔 나를 힘들게 한다.




예전에 스티브 비덜프가 쓴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이란 책에서도 남자의 우울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신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세상을 이루는데 필요하기에 만들었을 텐데 날이 갈수록 남자의 위치와 역할이 애매해 진다는 것이다.




오래 전 인간들은 힘이 센 남자가 일을 하고 곡식을 키우고 사냥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리고 그러한 권위를 갖고 가정을 이끌었으며, 동시에 자손에게 가족의, 사회의 가치와 질서체계를 가르쳐줬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 이제 힘이 세다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차피 힘쓰는 일은 기계가 하게 되었고, 인간은 어디서,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판단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이러한 상황을 존 헨리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표현했다. 존 헨리는 공사현장에서 굴을 뚫는 기계인 굴삭기와 경쟁하다 죽은 사람이다. 즉 기계와 인간 중에 누가 더 힘이 센지, 굴을 더 빨리 파는지 시합을 했다가 결국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쓰는 바람에 죽은 사람이다. 다니엘 핑크는 이런 상황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존 헨리의 죽음은 산업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하나의 일화로서...이제 기계는 어떤 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인간이 지닌 존귀함의 척도 또한 변화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면에서 밀리는 남자. 힘쓰는 것은 당연하고, 머리 쓰는 것, 돈 버는 것,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여성과 대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다못해 덤프트럭(예전에는 남자의 전유물) 운전기사 중에도 여자가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남자의 아픔과 슬픔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여성은 모르는 남성만의 자괴감이라고 할까.




이 책은 이와 같은 남자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해 목숨까지 끊으려했던 한 남자. 힘을 쓰는 것에서, 남자의 포용력에서,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면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계를 느낀 한 남자가 어느 날 살아남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시골, 그것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외지에 들어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직접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집까지 직접 지어가면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언뜻 보기에는 도시민의 농촌 정착기처럼 느낄지 모르나 내 눈에, 내 가슴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한 남성이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남자상을 찾아가는 힘겨운 삶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책 내용 곳곳에 아내와의 갈등, 힘을 되찾는 모습, 남자이자 가장으로서의 역할 회복 등의 내용이 나온다.




‘피어라, 남자’. 책을 덮고 다시 본 제목은 처음 책을 열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책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 같다. 나는 이 책을 남자로서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세상에서의 역할을 상실한 남자들에게 그와 같은 자괴감은 자신의 능력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자체가 남자의 모습을 이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남성은 전 인류의 반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이, 감성이, 습관이, 세계관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교사 중 남성은 10%도 안 된다. 여성 교사에게 삶의 모습을 배운 남성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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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
레오 김 지음, 김광우 옮김 / 지와사랑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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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일까? ‘영혼’은 존재할까? 한번 태어나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인가? ‘영성은?’ ‘죽은 후 다시 태어난다는 종교이론은?’ ‘사후생이 있는 건가?’




인간이 종교를 믿으면서부터, 또 종교를 찾게 되는 이유 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의문점들이다. 어쩌면 종교란 살아가는데 힘을 얻자는 것이긴 하지만 죽음과 쇠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의 교리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가.




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고, 따라서 사람이 죽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죽은 후(정확하게 말하면 뇌파와 심장 박도이 멈춘 상태)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물어보는 방법뿐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사후생’을 보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정리해 놨다. 즉 그들이 죽는 순간부터 영원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과정에, 물론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과 나라에 따라 문화적인 색채는 다르지만, 거의 유사한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 죽으면 에테르 상태가 되는데  그때 자신의 죽은 몸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나,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만 하면 순간적으로 그의 곁으로 이동하는 것, 눈이 부실 정도의 하얀 빛으로 된 문을 본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로스박사의 책이 스터디 셀러처럼 팔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의 글 솜씨나 지명도를 떠나, 로스박사가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즉 특정 상황에 처한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있는 임사체험한 사람들을 다양하게 조사하여 이를 기록하고, 다시 요인별로 분석하여 나온 결론이란 것으로 조사방법론 중 인터뷰 방식을 택했다.




만약 이 글이 과학이라는 이름 속에서 이뤄지지 않고, 특정 개인의 경험담을 쓴 책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세상에 나온 수많은 종교서적처럼 특정인만이 보는 소수의 교리서처럼 되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참과 거짓에 대한 기준, 즉 우리가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경험과 지식을 과학이란 이름 하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의 재미가 여기에 있다. 과학과 종교, 영혼과 이성, 육체와 에너지 등 평소 전혀 다른 세계에서 존재했으리라 믿었던 주제들 간의 관계를 현재까지 발견된 다양한 이론과 경험치를 통해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말이다.




현대 과학의 핵심은 무엇인가? 전자학, 에너지학, 영양학, 노화의 문제? 사람들은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컴퓨터와 전산망, 네트워크, 우주선을 생각하겠지만 이 모든 것의 기반이론은 물리학, 화학과 같은 기초학문이다. 세상의 흐름과 사물 간의 관계, 이들의 구성요소 등 세상 만물의 이치를 과학적으로, 아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발견 없이는 불가능하며, 사물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들 간의 자연적인 연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화학분야에 대한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핵은 누가 발명했을까? 그렇다면 화약은? 우주선의 연료는? 이런 식의 질문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엔 기초학문분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저자는 이와 같은 분야의 지식을 통해 정신과 영혼,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설명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아는 지식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것은, 여기서 우리는 나, 당신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말한다, 실제 존재하는 것의 4% 정도라고 한다. 즉 96%는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까지 합치면 그것의 범위는....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지금까지 찾아낸 지식들을 총 동원해 무지의 부분을 나름대로 모자이크해 나간다. 그리고 종교라는 분야, 영혼, 정신, 에너지 등의 분야를 조심스럽게 설명한다. 하지만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이지만 현재 있는 것을 가지고 추론할 수 있는 인간의 머리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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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자연사 -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섹스와 구애에 관한 에세이
애드리언 포사이스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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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조물주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조차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자손을 번식시키니 말이다. 우리는 알 수없는 교묘한 방법을 통해 암수가 만나고, 서로가 가진 자원(정자와 난자)를 교환하면서 대를 이어간다.




하지만 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치열한 전쟁이 있다. 인간이 서로의 영토를 차지하고 남이 가진 물자를 빼앗기 위해 싸우는 것 이상으로 종족번식을 위한 경쟁이 있다는 말이다. 단지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모르는 것뿐이다. “아! 자연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이 말을 하는 순간 어떤 생명체는 주위의 경쟁자에 의해 죽어가고, 어떤 생명체는 자신의 아이를 먹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인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TV에서 물고기를 잡고 신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당연히 그런 장면을 방영하는 TV제작자도 함께. 아마도 내가 사냥이나 낚시를 즐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장면이다.




한 사람이 그물로 큼지막한 물고기를 방금 잡아 올렸다. 그 사람은 물고기의 몸을 잡고 카메라 앞에서 신나게 웃고 있다. 물고기는 당연히 펄떡거리고. 그 사람 말 “얼마나 싱싱합니까? 하하”. 하지만 웃고 있는 사람과 달리 물고기는 지금 숨을 못 쉬고 있다. 물속이 아닌 대기 중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발악을 하는 이유가 숨을 못 쉬어서 그런 것 아닌가? 숨이 막혀 펄쩍거리는 물고기를 잡고 싱싱하다면서 웃고 있는 사람의 모습. 이것이 자연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면 자연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장면 속에서 얼굴에 비닐을 씌었기 때문에 숨을 못 쉬어 발악하는 사람의 모습이 연상된다면 자연은 정말 잔인한 곳이다.




동물들을 보면 수컷이 암컷보다 더 아름답다. 아마도 암컷보다 수컷이 암컷을 유혹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수백만 마리의 정자를 갖고 대량생산하는 수컷과 달리, 또 자손이 생기면 키우면 책임에서 면제되는 대부분의 수컷과는 달리 암컷은 몇 개 안되는 난자를 갖고 있고, 또 자손을 키워야 하는 책임이 있다. 따라서 암컷은 우수한 정자를 받아 자손의 생존율을 높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수컷을 골라야만 한다. 암컷이 수컷보다 덜 적극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수컷의 모습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수컷 자신의 생존율을 점점 더 줄여든다는 것이다. 다른 포식자들의 눈에 더욱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그러나 수컷은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더욱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게 만든다. 어떤 동물은 꼬리를 더욱 크게 길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최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몸의 유연성과 신속하게 날아갈 수 있는 힘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 할까?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종족번식이라는 기본적인 등식을 제시한다. 즉 수컷 자신이 남의 눈에 띄어 죽을 확률보다는 암컷에서 선택되어 자손을 번식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자기 혼자지만 암컷에게 선택되어 자신의 정자를  암컷 안에 있는 난자와 결합시키면 수십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손을 죽이고, 심지어는 먹어버리는 동물들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이런 현상도 무척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것 역시 자손의 생존율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두 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자라날 때 어떤 동물은 새끼 하나가 다른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당연히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끼가 태어났지만 먹을 것이 부족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어미는 가장 약한 놈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 자연스럽게 도태시켜 버린다고 한다. 결국 힘이 좋아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난리를 치는 놈에게만 먹이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절대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도 아기를 낳기 전에 비정상적인 경우라면 아기로 태어나기 전에 자궁에서 그 생명체를 흡수해버린다고 한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유산이란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 임신하면 이 기능이 약화되고 결국 비정상적인 아이를 낳게 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아무리 아는 척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의식적으로는 느낄 수 없는 종족번식을 위한 내제된 공식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채 하고 마는 행동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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